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그림자의 실체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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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가시지 않는 듯 여전히 괴로워하는 오 대표를 미키 정이 부축하며 밖으로 나가려는데 오 대표가 갑자기 넘어지며 한쪽 무릎을 바닥에 강하게 찧었다. 쿵하는 큰소리와 함께 오 대표의 입가에서 신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무릎을 잡고 울먹이듯 말하는 오 대표의 목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미키 정이 쪼그려 앉으며 걱정스런 얼굴로 물었다.
“형님, 괜찮으십니까? 갑자기 왜 넘어지신 거예요?”
“동생이 다리를 걸었잖아. 조심 좀 해.”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아파 말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오 대표는 간신히 말을 뱉어내며 신경질을 냈다.
“제가요? 아닌데······. 아무튼 죄송합니다. 일어설 수 있으시겠어요?”
“나 좀 일으켜 세워줘.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
“그러게 말입니다. 제 손 잡고 일어나세요.”
미키 정의 손을 잡고 오 대표가 발을 절뚝이며 일어섰다. 그때 타닥닥 소리와 함께 룸 안의 모든 전등들이 꺼졌다. 깜짝 놀란 미키 정은 잡고 있던 오 대표의 손을 놓으며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뭐야? 정말 지진이라도 난 거야?”
“정전인가?”
오 대표의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미키 정이 고개를 돌리는데 그 순간 오 대표의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으······ 뭐야. 동생이야? 날 때린 게.”
“네? 아니······.”
무슨 상황이 벌어진지 모른 채 말을 하려던 미키 정의 입으로 묵직한 것이 날아와 강하게 때렸다. 신음소리도 못 내고 뒷걸음치는 미키 정은 입을 감싸며 고개를 숙였다.
“왜 대답이 없어? 장난치는 거면 그만 둬. 하나도 재미없으니까. 어서 불 켜. 난 야맹증이 있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단 말이야. 어서!”
화가 끓어올라 소리쳐보지만 미키 정은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입안에서 피가 날 정도로 입안이 얼얼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고개를 들어 버럭 화를 내는 소리가 들리는 곳을 바라보는 순간 또 묵직한 주먹이 미키 정의 턱을 강타했다.
욱하는 옅은 신음소리가 들렸으나 화가 나 소리치는 오 대표의 귀에 그 소리가 들렸을 리 만무했다.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미키 정에게 화가 단단히 난 오 대표는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댔다.
“내 말이 말 같지 않아! 어서 불 켜! 어서! 동생, 동생 내 말 안 들려!”
컴컴한 곳을 두리번거리며 소리치는 오 대표는 벌벌 떨고 있었다. 화가 난 것도 있었지만 덜컥 겁이 났다. 어두운 공간에 혼자 남겨져 있다는 사실이 공포감으로 몰려왔다. 정말로 지진이 난 것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손을 이리저리 더듬으며 문을 찾는 오 대표의 손에 무언가가 잡혔다. 그런데 뭔가에 이끌리듯 몸이 당겨지며 목에 강한 충격이 강해졌다. 그 순간 몸이 하늘 위로 붕 떠서는 바닥으로 강하게 떨어졌다.
비명소리와 함께 허리를 잡고 괴로워하는 오 대표의 양팔을 무언가 모를 묵직한 것이 짓눌렀다. 그리고 얼굴로 사정없이 단단한 무언가가 날아들어 고개가 돌아갈 정도의 충격을 주었다. 뭐라고 말할 새도 없이 얼굴을 강타당하는 오 대표였다.
그림자는 오 대표의 양팔을 다리로 짓누른 채 주먹으로 오 대표의 얼굴을 가격하고 있었다. 실컷 얼굴을 두들겨 패던 그림자는 점점 분노가 차올라 나뒹굴던 아이스버킷을 집어 들어 얼굴을 내리치려했다.
‘안 돼요!’
갑자기 송이의 간절한 외침이 그림자의 귀를 때렸다. 이미 정신을 잃은 오 대표의 얼굴 바로 앞에서 아이스버킷이 멈춰 섰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고 오 대표를 죽일 수도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림자는 스스로도 놀란 나머지 그대로 굳어 있었다.
턱을 맞고 쓰러져 있던 미키 정의 눈에 덩그러니 떨어져 있던 아이스버킷이 움직이는 것이 보였다. 눈이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져 쓰러져 있는 오 대표와 그 머리 위로 아이스버킷이 허공에 떠있는 것이 보였던 것이다.
오 대표 위로 짙은 무언가가 보였지만 그것이 그림자인지 귀신인지 사람인지, 그 실체를 알 수 없었다. 그저 허공에 떠있는 아이스버킷을 보고 놀라 벌떡 일어나 오 대표에게 달려가 발로 아이스버킷을 걷어찼다.
그의 발길 짓에 들고 있던 아이스버킷을 놓치며 그림자는 옆으로 주저앉았다. 미키 정은 그림자를 보지 못한 채 쓰러져 있는 오 대표를 살피며 소리를 질러댔다.
“밖에 사람 없어! 빨리 들어와! 빨리! 사람이 다쳤다고!”
방음이 잘 되는 것인지 아니면 밖에 사람이 없는 것인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아 미키 정이 직접 문을 열고 달려 나가 사람들을 불렀다. 그제야 종업원들이 달려와 안의 상황을 살피며 불이 꺼진 것을 보고 전원스위치를 찾아 다시 켰다. 타닥닥 소리와 함께 룸 안의 전등들이 환하게 밝아졌다.
자신이 사람을 죽일 뻔한 것에 대한 자책과 놀람에 멍하니 있던 그림자는 송이의 애타는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아저씨, 어떻게 된 거예요? 왜 그래요? 왜 그렇게 화가 난 거냐고요? 사람을 죽인 건 아니죠? 그렇죠?’
그제야 넋이 나간 채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그림자는 사람들을 부르는 미키 정을 막으려했으나 이미 밖으로 뛰쳐나간 그를 어쩌지 못했다. 그들이 돌아오기 전에 밖으로 피하려던 그림자는 녹음기가 미키 정에게 있다는 것이 떠올랐다.
나가다 말고 그림자는 문 옆에 몸을 숨긴 채 그들을 기다렸다. 미키 정과 종업원들이 달려와 룸 안으로 들어오는 그 찰라, 미키 정의 재킷 주머니에 꽂혀 있던 볼펜을 낚아채 룸 밖으로 빠르게 나갔다. 다행히 오 대표에게 정신을 팔려 있던 미키 정은 볼펜이 사라진 줄도 몰랐다.
밝아진 룸 바닥에 오 대표가 정신을 잃은 채 쓰러져 있는 것을 보고 종업원이 놀라 휴대전화를 꺼내 119에 전화를 걸었다. 매니저가 종업원의 휴대전화를 낚아채듯 빼앗아 끊었다.
“너 미쳤어! 어딜 신고해? 어서 차 대기시켜. 병원으로 우리가 모신다.”
“예, 알겠습니다.”
매니저는 오 대표가 쓰러져 있는 곳으로 빠르게 다가가 그를 살피고 있는 미키 정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손님께서 그러신 겁니까?”
“미쳤어? 내가 왜? 몰라. 갑자기 소파가 저절로 움직이다 전기까지 나가고······. 지진이라도 난 건지······.”
생각지도 못한 지진이라는 말에 매니저는 황당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지진이요? 그런 건 없었습니다. 두 분이 싸우신 게 아닙니까?”
“아니라고! 어서 구급차나 불러!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야.”
“잠깐 제가 보겠습니다.”
매니저는 마치 의사처럼 오 대표의 이곳저곳을 살피더니 미키 정을 바라보며 안심해도 된다고 말하고는 종업원들에게 오 대표를 병원으로 옮기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미키 정에게 오 대표의 상태를 설명하며 의식을 잃었을 뿐 생명엔 지장이 없을 것이라 덧붙였다.
건물 밖으로 나온 그림자는 룸 안에서 있었던 일을 되뇌었다. 처음은 가볍게 골탕이나 먹일 생각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대화를 생각할수록 차오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격분해 눈에 보였던 아이스버킷으로 그의 얼굴을 내리치려했다. 그 행위가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는 걸 알면서도 멈추지 못했다. 다행히 송이가 말려 멈출 수 있었지만.
생각할수록 손이 부르르 떨렸다. 들고 있는 볼펜이 허공에 떨리는 것이 눈에 띌 정도였다. 송이의 목소리가 계속 들려왔지만 그림자는 아무런 대답도 못해주고 있었다. 룸 안에서 있었던 일들을 생각하느라, 아직까지도 그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어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다 송이는 어떻게 알고 자신을 말렸을까 궁금해진 그림자는 마음을 진정시키고 물었다.
“미안, 놀랐지?”
“뭐예요? 이제야······. 괜찮은 거죠? 무슨 일이에요?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요. 무슨 말이라도 해줘야죠.”
막혔던 물이 터진 듯 송이의 말이 그림자의 귀로 밀려들어왔다.
“그래서 미안하다고 했잖아. 진정 좀 하고 내 말 들어. 아무 일 아니야. 그냥 화가 좀 나서······.”
“좀이 아니던데요. 저 다 들렸다고요.”
“들렸다고? 뭐가?”
“아저씨 말인지 생각인지는 몰라도 분노에 찬······ 아니, 울먹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 목소리에서 살기가 느껴졌어요.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거죠?”
“어, 그게······. 그럼. 조금 화가 나서 그놈들 혼 좀 냈어. 별장에서처럼. 그게 다야.”
“그래요? 그럼 다행이고요.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근데 대답도 없고. 그 잠깐에 속이 다 타는 줄 알았다고요. 아, 혹시 방 형사님 보셨어요?”
“방 형사? 방 형사는 왜?”
“갑자기 나가선 아직 안 돌아와서요. 아저씨한테 가셨나 해서요.”
그림자는 그 말에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가 있는지 살폈다. 날이 완전히 저물어 주변이 어둑해서인지 지나다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저 멀리 가로수 인도 위를 걷는 사람들은 보이긴 해도. 그때 골목에서 나가는 누군가의 뒷모습을 본 것 같아 그게 방 형사인가 싶어 물었다.
“방금 골목으로 나가는 사람이 있었는데. 혹시 그 사람인가?”
“잠깐만요.”
송이는 차창 밖으로 시선을 돌려 골목이 있는 곳을 살폈다. 정말 방 형사가 걸어오고 있었다.
“맞아요. 그 사람인가 봐요.”
“그래, 알았어. 곧 갈 테니 조금만 기다려.”
그림자 아저씨가 무사하다는 생각에 송이는 환하게 웃으며 네라고 대답하고는 민철에게 아저씨가 돌아온다고 말해주었다.
“정말? 어, 형사님도 오신다.”
차창 밖을 가리키는 민철의 손이 무색하게 방 형사가 차에 올라탔다. 민철은 손을 내리며 무슨 일로 나갔는지 냉큼 물었다.
“차를 잘못 봤어. 아는 사람의 차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
“그래요. 나도 또 무슨 급한 일이 생겼나 했네. 아, 그림자 아저씨도 오고 계신데요.”
“그래? 정말······ 아니, 이제 그림자의 실체를 볼 수 있는 건가? 괜히 긴장되는데······.”
“다 큰 어른이 무슨 긴장까지······ 아니······.”
중얼거리는 듯 말하던 민철이 방 형사가 들었는지 힐끗 쳐다보자 머쓱하게 웃으며 송이에게 시선을 피했다.
“아저씨는 언제 오신데?”
“다 오셨어.”
“어디?”
방 형사가 차창 밖을 보며 물었지만 보일 리 없었다. 송이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안 보여요. 그림자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어두운 곳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요. 차에 타면 말씀드릴 테니 기다리세요.”
“어? 어. 그래.”
머쓱했는지 어색하게 웃으며 앞으로 바로 앉았다. 송이가 그런 방 형사의 어깨를 톡톡 쳤다.
“형사님, 실내등 좀 켜주세요.”
“실내등? 그래, 알았어. 근데 왜······ 아니, 그래.”
방 형사는 일단 실내등을 켜고 왜 그러는지 물어보려 했지만 물어볼 필요가 없었다. 실내등을 켜고 돌아보는데 보조석에 시꺼먼 것이 사람의 형체로 앉아있었다. 움찔 놀라긴 했지만 검은 인영이 이한의 그림자라는 걸 알 수 있었던 방 형사는 곧바로 송이에게 물었다.
“여기······ 내 눈에 보이는 게 이한······ 아니, 남궁 경위의 그림자 맞지?”
송이는 배시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서 실내등을 켜달라고 한 거예요. 이제 끄셔도 돼요.”
“아니, 조금 더 보고······.”
마냥 신기했는지 방 형사는 실내등을 끌 생각 없이 그림자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조심스레 손을 뻗어 그림자를 만져보려 했다. 그러나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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