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7. 괴한의 정체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철탑 위 밝게 빛나는 십자가 아래로 차가 한 대 들어섰다. 그 차에서 내린 박동식 경위는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당 문을 열고 들어선 박 경위는 안을 두리번거리다 앞에 앉아있는 누군가를 발견하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먼저 와 계셨네요.”
그는 두 손을 깍지 낀 채 기도를 하고 있었다. 박 경위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의 눈치를 살피며 기다렸다.
“그리 서 있지 말고 앉아요.”
그때야 그 남자 옆으로 조심스레 앉으며 박 경위가 말했다.
“갑자기 연락드려 죄송합니다.”
“그러게요. 나한테 직접 전화를 다 하고. 조금 놀라긴 했는데, 또 무슨 일인가 궁금해서 안 나와 볼 수가 있어야 말이죠.”
“그러셨습니까? 시간 내 나오신 게 아깝지 않을 정보를 가지고 왔습니다.”
“그래요?”
그제야 그는 고개를 돌려 박 경위를 바라봤다. 그는 다름 아닌 오진태 미라클 자산관리사 대표였다.
“예, 그럼요.”
“그래요. 말해 봐요.”
그렇게 말하고 오 대표는 앞을 바라보며 예수상을 향해 십자가를 그렸다.
“강미남 클럽에서 모임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오 대표는 흠칫 놀라며 박 경위를 힐끗 노려봤다.
“뭐예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누굴 미행한 겁니까?”
“그게······ 그것보다 그 모임에서 서소동 재개발사업과 관련된 논의를 하신 겁니까?”
“뭐지? 당신 뭐야? 나하고 뭐하자는 건데? 지금. 그래서 그걸 가지고 나랑 거래라도 하자는 거야? 개 버릇 어디 못준다더니, 그 버릇이 또 도진 건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박 경위는 서둘러 말했다.
“그런 게 아닙니다. 대표님도 그곳에 계셨던 겁니까?”
“씨발, 그게 아니면 뭔데?”
버럭 화를 내는 오 대표의 목소리가 예배당 안에 크게 울렸다. 박 경위는 기겁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다 말씀드릴 테니 화를 가라앉히시고 제 얘기를 좀 더 들어주십시오, 대표님.”
마음을 진정시키려는 듯 오 대표는 예수상을 향해 십자가를 그리며 기도하고는 말했다.
“그래요. 본론부터 말해요. 미안해요, 나도 모르게.”
“아닙니다. 제가 잘못한 걸로요. 빨리 본론부터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그날 모인 사람들과 그곳에서 나눈 대화를 다 들은 자가 있습니다. 그걸 수사해달라고 저한테······ 아니, 지능범죄수사대에 신고를 해왔습니다.”
“신고라?”
“예. 그래서······.”
말을 이어가려는 박 경위에게 오 대표가 손을 들어 보이며 막았다.
“잠깐.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내부 사람일 테고······. 우리 쪽에 배신자가 있다는 건가? 그 신고한 놈이 누군지 몰라요?”
“그건 사실······. 예, 모릅니다.”
사실대로 말하려던 박 경위는 말해도 믿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고 모른다고 대답했다.
“모른다. 그래요?”
“예. 익명으로 신분을 밝히지 않고 신고를 해서 말입니다.”
“그럼 그게 맞는지도 확인하지 않고 무슨 근거로 나를 찾은 겁니까? 나한테 그 사실을 확인이나 하자고 만나자고 한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렇죠?”
“그게······ 예. 그렇죠.”
“또, 또. 미적거리지 말고 말을 해요, 말을.”
“아, 예. 그러니까······ 그걸 직접 듣고 신고를 했다고, 아니······.”
“이 사람이 지금 나랑 장난해? 내가 한가한 사람으로 보입니까?”
“아니, 아닙니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정말, 그걸 다 알고 신고를 해왔습니다. 사실이지 않습니까? 저는 그 사실을 미리 알려드리고 대비를 하시라고 만나자고 한 겁니다. 그리고······.”
박 경위가 말하다 또 머뭇거리며 눈치를 보자 오 대표는 버럭 화를 냈다.
“그리고 뭐요? 말을 해, 말을! 나 참······. 거.”
“그자를 한 번 더 움직여주셨으면 합니다.”
“그자라? 그림자 말인가?”
“아, 그림자······. 그렇죠. 그자도 그림자군요.”
“뭐라고 했어요? 방금. 그자도?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니, 아니······ 아닙니다. 제가 깜빡하고 있었습니다. 그림자라고 하는 걸 말입니다.”
“그건 내가 지은 별명인데. 내가 말한 적이 있었나?”
“그게······.”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그의 모습이 한심해 보였는지 오 대표는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됐고. 근데 그자를 왜?”
“남궁이한 경위라고 아실 겁니다.”
“알죠. 지금 사경을 헤맨다고.”
“그렇죠. 근데······ 빨리 제거해야 할 듯합니다.”
“빨리? 왜요? 깨어나기라도 한 겁니까? 아니, 그래도 상관없잖아요. 그리고 박 경위의 동료······ 아니, 친한 친구 아니었어요?”
“친한 친구긴요. 아닙니다, 저는.”
“저는? 아하, 알겠네. 근데 왜 죽이려 하는 겁니까? 그것도 내 힘을 빌려서 말이에요.”
“그건 말씀드리기가······.”
“말하지 못할 사정이 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럼, 안 되겠네요. 내가 왜 당신을 도와야 하는 겁니까? 나는 거래가 확실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그걸 모르지 않을 텐데······.”
“압니다. 그래서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다. 서소동 재개발사업과 관련된 정보가 노출됐으니 대비하시라고 말입니다.”
“무슨 대비를 하라는 겁니까? 그 신고자의 말만 믿고 수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왜요? 박 경위가 직접 수사라도 하려고요?”
박 경위는 손사래를 쳤다.
“아이, 아닙니다. 제가 왜······. 하지만······.”
“그럼 그걸 막아요. 그 신고자가 누군지 알아내서 내게 보고하면 그때 내가 그림자를 움직여 당신이 원하는 걸 들어줄 테니.”
“아니······.”
답답한 듯 박 경위는 한숨을 삼키고는 바짝 마른 입술에 침을 연신 바르며 고심하는 듯 보였다.
“뭐예요? 신고자가 누군지 알고 있는 거예요? 알면서 내게 말 안 한 겁니까?”
눈치 빠른 오 대표의 물음에 박 경위는 흠칫 놀라 쳐다봤다.
“맞나보네. 알면서 나한테 말 못할 이유가 있는 겁니까? 내가 아는 놈이에요? 그래요, 내부사정을 모르는 놈이 그 사실을 알리는 없지. 도대체 어떤 놈입니까? 알면 말해요!”
언성을 높이며 오 대표가 다그치자 박 경위는 몸을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이래도 말을 안 해? 도대체 누군데 그래?”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드려도 믿지 못하실 것 같아······.”
“잔말 말고 말해 봐요, 누군지. 믿고 말고는 내가 결정할 테니.”
“예, 그럼.”
그는 오 대표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버스에서 내린 송이와 민철은 한 대학병원을 올려다보고는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그림자는 송이 옆에 드리워 발을 맞춰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대학병원의 중환자 대기실이었다. 그곳에는 수연과 이한의 어머니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송이와 민철은 수연과 이한의 어머니에게 인사하고는 수연을 따라 대기실 밖으로 나왔다.
“늦은 밤에 와줘서 고마워요.”
“아니에요. 저희가 너무 늦었죠?”
“괜찮아요. 그것보다 만나러 간 건 어떻게 됐어요?”
“그게 좀······.”
“왜요?”
“아니······ 근데 할머니는 괜찮으신 거예요? 아저씨가 걱정하셔서요.”
“아, 방금 봐서 알 거예요. 크게 걱정할 건 없을 거라고 말······ 아니, 없을 거야, 이한 씨.”
수연은 송이에게 말하다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말했고 그림자는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답했다.
“고맙다고 하세요.”
“그래요. 그렇게 보였어요. 근데 박동식 경위한테는 언제까지 비밀로 해야 하는 거예요?”
“계속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아요.”
“정말? 왜? 설마, 이한 씨를 죽이려 했던 사람이 박 경위······ 아니, 아니겠죠. 그죠?”
“네, 아니에요. 그 사람이 누구인진 몰라도 박 형사님은 아니라고 하세요. 하지만 박 형사님이 연루된 일일 수 있을 것 같다고 하셨어요.”
수연은 조금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래요? 알았어요. 그때 갑자기 병원을 옮겨야 한다고 해서 경황이 없어 물어보지 못해 물어본 거예요. 짐작은 했지만······ 아니, 아니에요.”
“할머니는 뭐라고 안 하셨어요?”
“처음엔 무슨 일이냐고 물으셨는데······. 걱정 말아요. 내가 잘 설명 드렸어요. 당분간은 동식 씨 전화는 받지 말아달라고 잘 말씀드렸고요. 사실 눈치는 채신 것 같기는 한데 모른 척 하시는 것 같아요.”
“네.”
짧게 대답하고 송이가 별다른 말을 잇지 않자 수연이 물었다.
“그게 다예요? 이한 씨가 다른 말은 없었고요?”
“아, 네. 아무 말씀 없으셨어요. 그냥 제가 대답한 거예요.”
“그렇구나. 이제 말해 봐요. 누굴 만나고 온 거예요? 얼굴 표정을 봐서는 뭔가 잘 안 된 것 같은데······. 맞죠?”
“그렇게 보이세요?”
고개를 끄덕이더니 수연은 송이와 민철을 번갈아보며 물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래요? 정말 안 좋은 일이 있었던 거예요?”
쉽게 말을 못하고 송이가 머뭇머뭇하자 민철이 나서서 말했다.
“송이가 큰일 날 뻔 했어요. 괴한한테 납치당할 뻔 했거든요. 칼로 위협까지 당했고요.”
“맙소사. 정말이에요, 송이학생?”
송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랬구나. 어쩐지 얼굴 표정이 어둡다했어요. 그런데 어떻게 된 거예요? 이렇게 온 거 보면 민철학생이 구한 거예요?”
민철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방기철 형사님이라고 그 분이 나타나서 송이를 구해주셨어요. 그리고 오늘 그 형사님을 만나러 갔던 거고요.”
“그랬어요? 근데 그걸 왜······. 아니에요. 무슨 이유가 있었겠지. 이제 말해 줄 수 있는 거죠, 송이학생?”
“그게······. 네. 말씀드릴게요.”
송이는 방기철 형사를 만나기 전 괴한에게 잡혔던 일과 방 형사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수연에게 해주었다. 하지만 박동식 경위와 남궁이한 경위가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그래요? 그 도무철이라는 변호사에 대해 알아봐야겠네요. 근데 학생을 위협했다던 그 사람은 누군지 정말 모르는 거예요? 우리가 강남에 왔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면서요? 그걸 알고 있었다면 그때 우리를 본 거잖아요. 강남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한걸 보면 맞는 것 같은데, 안 그래요?”
생각지 못한 수연의 물음에 송이가 되물었다.
“그 말씀은 강남 그 클럽 사람이라는 말씀이세요?”
“그렇지 않고, 그걸 어떻게 알았겠어요? 동식 씨가 경찰인 것도 알고 있었다면서요? 그렇다면 미리 뒷조사를 했다는 얘긴데······.”
“그러네요. 얼굴을 다 가리고 있어서 누군지 모르겠더······ 어? 뭐라고요? 아저씨.”
“왜요? 송이학생.”
송이는 손을 들어 수연에게 기다려달라는 손짓을 해보이고는 그림자에게 속으로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누군지 알겠다니요?’
‘그 남자의 목소리를 어디서 들었다 싶었거든. 수연 씨의 말을 들어보니 그자의 뛰는 모습이 어딘가 낯이 익다 싶어, 지금 생각해보니.’
‘그래서 누군지 알겠다는 거예요? 누군데요? 빨리 말씀해 보세요.’
‘그때 계곡입구에서 너를 차로 치려던 사람 기억나?’
‘맙소사. 그 사람이라고요?’
‘아니, 그자와 함께 있던 남자였어. 그를 덕팔이라고 불렀던 것 같아. 기억 안나?’
번뜩 누군지 생각났는지 송이의 눈썹이 올라갔다.
‘맞아요. 덕팔이라고 했어요.’
‘그래, 그자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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