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애를 좀 먹다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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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 앞 한 카페에서 유수연이 기다리고 있었다. 송이와 민철이 카페에 들어서자 수연이 그들에게 다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수연은 사람이 없는 곳에서 얘기하는 게 낫겠다며 사람들이 뜸한 곳으로 송이와 민철을 데리고 갔다.
“수연 언니 전화로······.”
수연은 손을 들어 송이의 말을 막았다.
“송이 씨 미안한데, 내가 먼저 말할게요. 이한 씨 내 말 들을 수 있지?”
그림자는 수연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그래. 그날 이후로 고민이 많았어. 이한 씨 어머니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말씀을 드려야 하나 하고 말이야. 그래서 오늘도 일찍부터 병원에 왔던 거고. 근데 막상 어머니 얼굴을 뵈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 않는 거야. 그래서 말씀 못 드렸어.”
“잘 하셨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송이가 그림자의 말을 전했다.
“그것도 그건데······. 이한 씨를 다른 병원으로 옮겨야 할 것 같아. 몸의 화상은 잘 치료가 되고 있는데 의식이 돌아오지 않으니 중환자실에 더 있을 수 없는 거야. 의사는 화상 치료 외에는 더 이상 할 게 없다고 일반 병실로 옮겨 지켜보자고 하는데 어머니는 절대 포기 못하신다고 다른 병원 중환자실로 옮겨서라도 치료를 계속 하고 싶어 하셔.”
“설마, 병원에서는 뇌사판정을 염두에 두고 말한 거냐고 물어보셨어요?”
송이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못하던 수연은 그림자를 내려다보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맙소사······.”
깜짝 놀라는 송이를 수연은 힐끔 쳐다보고는 다시 그림자에게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만나자고 한 거야. 지금 이럴 때가 아니야. 어떻게든 이한 씨 영혼이 다시 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려면 이한 씨 몸에라도 가까이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언니, 그게······ 사실은요. 저랑 아저씨가 멀리 떨어져 있으면 안 되거든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왜요?”
“어느 정도 거리까지는 괜찮은데 너무 멀리 떨어지면 심장이 이상해져요. 숨이 막히는 걸 봐서는 심장에 무리가 오고 끝내는 멈추지 않을까 싶고요.”
“정말이에요? 이한 씨 정말이야?”
믿기지 않는 듯 수연은 송이를 쳐다보다 이내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그래서 계속 같이 다닐 수밖에 없었던 거구나.”
“맞아요, 언니. 아저씨, 아저씨 어머니께 말씀 드리는 건 어떠세요? 아저씨가 이렇게라도 계신다는 걸 알면 조금은 덜 힘들어하시지 않을까요? 그러면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 치료를 이어가실 것 같은데요.”
송이의 제안에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그건 안 돼. 어머니가 알게 되시면 송이 네가 힘들어질 수 있어. 그리고 난 아무것도 못할 거야. 분명 어머니는 지금 병원에 누워있는 내 몸 가까이에 있어야 한다고 하실 거고. 또 모르지, 무당을 불러 굿을 하실 지도.’
“굿이요? 에이, 아니죠. 매번 볼 때마다 기도하시는 것 보니까, 기독교이신 것 같은데.”
‘내 기억으로 매년 점집에 가서 점을 보셨다고. 그것보다 내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모르시는 게 더 나을지도 몰라.’
“앞으로 뭐가 어떻게 되긴 어떻게 돼요? 괜히 이상한 소리만 하고······.”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하는 송이에게 수연은 기다리지 못하고 물었다.
“송이 씨, 굿이라니요? 기도는 또 뭐고요?”
“아, 죄송해요. 그림······ 아니, 이한 아저씨에게 얘기한다는 게 입 밖으로 내뱉었네요. 제가 할머니한테는 말씀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봤는데 아저씨는 반대하시네요. 할머니가 굿을 하실 지도 모른다고요. 그래서 굿 얘기가 나온 거예요.”
“그렇구나. 이한 씨가 반대한다는 거지. 나도 처음엔 알려드리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이한 씨 어머니를 뵈니 모르시는 게 나을 것도 같았어. 어머니가 어떻게 받아 들이실지도 모르고. 그렇다고 이한 씨가 바로 다시 돌아올 수도 없는 거잖아. 이한 씨 생각이 그렇다면 그게 맞는 것 같아.”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요.”
“참 신기해. 이한 씨가 그림자로 저렇게 있다는 것도, 송이 씨랑만 얘기할 수 있다는 것도 말이야.”
“그렇죠? 저는 이제 좀 적응이 됐는데. 처음엔 잠에서 깰 때마다 놀랐다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키득거리며 웃던 송이는 뻘쭘하게 서 있는 민철을 보고는 괜히 미안해 바로 웃음을 그쳤다. 그 모습에 수연이 민철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매번 송이 씨랑 같이 다니네요. 그런데 정말 그냥 친구 사이인 게 맞아요?”
수연의 물음에 당황한 민철은 손을 마구 휘저으며 아니라고 그냥 반 친구라며 강조하더니 송이에게 재차 확인하듯 물었다.
“그치, 송이야?”
호들갑스럽게 아니라고 강조하는 민철의 모습에 송이는 입술을 비죽거리며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말했다.
“맞아요, 언니. 민철이 보디가드처럼 저랑 같이 다니는 거예요. 이한 아저씨가 민철한테 부탁했거든요. 제 옆에서 저를 지켜달라고요.”
“왜요? 송이 씨한테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수연의 물음에 바로 대답하지 않고 송이는 그것 때문에 부탁할게 있다고 했다. 그제야 자신에게 전화한 이유를 알겠다는 수연이었다.
“네. 제 말은 다 듣지도 않으시고 바로 만나자고 하셔서. 사실은 아저씨랑 뭘 조사하고 있거든요. 우리 반에 기정이라고······.”
그동안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송이의 말에 민철도 덧붙여 자신에게 있었던 일을 말했다.
“그런 일을 직접 알아보고 있는 거예요? 그냥 경찰에 신고를 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저희 이야기를 믿어나 줄까요? 아저씨 말로는 우리 이야기를 뒷받침할 수 있는 증거가 없어서 어려울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박동식 형사님한테 부탁해 보려고요. 이한 아저씨의 동료이기도 하니 아저씨의 정체를 밝히고 도움을 요청하면 도와주시지 않을까 해서요.”
“근데 나는 왜요?”
“우리 둘만 만나면 쉽게 믿지 못할 거라고 하셔서요. 수연 언니도 바로 믿지 못하셨잖아요. 그래서 언니의 도움이 필요해요. 우리 보다는 언니의 말을 더 신뢰하지 않을까요? 그렇죠, 아저씨?”
자신이 제대로 말한 것인지를 확인하듯 송이는 내려다보았고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수연도 송이를 따라 그림자를 내려다보고는 말했다.
“좋아요. 그런 일이라면 못 도와줄 것도 없죠. 앞으로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불러요. 내가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도울게요.”
“고맙습니다, 언니.”
송이는 수연에게 깍듯이 고개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뭘요? 근데 박동식 씨 연락처를 내가 몰라서 그러는데 근무하는 곳으로······.”
“아니요. 연락처는 저희가 알아요.”
“아, 그래요. 잘 됐네요. 내가 전화해서 만나자고 해볼게요. 바로 만나보는 게 좋겠죠?”
그림자를 내려다본 송이가 바로 대답했다.
“네.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하시네요.”
“그래요, 알았어요.”
수연이 휴대전화를 꺼내자 민철이 바로 박 경위의 명함을 건넸다. 수연은 그 명함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었다.
***
온갖 학원들이 즐비에 있는 학원가에 석진이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다. 그리고는 한 건물 앞에 멈춰 서서 위를 유심히 올려다보더니 그 앞을 어슬렁거리며 안을 슬쩍슬쩍 들여다봤다. 아직 수업이 끝나지 않았는지 학생들은 보이지 않았다. 그때 건물에서 한 여학생이 나오는가 싶더니 석진과 눈이 딱 마주쳤다.
곧바로 고개를 돌리고 어딘가로 숨으려했지만 석진의 이름을 부르는 소리에 포기하고 뒤돌아섰다. 석진을 불러 세운 아이는 바로 민소희였다.
“네가 여긴 무슨 일이야? 칠구 오빠한테 얘기 못 들었어?”
“너 보러 온 거 아니거든.”
“그럼 뭐야? 이런다고 내가 너한테 다시 돌아갈 것 같아?”
머리를 마구 긁으며 석진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휴, 미치겠네.”
“뭐냐고? 왜 이렇게 질척거리는데?”
“아니라고, 아니야! 아, 수업은 끝난 거야?”
“아니. 그건 왜 물어? 정말 나 때문에 온 거 아니야?”
답답한 마음에 석진은 발을 구르며 크게 소리쳤다.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그냥 빨리 꺼져. 잠깐, 근데 너는 왜 지금 나온 거야? 정말 수업 안 끝났어?”
“그래, 안 끝났어. 칠구 오빠가 빨리 오라고 해서 수업 째는 거야. 너 정말 아니지? 칠구 오빠한테 다 말해버린다.”
“아니라고. 그러니까 빨리 갈 길이나 가.”
“그럼 뭔데? 네가 왜 여기서 얼쩡거리는데?”
귀찮은 듯 석진은 손을 내저었다.
“넌 몰라도 돼. 안 가? 칠구 형님 만나러 간다면서?”
“가, 가는데······ 무슨 일인지 궁금해서 그러지. 뭐야? 빨리 말해. 아니면 칠구 오빠한테 확 다 말한다? 나 보러 왔다고.”
“아, 씨······. 알았어. 민정이. 유민정 만나러 왔어. 이제 됐지?”
“민정은 왜? 너 또 무슨 수작이야?”
“수작은 무슨······. 이제 알았으면 꺼져줄래? 너 때문에 온 거 아니라고. 빨리 가서 칠구 형님이랑 놀아, 꺼지라고. 재수 없게.”
자신을 밀치며 거친 말을 내뱉은 석진에게 소희는 눈을 흘겼다.
“뭐? 재수······. 너 칠구 오빠 얘기를 뭐로 들은 거야? 칠구 오빠 애인이면 내가 너한테 어떻게 되지?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겠네?”
“정말······. 아휴.”
마지못해 석진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소희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형수님. 형님한테는 잘 좀 말씀해주십시오.”
석진의 뒤통수를 토닥이는 소희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아이고, 잘했어요. 앞으로도 이렇게 정중히 대해주시면 고맙겠네요. 그럼 간다.”
방정맞게 웃으며 달려가는 소희의 뒤에 대고 석진은 들리지 않게 욕을 뱉어냈다.
“도대체 수업은 언제 끝나는 거야.”
토요일 오전 수학보충수업을 마치고 학생들이 하나 둘 나오기 시작했다. 석진은 출입구 옆 기둥에 서서 스마트폰으로 SNS 계정에 있는 민정의 사진을 보며 나오는 학생들 얼굴과 하나하나 비교했다.
친구들과 나오는 민정을 본 석진은 조심스레 뒤쫓았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버스에 올라타는 민정을 따라 석진도 서둘러 탔다.
석진은 힐끔힐끔 민정을 보며 내릴 때만을 기다렸다. 전화가 왔는지 민정은 휴대전화를 꺼내 귀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갑자기 몸을 움츠리며 힐끔 주변을 살폈다. 석진은 뭔가 께름칙해 민정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고 창밖만 봤다.
버스가 정류장에 정차하고 문이 열렸다 다시 닫히려는 순간 민정이 재빠르게 뛰어내렸다. 뒤늦게 민정이 내리는 것을 본 석진은 뒤따라 내리려고 했지만 문이 닫혀 내릴 수 없었다. 겁에 질린 듯 민정은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달리기 시작했다.
한 정류장을 더 지나 내렸기에 되돌아 집으로 가야했다. 뛰다 지친 민정은 숨을 가다듬고는 뒤를 살피며 걸었다.
“유민정.”
갑자기 앞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남자의 목소리에 민정은 깜짝 놀라 뒤로 주춤 물러나며 앞을 바라봤다.
“유민정 맞지? 아휴, 너 따라오느라고 애 좀 먹었다.”
쉬지 않고 달려왔는지 석진은 허리를 숙인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를 펴며 이마에 땀을 닦아내고는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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