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 삼자대면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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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충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방기철 형사가 내렸다. 복도를 따라 걸어가던 방 형사가 갑자기 뒤를 돌아봤다. 그는 고개를 갸웃하며 현관문 앞에 섰다. 그리고 자신이 걸어온 쪽을 한 번 더 바라보고는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자 집안에 있던 송이가 인터폰으로 누구인지 확인했다. 그리고 그림자에게 물었다.
‘혼자 왔나요?’
‘응. 안심해. 누가 따라오지는 않은 것 같아.’
‘네.’
또 한 번 초인종이 울리고 송이가 현관문을 열어주었다. 문 열리는 소리에 방 형사는 조심스레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송이학생.”
송이가 그제야 현관 앞으로 나와 그를 맞이했다.
“들어오세요.”
“어? 혼자 있는 거야?”
“네. 친구랑 친구 부모님은 일이 있어 나가셨어요.”
“그래? 여기가 친구 집이라고······.”
방 형사는 거실로 들어서며 집안을 유심히 살폈다.
“차 드릴까요?”
“아니, 괜찮아. 얘기 들었어. 많이 놀랐지?”
“저기, 형사님.”
“어? 어, 말해.”
“어제는 왜 연락이 안 된 거죠? 저희 집 앞에서 기다린다고 하셨잖아요.”
“맞아. 그 얘기를 하려던 참이었어. 어제는 미안했어. 그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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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누군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걸 느꼈어. 그래서 돌아가는 척하면서 그가 누구인지 보려고 했지. 마치 그림자처럼 시꺼먼 놈이 뒤따라오는 게 아니겠어. 바로 그놈한테 달려가서 소리쳤지.
“너 뭐하는 놈이야? 왜 날 따라오는 거지?”
그자는 어둠속에 숨어서 아무 말도 하지 않더군.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면 뒤로 물러서서 그놈 정체가 뭔지 모르겠더라고. 근데 그놈을 어디서 봤던 것 같았어. 내가 그림자처럼 시꺼먼 놈이라고 했잖아. 그래, 박동식 형사의 차가 폭발한 사고현장에서 본 놈 같더라고. 그때도 멀리서 날 지켜보고 있었던 거지. 그때는 내가 잘못 봤다고 생각했거든.
“너, 거기에 있었던 놈이지? 네가 박동식 형사를 죽인 거냐? ······이자식이 계속 말이 없네. 맞구나, 그치?”
그자에게 말을 걸며 가까이 다가갔는데 어찌된 일이지 그자와 간격은 그대로였던 거야.
“왜? 나도 죽이려고 그래? 그럼, 앞으로 나와 봐. 어?”
그 말을 하자마자 그가 순식간에 내 앞으로 다가온 거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주먹들이 내 얼굴과 몸을 강타했지. 그 충격에 나는 뒤로 나자빠졌고, 몸을 다시 일으키려는데 발이 내 얼굴로 날아왔어. 그 뒤로 기억이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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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기억이 생생한 듯 방 형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놈 실력이 엄청 나더라고. 눈을 떴을 때는 해가 뜨고 있었어. 그래서 학생한테 연락을 못했던 거고.”
“그게 사실이라고요?”
“뭐? 지금 내 말을 못 믿는 거야?”
“근데 왜 형사님을 죽이지 않은 거죠? 박동식 형사님도 죽인 그 사람이 왜 형사님은 죽이지 않고 그냥 간 걸까요?”
“저기, 송이학생. 박동식 형사가 죽었는지는 어떻게 알았어?”
“네? 아······ 방금 형사님이 그렇게 말씀하셨잖아요.”
“아니. 나는 박동식 형사의 차가 폭발한 사고 현장이라고만 했지. 박 형사가 죽었다고는 하지 않았는데.”
당황한 송이였지만 애써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그 말인지 알았죠. 그럼 박동식 형사님은 괜찮은 건가요?”
“그런 거야? 그래, 학생 말이 맞아. 박 형사는 죽었어. 근데······. 시신이 안 나왔다고 해서. 아무튼 학생은 무사해서 다행이야. 그래서 말인데······.”
“저기 형사님. 근데 어제는 왜 만나자고 하신 거예요? 그것도 저희 집 앞에서 말이죠.”
“아, 그거. 걱정 돼서 그랬지. 박 형사가 죽은 게 그저 차사고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서 송이학생을 만나서 괜찮은지 확인하고 주의를 주려고 했어. 박 형사에 대해 물어볼 것도 있었고. 그날 말이야. 강남에서 박 형사와 함께 누군가를 쫓고 있었다고 했잖아. 친구 일 때문에. 그렇지?”
“네. 그럼 그걸 물어보시려고 집 앞에서 기다리신 거라고요?”
“그래. 집엔 올 거 아니야. 집을 찾아가보니까, 학생이 오지 않았다고 해서 밖에서 기다리면서 전화했던 거고. 근데 왜 그렇게 어제 일을 꼬치꼬치 묻는 거야? 내가 설명도 다 했는데.”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
“그래? 그럼, 됐고. 학생까지 죽을 뻔했다는 소리에 내 예측이 맞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바로 학생을 찾은 거야. 도대체 박 형사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그날 강남에 갔던 일말이야, 그 일과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그래.”
송이는 말없이 정면을 응시한 채 그림자에게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얘기를 들어봐도 방 형사님이 범인이 아닌 것 같잖아요. 그럼 박동식 형사님의 말이 틀린 거예요? 아니, 거짓말일까요? 누구 말을 믿어야할지 모르겠어요.’
‘아니, 두 사람 모두 맞을 거야.’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동식이 직접 본 건 아니라고 했잖아. 방기철 형사를 의심했던 것뿐이지.’
‘그래도 그날 그곳에서 만나는 걸 아는 사람은 방 형사님뿐이라고 했잖아요. 방 형사님이 거짓말을 하는 걸지도 모르죠.’
‘그럴 수도 있겠지만 방기철 형사가 봤다는 그자 말이야. 나도 본 것 같아서 말이야. 어제 송이 너를 미행했던 그자가 아닐까 싶어. 난 널 미행한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봐. 그게 아니라면 방기철 형사를 기절시켰을 때 우리가 왔을지도 모르지. 아무튼 방기철 형사의 말에서 어떤 오류도 찾지 못했어.’
방 형사가 말하려다 아무런 호응이 없자 송이의 얼굴 앞으로 손을 내저었다.
“내 말 듣고 있어? 학생. 어?”
하지만 송이는 그림자와 대화하느라 방 형사의 손을 느끼지 못했다.
“뭐야? 설마 눈 뜨고 자는 건 아니겠지? 이른 시간이기는 해도······. 저기, 학생!”
방 형사가 어깨에 손을 올리자 그제야 송이가 깜짝 놀라며 대답했다.
“아, 네. 죄송해요. 말씀하세요.”
“내 얘기는 들은 거야? 언제부터 자고 있었던 거야?”
“누가 잤다고 그러세요? 눈 뜨고 서서 자는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방금 내 앞에 있었는데······.”
“아니라고요. 다 들었어요. 잠깐 생각하느라······. 저기 잠깐만 더 시간을 주시겠어요.”
“무슨 시간? 그냥 말해봐. 그날 박동식 형사랑 있었던 일말이야. 도대체 둘이 뭘 알고 있는 거야? 그리고 덕팔이라는 자를 어디서 보고 알고 있었던 거냐고?”
“덕팔······. 그건······ 그러니까 생각 좀 정리하게 시간을 달라고요.”
“어, 그래. 알았어.”
턱을 손에 쥐며 송이는 생각에 잠긴 척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어떡하죠? 사실대로 다 말할까요?’
‘이제 삼자대면을 하는 게 좋겠네.’
‘삼자대면이요? 박동식 형사님을······.’
‘어. 이제 나오라고 해.’
‘괜찮을까요? 괜히 두 사람이 싸우면요?’
‘애들도 아니고, 싸우긴 왜 싸워?’
‘지금 애들 무시하시는 거예요? 제가 보기엔 어른들이 더 잘 싸우던데요. 아닌가요? 치.’
‘아이고, 미안. 내가 말실수를 했네. 그래, 맞다. 요즘은 어른보다 애들이 더 낫지. 그러니까 화 풀고. 싸우면 내가 중재할 테니.’
‘아저씨가요? 아니죠. 제가 하는 거죠. 어른 둘이 싸우는데 제가 어떻게 말려요. 수연언니가 있다고 해도······.’
‘아니, 내 말을 끝까지······.’
그때 방기철 형사가 기다리기 심심했는지 집안을 살피며 방문 앞으로 걸어갔다. 송이는 깜짝 놀라며 방 형사를 불러 세웠다.
“저기, 형사님.”
“어, 정리는 다 됐어? 하도 말이 없어서 집 구경이나 좀 하려고 했지.”
“여긴 저희 집도 아닌데 마음대로 그러시면 곤란하죠.”
“아, 그러네. 미안. 이제 좀 말해줄 수 있겠어?”
“네. 그 전에 보여드릴 게 있어요.”
“보여줄게 있다고?”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 형사가 서 있던 방문 앞으로 가서는 문을 열었다. 그리고 안에 대고 말했다.
“이제 나오세요. 아저씨가 삼자대면 하자고 하세요.”
“저기, 학생. 누가 있는 거였어? 아무도 없다고 했잖아?”
“죄송해요. 이제는 모두 밝히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아니, 같아요.”
“그래······.”
송이는 다시 방안에 대고 말했다.
“나오시라니까요. 나와서 삼자대면을 하자고요.”
방에서 아무도 나오지 않자 방기철 형사가 기다리지 못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문 앞으로 박동식 경위가 나왔다.
“뭐, 뭐야? 박동식 형사?”
“그래요. 많이 놀랐습니까?”
“살아 있었군요. 시신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기대는 했는데······.”
“기대? 아쉬운 게 아니고?”
방 형사는 비꼬듯 말하는 박 경위를 의아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아쉽다니? 날 의심한 겁니까? 그렇다고 해도 학생을 앞세워 이러는 건 비겁하지 않아요? 내가 진짜 살인범이었으면 학생이 위험하······. 뭐야? 송이학생을 미끼로 날 떠본 거야? 박 형사 그렇게 안 봤는데, 당신 형사 맞아? 아니 어떻게 형사가 학생을 살인범일지도 모르는 사람을 유인하는데 이용할 수 있어? 참 못 쓸 사람이네.”
그의 말을 믿지 못하는 박 경위는 핏대를 세워가며 목소리를 높였다.
“뭐라고? 연기 그만하지. 당신이잖아, 날 죽이려 했던 놈이. 내가 살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지? 그래서 송이학생을 찾은 거 아니야? 내가 어디에 숨어 있나 그게 궁금해서 말이야. 안 그래? 덕팔이라는 자도 잘 아는 것 같던데. 아닌가?”
“내가 뭘 잘 알아? 내 관할 조폭이었던 놈이어서 알고 있는 것뿐이라고. 학생, 그래서 날 의심한 건가? 아니야. 왜 내가 박 형사를 죽이려 했겠어?”
억울한 듯 방 형사가 다가서며 피력하려하자 송이는 뒤로 물러났다.
“잠깐만요. 거기 서서 얘기하세요. 박동식 형사님 말도 일리가 있잖아요. 그 아파트 공사장 앞에서 만나자고 한 것도 형사님이시고. 그곳을 아는 사람은 두 분 뿐이었잖아요.”
“나는 아니라니까. 아이······.”
“그래요. 형사님이 아닐 수도 있죠. 근데 형사님이 다른······ 그래요, 시커먼 그 사람. 그 사람을 고용했거나, 친분이 있는 사람을 시켜 한 것일 수도 있죠. 안 그런가요?”
송이의 말에 박 경위가 손뼉을 치며 맞장구쳤다.
“그렇지. 내 말이 그 말이야. 당신이 직접 하지 않았다고 하면 우리가 믿어줄 거 같았어? 방안에서 다 들었다고. 이야기를 잘도 꾸며 되던데. 왜 당신을 죽이지 않고 갔는지? 난 그게 참 궁금하네. 날 죽이려했던 걸 본 목격자일 텐데, 당신은. 그런 당신을 그냥 살려두고 갔다? 그게 말이 된다고 보나? 안 그래? 송이학생.”
송이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방 형사는 기가 찬 듯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나 참.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왜 날 살려주고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아니라고. 나는 차량폭발 사고를 보고 바로 신고를 했어. 현장에 경찰들이 올 때까지 지키고 있었다고. 그건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이잖아. 사실이야? 학생.”
“이제 어떡해요? 아저씨.”
속으로 말해야 하는 걸 송이는 실수로 입 밖으로 말하고 말았다. 방 형사는 고개를 갸우뚱한 채 송이에게 되물었다.
“아저씨?”
“아······ 아니요. 박동식 형사님한테 아저씨라고······.”
“어. 그래?”
방 형사가 그렇게 말하면서 박 경위를 쳐다보자 그는 눈을 흘기며 말했다.
“끝까지 발뺌을 하신다. 내가 그렇게 나올 줄 알았어.”
박 경위는 방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이거 보라고, 내가 뭐라고 했어? 이런 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고 했잖아. 증거를 확보한 뒤에 잡아다 취조했어야 했다고. 그놈들부터 일망타진하고 엮여있는 놈들 조금만 털어보면 방기철 형사가 나올 거였다고. 이게 뭐야? 이제 어떻게 할 거야?”
방 형사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박 경위가 바라보는 곳을 보며 물었다.
“지금 뭐하는 거야? 방안에 또 누가 있는 거야? 한꺼번에 다 부르지. 어서 나와. 이게 뭐하는 거야? 난 정말 아니라고.”
그때 방안에서 검은 인영의 그림자가 바닥에 드리우며 서서히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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