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납치되는 그들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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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이 골목을 나서던 동진과 민정은 소희의 패거리들 중 학원가로 갔던 애들과 마주했다. 다행히 골목이 어두워 여자아이들은 동진과 민정의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반대편에서 들어오는 여자아이들의 얼굴은 살짝 보였다. 그 중 송정희가 있었고 잔뜩 주눅이 들어있는 채였다.
지나가려던 동진과 민정을 패거리 중 한 여자아이가 불러 세웠다.
“너희들 뭐야? 누구야?”
무서워 동진 옆에 붙어 걷고 있던 민정이 간신히 용기 내 입을 열었다.
“왜 그러세요? 지나가던 길이에요.”
어둠속에서 목소리만 오가고 있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동진은 그냥 가자는 듯 잡고 있던 민정의 팔에 힘을 주었다. 동진과 민정이 발걸음을 떼려는데 또 그 여자아이가 다가와 민정을 붙잡았다.
“어딜 가려고? 너희 뭐야? 왜 여기서 나와? 보니까······.”
그때 골목 안쪽에서 여자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놀란 여자아이들이 골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민정을 붙잡고 있던 아이도 곧바로 뒤따라 달려갔다. 잔뜩 겁에 질려있던 민정과 동진은 이때다 싶어 도망가려는데 어둑한 골목 가운데에 우두커니 서서 떨고 있는 아이가 보였다. 무리 중에 있던 송정희였다. 패거리 아이들이 없는데도 도망가지 못하고 그대로 못 박히듯 서 있었다.
“동진아, 잠깐만.”
“어? 왜? 빨리 가자.”
“아니, 저기. 정희야. 정희 데리고 가자.”
“아, 알았어.”
민정과 동진은 골목 안을 살피며 정희에게 달려갔다. 정희는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고 있었다.
“정희야, 빨리 도망가자. 어서.”
“누, 누구······?”
“나 유민정. 기억하니? 1학년 때 같은 반이었잖아.”
“미안, 근데 나 여기 있어야해. 그냥 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는 정희의 얼굴에 겁이 잔뜩 묻어있었다. 소희 패거리들의 후환이 두려운 듯 보였다. 민정은 그런 정희의 등을 쓸어내리며 다독이듯 말했다.
“알아, 네 마음. 무섭겠지. 나중에 어떤 보복이 올 줄 모르고. 근데 지금 아니면 넌 계속 이렇게 쟤네들한테 끌려 다닐 거야. 아니, 더 나쁜 짓을 당할지도 몰라. 우리가 도울 테니까 같이 가자. 어, 빨리. 이럴 시간이 없어.”
민정의 말에 동진이 덧붙였다.
“그래, 민정의 말이 맞아. 우리가 도와줄게. 그리고 너도 우릴 도와줘. 너한테······.”
동진의 말을 민정이 막았다.
“잠깐만. 그 얘기는 나중에 해.”
“아, 그래. 일단 여기서 피하자. 근데 무슨 일이지······. 여자 얘들 비명소리가 계속 들리는데.”
골목 안에서 여자아이들의 비명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오자 동진은 말하다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자기들끼리 싸우나 보지. 쟤네들 걱정을 할 때야, 지금.”
민정이 정신 차리라는 듯 동진의 팔을 툭툭 쳤다.
“그렇지. 지금 누가 누굴 걱정해. 정희야, 어서 가자. 지금이 기회야. 어서.”
“이래도 될지 모르겠어······.”
마음 같아서는 이 아이들을 따라 나서고 싶은 정희였지만 소희 패거리들만 생각하면 발이 땅에서 떨어지지가 않았다. 민정은 그걸 느꼈는지 안 되겠다 싶어 동진에게 눈짓하며 정희의 팔에 팔짱을 꼈다. 동진도 눈치를 채고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정희의 팔에 팔짱을 끼며 억지로 끌고 골목을 나섰다. 정희도 마지못해 그들을 따라 나왔다.
그들이 골목에서 멀어졌을 때쯤 골목 안에서 정장차림의 남자 둘이 소희를 양쪽에서 잡고 강제로 끌고 나오고 있었다. 소희가 소리를 지르려는 것을 막기 위해 억지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골목을 나오는 중에 소희가 얼굴을 흔들어대면서 입을 막고 있던 손이 떨어져 비명소리가 새어나왔다.
그 소리에 바삐 걷고 있던 동진과 민정이 뒤돌아보았다. 그 순간 그들을 빠르게 지나 차 한대가 골목 앞 갓길에 타이어 마찰음을 크게 내며 멈춰 섰다. 그리고 골목에서 나온 남자들이 소희를 강제로 차에 태웠다.
“동진아, 봤어? 소희 맞지?”
“어, 맞아. 소희. 뭐지? 소희가 지금 납치당하는 걸까?”
“그러니까, 소희를 강제로 차에 태운 것 같은데.”
“어떡하지? 경찰에 신고할까?”
“신고? 어, 빨리, 빨리 신고해.”
신고를 하려고 동진이 휴대전화를 꺼내려는데 정희가 팔을 잡으며 막았다.
“그냥 둬.”
“어? 뭐라고? 아, 넌 뭘 알고 있는 거야? 저 사람들 알아?”
“아니, 그냥 두라고. 저런 얘를 왜 도우려는 거야? 그냥 두라고. 저런 얘는 저런 꼴을 당해도 싸다고.”
정희의 말에 동진은 놀란 눈으로 멍하니 쳐다만 볼 뿐이었다. 민정은 이해한다는 듯 안쓰러운 얼굴로 정희의 손을 잡았다.
“정희야······. 그래도 납치를 당하는 사람을 보고 그냥 있을 순 없잖아. 동진아, 어서 전화해.”
“어, 알았어.”
***
조 실장이 로망스클럽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칠구는 차를 몰고 가는 길이었다. 분명히 싫다는 의사표명을 했음에도 끝까지 진상을 부리는 조 실장에게 제대로 본보기를 보일 생각으로 마음이 급했다.
빠른 속도로 달리던 칠구의 차가 로망스클럽을 얼마두지 않고 사거리 신호등 앞에서 적색신호에 딱 걸렸다. 급정거를 하며 멈춰 선 칠구의 차를 뒤차가 신호를 보지 못했는지 그대로 들이받았다. 가득이나 열이 받아 있던 칠구는 뒷목을 잡고 내리며 뒤차에 대고 소리쳤다.
“운전 그따위로 할 거야! 나와, 빨리 나오라고!”
버럭 버럭 소리 지르는 통에 겁을 먹었는지 뒤차에서 사람이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더욱 화가 뻗친 칠구는 운전석 창문을 두드리며 내리라고 고함을 질렀다. 그제야 앞좌석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뒷좌석 문도 열리며 건장한 사내들이 우르르 내려 칠구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란 칠구는 재빠르게 뒤로 물러났지만 곧바로 팔을 붙잡히고 말았다.
“너 뭐야?”
“뭐긴 뭐야? 우리랑 얌전히 같이 가자.”
“웃긴 놈이네. 좋은 말할 때 이거 놔라.”
그 사내는 비웃듯 칠구를 노려봤다.
“지금 이걸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칠구 주변으로 건장한 사내 다섯이 둘러서고 있었다. 그래도 칠구는 전혀 겁먹은 기세 없이 픽 웃으며 말했다.
“너희 황 의원 얘들이냐?”
“그건 가보면 알고. 조용히 차에 타. 어서.”
“싫은데. 용건이 있으면 직접 로망스클럽으로 오라고 전해. 황 의원 나리한테. 알았냐?”
그 사내는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으며 손짓했다. 손짓 한 번에 건달들이 일제히 칠구를 덮쳤다. 몸이 날쌘 칠구는 재빠르게 그들을 피하며 도로에서 나와 인도로 도망쳤다. 건달은 도망치는 칠구를 곧바로 뒤쫓았다. 날이 저문 저녁 가로등 불빛이 내리는 인도 위를 칠구와 건달들이 내달렸다.
칠구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몸을 숨기기 위해 골목길 안으로 들어섰다. 그곳은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그리고 막다른 길이었다. 곧바로 그 골목길로 들어선 건달들 뒤로 고통스러워 신음하는 소리가 난무하게 들려왔다.
호숫가 옆으로 차 한대가 달빛을 따라 달리고 있었다. 소희를 납치한 차였다. 소희는 놀라 기절했는지 눈을 감은 채 뒷좌석 정장차림의 남자들 사이에 앉아 머리를 기대고 있었다. 그 차는 호수를 지나 한 별장 정문 앞에 잠시 멈춰 섰다. 자동차 높이보다 세배는 더 높은 큰 대문이 서서히 열리고 나서야 차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차는 문을 통과해 넓은 정원을 가로 질러 별장 앞에 정차했다.
보조석에서 내린 남자는 별장 뒤를 손으로 가리키며 소희를 데려가라고 했다. 그 지시에 정장차림의 남자 둘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소희를 양쪽에서 부축해 이동했다. 별장 뒤로 접어들었을 때 파라솔 아래에 실크가운을 걸친 황상두 의원이 술잔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정장차림의 남자들은 황 의원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소희를 황 의원 옆자리에 앉혔다.
“잘 했다. 눈에 띄지 않았겠지?”
“네, 문제없었습니다.”
“그래. 근데 그 칠구 놈은 어떻게 됐어? 왜 연락이 없어?”
보조석에서 내렸던 남자가 오는 길에 연락했다며 데리고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 말에 황 의원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소희의 얼굴에 손을 가져갔다.
“곧 있으면 재미난 일들이 이곳에서 벌어질 거다. 그동안 잘 자둬.”
그렇게 말하는 황 의원의 얼굴에 웃음이 환하게 번졌다.
***
“형사님이 이한 아저씨를 죽이려했던 거죠? 그렇죠?”
병원 밖 외진 어두운 곳에서 목소리를 높이며 따져 묻는 송이의 눈빛이 방 형사 뒤에서 비추는 가로등 불빛에 반사되어 더욱 날카롭고 매섭게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방 형사는 순간 움찔하며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 모습에 더 의심이 가는 송이는 곧바로 다그치듯 물었다.
“왜 대답을 못하시죠? 그런 거죠? 당신이 범인······.”
버럭 소리치는 송이의 입을 방 형사가 빠르게 틀어막으며 작게 말했다.
“조용해.”
방 형사는 그러고는 주위를 빠르게 살폈다. 그리고 송이와 함께 어둠속으로 몸을 숨겼다. 깜짝 놀란 송이는 속으로 그림자에게 도움을 구했다.
‘아저씨 도와주세요. 범인이 방기철 형사였어요. 아저씨.’
아무리 아저씨를 불러도 그림자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아저씨, 도와 달라고요. 저 방기철 형사한테 잡혔다고요. 이자가 범인이라니까요!’
그제야 그림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미안. 잠깐만. 아, 방 형사는 아니야. 그러니까 걱정 마.’
‘뭐라고요? 지금 이걸 보고······. 잠깐 지금 어디에 계신 거예요?’
‘잠깐만 기다려줘.’
그랬다. 그림자는 어느새 송이 옆에서 사라진 뒤였다. 방 형사가 범인이 아니라는 그림자의 말에 송이는 답답하기만 했다. 지금 자신의 입을 가리고 위협을 가하고 있는데 아니라니. 그때 방 형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송이학생, 미안. 조금만 조용히 여기에 있어. 금방 다녀올게.”
그때야 송이의 입을 막고 있던 방 형사의 손이 떼어졌다.
“지금 뭐······. 음읍.”
놀란 나머지 송이의 목소리가 커져 방 형사가 다급히 다시 입을 막으며 속삭였다.
“소리 낮춰, 학생. 놀라게 해서 미안한데. 여기 누군가 있어서 그래. 그게 누군지 확인하고 올 테니까 얌전히 여기 있으라고.”
놀란 눈으로 송이는 작게 소리 내어 물었다.
“누가요?”
“나도 모르지. 그래서 확인한다는 거잖아. 여기 있어. 조용히.”
그렇게 말하고는 방 형사는 그늘진 곳으로 몸을 숨겨가며 마치 그림자 아저씨가 하는 모습대로 어디론가 사라졌다. 송이는 그런 방 형사를 보고 이한의 병실에서 봤던 그 검은 인영(人影)이 떠올랐다. 송이는 조용히 여기 남아 있으라는 방 형사의 말을 듣지 않고 뒤좇아 가며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도대체 어디에 계신 거예요? 방 형사가 범인이라니까요.’
‘그거 참. 조금만 기다려달라니까. 여기 수상한 놈들이 있어서 그래.’
‘네? 수상한 놈이요?’
그림자의 말에 놀라 송이는 멈칫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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