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 애리의 전화번호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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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굣길에 만난 민철에게 송이가 먼저 인사를 건넸지만 민철은 시큰둥하게 인사하고는 발 빠르게 애리에게 걸어가 옆으로 붙었다. 송이는 그런 민철을 새초롬하게 바라보다 어이가 없다는 듯 코웃음을 치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왜? 민철이가 반갑게 인사 안 해줘서 서운한 거야?’
‘아니거든요. 그냥······ 아이, 몰라요.’
‘애리한테 무슨 할 얘기가 있었나보네. 저기 봐.’
그림자가 민철과 애리가 있는 곳을 가리켰지만 송이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보지 않았다.
‘몰라요, 몰라. 그게 저랑 무슨 상관이에요. 됐어요.’
‘그래? 그게 아닌 것 같은데······. 알았어.’
송이는 그림자를 흘겨보고는 별 관심 없는 척하더니 민철과 애리를 힐끔힐끔 훔쳐보며 그들 뒤를 따라 걸었다. 그때 뒤에서 민정이 달려와 송이에게 팔짱을 꼈다.
“안녕. 주말 잘 보냈어?”
“어, 너도 잘 보냈어? 얼굴을 보니 이제 좀 괜찮아 보이네.”
“그래? 너는 괜찮은 거야? 나도 나지만, 네가 더 힘들었을 거잖아. 그치? 미안해. 그날 일이 계속 떠올라서 네 생각은 못했어.”
팔짱 낀 민정의 팔을 토닥이며 바라보았다.
“뭐가 미안해? 너도 힘들고, 우리 모두 힘들었잖아. 당연한 거지. 그래도 시간이 조금 지났다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돌아가는 게······ 사람이 참 그래, 그렇지?”
민정은 팔짱을 끼고 있던 팔을 흔들며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도 언제까지 우울해 있을 수는 없잖아. 기정이도 그걸 바라지는 않을 거야. 같이 있을 때 좀 더 친해지지 못한 게 아쉽지만.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기도 하고.”
말하던 민정은 금세 목소리가 가라앉더니 표정까지 굳어갔다.
“뭐야? 말하고 다르잖아. 언제까지 우울해 있냐면서 그러면 어떡해? 그런 말 마. 우리는 예전처럼 지내면 되는 거야. 그림자 아저씨도 그래야 한다고 했고.”
“아, 맞다. 그림자······. 지금도 같이 있는 거야?”
고개를 끄덕여 보이며 송이는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림자는 민정에게 살짝 손을 흔들어 보였다. 민정은 고개를 꾸벅 숙이며 그림자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그림자 아저씨.”
“그렇게까지 인사 안 해도 된다고 하셔.”
“그래?”
미소 짓는 얼굴로 민정은 그림자에게 손을 흔들어 보였다. 송이와 민정은 주말에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며 교실로 들어섰다. 송이는 자리로 가면서 자신도 모르게 민철에게 시선이 가는 것을 깨달고는 바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모습이 웃겼는지 민정이 웃으며 물었다.
“너 왜 그래? 웃겨.”
“웃겨? 그게 아니라······ 아니야.”
머쓱하게 웃어 보이며 송이는 얼른 자리로 가서 앉았다. 민정도 자신의 자리로 가면서 동진의 팔을 툭 치며 인사했다. 동진은 민철과 얘기를 나누다, 고개를 돌려 민정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다시 민철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래서? 네가 말하고 싶은 게 뭔데?”
“나도 모르겠으니까, 너한테 물어보는 거 아니야. 그 새끼가 왜 애리 전번을 물어보냐 말이지.”
“기정 때문이라고 했다면서? 근데 죽은 기정 일로 왜?”
머리를 긁적이는 민철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니까 말이야. 그 새끼가 정말 애리를 좋아하는 걸까? 쪽팔려서 기정 핑계를 된 건가? 근데 그 자식이 애리를 언제 봤다고······. 그리고 소희랑 사귀는 사이잖아.”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다하네. 그때 보니까 소희랑 사귀는 것 같던데. 그러지 말고 소희한테 물어보는 건 어때?”
“뭐라고 물어봐? 괜히 소희랑 그 자식 사이가······ 아니, 그렇지. 내가 그것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지.”
안하던 짓을 하는 민철이 의외라는 듯 동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얘가 왜 이래? 너 혼잣말이 말이 늘었다.”
“그래? 아이, 요즘······ 아니다.”
“애리한테는 물어봤어?”
“애리? 에이, 그걸 어떻게 물어봐. 무슨 일인지도 모르는데. 알면 괜히 신경만 쓰일 거야. 너도 비밀로 해.”
“그럼, 뭐야? 아까 보니까 같이 들어오던데. 그때 물어본 거 아니었어?”
“물어볼까도 했는데 직접적으로는 못 물어봤고. 넌지시 주말에 뭐했는지 물었지. 근데 석진이 얘기는 없더라고. 어제 나한테 전번을 물어봤으니 바로 애리한테 연락하지는 못했을 거야.”
“그러겠네. 그 자식은 무슨 생각으로 애리의 전화번호를 달라고 한 걸까? 기정 일이라는 게······.”
동진이 말하는 중에 민철이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야······ 어?”
얼떨떨한 표정의 동진은 민철을 따라 문 쪽으로 시선이 갔다. 송이가 민철의 뒤를 따라 나가는 것이 보였다. 민철이 계속 애리와 소희에게 시선을 두며 동진에게 얘기하는 것이 신경 쓰였던 송이에게 그림자는 눈치 채고 민철과 동진의 대화를 듣고 알려주었다.
갑자기 소희를 따라 민철이 교실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본 송이는 곧바로 뒤따라 나간 것이었다. 민철이 소희와 함께 건물 밖으로 나가는 것을 송이는 뒤쫓아 몰래 지켜보았다. 그림자는 눈치 채지 못하게 그늘에 숨어 그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아니, 석진이 일로 물어볼게 있어서.”
“강석진? 나 이제 몰라. 걔랑 헤어졌어.”
“어? 헤어져? 언제?”
“그게 왜 궁금한데? 석진 일이면 나 모르니까, 들어갈게.”
돌아서려는 소희를 붙잡았다.
“잠깐만, 소희야. 왜 헤어진 거야? 석진이 헤어지자고 한 거야?”
“뭐? 아니거든, 내가 찼거든.”
“그래? 왜······ 아니, 그럼 걔가 뭘 잘못한 거야? 너 말고 다른 여자 애를 만났어? 양다리?”
“아니야. 그냥 내가 싫어서. 그건 왜 묻는데? 너 설마 나한테 관심 있니? 됐거든, 난 이제 고삐리한테 관심 없어. 난 이미 다른 남자 생겼거든.”
놀란 얼굴로 민철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나도 그런 거 아니야, 정말.”
“그럼 뭔데? 나한테 이러지 말고 석진한테 직접 가서 물어 보면 되잖아. 너희 친구사이 아니야?”
“친구는 무슨······. 알았어. 아, 걔가 애리 전화번호를 물어서 그래. 너희 헤어졌다니까 말하는 거야.”
“애리 전화번호를?”
소희가 살짝 놀라는 눈치인 것을 알아본 민철이 넌지시 물었다.
“걔가 애리 좋아하는 거 알고 네가 차거 아니야?”
“미친······. 아니거든. 애리 전번을······ 너한테 물어봤다고?”
“어. 너 뭐 아는 거 없어? 그 자식이 왜 애리 전화번호를 묻냐고? 아, 기정 일로 물어볼게 있다고 했어.”
“기정······? 그래서 알려줬어?”
“내가 미쳤어. 그걸 왜 알려줘. 난 알지도 못해.”
안도의 한숨을 짧게 내쉬더니 소희는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너 정말 몰라? 그 자식이 애리 전번을 물어본 이유 말이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소희의 목소리가 커졌다 바로 작아지며 민철의 눈을 피했다.
“너······ 아니다, 알았어. 혹시나 아는 게 생기면 나한테 좀 알려줄 수 있어? 이제 그자식이랑 헤어졌다니까 부탁하는 거야.”
“알았어, 그럴게.”
그렇게 말하고는 소희는 건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뒤따라 들어가려던 민철을 송이가 가로 막아섰다.
“어? 뭐야, 너? 언제부터 여기 있었어?”
“그건 알거 없고. 소희랑 무슨 얘기한 거야?”
“네가 그게 왜 궁금한데?”
“뭐, 아니······ 됐어. 말하기 싫으면 관둬. 별꼴이야, 치.”
가려는 송이 뒤로 민철이 빠르게 말했다.
“소희한테 물어볼 게 있었어.”
사실 송이는 그림자에게 다 들어 알고 있으면서도 모른 척 물었다.
“뭔데?”
“그게 어제······.”
어제 밤에 석진과 있었던 일을 민철이 말해주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 근데 멀쩡하네?”
“내가 운동을 좀 해서 맷집이 좋거든.”
“그래?”
갑자기 송이가 민철의 팔과 배를 손가락을 꾹 눌렀다. 민철은 인상을 찌푸리며 뒤로 물러났다.
“아니네. 얼굴만 멀쩡한 거구나. 많이 다친 건 아니고?”
“됐어.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잖아.”
“아니, 나는······ 그래. 그런데 소희가 모르겠다고 한 거구나.”
“뭐야? 내 얼굴에 그렇게 써있냐? 그걸 어떻게 알았어?”
거짓말을 못하고 송이는 까르륵 웃고 말았다.
“미안해. 사실, 너희 둘 대화 다 들었어. 아니, 내가 아니라 그림자 아저씨가.”
그렇게 말하는 송이가 민철 옆에 드리운 그림자를 손으로 가리켰다.
“뭐? 아이, 그랬구나. 아저씨, 그렇게 몰래 엿들으시면 안 되죠. 이거 범죄 아니에요?”
“얘는, 무슨 범죄까지······. 엿들은 건 미안하다고 하셔. 그래도 그런 일이 있었으면 먼저 말해줬으면 좋잖아.”
“뭔지 알고 너한테 그걸······ 아니, 아저씨한테 말해. 내가 좀 알아보고 말하려고 했지. 어차피 밤에 만나잖아.”
“그건 그러네. 그럼 애리한테도······ 아니, 아니다.”
“애리? 아, 등교할 때······.”
“아니야. 이제 알아······ 아니, 나는 또······.”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던 송이는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리며 부끄러운 듯 고개를 돌렸다.
“어라, 너 뭐냐? 언제부터 계속 나를 지켜본 거야? 내가 뭐 애리한테 관심이라도 있는 줄 알았던 거야? 왜? 왜 그랬을까?”
뭔가 눈치를 챈 듯한 민철이 실실 웃으며 송이를 쳐다봤다.
“몰라, 왜 웃는데? 너도 참 웃긴다. 내가 무슨······ 됐거든. 그것보다 아저씨가 그러는데, 석진이라는 애가 애리의 전화번호를 물어본 게 심상치 않다고 하셨어.”
“심상치 않다고? 그래, 그래서 나도······.”
알고 있다고 민철이 말하려는데 송이가 가로채듯 말했다.
“아니, 석진이 아니야. 그 뒤에 누가 있는 거야. 아저씨는 로망스클럽에서 봤던 그 깡패가 아닐까 싶다고 하셔.”
“그 클럽의 깡패······. 왜? 그 새······ 아니, 그 깡패가 왜 애리를?”
“그건 알아봐야겠지만 아마도 호텔에서 있었던 일 때문이 아닐까라고 하셨어.”
“정말요?”
많이 놀란 듯 인상이 구겨진 민철은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림자는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때 수업 종소리가 울리자 민철과 송이는 교실로 달려갔다.
***
금남 경찰서 형사과로 들어서는 방기철 형사에게 누군가 손짓하며 큰소리로 불렀다.
“방 형사! 방 형사, 이리와. 이리오라고!”
쭈뼛거리며 자신을 부른 그의 앞으로 갔다.
“지금 몇 신데 이제야 나오는 거야?”
“제가 놀다 옵니까? 사건 수사하느라고······.”
“됐고. 그 사건 언제까지 붙들고 있을 거야? 빨리 사건 종결하고 결과보고서 올려.”
“아이, 팀장님. 제가 말씀 드렸잖아요. 조금만 시간을 주시면······.”
팀장은 이번에도 방 형사의 말을 싹둑 잘랐다.
“야, 그거 빨리 종결하라고 위에서 난리야. 자살사건을 왜 그렇게 오래 쥐고 있냐고 뭐라고 하신다고. 그거 말고도 처리해야 할 사건이 이렇게 쌓였다, 기철아. 이것 좀 봐라, 보라고. 네 눈에는 안 보이냐? 그러니까 당장 자리로 가서 결과보고서 작성해서 올려. 이거 명령이다.”
“내가 이래서······.”
“이래서 뭐?”
결재판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버럭 화를 내는 팀장의 모습에 방 형사는 곧바로 고개를 숙이고는 꼬리를 반짝 내렸다.
“아이, 아닙니다. 알겠습니다. 곧바로 결과보고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충성!”
경례하고 방 형사는 슬금슬금 뒷걸음쳐서 자리로 돌아갔다. 계속 노려보고 있는 팀장은 방 형사가 자리에 앉자 어이없어 하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저 자식은 꼭 쓸데없는 사건에 오지랖이란 말이지. 아이 돌아이 새끼,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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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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