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7. 범인이 아니라고?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장태식 팀장은 덕팔을 잡기 위해 육팔의 집 앞에서 잠복을 하고 있었다. 그때 장 팀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그래, 간 곳은?”
“집에도 안 내려온 것 같습니다. 이웃 주민들도 서울 올라간 뒤로는 본 적이 없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모르니 당분간 그곳에서 잠복하면서 지켜보라고.”
“예, 알겠습니다.”
장 팀장이 전화를 끊자 운전석에 앉아 있던 팀원이 물었다.
“그곳도 아니랍니까?”
“어. 갈만한 곳은 다 찾아봤는데······. 이거 어쩌나?······.”
“벌써 밀항 한 거 아닐까요? 출국금지는 해놓긴 했는데 한발 늦은 건 아닌지 모르겠네요.”
“그렇다면 그놈이 확실하다는 건데······. 어, 잠깐만.”
장 팀장에게 또 전화가 걸려왔다.
“어, 무슨 일이야? 뭐? 정말이야? 알았어. 바로 들어갈게.”
전화를 끊으며 팀원에게 지시했다.
“차 빨리 출발해. 서로 가자.”
“서로요? 무슨 일입니까?”
“덕팔이 서에 있다네.”
“예? 잡힌 겁니까? 아, 알겠습니다.”
차가 서서히 움직이자 장 팀장이 입을 열었다.
“제 발로 걸어서 왔다는데.”
“자수를 했다는 겁니까?”
“자수가 아니······. 일단 빨리 가자.”
“예.”
금남경찰서에 도착한 장 팀장은 차에서 내려 형사과로 뛰어갔다. 그리고 형사과에 막 들어서는데 덕팔이 취조실에서 나오고 있었다. 장 팀장은 덕팔에게 다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꿍꿍이야?”
“어이, 장태식 경감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덕팔이 능글맞게 웃으며 손을 내밀자 장 팀장이 툭 쳐내며 말했다.
“우리가 반갑게 악수나 할 사이는 아닌 것 같은데.”
“왜 그렇게 뿔이 나셨을까? 그나저나 왜 이제야 온 겁니까? 나는 바빠서 그만 가볼 참이었는데. 자세한 건 저기 나오는 친구한테 물어보시고. 그럼.”
지나가려는 덕팔을 장 팀장이 손을 뻗어 막아서는데 취조실에서 나오던 형사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렸다.
“팀장님, 아닙니다. 그냥 보내십시오.”
“뭐? 정말 아니라는 거야?”
덕팔은 코웃음을 치며 장 팀장의 팔을 쳐냈다.
“그러니까 왜 생사람은 잡고 그래요? 하도 나를 찾고 다닌다고 해서 휴가도 반납하고 온 거 아닙니까? 나참, 경찰들이 하는 꼴이. 경감님, 잘 좀 합시다. 좀. 그럼, 이만 가도 되겠죠?”
아무 말도 못한 채 장 팀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덕팔이 형사과를 나가고 나서야 장 팀장은 취조실에서 나온 팀원을 붙잡고 물었다.
“뭐가 어떻게 된 거야?”
“저도 뭐가 뭔지 모르겠습니다. 너무 아귀가 잘 맞아 돌아가는 게······ 이거······.”
“무슨 소리야? 왜 저 자식이 아니라는 거냐고? 목격자도 있는데. 그거 감식 결과야? 이리 줘봐.”
장 팀장은 팀원이 들고 있는 서류를 빼앗듯 가져와서는 살펴봤다.
“뭐······. 정말 저 자식이 아니라는 거야? 그럼 그 학생이 거짓말을······. 아니, 잘못 본 건가? 이런 젠장. 마스크가 누구 건진 나온 게 없고?”
“채취해 나온 DNA와 일치하는 데이터베이스는 없었습니다. 범죄이력이 없는 자가 한 소행 같습니다.”
“근데 아귀가 잘 맞아 돌아간다는 게 무슨 뜻이야?”
“그게 말입니다. 감식결과가 나오자마자 고정배 그 자식이 왔지 뭡니까? 꼭 결과를 알고 온 것처럼 아주 개선장군이 따로 없었단 말이죠.”
“개선장군?”
“예. 여기에 들어와서는 대뜸 팀장님을 찾지 뭡니까? 그러면서 당당하게 왜 자신을 찾고 다니느냐고 오히려 큰소리를 쳤습니다.”
“빌어먹을······.”
서류를 책상에 내던지며 장 팀장은 덕팔이 나간 문 쪽을 노려봤다.
***
수연 앞의 그림자가 유독 짙게 드리운 것을 그제야 눈치 챈 방기철 형사에게 박동식 경위가 빈정대듯 말했다.
“이제야 안 거야? 참, 형사라는 양반이······.”
“그거야 알지. 근데 왜 이런 거냐고?”
방 형사는 수연 뒤 천정에 전등이 있는지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잠깐, 저기 제보자의 그림자는 왜 두개······ 아니, 학생 그림자는 왜 또 없는 거야? 형광등이 머리위에 있으니 그림자가 없을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는데······. 다른 사람들의 그림자는 흐릿한데 제보······ 아니, 수연 씨라고 했죠? 수연 씨 앞에 이 그림자만 왜 이리 짙은 거예요? 뒤에서 불빛이 비추는 것도 아닌데.”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얼굴로 방 형사는 말하다 수연과 박 경위를 번갈아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다들 왜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이거 놀랄 일 아닌가? 나만 이상한 거야?”
어리둥절한 얼굴로 무슨 대답이라도 해보라는 듯 방 형사가 그들을 번갈아 쳐다봤다. 하지만 그들은 서로 쳐다만 볼뿐 누가 나서서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 사이 그림자가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밝히는 게 좋겠어. 송이 네가 말하는 게 어때?’
‘아니요. 아직은 안 돼요.’
‘안 된다고?’
‘네. 방기철 형사가 진범일 수도 있잖아요. 아저씨는 아닐 것 같다고 하지만 전 못 믿겠어요. 만약 방기철 형사가 아저씨의 정체를 알게 된다면 병실에 있는 아저씨가 위험해요. 아저씨를 죽이려했던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여기까지 불러놓고는 왜 이제 와서 이러는데?’
‘그거야 아저씨가 그런 거죠. 전 아직 못 믿겠어요. 이번은 제 말대로 해주세요. 네?’
‘송이야, 벌써 내 정체를 들켰다고. 지금 설명하는 게······.’
‘아니요. 그건 제가 알아서 할게요.’
그때 갑자기 송이의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며 집안의 정적을 깼다. 송이는 잠깐만 기다리라며 전화를 받았다.
“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네? 그 사람이 아니라고요? 말도 안 돼. 왜 아니에요? 분명······. DNA 감식결과가요?”
옆에서 듣고 있던 방 형사가 한쪽 눈썹을 치켜 올리며 송이에게 물었다.
“학생, 누구랑 통화하는 거야? 경찰서야?”
“저기 잠깐만요. 네, 경찰서에서······.”
“그래? 잠깐만.”
방 형사는 송이의 휴대전화를 낚아채듯 가져갔다.
“나 방기철 형산데······. 아, 팀장님. 예, 같이 있었습니다. 근데 덕팔이 그놈이 아니라고 하신 겁니까? ······감식결과가요? 알겠습니다. 네, 그러죠.”
휴대전화를 송이에게 건네며 방 형사가 말했다.
“학생, 나랑 같이 경찰서로 가줘야겠어.”
“지금요?”
의구심이 가득한 눈으로 박 경위가 그들을 쳐다보며 끼어들었다.
“두 사람 무슨 얘기하는 거야? 송이학생이 말해봐. 뭐가 아니라는 거고, 덕팔이는 또 누굴 말하는 건데?”
어젯밤 집에서 있었던 방화 미수사건에 대해 얘기하며 그 범인이 덕팔이라고 알렸다. 그리고 송이는 방금 통화한 장 팀장과의 대화도 말해주었다.
“덕팔이라는 자의 DNA가 아니라고 하는데······.”
송이는 말하다 멈칫하더니 그림자에게 말했다.
‘말이 안 되잖아요. 그 사람 얼굴을 보신 게 맞죠?’
‘틀림없어. 분명 덕팔이었어. 계곡입구에서 봤던 그 사람이 맞았다고.’
‘그럼, 뭐가 어떻게 된 걸까요?’
‘그들이 손을 쓴 게 아닐까 싶다. 경찰 내부에 그들의 끄나풀이 있는 거겠지.’
‘끄나풀이요? 조폭들과 말이에요?’
말하다 말고 송이가 멍하니 있어도 박 경위와 수연이 기다리고만 있자 방 형사가 고개를 갸웃하며 말을 걸었다.
“학생, 뭐해? 그거 참 이상하네. 박동식 형사, 뭐야? 어떻게 나만 이상한 거야? 당신은 알고 있지. 요 묘한 기분이 뭐랄까, 더럽네. 말해봐, 뭐냐고?”
“거 말을 그렇게······. 그래, 내가 말하지. 학생이 말하기 어려우면······.”
송이가 박 경위의 말을 중간에 끊었다.
“아니요. 그건 나중에요. 방 형사님, 빨리 경찰서에 가요. 가서 무슨 상황인지 직접 들어봐야겠어. 분명, 제가 본 사람은 덕팔이라는 사람이 맞았다고요. 아닐 수 없단 말이에요.”
“정말이야? 덕팔이 확실해? 학생.”
“제가 왜 거짓말을 하겠어요. 처음 본 사람이었으면 누군지 몰랐겠지만, 그 사람은 제가 며칠 전에 직접 본 사람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경찰에 가서 확인해봐야겠어요. DNA 검사결과가 아니라고 하는데, 뭔가 착오가 있는 게 분명해요. 빨리요, 방 형사님.”
팔을 잡으며 송이가 보채자 방 형사는 그림자에 대해 더는 묻지 못하고 못 이기 척 따라 나섰다.
“어, 알았어. 그럼 가자고.”
“저도 같이 가요. 송이학생 혼자 가는 건······ 아니, 학생 혼자 가서 뭘 하겠어요.”
따라 나서는 수연에게 방 형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그게 아니겠죠. 나를 못 믿는 거 아닙니까? 좋아요. 상관없으니, 어서 갑시다. 박동식 형사도 같이 갈 건가?”
“나? 아, 나는 따로 좀 알아볼 게 있으니 먼저들 가요. 송이학생,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고. 내 전화 꼭 받고.”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방 형사와 함께 집을 나섰다. 현관문을 나와 엘리베이터로 가던 방 형사에게 송이가 말했다.
“저기, 방 형사님. 저는 계단으로 내려갈게요.”
“계단? 여기 17층이야, 학생. 엘리베이터가 있는데······.”
“알죠. 근데 제가 엘리베이터를 못 타요.”
“못 타?”
고개를 끄덕이며 송이는 비상계단으로 가겠다는 듯 계단 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수연이 이어 말했다.
“형사님은 엘리베이터 타고 내려가세요. 제가 송이학생이랑 같이 계단으로 내려갈게요.”
“아니······. 그래요, 무슨 이유가 있겠지. 알겠어요.”
송이와 수연은 비상계단으로 내려갔고 방기철 형사는 뒤늦게 나온 박동식 경위와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
도로를 달리던 차가 갓길에 멈춰 섰다. 운전석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내리더니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그리고 불을 붙이며 차에서 멀찍이 멀어져갔다. 그때 뒷좌석으로 그림자 같은 검은 인영이 다가와 차에 올라탔다.
“갑자기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그걸 몰라서 물어? 너까지 왜 그런 거야?”
“박동식 형사 때문에 그러십니까?”
“뭐야! 알고 있었어? 너 일부러 그런 거야?”
“그건 아닙니다. 차가 폭발한 뒤에 혹시나 해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미키 정은 그의 말이 듣기 싫었는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됐고. 변명 듣자고 부른 게 아니야. 알고 있으면 됐네. 앞으로 어떻게 할 거야?”
“그자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으니 조만간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 시간을 조금만 더 주십시오. 근데 덕팔이 그 자식은 어떻게 된 겁니까?”
“그것도 알고 있었어? 소문 하나 빠르네. 다행히 빨리 손을 썼다. 육팔이가 그쪽으로 잘 하잖아.”
“그런 거였군요.”
“그러니까, 너나 잘 해. 남궁이한 그놈은 어떻게 되고 있는 거야?”
“어디로 숨었는지 아직 못 찾았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이번은 형님이 나서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뭘 어떡해?”
“형님 라인의 경찰들을 이용해 남궁 형사의 위치를 파악해주십시오.”
“너 이 자식, 그 정도 밖에 안 돼? 호언장담을 하더니······. 이거 여엉 내가 가르친 보람이 없네. 쯧쯧.”
혀를 차며 미키 정이 흘겨보자 그는 넙죽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님. 이번 일은 반드시 깔끔하게 처리하겠습니다. 그러니 한번 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러지 뭐. 근데 알아둬. 너 아니어도 할 사람은 줄 서 있다는 걸 말이야. 명심하라고?”
“예, 형님.”
“남궁이한은 내가 알아보고 연락줄 테니 이번처럼 실수하지 마라. 그땐 어떻게 될지는 너도 알거야. 난 쓸모없는 녀석은 옆에 두지 않아. 돈 되지 않는 놈은 더욱이. 그걸 모르지 않겠지, 안 그래?”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이만.”
그는 미키 정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고는 뒷좌석에서 내려 빠르게 멀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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