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 잠재적 위험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차 뒷좌석에 앉아 담배를 피던 칠구는 창문 밖으로 연기를 뱉어냈다. 그 옆에는 칠구에게 머리를 기대고 있는 소희가 있었다. 그들이 탄 차가 횡단보도 정지신호에 멈춰 섰고, 그 앞으로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깔깔거리며 건너고 있었다. 그 학생들 무리 밖에 혼자 건너고 있는 애리도 보였다.
“넌 그 꼴로 학교에 갈 거야?”
칠구가 소희의 짧은 미니스커트를 들추며 물었고 소희는 그의 손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미쳤어? 어떻게 이렇게 하고 학교에 가.”
“그러니까 내 말이. 그냥 나랑 놀자. 하루 짼다고 뭐가 어떻게 돼?”
“모르는 소리하시네. 학교를 쨌다가는 내 머리카락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오빠는 우리 아빠 성질을 몰라서 그래. 그리고 이게 다 오빠 때문이잖아. 그렇게 놀라서 기절하는 게 어디 있어?”
차가 출발하고 칠구는 피던 담배를 밖으로 툭 던지고는 소희의 손을 슬며시 잡았다.
“정말 귀신이었다니까! 아무튼 그러니까 오늘은 제대로 놀아보자고. 어제 못한 쇼핑도 하고 같이 못 보낸 하룻밤도······. 어? 소희야.”
“됐거든요. 어제 완전 김 빠졌다고, 오빠 때문에. 학교는 못 빠져. 안 돼. 가야한다고. 오빠, 어제 못한 거는 다음에 하면 되잖아. 왜 그래? 자꾸.”
소희가 손을 뿌리치자 칠구는 다시 소희를 끌어안으며 귀에 대고 속삭였다.
“왜 그러긴? 그걸 몰라서 그래? 너 정말 나한테 이러기야?”
“오빠 이러지마. 안 된다고······. 어! 저기. 저기서 세워줘.”
몸을 뒤로 빼며 소희는 창밖을 가리켰다. 칠구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운전석을 향해 지시했다.
“상혁아, 차 저쪽으로 붙여라.”
“예, 형님.”
차는 전철역 앞에 멈췄고 칠구와 소희가 내렸다.
“오빠, 고마워. 어서 들어가서 좀 더 쉬어. 그럼, 안녕!”
손을 흔들며 소희는 서둘러 전철역 위로 뛰어올라갔다. 칠구는 소희가 올라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고는 입맛을 다시다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며 차에 다시 올라탔다. 그리고 차가 출발하자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전철역으로 올라간 소희는 보관함에서 가방과 검은 봉지를 꺼내들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복을 입은 소희가 나왔다. 소희는 다시 검은 봉지를 보관함에 넣고는 전철역 계단으로 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불렀다.
“민소희.”
“민정? 너 뭐야?”
“너야 말로 뭐야? 설마 했는데, 너였더라.”
“무슨 소리야?”
“다 봤어. 아까는 긴가민가했는데······. 화장실에서 네가 나오는 것 보고 맞구나 싶었지. 학생이 그래도 되는 거야? 집에서 오는 길 아니지?”
“시끄러워. 네가 무슨 참견이야! 못 본 걸로 해. 알겠어?”
“그래, 내가 무슨 상관이겠어. 알아서 잘 하겠지. 그래도 이것 하나만 말할게. 기정······ 기정을 생각해서도 정신 차려. 기정이 어떻게 죽었는지 너도 잘 알잖아.”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뭘 알아? 생사람 잡는 소리 그만하고, 가던 길이나 가. 학교 안 갈 거니?”
“소희야, 너는 내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겠지만 나는 같은 반 친구로 네가 걱정돼 하는 소리야. 네가 어울리는 그 애들 무서운 애들이잖아. 너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아니, 너도 위험······.”
버럭 욕을 하며 소희가 민정의 말을 잘랐다.
“너 미쳤어! 무서운 애들? 그 무서운 애들이 나야? 그걸 몰라서 지금 나한테 그런 소리는 하는 거야? 입 닥치고 학교나 가.”
“너 정말······.”
마음이 상하기도 하고 겁도 났던 민정은 울먹이며 빠르게 계단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소희는 민정에게 욕하며 화낸 것이 조금은 후회가 된 듯 투덜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전철역을 나와 학교로 갔다. 학교 정문에 들어선 소희 옆으로 정애리가 따라붙으며 말을 걸었다.
“어제 집에 안 들어갔니?”
“너 또 뭐야?”
“그런 소리 안 들으려면 눈에 안 띄게 다니던지. 학교 오늘 길에 횡단보도에서 봤어. 너랑 못생긴 아저씨가 차에 타서 가는 거. 생긴 걸 봐서는 너희 아빠는 아닌 것 같더라? 네가 입고 있던 옷하고 화장한 거 보면 집에서 오는 것 같지도 않았고. 맞지? 어디서 이렇게 환골탈태를 하고 오셨나?”
“환골탈태?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아저씨 누구야? 너 어쩌려고 그래? 기정이 왜 그렇게 죽었는지 몰라서 그래? 넌 잘 알잖아.”
소희는 애리에게 눈을 흘겼다.
“이것들이 오늘 왜 이래? 정애리, 잘 들어. 저번에도 그러던데, 내가 뭘 안다고 그러는 거야? 괜히 기정의 일로 들쑤시고 다니지 마. 그러다 다친다. 너희가 아무것도 몰라서 나한테 이러는 것 같은데, 그 입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나라서 그냥 넘어가주는 줄 알아, 이것들아.”
“그래, 고맙다. 너는 알고 있는 거네, 그치? 기정이 왜 그곳에 갔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도 말이야.”
당황한 듯한 소희가 애리의 눈을 급히 외면하자 더욱 확신이 찬 목소리로 애리가 이어 말했다.
“네가 기정한테 조금이라도 미안한 감정이 있다면 우리한테라도 솔직히 말해줬으면 좋겠어. 너한테 어떤 피해도 가지 않게 할게. 그럼 너도 기정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을 덜어 낼 수 있을 거야. 너한테 이렇게 말하는 건 넌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래.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만, 속은 아니라는 거 나는 알아. 하지만 네가 솔직히 말하지 못한다고 해서 너를 비난하지는 않을 게.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이 들거든.”
정곡을 찌르는 애리의 말에 소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고개를 숙였다.
“그만 들어가자. 아침조회 시간 다 됐다.”
애리는 그렇게 말하고는 교실로 뛰어 갔다. 소희는 잠시 뒤에서 애리를 바라보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뒤따라 달려갔다. 그들이 들어선 교실에서는 나동진이 김민철에게 끈질기게 캐묻고 있었다.
“뭐냐고? 사귀는 거야? 그렇지?”
민철은 아무 말 없이 책상에 엎드려 눈을 감고 있었다. 동진은 민철의 팔을 잡아끌며 계속 물었다.
“사귀는 거냐고? 그럼 왜 같이 오는데? 운동도 같이하고, 등교도 같이하면 그거 사귀는 거 아니야? 뭐야? 왜 말을 안 해? 이러면 나는 사귀는 걸로 안다. 진짜?”
눈을 감은 채 민철은 귀찮은 듯 동진이 잡고 있던 팔을 빼며 말했다.
“아니라고.”
“아냐? 정말? 근데 뭐야? 왜 같이 오냐고? 집 방향도 다르면서.”
송이가 사는 곳과 민철이 사는 곳은 정반대 쪽이어서 등교하는 길이 달랐다. 오늘 송이와 함께 민철이 송이가 사는 집 방향에서 오는 것을 동진이 본 것이었다.
“아이, 시끄럽네. 정말. 그럴 사정이 있었다고. 그만 좀 해라. 졸려 죽겠다. 잠깐이라도 눈 좀 붙이자. 간만에 일찍 일어났더니 졸려서 그래, 어?”
“그러니까 무슨 사정? 그걸 말해주면 되잖아. 너 계속 이럴 거야? 그러면 내가 송이한테 가서 물어본다.”
동진이 일어서려는데 민철이 팔을 잡아챘다.
“야, 너 꼭 이렇게까지 해야겠냐? 아이, 피곤하게······.”
“궁금하니까 그렇지. 내가 봤을 땐 너희 둘 사귀는 게 맞는데 속이는 것 같으니까, 더 그런 거잖아. 친구끼리 이러기야? 정말 실망이다.”
“아이, 새끼. 무슨 실망까지. 그런 거 아니라고. 지금 송이가······ 그래, 몸이 좀 안 좋아. 어제 갑자기 쓰러졌었거든. 무슨 일인지 모르겠는데 아저씨랑도······.”
아저씨라는 민철의 말에 동진은 주위를 살피며 더 작게 목소리를 냈다.
“그림자 아저씨? 왜?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너희 둘 뭐하고 다니는 거야? 정말 운동만 하는 거야? 혹시 기정······.”
민철이 동진의 입을 막으려다 때리고 말았다.
“아으, 뭐야? 왜 그래?”
“미안. 때리려고 그런 게 아니라 막으려다······. 그러니까 왜 쓸데없는 소리를 해가지고. 그 얘기 하지 말라고.”
“맞구나?”
민철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야, 그런 거면 나한테 말하지. 나도 뭐 도와줄 것 없냐? 언제부터야?”
“아이, 새끼. 왜 이리 말이 많아졌어. 너 왜 그래?”
“뭐가? 네가 말을 안 해주니까 그렇지. 요즘 네가 어떤지, 넌 아냐? 나보다 네가 더해. 말도 없고, 매번 송이만 힐끔거리며 쳐다보기나 하고. 네가 그런데 내가 어떻게 안 물어보냐고. 근데 물어봐도 대답도 없으니, 내가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지 않겠냐? 지금도 봐라, 나 혼자 말하고 있잖아.”
“알았어, 자식아. 아무튼 말 졸라 많네. 귀가 다 아프다.”
동진에게 그간의 일들을 말하면서도 민철은 힐끔힐끔 송이를 쳐다보았다. 송이는 어제 잠에 들 때부터 학교에 오기까지 방기철 형사를 만나야 할지 말아야할지 결정하지 못한 채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그런 송이의 마음을 아는지 그림자도 송이에게 말을 걸지 않고 있었다. 그것도 있었지만 어제 일로 머리가 더 복잡해져 있었기 때문이다.
어젯밤 병원에서 박동식 경위는 담당의와 함께 중환자 대기실로 올라와 수연을 만났다.
“수연씨, 이한은······. 아니, 송이학생은 언제 온다고 그래요?”
“오늘은 못 올 것 같다고 그러네요. 송이학생한테 일이 생겼다고 해서요.”
“그래요? 알겠어요. 그럼 들어가죠.”
박 경위와 수연이 중환자실로 들어가려는데 담당의가 막아서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형사님만 보실 수 있습니다. 일반인은 보실 수 없어요.”
“그래요? 어쩌죠, 수연 씨?”
“어쩔 수 없죠. 동식 씨가 보고 와서 말해줘요.”
“그럴게요. 잠깐 여기서 기다려요.”
담당의는 박 경위와 함께 중환자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중환자실 안 데스크로 가 모니터를 확인했다. 남궁이한의 병상이 보이는 CCTV 영상을 재생해 사건이 발생한 시간대를 확인했다. 담당의 옆으로는 두 개의 그림자가 드리우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걸 눈치 채는 사람은 없었다.
이한의 어머니가 면회를 마치고 병상 CCTV 영상에서 사라지고 얼마 있지 않아 흰 가운을 입은 의사로 보이는 남자가 영상 속에 나타났다. 처음 뒷모습만 보였던 그가 CCTV를 의식한 듯 카메라가 있는 곳으로 살짝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마스크를 쓰고 있어 누군지 바로 알아볼 수 없었다. 그는 산소호흡기 장치로 다가가더니 전원 스위치를 껐다. 그리고는 빠르게 영상 속에서 사라졌다. 영상을 본 담당의는 서둘러 박 경위에게 말했다.
“오해하실 것 같아서 말씀드리는데요. 저는 아닙니다. 저 사람을 보셔서 알겠지만 머리모양이 다르지 않습니까?”
담당의 머리는 탈모가 심한 편이어서 딱 봐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선생님이 아니라도 다른 의사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저희도 저 사람이 누군지 찾아봤지만 우리 병원 의사가 아닌 건 분명합니다. 가운도 저희 병원의 것이 아니고요. 비슷해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병원 마크가 다릅니다. 목에 명찰도 없고요. 저희 병원은 의사들이 의무적으로 명찰을 착용하게 되어 있거든요.”
“그렇다면 외부인이라는 건데······. 외부인이 어떻게 중환자실로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그건 저희도 모르겠습니다. 의사가운을 입고 있어서 면회시간에 들어와 몰랐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알겠습니다. 해당 영상 원본을 제가 가지고 가서 자세히 조사해 봐도 되겠습니까?”
“네. 그러시죠.”
“이 사실은 보호자분들께는 비밀로 해주십시오. 괜히 걱정을 하실 것 같아서 말입니다. 환자의 어머니께서 면회 중 실수로 그런 것으로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예? 그래도 되겠습니까? 보니까 연세도 꽤 되시고 이번 일로 기절까지 하셨는데······.”
“그럼, 외부인이 들어와 환자를 죽이려했다고 말씀하실 겁니까? 그럼 더 충격을 받을 실겁니다. 그렇다고 병원의 실수였다고 할 수도 없지 않으십니까? 그러니 제가 하자는 대로 해주시죠. 당분간만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일이 발생할 수 있을지 모르니 저희 경찰이 상주할 수 있도록 조치 부탁드립니다. 경찰 신분을 숨겨야하니 중환자실에 상주하는 간호사들에게만 그 사실을 알리고 비밀로 해주셨으면 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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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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