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4. 쇼 타임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골프연습장에서 공을 치고 있는 미키 정에게 뒤에 서 있던 비서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대표님, 오진태 대표 전홥니다.”
“어, 그래. 이리 줘봐.”
비서는 휴대전화를 건네고는 뒤로 물러났다.
“형님, 어쩐 일이십니까?”
미키 정은 반갑게 전화를 받았다.
“잘 지내죠?”
“그럼요. 덕분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얼굴을 안 비치십니까? 요즘은 필드에도 안 나오시고 말입니다.”
“그렇게 됐어요.”
“바쁘신 거 잘 압니다. 그래도 가끔씩 얼굴 좀 보여주십시오. 보고 싶어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요, 그래. 조만간 필드에서 함 봅시다.”
“약속하신 겁니다.”
미키 정을 그렇게 말하고는 껄껄껄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가 잦아들자 오 대표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림자 그 친구는 잘 있어요?”
“예? 그림자요?”
그림자라는 말에 미키 정은 묘한 표정으로 되묻듯 물었다.
“그래요. 그 친구 말이에요. 내가 보고 그림자 같다고 했던 그 친구 말입니다.”
“아하, 그 아이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그래요. 이름이 뭐냐고 물었더니, 알려줄 수 없다고 해서 내가 그림자라고 했잖아요. 바로 그 친구 말이에요.”
“한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시키실 일이 생긴 겁니까?”
“아니, 아니에요. 갑자기 그 친구 생각이 나서 물어본 거뿐이에요.”
“그러십니까? 그 친구······ 아, 그림자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앞으로는 그림자로 불러야겠네요.”
“그래요. 잘 지내고 있다니 다행이네. 내가 연락한 건 다름이 아니라, 근래에 박동식을 만난 적이 있나 해서요?”
“박동식이요? 잠깐 박동식이······.”
미키 정이 기억이 안 나는 듯 되뇌자 오 대표가 기다리지 못하고 알려주었다.
“지능범죄수사대 박동식 경위 말이에요. 백 회장님 사건 몰라요?”
“아, 맞습니다. 그 경찰이 박동식이었네요. 이제 생각났습니다. 근데 그건 왜?”
“만난 적이 없나 보네.”
“무슨 일로 그러십니까?”
“박동식 그놈이 알고 있더라고.”
“뭘 말씀······ 잠깐만. 혹시 강남 모임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바로 알아듣네요.”
“아니······ 강남 모임이 있던 날에 클럽 앞에서 그자를 봤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별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자가 알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러니까 말이에요. 내부에서 새지 않고서야 그걸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잖아요.”
오 대표의 말에 미키 정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설마 저희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에이, 왜 그래요? 동생. 내가 동생을 의심했으면 이렇게 묻지도 않았지.”
일그러졌던 얼굴이 펴지며 미키 정은 이마를 두드렸다.
“아아, 그럼요. 그건 그러네요. 그놈이 어떻게 알았을까요? 그래도 모임에서 있었던 일까지 알지는 못할 겁니다. 너무 심려 마십시오. 사실 저도 보고 받고 알아보는 중입니다.”
“그게 아니에요. 그 모임에서 있었던 일을 모두 알고 있다고요.”
깜짝 놀란 미키 정의 작은 눈이 번쩍 커졌다.
“예? 어떻게 그걸······.”
“그러니까, 내부에 누군가가 박동식과 내통하고 있는 게 분명해요. 그래서 내가 동생한테 연락한 게 아니겠어요.”
“형님, 저희 쪽은 아닙니다. 그건 믿어주십시오.”
“알아요. 그래서 말인데, 박동식과 내통하는 자가 누군지 찾아내야 할 것 같아요. 그자가 무슨 수작질을 부리고 있는지 몰라도 그 사실이 밖으로 새어나가면 이거 보통 곤란한 일이 아니지 않습니까. 그건 말 안 해도 알죠?”
“당연하죠. 저희도 조심한다고 했는데······ 면목이 없습니다, 형님.”
오 대표가 눈앞에 있지도 않는데도 미키 정은 고개를 푹 숙였다.
“아니, 됐어요. 일단, 누군지 알아내요. 나도 나름대로 알아보고 있는 중이니까.”
“예, 저도 알아보고 연락드리겠습니다.”
서둘러 전화를 끊으려는 미키 정을 오 대표가 불렀다.
“저기, 동생. 일이 커지기 전에 조용히 처리할 일이 생길지도 몰라요. 그래서 말인데······.”
“아, 알겠습니다. 그래서 그 친구의 안부가 궁금하셨던 거군요.”
“그래요, 그래. 내가 이래서 우리 동생이 마음에 든단 말이지. 그러니 상시 준비하고 있으라고 이렇게 미리 연락을 한 거예요.”
“예예, 형님. 무슨 말씀인지 알겠습니다.”
“그래요. 또 연락합시다.”
“예, 형님. 들어가십시오.”
전화를 끊은 미키 정은 바로 육팔에게 전화를 걸었다.
“클럽이야?”
“예, 형님. 무슨······.”
“아니, 대기하고 있어. 내가 바로 갈 테니까.”
“아, 예. 형님.”
전화를 끊은 미키 정은 들고 있던 골프채를 비서에게 던지더니 차를 대기시키라고 지시했다.
***
기찻길 아래 공터로 차 한대가 들어와서는 멈췄다. 잠시 후, 박동식 경위가 차로 달려와 뒷문 앞에 서자 창이 내려가며 오진태 대표의 얼굴이 보였다.
“오셨습니까? 대표님.”
“왜 이런데서 보자고 한 거예요?”
“죄송합니다. 말씀드렸던 그 여자 아이가 요 근처 학교에 다니고 있어서요.”
“아직 입니까?”
“수업이 좀 늦게 끝날 거라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시면 곧 올 겁니다.”
“그래. 정말 그 아이의 그림자가 이한의 그림자라는 말이죠?”
여전히 오 대표는 못 미더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맞습니다. 직접 보시면 믿게 되실 겁니다.”
“그거야 보면 알겠지. 오면 말해요. 잠시 눈 좀 붙이고 있을 테니.”
“예, 그러십시오.”
창을 다시 올리고 오 대표는 눈을 감았다. 박 경위는 학교가 있는 방향으로 송이가 오는지 살피고 있었다. 약속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자 박 경위는 송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전화연결이 되지 않았다. 초조한 마음에 가만히 서 있지 못하고 차 앞을 서성거렸다.
한참이 지나도 올 기미가 보이지 않자 오 대표는 차 밖으로 나와 서성이는 박 경위를 불렀다. 박 경위는 달려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올 시간이 됐는데······.”
“전화를 해봐요. 이게 뭡니까? 도대체 무슨 꿍꿍이에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로 누굴 현혹하려고 이래요? 뭘 얻어내려는 심상인 거 같은데, 나한테는 안 통해요.”
송이가 제 시간에 오지 않은 것이 미안했지만 자신을 여전히 믿지 못하는 오 대표가 억울한 박 경위이었다.
“그런 게 아닙니다. 제 말을 믿어주십시오. 직접 보시면 알게 되실 겁니다.”
“더는 못 기다려요. 다음에 다시 만납시다.”
“그러지 마시고······.”
가려는 오 대표를 말리면서도 박 경위는 학교가 있는 곳을 힐끔힐끔 보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송이가 달려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어! 저기 옵니다. 대표님.”
박 경위가 송이를 손으로 가리켰고 오 대표는 그 손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달려오다 숨이 찬 듯 송이는 공터에 들어서서는 천천히 걸었다. 박 경위는 기다리지 못하고 송이에게 달려갔다. 송이는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갑자기 쌤이 심부름을 시키시는 바람에······. 제가 많이 늦었나요?”
“이게 뭐야? 전화는 왜 안 받았어?”
“아, 배터리가 별로 없어서 전화기를 꺼놨어요. 이렇게 늦을 줄 모르고······.”
“아니야, 됐어. 이리 와.”
박 경위는 송이를 데리고 오 대표 앞으로 갔다. 오 대표는 송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 학생이에요?”
“예, 대······ 팀장님.”
“팀장? 아, 그래요. 저기 이름이 송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물어오는 오 대표를 송이는 아무런 경계심 없는 눈으로 보며 밝게 인사했다.
“네, 안녕하세요. 임송이라고 합니다.”
“오늘 왜 보자고 한 건 알고 있죠?”
“그럼요. 팀장님이 도와주신다고 하셔서 나온 걸요.”
“그래요. 그럼 먼저 보여주겠어요?”
“네?”
오 대표의 말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송이는 놀란 눈으로 오 대표와 박 경위를 번갈아보며 물었다.
“형사님, 뭐예요?”
“뭐라니? 학생, 보여줘. 이한의 그림자. 이한한테 내 말······ 아니, 들을 수는 있지. 그래, 이한. 어서 나와 봐. 내 앞에서 했던 것처럼 해보라고.”
박 경위의 말에도 그림자는 꼼짝을 하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그는 답답한 듯 송이에게 다가서서 속삭이듯 물었다.
“왜 그러는 거야? 내가 다 말했잖아. 여기 팀장님은 믿을 수 있는 분이라고.”
지켜보던 오 대표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었다.
“뭐가 잘 안 되는 거예요? 학생, 괜찮아요. 편하게 보여줘요. 나도 바쁜 사람이라서 말이죠.”
“죄송합니다. 학생이 긴장을 한 듯합니다. 조금만 시간을······.”
“긴장이라······. 그렇게 보이진 않는데.”
고개를 갸웃하며 오 대표는 혼잣말을 했다. 이 상황이 당혹스런 박 경위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이한, 왜 이러는 거야? 빨리 내 앞으로 나와 보라고. 무슨 생각인 거야? 이러면 내가 곤란하잖아. 아이, 정말.”
그래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초조해진 박 경위는 송이의 팔을 잡아 올렸다. 그 순간 그림자도 조금의 차이는 있었지만 바로 올라가며 육안으로는 차이를 못 느낄 정도였다. 송이는 박 경위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갑자기 뭐하시는 거예요?”
“나도 답답해서 그러지. 왜 그래? 송이학생. 이러면 내가 난처하잖아. 이게 무슨 짓이야?”
“저는 무슨 말씀하시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눈으로 말하는 송이를 보고 박 경위는 기가 차다는 듯 콧방귀를 끼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오 대표도 허탈하게 웃었다.
“됐어요, 됐어. 내가 믿은 게 바보지. 박 경위, 이 일은 나중에 따로 만나 얘기합시다. 나는 이만 갑니다.”
오 대표가 차에 타려 뒷문을 열려하려는데 박 경위를 달려와 문 앞을 막아섰다.
“대표······ 아니, 팀장님.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분명 저 학생의 그림자를 자세히 보시면 이상하다는 걸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저기 보십시오. 학생과 그림자가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그거야, 해가 기울어져 있으니 그렇게 보이는 거죠.”
“그럼, 잠깐만. 송이학생, 이리 와봐.”
박 경위는 손을 까딱거리며 자신에게 오라고 손짓했지만 송이는 겁먹은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건데요?”
“빨리 이리 와보라고.”
“싫어요. 도와주신다더니 이상한 소리만 하시고.”
“이상한 소리? 학생까지 왜 그래? 뭐야? 날 못 믿는 거야?”
오 대표는 혀를 차며 박 경위를 옆으로 밀쳐내고는 문을 열었다.
“됐어요, 됐어. 나중에 봅시다, 우리.”
“아닙니다, 팀장님. 한 번만, 한 번만 더요. 송이학생, 팔 들어봐. 어서.”
송이는 천천히 팔을 들어올렸다. 그림자도 동시에 팔이 올라갔다. 박 경위는 다급한 나머지 자신의 손과 발을 올려 보이며 말했다.
“아니, 빨리 올리라고. 그리고 발도. 발도 올려보라고, 빨리.”
푸념 섞인 목소리로 알았다고 대답하며 송이는 빠르게 손을 올렸다 내렸고, 그 다음 발도 올렸다 내렸다. 하지만 그림자도 똑같이 움직이면서 박 경위가 원하는 그림이 나오지 않았다.
“뭐야? 너희들······. 나한테 왜······.”
“이그, 내가 뭘 보고 있는 건지. 쯧쯧.”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오 대표는 차에 올라탔고 뒷문이 닫히자마자 차가 출발했다. 박 경위는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멀어져가는 차를 바라만 보았다.
“저도 그만 가볼게요.”
“저기, 잠깐만.”
송이는 뒤돌아서려다 멈칫하며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물었다.
‘도망갈까요?’
‘아니야, 괜찮아. 내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지금까지 잘 했어.’
‘네.’
“송이학생, 왜 그런 거야? 이한, 내 말 듣고 있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거냐고?”
“왜 거짓말 하셨죠?”
“거짓말?”
“네. 저분 팀장님이라고 하셨잖아요.”
“그게 무슨 소리야?”
“방금 차타고 가신 분 지능범죄수사대의 팀장님이 아니시잖아요.”
거짓이 들통 났다 생각했지만 박 경위는 끝까지 내색하지 않고 송이를 떠보았다.
“그걸 학생이······ 아니, 이한의 기억이······ 돌아온 거야? 저 사람을 알아본 거냐고?”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팀장님은 아니라고 하셨어요.”
“어? 단지 그뿐이야? 정말?”
“맞죠? 팀장님이 아니시죠? 그분은 누구신데 팀장님이라고 저한테 거짓말하신 거죠? 아니, 아저씨한테 왜 거짓말을 하신 거냐고요?”
내심 안도한 박 경위는 오히려 더 큰소리로 따져들었다.
“무슨 소리야? 이번에 새로 부임하신 팀장이란 말이야.”
“뭐라고요? 새로 부임하신······ 어머! 어떡해?”
송이는 깜짝 놀라며 미안한 척하고는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박 경위 몰래 윙크했다.
‘잘 했어, 송이야. 너 연기 진짜 잘한다.’
‘뭘요? 이 정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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