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침입자의 증거물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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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늦은 시간 대학병원을 찾은 수연이 전화를 걸며 출입문으로 막 들어서려는 그때였다. 안에서 달려 나오는 교복차림의 남학생과 부딪혀 휴대전화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남학생이 미안하다는 말없이 그대로 가버리자 수연은 황당해하며 그 학생을 지켜봤다.
그 남학생은 차 앞에 서 있던 파랑머리의 이두철에게 달려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형, 여긴 없는 것 같아요.”
“확실해?”
“예. 중환자 대기실 모니터를 확인해봤는데 이름이 없더라고요. 남궁······ 이한이라고 하셨죠?”
“이름이 나와?”
“다는 아닌데······ 남궁 성의 사람은 없었거든요. 그럼, 아니지 않겠어요?”
“그건 그러네. 여기도 없으면 어디에 있다는 거야? 수도권을 다 뒤져야 하는 거야. 아이, 젠장.”
불만 가득한 얼굴로 성을 내는 두철의 눈치를 보며 남학생이 조심스레 물었다.
“근데 왜······ 찾는지 진짜 모르세요?”
“몰라. 찾아내라니까 내가 이 지랄을 하고 있는 거지. 그러지 말고. 대진한테 전화해봐. 그쪽도······ 잠깐만.”
두철이 남학생 뒤로 보이는 수연을 보고 말을 하다 멈췄다. 그리고 수연에게 소리쳤다.
“뭐야? 왜 남의 얘기를 엿듣고 있는데?”
“미안해요. 일부러 들은 건 아니에요.”
“알았으니까 그만 가보지.”
가보라는 말에도 수연은 그들에게 다가서며 말했다.
“초면에 반말을 좀······. 보니까 학생 같은데 어른한테 그러면 안 되는 거예요. 그리고 그쪽 학생한테 일이 있어 온 게 아니니까 잠깐 있어 볼래요.”
그렇게 말하고는 두철 옆에 있던 남학생을 바라보며 수연은 말을 이었다.
“저기 학생, 사람을 쳤으면 사과는 하고 가야죠. 이것 봐요. 내 핸드폰이 떨어져서 액정이 깨졌잖아요.”
수연이 내민 휴대전화를 본 남학생이 어쩔 줄 몰라 하며 사과하려하자 두철이 막으며 앞으로 나와 말했다.
“그게 얘랑 무슨 상관인데?”
“뭐요? 자꾸 반말로 얘기할 거예요? 학생, 내가 사과만 받고 넘어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요. 어디 학교 누구예요?”
“아이, 재수 없게. 그걸 알아서 뭐하려고? 어른이면 어른답게 굴어. 어디서 학생한테 사기를 쳐. 말해보라고? 그걸 얘가 그랬다는 증거 있어? 어?”
“이 학생이 정말······.”
카악 퇫, 두철은 듣기 싫다는 듯 가래침을 뱉어냈다.
“아줌마, 어디 학교라고 물었어? 근데 어쩌나. 난 학생이 아니거든. 때려 쳤어. 빌어먹을 학교가 영 나하고 맞지가 않아서 말이야. 그러니까, 그만 짜지지. 아줌마.”
그렇게 말하고 낄낄대며 웃는 두철을 따라 옆에 있던 남학생도 덩달아 웃었다. 수연은 그 모습에 쓴웃음을 지으며 병원 정문 쪽을 가리켰다.
“증거라고 했죠? 학생, 저기 봐요. 저기.”
두철과 남학생이 정문으로 고개를 돌리자 수연이 말을 이었다.
“정문 앞에 CCTV 카메라가 있는 건 몰랐나 보죠? 저기 영상만 확인하면 되니까, 나랑 같이 가요. 가서 확인하고 그쪽 부모님 만나서 내 핸드폰 변상 받아야겠어요. 어서요.”
“아이, 이 아줌마가 정말. 야! 빨리 타!”
그렇게 외치며 두철은 차 운전석에 올라탔다. 남학생도 재빠르게 달려가 조수석에 탔다. 수연은 남학생을 따라가 잡아보려 했지만 너무 빨라 잡지 못했고, 병원에서 멀어져가는 그들을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사실, 휴대전화 때문에 잡으려했던 건 아니었다. 그들의 대화를 우연히 들은 수연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내려 했던 것이다.
***
현관문을 열고 들어선 송이의 얼굴로 갑자기 옷가지가 날아들었다. 송이는 바닥에 떨어진 옷들을 집어 들고는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실에서 마른 빨래를 개고 있던 송이의 엄마가 노려보고 있었다.
“너, 뭐하고 다니는 거야? 내 말이 우스워? 내가 뭐라고 했어? 어?”
송이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주눅이 들어서는 작게 말했다.
“미안해, 엄마. 내가 할게. 그거 그냥 둬.”
“내가 이것까지 해야 해? 뼈 빠지게 일하고 집에 와서 발 뻗고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내가 너 때문에 정말 못 살아, 정말. 네가 엄마 생각을 조금이라도 했으면 이러지 않지. 안 그래? 어떻게 너는 네 생각만 해. 내가 너한테 돈 벌어오라고 했어? 집안 일 좀 도와달라는 게 그게 어려워? 어? 왜 그거 하나를 못해. 엄마 죽는 꼴 보고 싶어서 그래? 너만 아니면 정말 팍 죽고 싶다고, 정말!”
엄마 앞에 무릎을 꿇으며 송이는 안절부절 못하며 말했다.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러니까, 그런 소리 마. 빨래는 내가 할 테니까 그냥 둬. 그것도 그냥 두고 들어가서 쉬어, 내가 갤게. 설거지도 그냥 두면 내가 아침에 할게. 아니면 학교 다녀와서 하든가. 어? 화 풀어. 미안해, 엄마. 죽는다는 소리는 하지 말고. 내가 엄마 없으면 어떻게 살아? 그러니까 그런 소리 제발 하지 마. 어?”
울컥 눈물을 쏟는 송이를 보고도 엄마는 개던 옷은 내려놓고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리고 TV 켜는 소리가 들리더니 얼마 있지 않아 웃음소리가 방문으로 흘러나왔다. 그러는 사이 송이는 눈물을 닦아내며 옷들을 정리했다. 그 모습에 그림자는 뭐라고 위로를 해야 할지 몰라 지켜만 볼 수밖에 없었다.
집안일이 모두 끝날 쯤 엄마의 방 TV가 꺼졌다. 그리고 곧바로 안방 불도 꺼졌다. 송이는 그제야 욕실로 들어가 씻기 시작했다. 세면대에 흐르는 물소리와 송이의 울음소리가 함께 섞여 그림자에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해주지 못한 채 같이 아파할 뿐이었다.
욕실에서 나온 송이의 얼굴이 불그스레했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이불을 깔고 방에 누웠다. 그리고 그림자에게 등을 지며 말했다.
‘아저씨, 저 피곤해서 자야겠어요.’
‘어, 그래. 잘 자.’
‘네. 안녕히 주무세요.’
송이가 눈을 감으려는데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불 끄고 자.”
그제야 송이는 불을 끄지 않은 걸 깨닫고 일어서려했다. 그때 그림자가 송이를 말렸다.
‘송이야, 그냥 있어. 내가 끌게.’
‘아저씨가요?’
‘그 정도는 할 수 있어.’
‘아, 네.’
그림자는 송이 대신 전등 스위치를 껐다. 불이 꺼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엄마의 방에서 코고는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에 송이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몸을 뒤척였다. 그때 찰싹 소리와 함께 엄마의 코고는 소리가 멈췄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않아 또 코고는 소리가 들려왔다. 또 한 번 찰싹 소리가 들렸고 이번엔 엄마가 잠에서 깼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뭐야? 누구야?”
어두운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송이의 엄마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방안을 살피고는 다시 눈을 감고 잠에 들었다. 그렇게 몇 번 잠에서 깬 그녀는 신기하게도 코를 골지 않게 되었다. 송이는 그림자 아저씨가 그런 것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피곤한 나머지 고맙다는 말도 못하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
창밖으로 희미하게 들어오던 가로등 불빛도 옅어지고 집안이 깜깜해지자 엄마가 자고 있던 안쪽 방에서 창문 열리는 소리가 작게 들렸다. 때마침 엄마의 코고는 소리도 함께 들려 송이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후 안방 문이 살짝 열리며 검은 인영이 나타났다. 그는 손전등으로 바닥을 비추며 살금살금 거실로 나왔다.
손전등으로 가스밸브가 있는 곳을 비췄더니 그는 천천히 그곳으로 걸어가며 주변을 살폈다. 그때 순간적으로 서 있는 사람의 그림자가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곧 빛과 함께 사라졌다. 그는 깜짝 놀라 그림자가 보였던 곳으로 다시 손전등을 비췄다. 그러나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한 그는 가스밸브가 있는 곳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칼을 꺼내는데 누군가 치는 바람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 뭐야? 어······.”
자신도 모르게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고 곧바로 자신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손전등으로 주위를 비추며 누가 있는지 살폈다. 하지만 거실에 누워 자고 있는 송이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송이가 자고 있는지 확인하고는 칼을 집으려 바닥을 살폈다. 그런데 떨어졌던 칼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는 무릎까지 꿇고 찾다가 칼이 현관 앞에 있는 것이 보이자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레 그곳으로 갔다. 그리고 다시 손전등을 비춰 칼이 있던 곳을 살폈다. 그런데 이번에도 칼이 보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눈을 비비며 손전등으로 현관 주변을 이리저리 비췄다.
아무리 찾아도 칼이 보이지 않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는 부엌으로 돌아가 칼을 찾았다. 서랍을 뒤지는 소리에 송이가 잠에서 깨며 몸을 뒤척였다. 그 소리에 침입자는 손전등을 송이에게 비췄다. 동시에 그림자의 목소리가 송이에게 들렸다.
‘자는 척해. 송이야.’
그 소리에 눈을 뜨려던 송이는 눈을 감은 채 그대로 있었다. 송이를 비추던 손전등이 다시 서랍을 비추자 그림자가 송이에게 말했다.
‘그냥 가만히 있어. 도둑이야. 내가 처리할게. 알았지?’
‘네, 아저씨.’
도둑은 서랍에서 칼을 꺼내 들었다. 그때 그림자가 옆으로 다가와 그의 얼굴을 살폈다. 역시나 이번에도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림자는 살며시 그의 마스크를 벗겨냈다. 그는 자신의 마스크가 벗겨지는 줄도 모른 채 칼로 가스밸브를 끊었다. 동시에 밸브에서 가스가 새어나왔다.
그는 주머니에서 심지 다발을 꺼내 밸브 안으로 넣고는 심지를 살살 풀었다. 그리고 심지에 불을 붙이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창밖으로 도망쳤다. 심지에 붙은 불이 점점 가스밸브가 있는 곳으로 타들어가다 갑자기 심지가 뚝하고 끊였다. 그림자가 칼로 심지를 끊은 것이었다. 그리고 송이를 다급히 불렀다.
‘송이야, 이제 일어나.’
송이는 그림자가 일러준 가스가 새고 있는 밸브를 테이프로 막았다.
‘이제 어떡해요? 다시 들어오면요?’
‘그러지는 못할 거야. 일단 여기 심지랑 칼을 비닐봉지에 보관해 놓는 게 좋겠다. 증거가 될 수 있으니.’
‘증거요?’
‘그래. 그자가 누군지 알았으니. 경찰에 신고해서 그자를 잡으면 될 거야. 지문은 없겠지만 그자가 남긴 족적이나 흔적들은 분명 어딘가에는 남아 있을 거야. 엄마가 놀랐지 모르니까, 조용히 깨워서 설명 드리고 경찰에 신고해.’
‘네, 알겠어요. 근데 누구였어요? 아까 미행했던 그 사람인가요?’
‘아니. 이번엔 얼굴을 봤어.’
‘얼굴을 보셨어요? 누군지 아시는 거예요?’
‘맞아. 그자야. 덕팔.’
‘덕팔이라면······ 장미공원에 그 사람이요? 그럼, 미행했던 그 사람은 아니라는 거네요?’
‘그 사람은 아니야. 덕팔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분명 그자는 부정할 거야. 확실한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아, 잠깐.’
그림자는 부엌으로 가서는 뭔가를 들고 송이에게 다가왔다. 허공에 마스크가 둥둥 떠서 송이 앞으로 왔다.
‘그게 뭐예요?’
‘보면 몰라? 마스크잖아.’
‘알죠, 그건. 그러니까 그게 뭐······. 아, 그 사람 마스크군요?’
‘빙고. 이것도 같이 비닐봉지에 보관해서 경찰에 제출하면 되겠다. 그럼, 빼도 박도 못하겠지. 어서 경찰에 신고해.’
‘네, 일단 비닐봉지에 넣고요. 잠시 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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