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빗속의 일전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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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소리와 함께 굵은 빗방울이 소 경위의 모자 위로 툭툭 떨어졌다. 어딘가로 전화를 걸어 시작하라고 한 남자는 쓰고 있는 검은 모자를 벗어 던지며 소 경위에게 천천히 다가섰다. 소 경위는 뒷걸음치며 반격할 자세를 취했다. 그때 무전으로 진 경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빨리 그곳을 피하십시오. 놈들이 어디에 숨어 있었는지 공격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병력으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 듯합니다. 어서요.
“여긴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 학생들부터 보호해.”
- 예, 알겠습니다.
모자를 벗은 남자의 정체는 칠구였다. 칠구는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말을 뱉어냈다.
“이제야 안 거야? 똥줄 좀 타겠네.”
말없이 칠구의 공격을 대비하며 자세를 취하고 있던 소 경위의 눈에 뒤로 물어서 있던 비서실장이 비웃으며 뒤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비서실장을 이대로 보낼 수 없었던 소 경위는 돌아보며 그림자에게 ‘이자를 부탁한다’고 말하고 비서실장에게 달려갔다. 그러나 칠구가 그 앞을 막아섰다.
“어딜 도망가? 뭘 부탁하고? 아, 네 뒤에 있는 그 그림자한테 말한 거구나. 형님이 귀신같은 놈이 있다고 하던데. 그게 너였냐?”
소 경위를 막고 선 칠구의 눈은 한두 발자국 뒤에 우뚝 서 있는 그림자를 향하고 있었다. 그림자의 정체를 알고 있다는 사실에 소 경위와 그림자는 놀라서는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림자는 송이를 통해 소 경위에게 말했다.
“빨리 비서실장을 잡아.”
“그래, 알았어. 여길 부탁해.”
송이의 무전소리에 정신을 차린 소 경위가 비서실장에게 달려가려는 것을 칠구가 팔을 붙잡고 버텼다. 소 경위는 팔을 뿌리치며 칠구의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지만 칠구는 빠르게 고개를 옆으로 피하며 주먹으로 소 경위의 복부를 공격했다.
칠구의 주먹이 소 경위의 복부 바로 앞에서 딱, 멈췄다. 칠구의 주먹을 막고 있는 것은 그림자의 손이었다.
“뭐해? 빨리 가서 저놈부터 잡아.”
그림자의 말에 소 경위는 비서실장에게 달려갔다. 뒤따라오는 것을 느꼈는지 비서실장도 쓰고 있던 우산을 집어던지고 달리기 시작했다. 소 경위를 쫓아가 잡으려는 칠구의 앞을 그림자가 막아섰다.
칠구의 손은 조금 과장되게 말해서 빛처럼 움직여 그림자의 얼굴과 복부를 타격했다. 그러나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는 걸 곧바로 깨닫게 되었다. 깨달은 순간 이미 늦은 것이었지만.
거의 무방비로 그림자의 공격을 몸으로 전부 받아내야 했던 칠구는 더는 버틸 수 없어 도망을 치는 방법을 선택했다. 아무리 칠구가 재빠르다고 해도 그림자보다 빠를 수 없었다. 얼마가지 못하고 그림자의 손에 잡히고 말았다.
비서실장도 그리 멀리 가지 못하고 잔디공원 안에서 소 경위에게 붙잡혀 끌려왔다. 칠구와 비서실장을 빗속에 나란히 세워놓고 소 경위가 추궁하려는 그때 방망이와 도끼 등의 무기를 들고 깡패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족히 서른 명은 넘어보였다. 그들을 보고 칠구와 비서실장은 살았다 싶었는지 비웃듯 코웃음을 치며 소 경위를 노려보았다
깡패들은 소 경위와 그림자를 둥그렇게 둘러싸서 대치했다. 칠구와 비서실장은 뒤로 물러나 깡패들 뒤에 서서 여유롭게 지켜보았다. 칠구의 지시에 깡패들이 일제히 소 경위에게 덤벼들었다. 소 경위와 그림자는 깡패들을 한 놈, 한 놈 쓰러뜨렸다.
깡패 여럿이 소 경위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면 그림자가 막아서며 지켜주었다. 깡패들은 눈앞에 검은 그림자가 귀신처럼 자신들을 공격하는 모습에 기겁하면서도 도망치지 않고 소 경위에게 계속해서 달려들었다.
점점 깡패들이 그림자의 손에 푹푹 쓰러지는 것을 지켜보던 칠구와 비서실장은 안 되겠다 싶었는지 조금씩 뒷걸음치며 도망을 가려했다. 그때 비서실장이 칠구의 팔을 잡으며 소리쳤다.
“야, 넌 뭐하는 새끼야! 날 지켜야지, 어딜 도망가!”
“아니, 저놈은 귀신입니다. 귀신을 어떻게 이깁니까? 어서 여길 피하는 게······.”
“시끄러워. 저 짭새가 가지고 있는 영상원본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너도 무사하지 못해, 알아? 당장 가서 가지고 오라고, 당장!”
마지못해 칠구는 다시 싸움판으로 뛰어들어 짭새를 잡으라고 부하들에게 지시했다. 깡패들은 칠구의 지시에 소 경위만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수적 열세를 감당하지 못한 소 경위는 깡패들의 공격에 넘어지고 말았다. 그 틈에 칠구가 달려들어 소 경위의 몸을 뒤적거렸다.
그림자는 깡패들을 한 놈, 한 놈 처내며 소 경위를 붙잡고 있는 놈들까지 모두 밀쳐내는 동안 칠구는 외장메모리를 손에 쥐었다. 회심의 미소를 지며 도망가려는 칠구를 그림자가 뒤에서 붙잡았다. 그리고 빠르게 칠구의 손에 있는 외장메모리를 낚아채듯 빼앗았다.
그림자의 손에 들어간 외장메모리를 뺏으려던 칠구는 아무리 그림자를 잡으려고 해도 빈 허공을 휘저을 수밖에 없어 답답할 노릇이었다. 귀신같은 그림자를 때릴 수도 없어 허공에 떠있는 외장메모리를 잡아채려 펄쩍펄쩍 뛰는 꼴이 가관이었다. 그림자는 그 모습을 잠시 웃으며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럴 여유가 없었다. 소 경위가 깡패들에게 둘러싸여 생명의 위협을 당하고 있었다. 그림자는 곧바로 칠구를 밀쳐내고 소 경위에게 달려가 주변에 있는 깡패들을 휘몰아치듯 한꺼번에 쓸어버렸다. 그림자가 지나가는 곳마다 세차게 몰아치는 비바람에 쓰러지듯 깡패들이 나가떨어졌다.
그림자와 소 경위가 깡패들과 일전을 벌이고 있는 동안 외곽에서도 경찰과 칠구의 조직원들 간의 한바탕 격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밀고 밀리는 싸움 속에서 도망친 일부 조직원들이 차안에서 대기하고 있던 민철과 송이를 보고 차문을 두드리며 겁박했다.
민철과 송이가 열지 않고 버티자 깡패들이 들고 있던 무기로 차창을 마구 내리쳤다.
결국 차창이 깨지며 문이 열리자 민철이 송이를 뒤로 숨기고 앞으로 나서서 막았다. 차안으로 들어오려는 깡패를 민철이 발로 걷어차며 막아섰다. 이번엔 조직원들이 반대편으로 달려가 차창을 또 마구 내리쳤다. 차창 깨지는 소리와 함께 송이의 비명이 차안에 울렸다.
송이가 있던 차문이 열리고 송이가 깡패들 손에 끌려 나갔다. 민철이 곧바로 따라 나가 깡패를 밀치며 송이를 지켜냈다. 그러나 곧바로 깡패 여럿이 달려들어 공격해오자 민철은 송이를 뒤에서 안듯 품으며 그들의 발길질을 온몸으로 막아냈다.
굵은 빗줄기가 점점 잦아들던 그때 발길질도 점점 잦아들었다. 살며시 고개를 든 민철의 눈에 사복차림의 경찰들이 깡패들을 제압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제야 한숨을 돌린 민철은 털썩 자리에 주저앉아 쓰러졌다. 송이는 깜짝 놀라 민철을 끌어안으며 소리쳤다.
“민철아. 민철아, 괜찮아? 어쩌려고 그랬어? 민철아, 정신 좀 차려봐! 민철아!”
실눈으로 송이를 보고 있던 민철이 벌떡 앉으며 송이를 끌어안았다.
“난 괜찮아. 너만 괜찮다면.”
“뭐야? 정말 괜찮은 거야?”
어디 다치지 않았는지 민철을 보려고 송이가 밀어내보지만 꼼짝도 않지 않았다.
“그냥 이렇게 잠깐만. 좋다. 네가 내 걱정해줘서. 정말 하나도 안 다쳤어. 깡패들 발길질 정도로 나 쓰러지지 않아. 알잖아, 나 맷집 좋은 거.”
“이그, 정말.”
끝까지 폼을 잡는 민철이 얄미워 등을 손바닥으로 찰싹 때렸다. 깡패들한테 맞은 곳이었는지 신음소리를 내며 아파하는 민철이 걱정돼 송이는 등을 쓸어내리며 꼭 껴안았다.
“미안. 안 아프다면서?”
“그래, 안 아파. 그래도 때리지는 마. 네 손이 더 맵다.”
그렇게 말하며 민철은 헤프게 웃어댔다. 민철의 웃음소리에 송이의 입가에도 희미한 미소가 흘렀다. 미소에 화답하듯 빗줄기가 완전히 멈추고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살며시 그들에게 내리었다.
외곽에서 경찰을 공격했던 조직원들도 빠르게 공원 밖으로 빠져나갔다. 일부 조직원들을 잡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놓치고 말았다. 기습적으로 뒤에서 치는 바람에 속수무책 당하고 말았다. 경찰의 피해가 컸지만 다행히 크게 다치거나 사망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접선장소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경찰들을 붙잡는 정도로만 타격을 주었던 것이다. 그에 접선장소인 잔디공원에서는 일방적인 그림자의 우세로 깡패들이 당해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림자의 반격에 쩔쩔매며 점점 뒤로 물러났다.
칠구도 더는 그림자가 가지고 있는 외장메모리를 뺏을 수 없다는 걸 인정하고 부하들에게 공격을 명령하고 뒤로 빠져 도망을 쳤다. 그림자가 칠구를 따라가 잡으려했지만 소 경위 혼자 두고는 갈 순 없어 어쩔 수 없이 소 경위와 함께 남은 깡패들과 마지막 일전을 벌어야했다.
깡패들도 칠구가 멀리 도망가는 것을 지켜보며 시간을 끌고 있었다. 칠구가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는 시간을 벌었다 싶은 깡패들은 그림자에게 쉽게 덤비지 못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나며 도망칠 때를 보고 있었다. 그때 저 멀리서 경찰관들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깡패들이 혼미백산하며 뿔뿔이 흩어져 도망쳤다.
주차장에 다다른 칠구는 멀리서 보아도 차가 그대로 주차되어 있어 안심이 되었다. 막 비서실장이 차에 올라탄 뒤였다. 칠구가 영상원본을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거의 다가갔을 때 갑자기 칠구 앞으로 한 남자가 튀어나와 앞을 가로 막았다.
그 남자는 바로 방기철 형사였다. 칠구를 지켜보던 비서실장과 권 대표는 낯선 남자의 등장에 시동을 켜고 칠구를 버린 채 그곳을 빠르게 빠져나갔다.
잔디공원으로 지원을 온 경찰관들과 함께 소 경위는 남은 깡패들을 모두 소탕하고 늦었지만 그림자와 함께 비서실장과 칠구가 도망간 곳으로 달려갔다. 그때 멀지 않은 곳에서 방기철 형사가 칠구를 체포한 채 느긋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저 사람은······.”
그림자는 송이를 통해 소 경위에게 말해주었다. 혹시나 싶어 방기철 형사에게 도움을 요청한 사실을. 접선장소에 도착한 차량에서 지키고 있다 그들이 도망치기 전 붙잡아달라는 부탁을 송이를 통해 방 형사에게 부탁했던 그림자였다.
비서실장을 현장에서 잡지는 못했지만 칠구를 통해 비서실장의 혐의를 밝혀내면 될 일이었다.
깡패들과 싸우는 중에 송이의 비명을 들었던 그림자는 아이들의 안전이 걱정돼 칠구를 소 경위에게 맡기고 곧바로 진 경사의 차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방기철 형사님이시라고요?”
소 경위가 먼저 손을 내밀며 인사했다. 송이로부터 방 형사의 얘기를 들은 소 경위는 반가운 마음이 컸다. 그러나 방 형사는 무뚝뚝하게 인사를 받고는 나머지 공범들을 놓쳤다며 아쉬워했다.
“그래도 이자를 잡아 다행입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도움이 된 것 같아 뿌듯하네요. 사실 별로 할 일도 없지만. 근데 어디 소속이십니까?”
“아, 저는 경찰청 형사과 소속 소진남 경위라고 합니다.”
“아이고, 경찰청······. 저는 금남서 형사과 방기철 경위라고 합니다.”
어색한 인사를 주고받은 그들은 칠구를 끌고 경찰관들이 집합한 곳으로 이동했다. 가는 동안 어색한 분위기를 풀려는 듯 방 형사가 먼저 그림자 얘기를 꺼냈다.
“남궁이한 경위가 그림자라는 걸 아는 겁니까?”
“네. 이한하고는 대학동기라서 친한 동료이자 친굽니다. 이번 작전도 그 친구와 함께했고요. 방 형사님도 알고 계셨군요.”
“저도 며칠 전에야 알았습니다. 참 신기하죠?”
“그렇죠. 생각하면 할수록 말이 안 되는 신기한 일이죠.”
그들이 이야기하며 가는 동안 송이와 민철에게 온 그림자는 무사한 아이들의 모습에 안도하며 칠구를 잡았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민철은 나머지 공범들을 잡지 못해 아쉽다며 인상을 찌푸렸다. 아쉬움보다는 온몸이 욱신거려 아픈 것이었다.
송이는 민철이 자신을 보호해줬던 일을 그림자에게 몰래 말해주었다. 마치 남자친구의 멋진 무용담을 자랑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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