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 이해할 수 없는 도움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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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방안 일식홍등이 붉게 밝히고 있는 좌식 테이블에 오진태 대표와 도무철 변호사가 마주 앉아 있다. 다다미문으로 방들이 나눠져 있는 일본식 선술집이었다. 그들은 비밀 얘기라도 나누고 있는 듯 소곤거리며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정말 확실하지?”
한쪽 눈썹을 올리며 오 대표가 물었다. 도무철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힘주어 대답했다.
“그렇다니까요. 제가 직접 담당 형사를 만나고 왔다고요.”
“그렇단 말이지. 그럼 그 일로 보자고 한 걸까?”
“다른 말은 없었고요?”
“어, 간만에 회포 좀 풀자고 연락이 와서 말이야. 뭐, 오면 그때 물어보면 되겠지.”
“형님, 정 대표가 한 짓으로 보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겠어. 그놈이 그렇게 갈 놈이 아니거든. 아무튼 우리한테는 잘 된 일이니까. 기분 좋게 마시자고. 동생이 제대로 쏜다고 했으니 우리야 좋지.”
한쪽 눈을 찡긋하며 웃는 오 대표에게 도무철이 손뼉을 치며 이를 환하게 드러내 웃었다.
“형님 덕분에 오늘 제대로 회포를 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형님.”
“에이, 감사는 곧 올 동생한테 해야지.”
“그런가요? 그러고 보면 오늘 술값은 제가······ 아니, 형님이 내셔야 하는 게 아닙니까? 근데 왜 정 대표가 내겠다고 했는지 모르겠네요.”
듣고 보니 무철의 말이 맞는 듯한 오 대표는 고개를 갸웃하며 술잔을 내려다보았다. 잠시 그러더니 고개를 내저으며 피식 웃었다.
“그게 뭐가 중요해? 미키 정이 마련한 자리라는 게 중요하지. 보나마나 뭐라도 부탁하려고 하는 거겠지. 그거야 들어보고 결정하면 될 일이고. 걸리적거리던 놈이 사라졌으니 홀가분하게 마셔보자고. 어?”
그렇게 말하며 술잔을 드는 오 대표에게 실룩거리며 웃던 무철이 작게 말했다.
“아니죠. 한명 더 남았습니다. 남궁이한 그놈 말입니다.”
“아, 그렇지. 그거야 뭐가 문제야. 식물인간이라며? 혹시 내가 했던 말 때문에 그래? 됐어. 박 경위 그놈이 어떻게든 날 속여 보려고 지어낸 말이겠지. 그게 말이 되나. 그림자가 움직인다니······. 귀신이면 모를까. 귀신이라도 그게 말이 돼? 쓸데없는 소리 말고. 그냥 술 마셔. 어서 술잔이나 들어.”
“그래도 확실하게······.”
술잔을 들면서도 끝까지 그 일에 연연하는 무철에게 오 대표가 잔을 부딪치며 혀를 찼다.
“쯧, 알았어. 동생한테 내가 신신당부해서 처리할 테니 너무 걱정 말라고. 뭐 그렇게 새가슴인지······. 쯧쯧.”
“제가 워낙 좀 꼼꼼한 편이라······. 아시잖습니까? 확실하게 처리하는 게 뒤끝도 없을 거고.”
한입 들이 킨 술잔을 내려놓으며 오 대표가 알겠다고 술이나 마시라고 손짓했다. 그제야 무철의 입가가 풀리며 술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 술잔이 여러 번 오가고 나서야 미키 정이 왔다.
“벌써 시작하신 겁니까? 조금만 기다려주시죠.”
“미안해, 미안. 가만히 기다리기 그래서 도변하고 먼저 시작했어.”
자리에 늦게 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농을 던진 것인데 사과를 하니 미키 정은 멋쩍어 어색하게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그냥 해본 소립니다. 잘 하셨습니다. 제가 늦은 건 아니죠?”
“에이, 무슨 소리. 우리가 일찍 오거야. 그러지 말고 내 술이나 받아.”
“예, 형님.”
깍듯하게 술잔을 오 대표 앞으로 내미는 미키 정을 보고 무철은 새삼 놀랐다.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금남시 전체를 주름잡고 있고 현재는 강남마저 자신의 손아귀에 넣으려는 조직의 보스인 미키 정을 손아래에 두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들은 뉴스에서 나오는 가벼운 가십거리들을 입에 올리며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 정도 알딸딸하게 취기가 올라오자 무철이 미키 정의 눈치를 살피며 오 대표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이제 좀 물어보시죠.”
술잔을 들다말고 오 대표는 잘 들리지 않았는지 무철에게 눈길을 돌렸다.
“뭐? 왜? 크게 말해. 아아, 괜찮아. 우리 동생이 아직도 어려운가 보네. 동생, 우리 도변이 아직 자네를 어려워하는 것 같으니 이해해. 그냥 말해, 편하게.”
괜스레 민망한 무철은 미키 정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미키 정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분위기를 깰 것 같아 조심스러웠다. 그래서 오 대표에게 부탁했던 것이었는데 더 어색한 분위기를 만들고 말았다.
미키 정은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며 편하게 말해보라고 했다. 그제야 무철은 마음 편히 박동식 경위에 대해 물었다.
“예? 죽어요?”
어찌된 일인지 미키 정이 전혀 모르는 얼굴이었다. 오 대표도 어찌된 일인지 몰라 얼떨떨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동생은 모르고 있었던 거야?”
“죄송합니다. 일처리는 지시했는데······. 아직 보고가······ 아이고, 이런. 제가 요즘 정신이 없어서.”
“알지, 알아. 강남일로 바쁘다는 소문은 들었어. 그래도 그렇지······.”
말하던 오 대표는 잠시 주위를 살피더니 고개를 앞으로 쭉 빼며 속삭이듯 물었다.
“혹시 자네······ 아니, 그 그림자 킬러가 처리한 게 아니었어? 그럼 정말 자살이라는 건가?”
“그건 제가 알아보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지금은 어렵고요. 그놈이 처리를 했으면 저한테 보고를 했을 겁니다. 근데 제가 요즘 여러 가지로 정신이 없어서. 그래서 그 일로 형님을 급하게 뵙자고 한 겁니다.”
“그래? 나도 갑자기 보자고 해서 뭔가 부탁할 게 있나 싶긴 했어. 근데 그전에 박 경위 건 좀 알아봐 줄 수 없겠나? 요 도변이 똥줄이 타서 말이야. 나도 궁금하고.”
“그러십니까? 근데 그게 뭐가 중요합니까? 죽었다는데. 아마도 그놈이 처리를 했을 겁니다. 그게 아니어도 잘된 게 아닙니까.”
강남을 접수하는 일과 황 의원 일로 정신이 없어 그림자 킬러에게 지시했던 일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터에 어찌됐듯 일처리가 마무리되어 잘 됐다 싶은 미키 정이었다. 그러나 그의 말에 오 대표의 표정이 떨떠름해졌다.
“그건 그렇지만······. 내가 이런 말한다고 서운해 하지는 말고. 거래는 거래니까. 확실하게 누가 했는지 알아야 할 게 아닌가?”
말하고 나니 형, 동생하는 사이에 모양 빠지는 소리를 한 게 아닌가 싶어 머쓱해하는 오 대표와는 달리 미키 정은 호탕하게 웃으며 손을 내저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제가 왜 서운합니까? 가족 간에도 돈 거래는 확실해야 맞는 거죠. 맞습니다, 형님 말씀이. 근데 지금은 확인을 할 수가 없어서 그렇습니다. 그놈과 따로 연락하는 폰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말입니다. 이해해 주시죠, 형님.”
“그런 거였어? 알겠네. 역시 나보다 통이 큰 사람이야, 내 동생은. 아무튼 알아보고 나한테 바로 좀 알려줘. 그래, 내게 부탁할 게 뭐야? 말해봐.”
환하게 웃으며 오 대표가 묻자 미키 정은 감사의 표현으로 고개를 꾸벅 숙이며 입을 뗐다. 그러나 바로 무철이 끼어들었다.
“아이고, 미안합니다. 그전에 하나 더 물어봐야 할 게 있어서······.”
오 대표와 미키 정의 시선이 모아지자 무철이 말을 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남궁이한, 그 경찰 말입니다. 그놈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 궁금해서.”
“아, 그러네. 왜 아직 그놈 소식은 없는 거야? 몸 하나 까딱 못하는 놈을 왜 그렇게 감가무소식이냐고.”
무철의 말을 듣고서야 번뜩 생각이 났는지 오 대표가 덧붙여 물었다. 미키 정은 답하기가 난감한 듯 아랫입술을 깨물며 한동안 말이 없었다. 뭐가 잘 안 되고 있다는 걸 느낀 오 대표가 얼른 술병을 들어 미키 정의 잔을 채우며 말했다.
“됐어. 표정만 봐도 알겠네. 뭐가 잘 안 되는가 봐. 그게 아니면 요즘 강남 일로 도통 정신이 없어 신경을 못 썼나. 그래, 그럴 수 있지. 그런 놈 하나 잡자고 강남을 놓칠 수 없는 일이니. 나는 이해해. 우리 동생 하는 일인데 내가 이해해줘야지. 그래야 형이지, 안 그래? 도변.”
“예? 아, 예. 그럼요. 뭐, 그럴 수······.”
무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미키 정이 고개를 푹 숙이며 사과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형님 부탁인데 제가 바쁘다는 핑계로 소홀했습니다. 용서하십시오. 형님께 문제없도록 확실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주면 돼. 우리 동생 하는 일인데······. 그동안 아무 문제없이 잘 해왔잖아. 우리. 안 그래?”
“그럼요.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자자, 술이나 한잔 하자고.”
오 대표가 술잔을 들자 미키 정이 팔을 뻗어 술잔을 부딪쳤다. 타이밍을 못 맞춘 무철이 늦게 잔을 들어 어중간하게 부딪치고는 술을 들이켰다. 오 대표는 그런 무철에게 더 물어볼 것이 있는지 물었고, 없다는 대답을 듣고서 미키 정에게 눈길을 주며 부탁할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서소동 재개발사업 건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는 거겠죠?”
“서소동? 그거야 자네 덕에 잘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 마. 그 일로 보자고 한 거야?”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사실은 말입니다.”
미키 정은 황상두 의원과 칠구 사이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을 말하고는 권 대표의 도움으로 문제없이 처리되었다고 그간의 일을 모두 말했다. 오 대표는 황 의원의 일로 서소동 사업에 차질이 생긴 것이 아닌가 걱정이 돼 자신을 찾은 것이라 생각했다. 오 대표는 무철에게 물었다.
“개발 건에 문제 되는 게 있나?”
“아니요. 아직은 뭐······.”
“그렇지. 권 대표가 문제없이 처리를 한 것 같은데. 황 의원 그 성격에 그런 일을 당하고 가만히 있을 양반이 아니잖아. 동생, 걱정 말고. 나도 한번 황 의원을 만나볼 테니까. 근데 이거 서운한데. 그런 일이 있었으면 나를 찾았어야지. 그랬으면······.”
그게 아니라며 오 대표의 말을 미키 정이 잘라 말했다. 자신도 권 대표의 연락을 받고 알게 되었고 그래서 권 대표가 나서서 일을 처리해 준 것이라고. 권 대표가 왜 그렇게 나서서 일을 처리해주었는지는 자신도 모르겠다며 그 일로 상의코자 만나자고 한 것이라 했다.
“아무런 대가 없이 저를 도와주었단 말이죠. 권 대표가 그럴 사람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또 그렇지. 하지만 아직 단정 짓기엔 이르지 않을까? 언젠가 그 일로 뭘 요구할지 모를 사람이라고.”
“그럴 수도 있겠네요. 왜 권 대표가 황 의원을 돕는 겁니까? 두 사람이 그렇게 의가 좋은 사이였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두 사람 사이에 무슨 거래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해서 말입니다.”
“나도 그게 더 의심스럽긴 해. 권 대표가 아무 조건 없이 두 사람 사이에 끼어서 도움을 주었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갑자기 무철이 탁자를 탁 치며 끼어들었다.
“서소동에 투자한 돈이 걱정 돼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심사가 뒤틀린 황 의원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니 권 대표가 선제적으로 나선 게 아닐까요.”
미키 정도 무철의 말처럼 처음은 그런 이유로 그랬을 것이라 짐작해 넘겼었다. 그러나 그 정도의 이유로 권 대표가 직접 나섰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 연유로 오 대표라며 권 대표의 의중을 알고 있지 않을까 하여 만남을 갖은 것이었다. 모른다고 해도 권 대표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오 대표밖에 없었다.
“그래, 맞아. 권 대표가 직접 그렇게 나서서 일을 처리하는 스타일은 아니지. 그리고 그 정도의 일도 아니고. 그런 일이었으면 나한테 연락해 처리를 부탁했을 거야. 근데 나한테 아무런 연락도 없었단 말이지. 그것도 동생 일인데.”
“그러니까 말입니다. 권 대표가 직접······ 형님을 놔두고 말입니다. 혹시 짚이는 게 있으십니까?”
눈을 지그시 감은 오 대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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