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 그림자의 첫사랑?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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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사랑 같다던 그림자가 갑자기 고개를 숙이며 앓는 소리를 냈다. 송이는 놀란 눈으로 어디 아프냐고 물었다.
‘아니야. 잠깐 머리가······. 기억이 조각조각 끊기고 뒤죽박죽 머리를 뒤흔들어서 말이야.’
‘정말 첫사랑은 맞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 젊은 여자의 얼굴이 떠오르는데, 저기 앉아 있는 여자와 많이 닮았어. 얼굴에 잔주름이 좀 있지 같은 사람이 분명해.’
‘근데 첫사랑인지 어떻게 알아요?’
‘내 심장이 그렇게 느껴······. 두근두근 뛰는 게 내가 사랑했던 여자인 건 확실한데 저 여자도 날 사랑했는지는 모르겠어. 아니, 짧게 떠오르는 기억들 속에선 날 보고 웃고 있어. 그러면······ 연인 사이가 아니었을까?’
‘여기에 있는 거 보면 결혼한 사이는 아니고요?’
‘결혼?’
‘네. 아저씨 나이면 결혼할 나이이기는 하잖아요.’
‘그런가? 그럼 저 여자가 내 아내······.’
‘일단은 들어가서 아저씨 먼저 보고 오세요. 저는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어, 그래. 알았어.’
그림자는 송이에게서 떨어져 중환자실 문을 통과해 사라졌다. 송이는 조심스럽게 그림자의 첫사랑이라고 하는 여자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송이가 다가와 앉자 그녀는 잠깐 쳐다보더니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정말 그림자의 첫사랑일지 궁금해 살짝살짝 그녀를 보며 어떻게 말을 걸어볼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그림자가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며 말을 걸어왔다.
‘뭐가요? 그렇게 제 생각을 읽지 말라고 말했는데도 계속 그러실 거예요?’
‘들리는 걸 어떡해? 아무튼 하지 마. 기다리고 있어, 그냥.’
‘알겠어요, 치.’
대기실 안으로 이한의 엄마가 들어왔다. 그녀가 일어나 이한엄마에게 말을 걸었다.
“왜 또 오셨어요? 이리 앉으세요.”
그녀는 이한엄마를 옆에서 부축했다.
“잠은 좀 주무시고 오신 거예요?”
“그럼, 덕분에 밥도 편히 먹고 개운하게 목욕도 하고 왔어. 그러니까 수연아, 면회만 하고 그만 가봐. 응?”
“아니에요. 제가 오늘 여기에 있겠다고 했잖아요. 어머니가 들어가셔서 쉬세요.”
“나는 괜찮아. 집에 있는 게 더 곤욕이야. 이한이 갑자기 어떻게 될 것만 같아서 집에 못 있겠어. 이한아빠가 저세상 갈 때도 옆에 못 있어줬어. 잠깐 일 보고 온 사이에 말도 없이 간 거야. 그래서 더 그러는 거니까······.”
그녀는 이한엄마의 손을 꼭 잡으며 말을 막았다.
“어머니, 이한 씨 꼭 일어날 거예요. 그런 말씀 마세요.”
“아이고, 그래. 내가 무슨 방정맞을 소리를······. 그래, 깨어날 거야. 깨어나면 날 맨 먼저 찾을 거고. 그러니 엄마가 옆에 있어야지. 그럼. 그러니까 들어가 봐. 주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이게 뭐야? 그런다고 저 녀석이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그런 거 아니에요. 그럼 같이 있다 들어갈게요.”
“그럴 필요 없는데······ 고마워, 수연아.”
“고맙긴요? 제가 하고 싶어서 그런 걸요.”
이한엄마는 잡고 있던 수연의 손을 꼭 움켜잡았다.
“그래그래. 알았어.”
송이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다 그림자에게 알리는 것을 깜빡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바로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아저씨 엄마가 오셨어요.’
‘그래, 알았어.’
뜨뜻미지근한 그림자의 대답에 송이는 조심스럽게 병상에 누워있는 이한의 상태를 물었다. 저번과 똑같다는 그림자의 목소리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아, 좋아 보이지 않아서 그렇구나.’
‘그러네. 조금은 나아졌을 줄 알았는데······. 여전히 부어있는 얼굴이라 내 멋진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어 아쉽네.’
기운이 처지는 듯했는지 그림자는 괜스레 농담을 던지며 크게 웃었다.
‘뭐예요? 지금. 아우, 느끼해.’
‘웃으라고 하는 소리야. 네가 하도 심각하게 말하는 것 같아서.’
‘몰라요, 아무튼. 아, 아저씨 첫사랑 이름 들었어요. 수연이라고 하는 것 같던데.’
‘수연······ 아, 유수연.’
‘이름 기억나세요?’
‘그래, 유수연. 유수연이 맞을 거야. 그럼 정말 내 아내인가?’
‘아닌 것 같아요. 아저씨 엄마랑 얘기하는 거 옆에서 들었는데 그런 것 같지는 않았어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화는 아니었거든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대화는 뭔데?’
‘아이, 그냥 그렇다고요. 아니에요. 수연이라는 여자 분은 아저씨의 아내는 아니라는 거죠. 아까 울고 있는 거 보니 좋아했던 사이가 아닐까요? 아니면 많이 친한 사이 거나요.’
‘그런가? 알았어. 금방 나갈게.’
‘그렇게 궁금하면 제가 말을 걸어볼까요?’
‘아니······ 어떻게 하려고?’
‘그냥 말을 걸어보는 거죠, 뭐.’
‘그냥? 그러면 하지 마. 내가 나가서······.’
‘절 또 못 믿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
‘맞네. 못 믿는 거네. 치, 그러니까 더 하고 싶어지네요.’
‘송이야, 그러지 마라. 진정하고 나 지금 나가고 있어.’
‘몰라요.’
그새를 못 참고 송이는 자리에서 일어나 이한엄마와 수연에게 다가갔다. 인사를 건네는 송이를 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이한엄마에게 저번에 같이 기도했던 학생이라고 하자 그제야 알아보고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 맞다. 그 아가씨구나. 그동안 안 보여서 환자 가족이 중환자실을 나간 줄 알았지. 어떻게 또 온 거예요?”
“또 온 게 아니고요. 사실 저번에 말씀을 드려야했는데 그때는 경황도 없고 이한형사님의 어머니인지도 몰랐거든요.”
“우리 아들을 알아요?”
“네. 사고현장에 같이 있었거든요.”
“사고현장에?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날 사고가 있었던 장소가 저희 집이었어요. 그때 이한형사님이 저를 구해주셨고요.”
“아, 맞아요. 애기 들었어요. 그랬군요. 그래서 우리 이한이가 걱정돼 온 거예요?”
“그게······ 네.”
“아이고, 고마워라. 아직 면회시간도 아닌데······ 어떡하죠?”
“기다리면 되죠.”
“그럴래요? 어쩜 이렇게 고마울 때가.”
“아니에요. 근데 옆에 계신 분은 이한형사님의 부인되시나 봐요?”
손사래를 치며 이한엄마가 말했다.
“아이, 아니에요. 우리 아들 친구예요. 요즘 말로 여자사람친구?”
“아, 여사친이시구나.”
“그래요.”
이한엄마 옆에 앉아 옅은 미소를 보이며 지켜보던 수연이 먼저 인사했다.
“나는 유수연이라고 해요. 이한하고는 고등학교 친구고요.”
“네. 아, 저는 임송이라고 합니다.”
송이를 지그시 바라보며 이한엄마가 말했다.
“임송이······. 이름 참 예쁘네. 근데 이제 몸은 괜찮은 거예요?”
“저는 그렇게 크게 다치지 않아서요. 형사님 덕분에······.”
“다행이네요. 그래요, 그래.”
이한엄마의 눈에서 내 아들도 다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아쉬움이 느껴졌다.
“저는 저기서 기다릴게요. 대화 나누세요.”
“그래요. 면회시간 되면 알려줄게요.”
“네.”
송이가 제자리로 돌아와 앉을 때 그림자가 빠르게 다가와 붙었다.
‘너, 정말······ 뭐라고 해?’
‘치, 궁금했으면서.’
‘정말 수연이라는 여자가 내 아내야?’
‘땡! 아니네요. 그냥 여사친이라는대요.’
‘아, 그래?’
‘많이 아쉬운가 봐요?’
‘뭐가 아쉬워? 아니면 아닌 거지.’
‘에이, 아닌데요. 목소리가. 기대했어요?’
‘아니라고. 놀리지 마. 어른은 놀리면 못 써.’
‘그럼 어른은 아이 놀려도 되는 거고요? 아저씨도 저 놀렸잖아요, 치.’
‘또 그런가? 아이, 참. 근데 왜 내 심장은 그렇게 뛰었는지 모르겠네.’
‘정말 첫사랑일 수 있잖아요. 저 언니가 그러는데 고등학교 친구라고.’
‘고등학교 친구? 그래, 어쩐지 교복차림이었어. 그러면 그때 내 첫사랑······.’
‘제가 가서 물어볼까요? 아저씨가 첫사랑인지?’
‘또 놀린다. 됐어. 근데 면회할 거야?’
‘어, 그건 들었어요?’
‘네가 하는 말은 들리거든요.’
‘아, 맞다. 근데 아저씨 엄마 얼굴은 보셨어요?’
‘어, 봤어.’
‘그래요? 그럼 기억나는 거 없었어요?’
‘아니. 어릴 적 기억밖에는······. 그것도 너무 어릴 적 기억이라. 초등학생이었는지 엄마도 많이 늙었네. 그때 엄마의 얼굴이 아니야.’
‘그럼요. 아저씨가 초등학교 때면 당연한 거죠.’
‘그러니까. 참 세월도 빠르지······.’
‘지금 뭐하세요? 아저씨 티 그만 내시고 좀 더 기억을 떠올려 보세요. 저기 수연 언니랑 추억도 기억해 보고요.’
‘수연이를 보면 내 심장이 두근두근 떨려. 이 느낌은 분명 사랑인데······ 그럼 내가 짝사랑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러네요, 짝사랑. 아이고, 못났다. 그 나이에 짝사랑이나 하고 있고.’
‘야, 임송이. 너······.’
‘아, 죄송해요. 속으로 생각한다는 게······.’
‘정말 속으로 생각한 거 맞아? 너 계속 그렇게 날 놀리면 혼난다.’
‘어떻게 혼내실 건데요? 아저씨는 그림자라 때리지도 못하면서.’
그렇게 말하며 송이는 키득키득 웃음 지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림자도 그저 송이를 따라 웃을 뿐이었다. 면회시간이 다가왔는지 중환자 대기실로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서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로 낯익은 사람이 보였다.
‘어, 왔다.’
‘누구······ 아, 그러네요.’
박동식 경위가 대기실로 들어와 이한엄마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수연에게도 인사하며 말을 걸었다.
“수연씨도 와 있었네요.”
“네, 동식 씨. 오래간만이에요.”
“잘 지내죠?”
“저야, 뭐 매일 똑같죠. 동식 씨는 더 좋아 보이네요.”
“그래요? 고마워요.”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하고는 박 경위는 이한엄마에게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매일 이렇게 나와 계시는 거예요?”
“내가 무슨 할 일이 있어야죠. 아들 집이라도 정리하려고 갔는데 하나도 어지럽혀 있는 게 없는 거예요. 그게 왜 그렇게 미안하고 이 가슴이 미어지는지······.”
이한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지자 수연이 손을 잡으며 말했다.
“어머니, 그건 잘 아시면서 왜 그러세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었잖아요. 일어나면 더 좋아질 거예요. 그리고 깔끔한 게 더 좋죠, 지저분한 것보다는. 그러니까 어머니가 미안해하실 거 없으세요.”
“고마워, 수연아.”
이한엄마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닦아내며 박 경위에게 말했다.
“이렇게 와줘서 고마워요. 바쁠 텐데 먼저 면회해요. 아, 저기······.”
송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 아가씨. 여기는 박 형사라고. 우리 이한이랑 동료에요. 먼저 면회를 해야 할 것 같으니까 박 형사 나오면 그때 들어가요. 박 형사, 오늘은 면회할 사람이 좀 있어서 좀 빨리 나와야겠어요.”
그제야 송이를 본 듯한 박 경위는 조금 놀란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박 형사, 내 말 들었어요?”
“아, 예. 어머니. 그럴게요. 저기 잠깐만요.”
박 경위는 송이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나 기억하죠?”
“네. 저번에 장례식장에 오셨잖아요.”
“그래요. 그날 기억이 났어요? 그래서 여길 온 거예요?”
“아니요. 그냥 그림······ 아니, 이한 아저······ 형사님이 괜찮으신지 걱, 걱정돼서 와 본 거예요.”
송이는 박 경위 앞에서 긴장됐는지 더듬거리기까지 했다.
“그럼 그날 기억은 아직 안 돌아온 거네요?”
“네. 근데 그날 무슨 일로 그러세요? 제 기억이 돌아오면 이한형사님한테 좋은 건가요?”
“아, 그게······ 저기 잠깐만.”
박 경위는 힐끗 이한엄마가 있는 곳을 살피고는 송이를 데리고 자리를 옮겼다.
“학생한테는 말하기가 좀 곤란해서요. 학생 아버지와 관련된 일이기도 하고.”
“아빠가요? 아, 아빠가 뇌물을 받았다는 거죠? 그럼 이한형사님이 아빠를 잡으러 왔다가 사고가 난 건가요?”
“그걸 어떻게······. 혹시 방기철 형사가 그렇게 말했어요?”
“근데 왜 제 기억이 그렇게 궁금하신 건데요? 방기철 형사님도 그렇고. 제가 뭘 기억해 내야 하는 거죠?”
“정말 전혀 기억이 안 나는 거예요?”
“저도 미치겠어요. 왜 그것만 꼭 집어 기억이 안 나는지 모르겠다고요.”
목소리가 갑자기 커지자 박 경위가 급히 송이의 입을 막았다. 그 순간 그때의 기억이 또 송이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민철이가 뒤에서 송이의 입을 막았을 때 떠올랐던 그날의 기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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