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그림자의 덫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운전석에 앉은 덕팔은 사이드미러와 룸미러를 번갈아보았다.
“형님, 이것들이 계속 붙는데요.”
“놔둬. 너라고 확신을 하고 있는 듯하니.”
덕팔은 룸미러로 육팔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정말 괜찮겠습니까? 감식결과까지 조작한다는 게······.”
“걱정 말라니까. 경찰 윗선에 내 돈 안 받아 처먹은 놈이 없다. 입 벌리면 그놈도 날아가는 거야. 그러니 당분간 자숙하고 일상생활만 해. 쓸데없이 나대서 일 만들지 말고. 특히 약 거래는 당분간 중단해. 알겠지?”
“예, 그렇겠습니다. 저기, 형님. 박동식이 살아있다고 하셨잖습니까?”
“그렇다네. 시신을 못 찾았다고 한 게 사실이었어. 그것보다 그놈이 죽다 살아나서 눈에 베는 게 없는지 오진태 대표를 찾아 갔나봐. 그것도 협박을 하고 갔다고 그러네.”
“정말입니까? 그럼, 그놈이 누구 짓인지 알고 찾아온 게 아닙니까?”
같잖다는 듯 육팔은 피식 웃었다.
“제까짓 게 알면 어쩔 건데? 내가 얘기 듣기로는 모르는 것 같다고 했어. 형님도 참 이런 실수를 다 하시고······.”
“큰형님이 직접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에이, 그게 말이 되나. 누구한테 지시하셨겠지.”
“근데 왜?”
“형님이 믿고 맡겼다는 건 실력이 꽤나 괜찮은 놈이었을 텐데, 그런 놈이 실패를 했다? 형님의 판단이 틀렸다는 거잖아. 그런 적이 없었거든, 한번도.”
마지막 말에 힘을 주는 육팔의 얼굴에 비릿한 웃음이 묻어났다.
“아, 그러네요. 어떤 놈이었을까요?”
“그러게 말이야. 칠구······. 에이, 아니겠지. 그놈이 뭘 할 줄이나 안다고. 겁도 많은 녀석인데.”
“그렇죠. 칠구일리······. 그런데 그놈이 말입니다. 아니, 아닙니다.”
말하다 마는 덕팔이 신경 쓰였는지 육팔이 뭐냐고 물었다.
“아니, 아닙니다. 그럼 정말 누구한테 지시하셨을까요?”
“아마도 퇴직 형사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퇴직 형사요?”
“그래, 그게 아니라면 현직 형사일 수도 있겠지. 형님이 강력계 형사들하고 인연이 깊으시거든.”
“강력계 형사요?”
가늘던 덕팔의 눈이 번뜩 커졌다.
“형님께서 이 생활 몇 년이냐? 별에 별 놈 다 만나 보셨을 거야. 강력계 형사들하고는 애증의 관계라고나 할까? 살아남기 위해 곳곳에 자기 심복들 심어놓으셨을 거다. 나처럼 말이야. 아니, 내가 형님한테 배운 거지. 이 생활을 유지한다는 게 그게 그리 쉬운 게 아니거든. 너도 잘 배워둬.”
“예! 형님!”
덕팔이 큰소리로 대답하자 육팔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창밖을 내다봤다.
“아직 인가?”
“거의 다 왔습니다. 근데 큰형님은 별말씀 없으셨습니까?”
“왜 없긴? 엄청 깨지고 온 거 몰라?”
“알죠. 그게 아니라······.”
“방금 전에 말한 거 같은데. 지금은 자숙할 때라고. 봐봐. 경찰들이 저렇게 잔뜩 붙었는데 섣불리 움직였다가는 우리 다 작살난다고. 형님이 그걸 모르시겠어? 그러니까 얌전히 있으라고 하신 거고. 형님이 다 알아서 하신다니까, 말씀이 있기 전까지 우리는 그냥 있으면 돼. 알겠어?”
“저야 괜찮은데······. 저 때문에 형님이 큰형님 눈 밖에 나실까 그게 걱정돼 그런 게 아닙니까? 뭐라도 해야 할 것도 같고. 죄송합니다, 형님.”
“됐다. 다 지난 일. 그러고 보면 참 이상하단 말이지. 이렇게 다 실패하다니 말이야.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저도 귀신에 홀렸는지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그런 실수를······. 이건 변명 같아 말씀을 안 드렸는데 말입니다.”
“뭐야? 뭐가 있었어?”
잠시 망설이던 덕팔은 이마를 긁적이며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아니, 그게······ 그날 밤 그 집에 누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육팔은 등받이에서 등을 떼며 앞으로 몸을 내밀었다.
“누가? 그 모녀 말고 또 다른 사람이 있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그게 말입니다. 불빛에 그림자가 잠깐 비췄는데 바로 사라지고 없어졌단 말이죠.”
“감쪽같이 사라졌다?”
“맞습니다. 정말 감쪽같이 나타났다 사라졌습니다. 아, 칼. 맞습니다. 누군가 칼을 쳐서 놓쳤단 말입니다. 근데 칼도 감쪽같이 눈앞에서 사라졌다는 겁니다. 그리고 마스크도 언제 떨어뜨렸는지도 모르고 나왔단 것도······.”
“무슨 소리야? 말이 다르잖아. 실수로 칼을 놓쳤다고 했잖아.”
“그런 줄······. 아니, 그때는 사실대로 말씀드려도 변명으로만 들리실 것 같아······.”
실망스러운 듯 육팔은 다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뭐, 귀신이라도 있었다는 거야?”
“귀신이요? 에이, 귀신이······. 아니······.”
“잠깐만. 그 여자애 말이야. 그러고 보니 그 여자애한테 귀신이 따라다니는 게 아닐까? 저번에 클럽 앞에서 봤을 때도 그림자······. 어, 귀신.”
자신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지 육팔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니, 아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
“형님, 설마 귀신이 세상에 있겠습니까?”
“있을 수 있지. 내 눈에 안 보인다고 없는 건가? 귀신을 봤다는 사람도 있잖아. 난 귀신이 있다고 믿는다. 정말 그 계집한테 귀신이 붙은 건가? 이거······ 귀신이 그년을 지키고 있다는 거야 뭐야?”
“형님, 무섭게 왜 그러십니까?”
“귀신이 무서워?”
“그럼요. 귀신이 안 무섭습니까, 형님은?”
“뭐가 무서워? 귀신이 귀신이지. 말이 그렇다고, 쫄지 마. 자식, 덩치는 산만해서는.”
“그게······.”
할 말이 없어 덕팔은 멋쩍게 웃고 말았다.
“다 왔습니다, 형님. 이거, 여기도 깔렸는데요. 이 짭새들 정말.”
“신경 쓰지 말래도. 우린 우리 일이나 하면 돼.”
클럽 앞에 차가 멈춰 서자 육팔이 먼저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
전철역 승강장 5-1 앞 벤치에 유수연이 앉아 있었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과 함께 사람들이 스크린도어 앞에 줄을 섰지만 수연은 그대로 앉아 있었다. 열차가 도착하고 스크린도어 문이 열리자 사람들이 줄줄이 내리고 또 줄줄이 올라탔다.
열차가 출발하고 승강장에 있던 그 많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모두 사라지고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수연은 초조한 얼굴로 승강장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폈다. 그 중 정장차림의 한 남자가 천천히 수연이 있는 곳으로 걸어왔다.
‘저 사람인가?’
자신 앞으로 걸어오는 그 사람을 수연은 힐끔 쳐다봤다. 하지만 그 남자는 그냥 지나쳐갔다.
‘아니었네.’
다음 열차가 언제 들어오는지 전광판을 확인하고 있는데 방금 지나쳤던 정장차림의 남자가 수연 옆에 앉으며 말을 걸어왔다.
“남궁 경위가 보낸 분인가요?”
“어머, 네. 문자를 보낸 분이세요?”
“맞습니다. 소진남 경위라고 합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이한 씨 고등학교 동창 유수연이라고 해요.”
소 경위는 잠시 주위를 살핀 뒤에 말을 이어갔다.
“이한은 괜찮은 겁니까?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더라고요. 대신에 송이라는 학생이 받던데······.”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태여서요.”
“의식이 돌아온 게 아니었습니까?”
수연은 소 경위에게 몸을 돌려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의식은 돌아왔어요. 말을 아직 못하는 것뿐이에요. 거동도 힘들고요.”
“그런 겁니까?”
살짝 고개만 돌려 수연을 보고 있던 소 경위는 앞을 보며 말을 이었다.
“수연 씨, 저를 보지 마시고 앞만 보고 대답해 주시겠어요.”
수연은 앞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아, 네. 저도 모르게.”
“아닙니다. 사실 이번에 이한한테 메일을 받고 알았습니다. 사고를 당한지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셨군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으니 너무 걱정 않으셔도 돼요.”
“그렇다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네, 말씀해 주세요.”
***
대학병원의 병실들 전등이 하나 둘 꺼지고, 간호사들이 근무하는 데스크만이 불을 환하게 밝히고 있었다. 이한의 병실도 전등이 꺼진 채 환자 옆 간이전등만이 켜져 있었다. 조용한 병실 복도에 검은 인영의 그림자 하나가 드리웠다. 그 그림자는 이한의 병실에 점점 다가갔다. 그리고 병실 문이 열리며 병실 안으로 사라졌다.
병실 안에 드리운 검은 인영은 조심스레 이한이 누워있는 병상으로 다가갔다. 그는 이한의 얼굴 가까이 몸을 숙였다. 그때 그림자의 목소리가 송이의 귓가에 들렸다.
‘방기철 형사······.’
“뭐라고요? 으음.”
너무 놀란 나머지 송이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다. 송이와 함께 화장실에 몰래 숨어 있던 민철이 송이의 입을 틀어막으며 속삭였다.
“왜 그래? 조용하라고.”
송이는 작은 목소리로 민철의 귀에 대고 말했다.
“방기철 형사가······.”
민철은 그 말에 곧바로 화장실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역시 당신이었어!”
방 형사는 깜짝 놀라 뒷걸음쳤다.
“깜짝이야. 뭐야? 당신은······. 어! 학생이었어? 학생, 화장실에 있었던 거야?”
“당신이죠? 당신이 아저씨를 죽이려했던 거죠? 딱 걸렸어, 당신.”
“저기, 학생. 진정하고 내 얘기 들어봐. 뭔가 오해가 있는 거 같은데······.”
“오해요?”
뒤늦게 나온 송이가 민철을 말렸다.
“민철아, 이러지 마. 아니야, 아니라고.”
“어? 뭐가 아니야? 너도 들었잖아. 아니, 봤잖아. 몰래 들어와서는 아저씨를 죽이려했다고. 내가 봤어. 나와 보니 아저씨한테 딱 붙어 있었다고.”
“저기, 학생. 송이학생 말 들어. 내가 누굴 죽이려했다는 거야? 도대체 뭘 본 거야? 난 남궁이한 형사가 맞나 얼굴을 확인한 거뿐이라고. 어두워서 얼굴이 잘 보여야 말이지. 야맹증이 있어서 잘 보이지도 않는데······. 아무튼 얼굴 확인하려고 한 거야. 역시 여기가 남궁 형사의 병실이었네. 근데 송이학생은 알고 있었던 거야? 그리고 그쪽 학생도? 야아, 너무하네. 그러면서 딱 모른 체 한 거였어? 왜? 내가 범인인 줄 알고?”
끝까지 못 믿겠는지 민철이 목소리를 높이며 방 형사를 몰아붙였다.
“아니······. 그렇게 말하면 우리가 그냥 넘어갈 줄 알아······ 요. 더는 우릴 못 속인다고요. 방금 아저씨를 죽이려했던 거잖아요. 분명 아저씨를······ 으읍.”
이번엔 송이가 민철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 좀 조용히 해. 내가 좀 말하게.”
민철은 송이의 손을 밀쳐내며 투덜댔다.
“너무해. 그렇다고 꼭 그렇게까지 해야 해? 아무튼, 너는······.”
“미안해. 그러니까 잠깐만 조용히 있어봐.”
알겠다는 듯 민철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손으로 입을 가렸다. 송이는 그 모습이 귀여웠는지 피식 웃으며 방 형사에게 고개를 돌렸다.
“여기는 무슨 일로 오신 거예요?”
“무슨 일은? 오후에 여기에 왔다가 송이학생이 급하게 뛰어 들어가는 걸 보고 누가 입원해 있나 싶어 찾아와봤지. 내 생각이 맞았어. 역시 남궁 형사가 여기에 있었어.”
“그때 왜 같이 들어와 보시지 않고요?”
“아, 사실 나도 따라 들어가서 무슨 일인가 보고 싶었는데, 그때 내가 쫓던 놈이 보였지 뭐야. 어쩔 수 없이 그놈을 쫓느라고······. 근데 또 놓치고 말았네.”
“놓쳤다고요? 쫓는 사람이 누군지 말씀해주실 수 있어요?”
“그거야 말해줄 수 있지. 어, 저기 남자친구도 알거야.”
“남자친구 아닌데요. 그냥 남사친이거든요.”
정색하며 말하는 송이가 민철은 서운했는지 입술을 비죽거렸다.
“그게 그거 아닌가? 아무튼 박동식 형사가 차사고 났을 때 봤던 그자를 쫓고 있었어. 어, 송이학생 집에서 날 미행했던 그놈 말이야.”
“정말이요? 그자를 여기서 보셨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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