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살려주세요, 그림자 아저씨!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구급대원들이 부상자가 누워있는 이동식침상을 끌며 응급실로 들어왔다. 교통사고로 응급조치가 필요한 부상자들이 줄줄이 실려 왔다. 응급실 안은 위급한 상황에 놓인 부상자들에게 응급조치를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주하게 움직이는 간호사와 의사들을 지켜보던 진 경사는 의식을 차리고 일어서는 민철의 인기척에 눈길을 침상으로 돌렸다.
“일어났어? 어디 불편한 곳은 없고?”
“어떻게 된 거예요?”
“그게 교통사고가 있었던 것 같아. 현재 조사 중이고. 부모님한테는 연락드렸으니까 곧 오실 거야.”
잠시 현기증이 일었는지 민철은 이마를 짚으며 주변을 살폈다.
“송이는요? 송이는 어디에 있어요?”
정신을 차리자마자 송이를 찾으며 침상을 내려가려는 민철을 진 경사가 말렸다.
“아직 움직이면 안 돼. 의사가 후유증이 있을 수 있다고 좀 더 지켜보자고 했다고.”
진 경사의 말은 민철에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그저 그의 눈은 송이만 찾고 있었다. 그러다 맞은편 침상에 방금 전 부상자로 들어온 환자를 보고 송이로 착각하고 달려가려다 무릎이 꺾이며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진 경사가 바로 부축해 바닥에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민철은 눈이 그렁그렁해서 맞은편 환자에게 또 달려가려했다.
“아니야. 송이는 여기에 없어.”
“없어요?”
없다는 말에 민철은 잠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 느낌이 쎄하여 바로 물었다.
“그럼 어디에 있는데요? 무사한 거예요? 그런 거냐고요?”
“저기 민철학생. 일단 여기 앉아. 앉으면 다 말해줄게.”
민철을 침상에 앉히고는 막상 말을 하려니 입이 바짝 말랐다. 망설이며 뜸을 들이는 진 경사를 보며 민철은 더욱 긴장되고 안 좋은 생각이 들어 선뜻 되묻지도 못했다. 짧게 한숨을 고르고 진 경사가 입을 열었다.
“소 경위님의 차가 전복되면서 폭발했어. 그 사고현장에서 발견된 부상자는 소 경위님이랑 민철학생 두 사람밖에 없었어. 그러니까······.”
“아니에요. 아니라고요!”
말을 끝까지 듣지 않고 민철은 아니라고 울부짖듯 소리쳤다. 뜨거운 것이 민철의 눈에서 흘러내려 볼을 타고 무릎으로 떨어졌다. 민철은 무서웠다. 폭발했다는 차안에 송이가 남아있었다는 말이 나올까. 진 경사는 그런 민철을 안아주며 다독였다.
“그래, 아니야. 어딘가에 살아있을 거야. 그러니까 진정해. 이러면 위험해. 어?”
전소된 차량을 조사 중에 있어 진 경사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사고현장에서 송이가 발견되지 않아 차안에서 사망했을 것으로 추측만할 뿐이었다. 그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민철도 송이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괴로워하며 고개 숙인 채 흐느껴 울던 민철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소 경위님은 괜찮으신 거죠? 저처럼. 그렇죠?”
입을 달싹이며 고개를 끄덕이는 진 경사의 얼굴에 그늘이 짙게 깔렸다.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민철은 남은 눈물마저 닦아내며 울지 않을 테니 솔직히 말해달라고 부탁했다. 진 경사는 민철을 생각해 말하지 않으려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소 경위는 현재 수술을 받고 병실에 있었다. 위급한 상황은 넘겼지만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움직이면 안 된다는 의사의 경고에도 민철은 고집을 피워 병실로 갔다. 병실로 들어서는데 진 경사에게 전화가 걸려와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노을이 짙게 드리운 병실 안은 고요했다. 1인실 병실에 침상이 반쯤 커튼이 쳐져 있어 환자의 하반신만 민철의 눈에 들어왔다. 하반신 전체가 붕대로 감겨져 있었다. 커튼에 드리운 그림자에 비춰져 보았을 때 상반신도 붕대에 감겨져 있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민철은 차마 병상에 누워 있는 소 경위를 보지 못하고 주춤거리다 돌아섰다.
자신은 멀쩡하고 소 경위의 부상이 심한 것을 보니 모든 게 자기 때문인 것 같았다. 민철은 자신이 온전한 것은 소 경위 덕분이라고 짐작했다. 그래서 더 미안하고 괴로웠다. 눈물을 글썽이며 나가려는데 검은 그림자가 등 뒤로 길게 늘어져서 민철 옆으로 드리웠다.
“왜 그냥 나가는 거야?”
남자의 목소리였다. 의식을 차린 것인가 싶어 돌아보았다. 소 경위는 침상에 누운 채였는데 커튼 너머로 노을에 비친 사람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분명 소 경위 외에는 아무도 병실에 없었다.
“네? 아니······ 아저씨. 아닌데······. 뭐지······.”
그림자를 보고 놀란 민철은 혼잣말처럼 더듬거리며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또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서 있지 말고 가까이 와.”
“그림자 아저씨세요? 이한 아저씨? 우리 송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예요, 네?”
“이거 어쩌지? 난 이한이 아니라 진남인데. 소진남 경위라고.”
민철은 그 그림자가 이한의 그림자라고 생각하고 물었는데 소진남 경위였다.
“소 경위님이라고요? 그럼, 아저씨도 그림자가 된 거예요? 이 목소리는 저한테만 들리는 거고요.”
이한의 그림자가 아니라는 말에 누워 있는 소 경위를 한번 보고 다시 그림자를 보며 물었다. 민철은 이한의 그림자처럼 소 경위도 그림자로 보이는 게 아닐까 걱정이 되면서도 괜히 기대가 되었다. 곧바로 달려가 커튼을 걷으며 그림자의 정체를 확인했다.
침상 머리맡에 민우직 팀장이 서서 손을 흔들고 있었다.
“어? 누구······. 아니, 왜 이런 장난을 치시는데요?”
“장난? 그게 아니라······.”
민 팀장은 손가락으로 침상을 가리켰다. 그제야 소 경위가 의식을 차린 채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역시나 상반신도 붕대로 칭칭 감긴 채였다.
의식이 없는 채 누워 있는 소 경위를 지켜보고 있던 민 팀장은 잠시 졸려 침상에 머리를 기대 챈 잠들었다. 그 사이 의식을 차린 소 경위이었지만 자고 있는 민 팀장을 깨우지 못하고 있었다. 때마침 그때 민철이 들어왔고 발소리에 지켜보던 소 경위는 도로 나가는 것을 불러 세웠던 것이다.
소 경위는 민철이 무탈해 안심이라며 밝게 웃어주었다. 민철은 자신 때문에 이렇게 크게 다친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소 경위는 그런 것이 아니라고 선의의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송이는 무사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림자가 송이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것을 본 소 경위이었지만 그 뒤 상황을 보지 못해 송이가 납친 된 것을 모르고 있었다. 또한, 이한의 죽음도.
전화를 받고 병실로 들어오던 진 경사가 소 경위의 목소리에 한달음에 달려왔다.
“깨어나신 거예요?”
“어, 진 경사. 나 안 죽었어.”
“정말 다행이에요. 선배.”
“선배는······. 경위라고 불러.”
“몰라요. 지금 그게 중요해요. 선배는.”
어느새 눈물을 글썽이는 진 경사의 모습에 민철이 살짝 뒤로 빠져주었다. 민철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았던 진 경사였기에 두 사람 관계를 대충 알 것도 같았다.
“알았어. 나 안 죽었으니까, 그만 울고. 어떻게 된 건지 좀 말해봐. 송이와 이한은? 모두 안전한 거지. 이한이 송이학생을 구하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거든.”
“저기 그게······.”
눈물을 훔치며 말하려던 진 경사는 힐끗 민철의 눈치를 보았다. 그리고 민철에게 미안하다며 자리를 비껴달라고 부탁했다. 민철은 무슨 일인지 알고 싶어 같이 듣겠다고 했지만 다른 사건이라며 병실에서 나가달라고 정중하고 단호하게 재차 부탁했다. 어쩔 수 없이 민철은 병실을 나가 밖에 서서 문에 귀를 대고 엿들었다. 하나도 들리지 않았지만.
민철이 나가고 진 경사가 방금 전 받았던 전화내용을 소 경위에게 보고했다. 덤프트럭과 충돌한 사고경위와 송이가 행방불명된 사실. 그리고 아직은 추측이라며 이 모든 것이 칠구가 사라진 것과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연행 중에 칠구가 경찰들을 제압하고 도주한 것과 사고 낸 덤프트럭이 사라진 것이 우연히 아닐 것이라고.
아직 경찰은 칠구가 송이를 납치한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도주한 칠구와 덤프트럭 운전사를 찾고 있지만 동일인물이라고 추측만할 뿐 확신은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일단은 칠구와 트럭운전사를 찾는데 수사를 집중하고 있었다.
“어떻게 칠구 그자식이 도주할 수 있었던 거야?”
“보고받기로는 몰래 수갑을 풀고 차가 잠시 정차하는 틈에 경찰관을 제압하고 도주했다고 합니다.”
밖에서 들리지 않는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민철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송이인가 싶어 민철은 휴대전화를 꺼내 바로 발신자를 확인했다. 송이가 아니었는지 민철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전화를 받았다.
***
강남을 접수할 때도 방 형사가 그림자처럼 아무도 모르게 칠구 곁에서 도왔다. 그뿐 아니라 송이와 그림자로부터 알게 된 정보를 미키 정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미키 정과 육팔이 살인교사 및 살인미수로 체포되는 것을 지켜보기만 했다. 이것이 그의 방식이었다.
“알아요, 알아. 아까워······ 아니, 아쉬워서 그러죠. 형님 같은 실력에 형사라는 배경이. 나도 그때 형님 따라 경찰이나 될 걸 그랬어요.”
“공부는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한 놈이 누군데?”
칠구는 머리를 긁적이며 머쓱하게 웃었다.
“말이 그렇다는 거죠. 공부는 영 체질이 아니라.”
드르륵 의자가 끌리는 소리가 들렸다. 의식이 돌아온 애리가 몸을 움직이다 수갑이 채워진 의자가 끌리며 난 소리였다. 애리는 수갑이 채워진 자신의 손을 보고 마구 흔들며 살려달라고 소리치다 옆에 쓰러져 있는 송이를 보고 비명을 질렀다.
“아악! 송이야. 송이야, 일어나봐. 송이야!”
시끄럽다고 욕설을 내뱉으며 칠구는 달려가 사정없이 애리의 뺨을 갈겼다. 짧은 비명이 입 밖으로 새어나오며 쓰러진 애리는 매섭게 노려보며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당신이야? 송이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
“이 기지배가 맞아도 정신을 못 차리네. 또 맞아야 정신 차릴 거야!”
소리를 버럭 지르며 애리에게 주먹을 날리려는 칠구의 팔을 방 형사가 붙잡았다.
“때리면 안 되는 거 몰라. 특히 얼굴은 안 된다고.”
“이게 눈을 살쾡이처럼 뜨고 박박 대드니까 그러죠. 이런 얘는 본보기를 보여줘야······.”
“됐어. 그냥 입이나 막아.”
“예, 알겠습니다. 아이들 생각이 나시는 모양이네. 그러죠.”
비아냥거리며 칠구는 옆에 걸쳐져 있던 수건을 돌돌 말아 애리의 작은 입에 쑤셔 넣었다. 괴로워하는 애리를 보고 칠구는 실실 웃으며 다시 자리로 돌아왔다. 그때 방 형사가 손을 입으로 가져가며 조용하라고 손짓했다. 칠구는 무슨 일이냐며 작게 물었다.
방 형사는 말없이 손짓으로 밖을 가리키며 조심스럽게 현관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문을 재빨리 열며 밖을 빠르게 훑어보았다. 덤프트럭 뒤에서 바스락거리는 발소리와 함께 도망치는 사람들이 보였다.
곧바로 그들을 쫓았다. 해가 저물어 어두운 산장 앞마당을 질주하는 방 형사의 뒷모습은 그림자처럼 보였다. 곧 도망치는 사람들을 앞질러 막아섰다.
“너희들 뭐야?”
도망친 사람들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벌벌 떨고 있었다. 가까이 다가서는 방 형사의 눈에 들어온 그들은 민정과 동진이었다.
“뭐야? 너희가 여긴 어떻게 알고 온 거야?”
윽박지르며 묻는 질문에 아이들은 겁에 질려 아무 말도 못하고 부둥켜안은 채 주저앉아 버렸다. 방 형사는 욕을 뱉어내며 민정의 멱살을 잡아 일으켰다. 그리고 여긴 어떻게 왔는지 재차 물었다. 하지만 민정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그렁그렁한 눈으로 살려달라고 빌었다.
“그 손 놔. 어서!”
방 형사의 뒤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산장 입구로 검은 인영이 걸어 들어왔다. 검은 인영은 마치 이한의 그림자처럼 보였다. 민정과 동진은 동시에 그림자를 향해 소리쳤다.
“그림자 아저씨, 살려주세요!”
독자 여러분의 추천, 댓글 그리고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