#91. 추악한 살인자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 듯 인도 옆 배수구 위로 빗물이 넘실거릴 정도로 내리고 있었다. 하늘에 짙게 어둠이 깔리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조금씩 뜸해 지고 있을 때쯤 유달리 한쪽이 찌그러진 우산을 쓰고 있는 사람이 강미남 클럽 앞을 기웃거리고 있었다.
클럽에서 흘러나오는 강력한 비트가 바닥을 치는 빗물소리와 섞여 더욱 귀를 자극했지만 우산을 쓰고 있는 그는 아무런 흥도 느끼지 못하는 듯했다.
클럽 앞으로 차가 전조등을 밝히며 들어서자 클럽 안을 기웃거리고 있던 그는 재빨리 몸을 숨겼다. 차 뒷좌석에서 내린 육팔은 우산이 없는 듯 비를 피해 클럽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 뒤로 운전석에서 덕팔이 내려 뒤따랐다.
그들이 들어간 뒤에 또 다시 찌그러진 우산을 든 그가 클럽 앞을 어슬렁거렸다. 그때 클럽 안에서 육팔이 뛰쳐나와 그를 낚아채듯 안으로 끌고 들어갔다. 우산을 쓰고 있던 그는 갑작스런 일에 놀라 우산을 놓치고 말았고 얼굴이 드러났다.
“방 형사님 아니십니까?”
“어? 육팔.”
방기철 형사와 육팔은 일면식이 있는 듯 보였다. 방 형사의 팔을 툭 치며 육팔이 말했다.
“에이, 육팔이 뭡니까? 김 실장입니다. 그건 그렇고 형사님이 여긴 어쩐 일입니까? 금남시 형사님이 여기 강남까지 어쩐 일로 오신 겁니까?”
“나야 말로 육팔 자네가 여기는 어쩐 일이야? 설마 여기가 자네 나와바리인거야?”
“모르고 오신 겁니까?”
“정말이야? 야아, 출세했네. 서울로 갔다는 소리를 들었는데 거기가 강남일 줄 몰랐지.”
방 형사는 육팔의 어깨를 툭툭 치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런 방 형사의 행동이 썩 좋지 않았는지 육팔은 쓴웃음을 지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방 형사님도 서울로 영전하신 겁니까?”
“에이, 영전은 무슨······. 시골 촌구석 형사 주제에.”
“그럼, 왜요? 무슨 사건이라도 터진 겁니까? 용의자가 서울로 튄 겁니까? 그놈 잡으러 오신 거예요? 그런 거면 제게 말씀해 보세요. 사람 찾는 일이면 제가 또 전문 아닙니까?”
방 형사는 손을 내저었다.
“그게 아니라니까, 강남에 왔다가 여기가 꽤나 유명한 곳이라는 소리를 듣고 와 본 거야.”
“근데 왜 들어가시지 않고 도둑고양이마냥 기웃거리기만 하십니까?”
“내가 언제······. 그게 아니라 형사 신분에 클럽에 들락거리는 게······. 아이, 그렇잖아. 그래서······.”
육팔은 뭔지 알겠다는 듯 능글맞은 얼굴로 방 형사를 빤히 쳐다봤다.
“여전하시네요. 방 형사님. 간만에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랑 들어가시죠. 제가 룸 하나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정말? 아, 아니······. 명색이 형산데 조폭······ 아니, 뇌물로 오해를 받을 수 있으니까, 술값은 내가 낼 테니 들어가서 구경 좀 하자고.”
“그러시죠. 제가 룸장한테 잘 얘기해서 괜찮은 애들로 들어 보내겠습니다.”
“그래? 아이, 이래서 지연, 학연이 이리 좋은 게 아니겠어. 서로 상부상조하고.”
“상부상조요?”
“어? 아니······. 자네는 술 팔아서 좋고 나는 덕분에······ 좋고. 그렇다는 거지.”
새끼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방 형사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육팔도 따라 크게 웃으며 클럽 안으로 안내했다. 그들이 클럽 안으로 들어서자 기다리고 있던 수석 매니저가 허리 숙여 인사했다.
“그래, 여기 형······ 아니, 어르신 방 하나 마련해 드려라.”
“예, 실장님.”
수석 매니저는 지나가던 종업원을 불러 세웠다. 그리고 종업원에게 방 형사를 룸으로 안내하라고 지시했다. 방 형사는 고마워 어쩌지 못하는 얼굴로 육팔에게 손을 흔들어 보이며 종업원을 따라나섰다. 방 형사가 가는 것을 보고 수석 매니저는 육팔 옆으로 다가와 작게 말했다.
“실장님, 이동수 실장이 와있습니다.”
“칠구가?”
“예. 알고 오신 거 아닙니까?”
“무슨 헛짓걸이 하고 있는 거야?”
“아닙니다. 내일 VIP 모임을 대비해서 리허설을 한다고······.”
“리허설? 무슨······. 어디야? 아, 아니다. 앞장 서.”
정색하며 놀라는 육팔을 보고 수석 매니저는 당황했는지 어쩌지 못하고 그대로 서 있었다.
“뭐해? 앞장서라니까.”
“아, 예.”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꼈는지 수석 매니저는 머쓱하게 머리를 긁적이며 앞서 걸어갔다. 육팔은 그를 뒤따르며 말했다.
“걱정 마. 너한테 똥물 안 튀게 할 테니까.”
“그런 게 아닙니다. 실장님께서는 알고 계신 줄 알았습니다.”
“그래, 알았다고. 어서 앞장 서.”
멈췄던 발걸음 다시 떼며 수석 매니저가 말했다.
“지금 가셔도 소용없으실 겁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한참 전부터 술에 취해 횡설수설하고 계셨습니다. 가보셔도 말이 안 통하실 겁니다.”
“이 빌어먹을 자식이······. 너는······. 아니, 됐다. 일단, 가자. 내가 직접 봐야겠다.”
“예.”
VIP모임이 있을 룸 앞에 선 수석 매니저는 손으로 문을 가리켰다. 그리고 노크를 하고 문을 열었다. 시끄러운 노랫소리와 함께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칠구와 여자가 몸을 부비고 있었다. 칠구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눈이 풀려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옆으로 손뼉을 치며 박자를 맞추고 있는 오상혁 매니저가 보였다. 룸 안으로 육팔이 들어왔는지도 모른 채 흥겹게 즐기고 있던 그들은 수석 매니저가 손을 흔들며 소리치자 상혁이 깜짝 놀라서는 육팔 앞으로 달려와 허리를 굽혔다. 반면 칠구는 육팔을 보고도 모른 척 여자를 더욱 힘껏 끌어안고 노래를 더 크게 불렀다.
그 모습이 기가 막힌 듯 육팔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노래방기기와 연결된 마이크 줄을 뽑아버렸다. 찌지직하는 거친 기계음소리와 함께 노랫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곧바로 수석 매니저가 노래방기기의 전원을 껐다. 그제야 칠구 옆에 딱 붙어 있던 여자가 떨어져 소파에 앉았다.
“어? 육, 팔형님? 맞아? 내 앞에 있는 사, 사람이 육팔형님이신가?”
상혁은 일그러진 얼굴로 칠구에게 달려왔다.
“맞습니다, 형님. 김 실장님 오셨습니다. 이제 정신 차리십시오.”
“그래? 형님, 어서 오십시오.”
두 팔을 벌려 육팔에게 다가가려했지만 칠구는 술에 취해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했다. 옆에 있던 상혁이 넘어질 뻔한 그를 부축해 간신히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
“술에 떡이 됐구나. 네가 이러고도 사람 새끼야? 상혁아, 내가 너한테 이러라고 그리 신신당부를 한 거니?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버럭 소리치며 화를 내는 육팔 앞에 상혁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벌벌 떨었다. 칠구는 술에 취해 인사불성인지 오래였다.
“저 새끼, 아주 막 나가네. 아, 저걸 그냥······.”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육팔이 주먹을 치켜들며 칠구에게 달려들려는데 뒤에서 방 형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식구끼리 그러면 안 되지.”
“뭐야? 방 형사님이 여기 왜?”
“오랜만에 만났는데 같이 한잔 해야지. 그래서 찾다가 여기까지 왔는데, 여기 뭐야? 뭐가 이리 으리으리해. 이런 곳도 있었어? 이런 곳은 어떤 사람들이 오나 했더니? 칠구 저 친구가······. 출세했네. 아휴 부럽네, 부러워. 나는 언제 이런 곳에서 한잔 빨 수 있을까?”
“젠장······. 상혁아, 칠구 데리고 나가.”
“예, 실장님.”
눈치를 살피며 상혁은 재빨리 칠구를 부축해 룸 밖으로 나갔다. 같이 있던 여자들도 그들을 따라 룸을 나섰다. 방 형사는 룸 안을 둘러보며 육팔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왜 그래? 아직 술도 많이 남았는데. 이 술 아까워서 어째. 내가 좀 마셔도 될까? 술이 아까워서 그래.”
“죄송합니다. 여기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방 형사님이 계셨던 방으로 가시죠. 제가 술 한 잔 따라 드리겠습니다.”
“에이, 여기 이렇게 술들이 많은데······. 서운하게 그럴 거야? 그냥 여기서······.”
육팔은 방 형사의 말을 끊고 단호하게 말했다.
“안 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광식아, 형사님 밖으로 모셔라.”
“형사님? 아, 예. 형사님, 나가시죠.”
“이거 너무하네. 매정하게······. 알았어, 더러워서 참.”
서운한 얼굴의 방 형사는 육팔의 심기가 좋지 않아 보여 수석 매니저를 따라 마지못해 룸 밖으로 나갔다. 모두 나간 빈 방을 육팔은 한번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고 식탁에 있던 양주병을 들어 한 모금 들이켰다.
***
징징! 송이의 주머니 속에서 울리는 휴대전화 진동소리에 옆자리 앉아 있는 민정이 힐끔 쳐다봤다. 송이는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를 확인하고는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그림자를 보았다. 민정은 수업 중에 계속 울리는 송이의 휴대전화 진동음 때문에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쉬는 시간에 송이에게 무슨 일인지 물어봤지만 제대로 알려주지 않았기에 더욱 신경이 쓰였던 터였다.
교단 앞 선생님을 보고 있었지만 송이 또한 수업내용이 귀에 들리지 않았다. 송이는 박동식 경위에게 오는 문자를 확인해 그림자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박 경위는 칠구의 신병을 확보해 뒤쫓고 있었고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정리해 전달해주었다.
덩달아 수업에 집중 못하고 있는 민철은 수업 중간 중간 송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옆에서 이상하게 본 동진은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민철에게 조용히 물었다.
“야, 너 자꾸 어딜 보는 거야? 송이 보는 것 같은데, 이제 송이랑 잘 지내기로 한 거야?”
고개를 가로저을 뿐 민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동진은 몸을 민철 옆으로 최대한 붙여서는 다시 물었다.
“너희 둘 같이 운동한다면서? 민정한테 들었어. 거짓말 할 생각 마. 뭐야? 언제는 재수 없어서 말도 안 건다면서? 이제는 매일 붙어 다니고. 둘 사이에 무슨 일 있었던 거야?”
민철이 계속 묵묵부답으로 나오자 동진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궁금해 죽겠다. 말 좀 해, 새끼야.”
“누가 떠들어?”
수업 중이던 선생님이 뒤돌아보며 꾸짖자 동진은 얼른 자세를 바로 잡고 책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숙였다. 선생님이 다시 칠판 쪽으로 고개를 돌려 필기를 하자 동진은 책 위로 빼꼼히 얼굴을 들어 교단을 확인하고는 다시 민철에게 붙어서는 말했다.
“너 나중에라도 꼭 말해줘라. 아이, 재수 없는 놈.”
그렇게 말하고는 동진은 다시 자세를 바로 잡았다. 민철은 그런 동진을 힐끔 쳐다보고는 싱긋 웃었다. 그리고 곧바로 송이를 봤다.
창가 옆으로 드리운 그림자에게 송이는 속으로 물었다.
‘황상두 의원이 맞는 거예요?’
‘응. 맞아. 기정······. 그날 호텔에서 봤던 사람이 바로 황상두 의원이었어. 정말 국회의원이었네. 망할 놈의 새······ 아니, 자식이 딸 벌인 학생을······.’
‘그럼 조폭과 황상두 의원이 깊게 연루되어 있는 게 맞는 거잖아요.’
‘그게 좀 이상해. 호텔에서는 처음 만난 것처럼 보였거든. 칠구라는 깡패가 황상두라는 국회의원에게 성상납을 하는 듯 보였다고.’
‘성상납이요?’
‘응. 그냥 성매매가 아닌 거지. 대가성이 있는 뇌물 같은 거라고 봐야할 거야. 칠구 그 자가 어떤 대가를 바라고 황 의원에게 성상납을 했는지 그걸 알아낸다면 그들을 한 번에 검거할 수 있을 거야. 기정한테 저지른 폭력을 반드시 밝혀내야 해. 분명, 기정이가 죽은 그날 기정한테 무슨 일이 있었던 게 틀림없어.’
‘그 일이라는 게 성상납일까요? 국회의원에게 말이죠.’
‘나도 그렇다고 추측할 뿐이야. 처음 우리가 기정을 그자로부터 구출한 뒤에 칠구 그 깡패 자식이 다시 협박해 황상두 의원에게 보낸 듯해.’
‘그날 우리가 칠구 그 사람을 뒤쫓았잖아요. 기정이랑 같이 있지도 않았고요. 그렇다면 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게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겠지. 칠구 그놈은 우리가 지켜보고 있었으니까. 그래도 부하들에게 지시했을 수도 있으니 그건 좀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 분명한 건 기정이 그날 성착취를 당했다는 거야. 그런 이유로 정신이 나간 채 횡단보도를 건넜던 거고. 신호가 바뀐 줄도 모르고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으니······.’
‘그렇다면 정말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인 게 맞는 거잖아요. 그렇죠?’
‘그건 좀 더 따져봐야 할 것 같지만 미성년자 성착취 건과 대가성 성상납만으로도 죄가 성립되니까 빠져나가지는 못할 거야. 반드시 처벌 받게 될 거야, 그건 확실해.’
‘그들은 기정을 죽인 살인자라고요, 살인자.’
송이는 그렇게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양 볼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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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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