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그날의 기억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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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야, 뭐가 떠올랐어?’
‘아저씨······ 그게······.’
소스라치게 놀라는 송이의 모습에 박 경위는 손을 떼며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소리가 너무 커서 나도 모르게······. 이한 어머니가 들으시면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랬어요.”
“아니에요. 저기 잠깐만요.”
그날 도대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몸이 다 떨릴 정도로 놀랐는지 송이는 생각을 더듬어 그날의 기억을 끄집어내려했다. 하지만 도저히 더는 떠오르지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아보지만 역시나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왜 그래요? 괜찮은 거예요?”
그 모습에 박 경위가 물었다.
“아니요. 뭔가 잠깐 떠올랐다가 사라졌어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요.”
“그날 기억이요?”
눈을 번뜩이며 박 경위가 물었지만 송이가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자 뭔가 기억이 난 것인지 재차 물었다. 하지만 송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겠어요. 뭔가 좋지 않은 일 같은데······. 다시 기억해 내려고 해도 떠오르지가 않아서요.”
“그래요. 너무 무리하지 말아요. 내가 괜히 더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하네요.”
“아니에요. 근데 정말 그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빠가 자살한 거라면 제가 그 모습을 보고 충격에 빠져 기억을 잃은 건 아닐까요?”
“그럴 수도 있죠. 억지로 기억해내려 하지 않는 게 낫겠어요. 좋은 기억도 아닌 것 같고. 단지 이한이 왜 그곳에 갔는지가 궁금해서 그런 거였어요.”
미안해하는 박 경위에게 송이도 뭔가 도움을 주고 싶었지만 기억나는 것이 없어 답답할 뿐이었다. 박 경위는 인사하고 중환자실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때 조용히 듣고만 있던 그림자가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송이야, 박 경위한테 내 말 좀 전해줘.’
“저기 박 경위님, 잠깐만요.”
박 경위를 불러 세운 뒤 송이는 그림자에게 무슨 말인지 물었다.
‘왜 송이를 미행한 건지 물어봐줘.’
‘송이를 미행······ 저를 미행했다고요? 저 분이요?’
중환자실로 가던 박 경위가 되돌아오며 물었다.
“왜요? 학생. 뭐라도 기억났어요?”
그림자의 말에 충격을 받은 송이는 잠시 멍하니 박 경위를 쳐다만 보았다.
“임송이 학생, 왜 그래요?”
박 경위의 물음에 잠시 말을 잇지 못하던 송이는 그림자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걸 어떻게 물어봐요? 저 분이 왜 날 미행해요, 네? 언제요, 언제 날 미행했는데요?’
‘그냥 물어봐. 아무렇지도 않게 물어보라고. 그러면 돼. 내가 하라는 대로.’
‘아이,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난처해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 송이에게 박 경위가 재차 물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요? 괜찮은 거예요?”
“아,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저기, 제가 그러니까······. 저를 왜 미행하셨어요?”
“미행? 아······.”
생각지 못한 갑작스런 물음에 박 경위는 당혹스러워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송이의 눈까지 피하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정말 저를 몰래 지켜본 거예요? 왜요?”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서야 박 경위가 말문을 열었다.
“미안해요. 미행한 건 아니고······. 그냥······ 그래요. 사실대로 말할게요. 학생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제가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했다고요? 그게 이유라고요?”
“뭔가 숨기고 있다고 봤어요. 학생의 아버지 일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고요. 알고 있다니 편하게 말할게요. 학생의 아버지가 뇌물수수 사건에 연루된 걸 알고 있을 거예요. 그 사건과 연루된 누군가가 학생이나 학생의 어머니에게 접근하지 않을까 생각했던 거고요. 그래서 미행했어요. 근게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멀리서 지켜보기만 했는데······.”
“그게······ 우연히요. 우연히 절 지켜보는 형사님이 보였거든요. 제가 무슨 일인가 가보려고 했는데 이미 거기에 안 계시더라고요.”
“그랬어요? 아무튼 미안해요. 미행하면 안 되는 거였는데······. 내가 잘못했어요.”
변명 없이 곧바로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모습에 화는 내지 못하고 자신에 대해 뭐라도 알아낸 것이 있냐고 묻기만 했다. 박 경위는 다시 한 번 미안하다며 자신의 오해였다고 했다. 송이는 오해가 풀려 다행이라며 쿨하게 넘어갔다.
면회 시간이 꽤 지났는지 박 경위는 손목시계를 살피며 들어가 봐야겠다고 괜찮은지 물었다. 얼른 가보시리고 송이는 중환자실을 가리켰다. 박 경위는 머쓱하게 웃으며 중환자실로 발길을 돌렸다. 송이는 그를 지켜보며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그렇게 갑자기 물어보라고 하면 어떡해요? 미리 말해줄 수 있었잖아요.’
‘나도 판단이 안서서 그랬어. 너한테 말하는 게 좋을지 네가 모르는 게 나을지 말이야.’
‘저번에 누가 미행한다고 보러가서는 아니라고 한 그날인 거죠?’
‘맞아. 박 경위가 널 미행한다는 걸 알고 좀 놀랐거든.’
‘그래서 모르겠다고 한 거군요. 이제 어때요? 좀 알겠어요?’
‘말을 들어보니 이해가 되기는 하는데 왠지 께름칙한 느낌이 가시지 않는 게······.’
‘뭐가요? 그럼 어떡해요? 도움을 요청할 사람이 박 형사님밖에 없는 거 아니었어요?’
‘그건 그런데······.’
휴대전화 벨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송이는 서둘러 휴대전화를 꺼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나야, 민철. 어디로 가?”
“병원에 온 거야?”
“그러니까 전화했지. 어디냐고?”
땍땍거리며 쏘아 붙이는 민철에게 송이는 화가 났지만 크게 한숨을 내쉬며 화를 가라앉혔다.
“여기 중환자실 앞 대기실이야. 병원 5층으로 와.”
그렇게 말하고 송이가 전화를 끊어버리자 그림자는 무슨 일인가 싶어 물었다. 하지만 송이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자 그림자는 얼굴에 티가 다 난다고 무슨 일인지 되물었다. 마지못해 송이는 속마음을 떨어놓았다.
‘아니, 쟤는 말을 왜 저렇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사람 화나게 하는 말투라고요.’
‘아이고, 그래서 그렇구나. 남자애들이 좀 그래. 좋아하는 사람한테 더 그러고, 괜히.’
‘좋아하는 사람이요? 누가 누굴 요?’
송이가 정색하며 묻자 그림자는 머쓱해 말을 잇지 못했다.
‘아니······.’
‘아저씨, 자꾸 걔랑 저를 엮으려고 하시는데요. 그러지 좀 마세요. 예전 일로 그러시는 것 같은데 절대 그런 거 아니라고요. 저런 얘를 누가 좋아해요? 아이, 정말.’
‘아니면 아니지. 뭘 그렇게까지······.’
‘아니라고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진정해. 아니야, 그래.’
‘치, 말로만. 더는 그런 말 마세요, 정말.’
‘알았다고, 알았어. 민철이 병원에 온 거야?’
‘다 들었으면서 뭘 물으세요?’
‘아니······ 알았어. 아휴.’
송이의 한마디 한마디에 쩔쩔매는 그림자였다. 고개를 숙인 채 그림자와 얘기하고 있던 송이에게 누군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저기, 송이 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수연이 내려다보고 있는 모습에 송이는 깜짝 놀라서는 벌떡 일어섰다.
“미안해요. 놀랐어요?”
“아니요. 괜찮아요. 근데 무슨 일로?”
“아, 방금 전에 동식 씨랑······ 아니, 박동식 경위라고 방금 같이 있었던 사람 말이에요.”
“네, 근데 그건 왜요?”
“무슨 일인가 하고요. 멀리서 들었는데 이한 씨 얘기를 하는 것 같아서. 무슨 얘기했는지 알 수 있을까요?”
“그게······.”
송이는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다 그림자에게 물었다.
‘어떡해요? 말해줘도 될까요?’
‘괜찮아. 편하게 말해.’
말하려는 송이보다 먼저 수연이 말을 걸어왔다.
“송이 씨, 말하기 어려운 거면 괜찮아요. 그럼······.”
“아니에요. 말씀 드릴게요.”
“정말요? 고마워요.”
어떻게 말을 해줘야할지 송이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이내 말했다.
“이한형사님이 저를 구하고 다친 건 알고 계세요?”
“그게 송이 씨였어요? 학생이라고만 들어서······.”
“네, 저예요. 오늘은 주말이라 평상복을 입어서······. 아무튼 그 일로 물어보신 거예요. 제가 그때 충격으로 그날 일을 전혀 기억 못하거든요. 그날 우리 집에서 일어났던 일에 대해 궁금하셨나 봐요. 그래서 제 기억이 돌아왔는지 물어보신 거고요.”
“그랬군요. 미안해요. 그것도 모르고. 아, 들었어요. 학생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예라고 대답하는 송이의 눈에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는 좀 괜찮아졌다 싶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울컥했다.
“어머, 이거 미안해서 어떡해요? 내가 괜한 말을 꺼냈네요. 미안해요, 송이 씨.”
송이는 손등으로 눈물을 훔쳤다.
“아니에요. 제가 더 죄송하죠. 저희 아빠 때문에 이한형사님이 크게 다치셨잖아요. 그걸 아시면서도 뭐라고 안하시는 할머니께 정말 감사했어요.”
“그걸 왜 송이 씨가······. 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아버님 일로도 상처가 깊을 텐데 괜한 생각 말아요. 알았죠?”
어깨를 토닥여주고 돌아서려는 수연에게 송이가 물었다.
“저기, 이한형사님하고는 어떤 관계세요?”
그림자는 깜짝 놀라며 송이에게 그걸 왜 물어보냐고 물었다. 송이는 대답하지 않고 수연의 대답만 기다렸다. 수연은 ‘어떤 관계?’라고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싱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친구요.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
“고등학교 때부터면 정말 오래된 친구시네요.”
“아니에요. 고등학교 때 알고 지내다 몇 년 전에나 우연히 만났어요.”
“그렇구나. 사귀는······ 아니다. 아니에요.”
“사귀는 사이인줄 알았어요? 아까 어머니도 여사친이라고 말했잖아요.”
“그렇죠. 그래도 남녀 사이니깐 할머니는 모르실수도 있고요.”
수연이 한쪽 눈을 찡긋해 보이며 맞다고 하자 송이의 눈이 번쩍 뜨여서는 되물었다.
“정말 맞아요?”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닌데······.”
“아, 죄송해요.”
“죄송할 것까지는 없는데. 송이 씨, 참 재밌네요. 근데 그게 왜 궁금할까?”
“아니, 그냥······.”
“그냥? 으음······ 그래요. 그 나이엔 이성 관계에 관심이 많을 때이긴 하죠. 그래도······.”
그렇게 말하며 수연이 짓궂은 표정으로 바라보자 송이는 손을 내저으며 고개까지 좌우로 빠르게 흔들었다.
“아니에요. 그냥 말이 나와서 물어본 거예요. 말씀 안 해주셔도 돼요.”
수연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오랜만에 이한 씨 얘기를 하니까 괜히 웃음이 나오네요. 이러면 안 되는데······.”
“두 분 정말 사귀셨어요?”
수연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사귀진 못했고. 저 혼자 짝사랑했어요. 이건 우리끼리 비밀이에요.”
“비밀이요? 아······.”
“그래요. 비밀로 할 것도 없죠. 송이 씨가 누구한테 말하겠어요. 안 그래요?”
“그렇죠······.”
그렇게 말했지만 송이는 괜히 수연에게 미안했다. 그리고 그림자에게 말했다.
‘들으셨죠? 저 언니가 아저씨를 짝사랑했다는데요?’
그림자는 선뜩 대답하지 못했다.
‘왜요? 부끄러워서 그러세요?’
그림자가 뭐라고 말하려는 그때 수연이 말을 이어갔다.
“이한이랑은 고등학교 졸업하면서 헤어졌어요. 근데 언제 다시 만났는지 알아요?”
‘송이야, 수연 씨가 묻잖아.’
그림자의 대답을 기다리다 수연의 말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얼떨결에 말하고 말았다.
“아, 네?”
“못 들은 거예요. 아이, 나만 신나서 말하는 것 같네. 아니에요. 내가 주책이지, 그죠?”
“아니에요, 죄송해요. 궁금해요. 언제 다시 만나셨는데요?”
“뭐예요? 들은 거예요?”
사실 그림자가 수연의 말을 송이에게 다시 말해주었다. 수연은 과거의 일들이 떠오르는 듯 멍하니 앞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꺼내었다.
“이한 씨가 제가 일하는 병원을 찾아왔어요.”
“병원······. 의사선생님이세요?”
수연은 옅은 미소를 지어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병원은 왜? 아, 형사라서 자주 다치니까······.”
“그러기도 하죠. 근데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왔어요.”
“마음이요?”
“그래요. 내가 사실 정신과 의사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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