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 응급상황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조태욱 실장이 땀을 벌벌 흘리며 계단을 뛰어올라와 골프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가 들어서자마자 황 의원의 욕설이 날아들었다.
“이 새끼! 너 뭐하는 새끼야!”
이마의 땀을 닦아내고는 조 실장은 조심스레 황 의원 앞으로 다가섰다.
“죄송합니다. 무슨 일로 이리 노하셨습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예? 아니······ 어으!”
조 실장이 말하는 중에 황 의원이 뺨을 갈겼다.
“왜 이러십니까? 의원님.”
“칠구 그 놈이 왔다고! 너 어디서 뭐하고 있었던 거야? 내가 그 따위 새끼한테 그런 모욕을 당해야겠어! 이 새끼야!”
황 의원은 그렇게 말하고 또 한 번 조 실장의 뺨을 내리쳤다. 몸이 다 휘청거렸지만 그는 곧바로 균형을 잡고 허리를 깊게 숙였다.
“죄송합니다, 의원님.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습니다. 갑자기 타이어 바람이······. 아! 그러고 보니 이게 다 그 칠구 녀석의 짓인가 봅니다. 타이어에 바람이 빠져있어서 잠깐 정비소에 간다는 것이······.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의원님.”
조 실장은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아이, 정말. 아주 제대로 당했네, 당했어. 조 실장, 칠구 그 놈 이번에 재껴야겠다.”
“벌써 말입니까? 아직······.”
“됐어. 더는 안 되겠어. 내가 본때를 보여줘야겠어. 반 죽여서 내 앞에 갖다놔. 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제대로 보여줄 테니까. 알겠어? 쌍놈의 새끼가 어디 감히 나를······.”
“예, 알겠습니다.”
나가려는 조 실장을 황 의원이 불러 세웠다.
“저기, 조 실장.”
“예, 의원님.”
“이거 정 대표도 몰라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지?”
“아, 예. 물론입니다.”
조 실장은 나가고 황 의원은 웃으며 골프채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린 위로 올라가 힘차게 골프공을 향해 휘둘렀다. 그때 멀리서 박수 소리와 함께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이스 샷! 아직 정정 하십니다, 의원님.”
“아이고, 이게 누굽니까?”
“왜요? 이런데서 보니 놀라셨습니까?”
“아니, 아니에요. 비서실장이 이런 누추한 곳엔 어쩐 일로 온 거예요?”
“어쩐 일은요? 골프연습장에 골프 치러 왔죠.”
“그게······ 아니, 그러네요. 그래요. 근데 혼자 온 겁니까?”
“아니요. 여기서 약속이 있어서요. 제가 좀 일찍 와 기다리고 있는데 쩌렁쩌렁한 의원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겠습니까? 딱 듣고 바로 알았지 뭡니까? 그 연세에 여전하십니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리 역정을 내셨습니까?”
“아니에요, 별거.”
“별거가 아니던데요. 아끼시는 조태욱 실장의 뺨을 그렇게······.”
비서실장은 마치 자신이 맞은 것처럼 인상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그러시면 안 됩니다. 갑질이다 뭐다 말이 많지 않습니까? 조 실장이 참 사람이 좋아서 그렇지······.”
“그래요, 그건 그렇죠. 요즘 뭐만 하면 갑질이다 하니 참······. 아랫것들이 잘못하며 혼 좀 낼 수 있는 거지. 잘 하면 내가 왜 그러겠어요? 안 그래요? 꼭 가진 것 없는 것들이 그런 소리나 하는 겁니다. 갑이 아니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죠. 만약에 지들이 갑이었으면 아주 더 난리를 쳤을 거예요. 사람 마음이 다 그런 거 아니겠어요. 비서실장도 잘 알잖아요.”
“그럼요. 잘 알죠. 그런데 어쩝니까? 세상이 그리 흘러가는 걸요. 조심하시라고 말씀드리는 거니까 역정은 그만 내시고, 마저 골프 치십시오. 그럼, 저는······.”
비서실장이 도로 나가려하자 황 의원이 불러 세웠다.
“저기, 한 실장. 여기서 만나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아닙니다. 요 아래에서.”
“그래요? 근데 누굴 만나기로 한 겁니까?”
“아, 모처럼 친구들끼리 골프나 치러 왔습니다.”
“그럼 필드로 나가지 않고요?”
“친구들이 모두 바빠서······. 아무튼 그렇게 됐습니다.”
“그랬군요. 알았어요. 아, 근데 어르신은 어때요? 요즘 건강이 많이 안 좋아지셨다는 소문이 있던데.”
“그러게 말입니다. 하루하루 나이를 드시니······. 황 의원님이 한번 찾아가 보시죠. 그러시면 참 좋아하실 것 같은데 말입니다.”
“내가요? 에이, 괜히 심기만 더 긁는 게 아니겠어요.”
“아닙니다. 어르신께서는 옛일은 모두 다 잊으셨습니다. 황 의원님이 먼저 손을 내미시면 좋아하실 겁니다.”
“그래요?”
“물론이죠. 시간 되실 때 한번 찾아가 보시지요.”
“알겠어요. 어서 가 봐요. 좋은 시간 보내요.”
“예. 의원님도 즐거운 시간 보내십시오. 그럼.”
한 비서실장이 나가고 황 의원은 골프채를 움켜쥐다 은근 그가 누굴 만날지가 궁금해 아래층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수연의 집으로 향하던 차를 송이가 갑자기 세웠다. 수연은 갓길에 급히 차를 세우고는 뒷좌석에 있는 송이를 봤다.
“학생, 왜 그래요?”
민철도 상기된 얼굴로 뒤돌아보며 물었다.
“갑자기 뭐야? 놀랐잖아. 그러게 차를 세우라고 소리치면 어떡해?”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송이는 관자놀이를 만지며 말했다.
“죄송해요. 아저씨가 괴로워하고 계셔서요. 괴성까지 지르며 무척 힘들어 하세요.”
“뭐라고? 무슨 일로?”
민철이 놀라며 되묻자 송이는 신경질적으로 화를 냈다.
“그걸 내가 알았으면 말했지. 나도 모른다고.”
당혹스러워 민철이 한 소리하려는데 수연이 말리며 조심스레 말했다.
“알겠어요, 송이학생 진정하고 어떤 상황인지 말해볼래요.”
“내 말에 대답을 안 하세요. 그저······. 그래요. 악몽을 꾸시는 듯 괴로워하며 소리만 지르고 계세요.”
송이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신의 양쪽 귀를 막으며 괴로워했다. 그 모습에 민철이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수연에게 어쩌면 좋겠냐고 물었다.
“조금만 기다려보죠. 이한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해요.”
“그럴까요? 악몽이라면 잠을 자고 있는 건데······. 송이한테 깨워보라고 하면 어떨까요?”
“송이학생이 말을 걸어도 듣지 못한다고 하잖아요. 잠이 든 게 아니에요, 이건.”
“그럼 뭘까요? 도대체 무슨 일인 거죠? 뒤로 가서 직접 봐야겠어요.”
민철은 차에서 내려 뒷좌석에 탔다. 그리고 송이 옆으로 드리운 그림자를 살폈다. 하지만 그림자는 특별히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그림자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한 민철은 수연에게 말했다.
“쌤, 정말 주무시고 계신 거 같은데요. 괴로워 비명을 지를 정도면 몸을 좀 비틀거나 움직여야 하잖아요. 근데 그냥 송이랑 같은 자세로······. 어! 잠깐만. 이거는······. 이거 송이랑······. 아닌가?”
민철이 뭔가에 놀라 말을 잇지 못하자 수연이 걱정 돼 다급히 물었다.
“왜요? 이한 씨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거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송이의 그림자에요.”
“그렇죠. 송이학생의 그림자죠. 당연한 소리를 왜 하는 거예요?”
“그게 아니라요. 진짜 송이의 그림자라고요. 아저씨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말이에요.”
“뭐라고요?”
깜짝 놀란 수연은 뒷좌석으로 몸을 기울여 송이의 그림자를 확인했다.
“어! 정말이잖아. 이한 씨가 아니잖아요.”
“그렇죠? 아저씨가 깨어난 걸까요?”
“그럴 수 있겠네요. 근데 송이학생······. 어? 송이학생?”
송이가 의식을 잃은 채 뒷좌석에 기대여 있었다. 잠시 말없이 쉬고 있다고만 생각했던 민철은 황급히 송이를 흔들어 깨웠다.
“송이야, 송이야!”
수연은 자세를 고쳐 앉으며 말했다.
“안 되겠어요. 빨리 병원으로 가야겠어요.”
“어디 병원이요? 아저씨가 있는 병원 말씀이세요? 그러지 말고, 가까운 병원으로 빨리 가요. 빨리요.”
“알았어요. 근데 여기서 그 대학병원이 가장 가까워요.”
“아, 네. 그럼 빨리요.”
수연은 황급히 차에 시동을 걸고 출발했다. 민철은 송이를 품에 안고서는 계속 이름을 부르며 의식이 돌아오기만을 빌었다. 차는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도착했고 민철은 송이를 안고 응급실로 뛰어 들어갔다. 간호사가 병상으로 그들을 안내했다. 곧바로 의사가 달려와 송이의 상태를 확인했다. 민철은 기다리지 못하고 송이의 상태를 물었지만 간호사가 민철을 막아섰다.
“보호자 분들은 잠깐만 밖에 계셔 주세요. 의사 선생님께서 확인하고 말씀드릴 거예요. 잠시 만요.”
간호사는 그렇게 말하고 병상 커튼을 쳐 안이 보이지 않게 가렸다. 민철이 무릎을 짚으며 눈물을 보이자 수연이 옆으로 다가와 어깨를 토닥이며 달랬다. 얼마 지나지 않아 커튼이 거치고 의사가 나왔다. 민철은 눈물을 훔치며 의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선생님, 어떻게 됐나요?”
“너무 걱정 안 해도 됩니다. 잠깐 기절을 한 것 같아요. 지금은 수면상태로 호흡도 일정하고 아무 이상이 없어 보입니다. 외상이 있는 것이 아니라서 조금만 쉬고 일어나면 괜찮을 겁니다.”
“정말요? 의식은 있다는 말씀이시죠?”
“네. 그러니, 환자 분이 편히 주무실 수 있도록 보호자분들은 밖에서 대기하시죠.”
“잠깐만 보고 나오면 안 될까요?”
의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조용히 보기만 해야 합니다.”
고맙다며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민철은 조심스레 커튼을 걷고 안으로 들어갔다. 송이의 얼굴을 가만히 지켜보던 민철은 조용히 밖으로 나왔다.
“왜 그렇게 빨리 나와요?”
“눈물이 계속 나와서 안 되겠어요.”
“뭐······. 항상 씩씩하기만 한 줄 알았는데. 마음이 여린 학생이었네요, 민철학생.”
“아니······. 가만히 지켜보는데 그 동안 마음고생이 많았는지 얼굴이 많이 상해보이더라고요. 그래서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치는 민철을 수연이 옆에서 도닥여주었다.
“그랬어요? 그래요, 송이학생도 참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보통 학생이면 겪지 않을 일들을 그 동안 많이 겪었으니 말이에요.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쳤을 거예요.”
“그러니까요.”
“저기, 민철학생은 여기서 송이학생 좀 봐줘요. 나는 이한 씨 좀 보고 올게요.”
“아니요. 저도 같이 갈게요.”
“그러다 송이학생이 깨면······.”
“금방 보고 올게요. 저도 아저씨가 괜찮은지 궁금해서요. 아까 차에서 송이가 했던 말이 계속 걸려요. 혹시 아저씨가 깨어나셔서 그런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그래요. 나도 사실 그게 궁금했어요. 그럼 같이 가요.”
수연과 민철은 이한이 누워있는 병실로 향했다. 그리고 병실 복도에 들어섰을 때 이한의 병실 문 앞에서 서성거리는 방기철 형사를 보았다.
“저기, 쌤.”
“왜요?”
“저기, 저 남자 방기철 형사 아니에요?”
“맞는 것 같아요. 근데 왜 저기에 있는 거지······.”
“가서 물어볼까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저기, 저리로 가요.”
수연은 민철을 이끌고 복도 기둥 뒤로 숨으며 방 형사를 지켜봤다.
“아저씨 병실을 찾아 온 것 같은데요. 어떻게 알고 온 걸까요?”
“그러니까요.”
“정말 방기철 형사가······.”
수연은 민철의 말을 막으며 말했다.
“속단하지 말고, 좀 더 지켜보죠.”
이한의 병실 문 앞에서 주변을 어슬렁거리던 방 형사는 병실 문 옆에 붙어 있는 환자의 이름을 확인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곳엔 이한의 이름은 없었다. 만약을 대비에 가명으로 입원한 상태였다. 맞은편에서 간호사들이 걸어오자 방 형사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수연과 민철이 있는 방향으로 걸어왔다.
“방 형사님.”
벽기둥에서 민철이 갑자기 튀어나오자 방 형사는 깜짝 놀라 뒷걸음치며 물러났다.
“어? 자네는······.”
민철 뒤로 수연도 보이자 방 형사는 두 사람을 번갈아보며 말을 이었다.
“제보자님도······. 근데 두 사람은 여기에 무슨 일로 온 겁니까?”
민철은 방 형사에게 성큼 다가가 대답 대신 되물었다.
“그거야 말로 제가 물어보고 싶은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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