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서기정 죽음의 진실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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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호프집에 강석진이 맥주를 마시며 기웃기웃 출입문 쪽을 살피고 있었다. 초조한 눈빛의 석진은 얼마 남지 않은 맥주를 단번에 들이켜고는 술잔을 내려놓으며 휴대전화 시계를 확인했다.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
혼잣말처럼 말하고는 뒤를 힐끔 쳐다봤다. 뒷좌석에는 노랑머리와 파랑머리를 한 일진 선배들이 앉아 있었다. 석진은 맥주 500cc를 한 잔 더 시킨 뒤에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그때 출입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한 남자가 들어오며 휴대전화를 꺼내 확인했다.
“어! 형, 여기. 여기.”
석진이 손을 흔들어보이자 그 남자는 한쪽 발을 절뚝거리며 자리로 와 앉았다.
“그걸 못 참고 전화냐? 근데 왜 여기서 보자고 한 거야? 내가 좋은 곳에서 제대로 쏜다니까.”
“에이, 됐어. 여기 좋잖아. 예전에 형이랑 많이 왔고.”
“그래, 여기 오니 옛날 생각난다. 근데 이 시간에 왜 이렇게 사람이 없지?”
“그런가? 나도 간만에 와서······.”
머쓱해하며 석진이 머리를 긁적이자 파랑머리와 노랑머리 일진들이 갑자기 그 남자가 앉은 자리 양옆으로 붙어 앉았다.
“뭐야? 어! 두철이랑 대진이잖아. 야, 오랜만이다.”
“그러네요. 잘 지냈어요?”
“그렇지. 석진아, 뭐야? 깜짝 놀랐잖아. 귀띔이라도 해주지, 참.”
“형님, 좋은 일 있으신 것 같습니다. 옷부터가 남다르네요. 이거 명품 아닙니까?”
파랑머리 두철이 그의 옷을 만지며 묻자 그는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말했다.
“그래? 자식, 바로 알아보네. 얼마 안 해. 뭐해? 석진아, 술하고 안주 시키자. 너희들은 뭐 먹고 싶은 거 없어? 여기 술값은 내가 낼게, 어?”
“형님이 무슨 돈이 있다고요? 제가 듣기로는 하루 돈 벌어 하루 겨우 살아간다고 들었는데.”
“에이, 옛날 말이고. 나 요즘 괜찮아. 어, 그러니까······.”
그때 그의 양 어깨를 누군가 꽉 잡으며 위에서 눌렀다.
“네가 박달만이냐?”
깜짝 놀라 뒤를 돌아봤다. 그의 어깨를 잡고 있는 이는 바로 칠구였다. 칠구를 보자마자 달만은 벌떡 일어나 도망치려했지만 양 옆을 두철과 대진이 막고 있어 옴짝달싹 못하고 서서 벌벌 떨었다. 달만의 어깨를 툭툭 치며 칠구는 말했다.
“괜찮아, 앉아. 앉아서 내 얘기 들어.”
달만은 앉으며 석진을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봤다. 석진은 고개를 숙이며 작게 입모양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해보였다.
“달만아, 네가 좀 돈이 생긴 것 같더라. 어디서 돈이 생겼는지 그게 좀 궁금한데, 이 형님한테 솔직히 말해줄 수 있겠니?”
그렇게 말하며 칠구는 달만의 어깨에 턱을 괬다. 달만은 석진에게 눈짓으로 어디까지 얘기했는지 묻는 듯 보였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석진은 그의 눈을 피했다.
“달만아, 석진이 보지 말고. 말을 하라고. 그 돈 누구한테 받았어?”
고개를 숙인 채 몸을 벌벌 떨며 달만은 조심스레 말했다.
“형님, 죄송합니다. 이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말하면 저 죽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형님. 돈이 필요하시면······.”
칠구는 달만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아윽!”
“야, 내가 벼룩의 간을 빼먹지. 내가 네 돈이나 삥 치려고 왔겠냐? 그냥 솔직히 말해. 그 돈 누구한테 받았는지. 난 그게 궁금하니까.”
달만이 벌벌 떠는 통에 의자와 탁자가 달그락 달그락거리며 흔들렸다. 석진은 급히 탁자를 붙잡으며 말했다.
“형, 미안해. 그냥 솔직히 다 말해. 내가 다 말했어. 어? 누구야?”
“씨발, 너 이······.”
달만이 이를 꽉 깨물며 석진을 노려보자 칠구가 손을 털며 말했다.
“달만아, 네가 이러면 내가 좀 피곤한데. 아이, 안 되겠다. 두철아, 대식아 데리고 가자.”
“예, 형님.”
두철과 대진은 달만의 양 팔을 덥석 잡았다. 그제야 달만은 말을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
“말, 말하··· 하겠습니다. 살, 살려··· 주, 주세요.”
칠구는 달만의 어깨에 손을 탁 올리며 말했다.
“자식, 꼭. 그래, 살려줄게. 그러니까 솔직히 말해. 어?”
“예, 형님.”
“일단, 여기서 나가자. 영업에 방해가 될 것 같으니까, 차로 가서 얘기를 이어가 볼까?”
달만은 칠구의 팔을 잡으며 애원했다.
“형님, 살려는 주시는 거죠?”
“자식, 쫄기는. 괜찮아. 여기 사장님도 장사를 해야 할 것 아니니. 어? 앞으로 네 입에서 나올 얘기는 우리만 듣는 게 좋을 것 같고.”
“아, 예. 그런 거면······. 감사합니다, 형님.”
칠구가 앞서 호프집을 나섰고 그 뒤를 두철과 대진이 달만을 양쪽에서 잡고 따라 나갔다. 석진은 서둘러 계산대로 가서 사장에게 고개 숙연 인사하고 밖으로 달려 나갔다. 사장의 한쪽 눈은 붉게 충혈 되어 있었고 그 주위는 푸르스름한 멍이 들어 있었다.
***
이한의 집에서 나온 그들은 주상복합 건물 앞에서 인사하고 헤어졌다. 못내 아쉬운 듯한 수연의 발걸음이 무거워보였다. 송이는 맞은편 정류장에 선 수연을 바라보며 그림자에게 물었다.
‘아저씨는 왜 그렇게 말이 없으세요? 딱 그거였다고요.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 아저씨가 민철한테 한 말이요. 말씀 나누시라고 멍석을 깔아놓으니 암말도 못하시고. 왜요? 첫사랑이라 부끄러웠던 거예요?’
‘무슨 소리야? 그게 아니라 무슨 얘기를 해? 기억도 가물가물해서 잘 생각도 나지 않고, 그런데 그렇게 얘기하라고 몰아세우니까 그게 되나? 괜히 어색하기만 하지.’
‘정말 그런 이유예요?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이런 저런 얘기하면서 예전 추억들을 떠올리면 생각날지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더 그랬죠.’
‘그래, 알아. 근데······.’
버스정류장으로 들어오는 버스를 보고 민철이 송이를 불렀다.
“송이야. 너의 집 가는 버스 왔는데 탈거야?”
“어, 알았어. 아저씨, 집에 가면서 얘기해요.”
‘잠깐, 운동은?’
‘또요? 저기 17층까지 오르고 내려오는데 힘을 다 써서, 오늘은 더는 못해요. 민철도 못한다고 할 걸요.’
그림자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송이는 민철에게 이어 물었다.
“너 운동할 수 있어?”
“운동? 그건 좀······. 아저씨, 내일 하시죠. 오늘은 저기 계단 오르내린 걸로 충분하잖아요.”
“보셨죠? 오늘은 그냥 패스요.”
‘그래, 그러자. 그럼 가면서 호신술 몇 가지 알려줄게.’
“그거 좋네요. 민철아, 아저씨가 호신술 알려주신데.”
“정말? 그럼 또 금남천으로 가야 하는 거야?”
“그러네. 아저씨, 오늘은 그냥 좀 쉬죠. 집으로 그냥 가요.”
‘아니야. 가면서 그냥 귀로 들어. 듣기만 해도 돼.’
“귀로 듣기만 하라고요?”
입 밖으로 낸 송이의 말에 민철이 되물었다.
“듣기만 하라고? 맞아?”
“응. 아저씨가 듣기만 해도 된다고 하셨어.”
“그래도 직접 몸으로 해봐야지. 어떻게 듣기만 해서 되겠어?”
“아저씨, 들으셨죠?”
‘그래, 직접 몸으로 하는 게 제일 좋지. 그래도 들으면서 머릿속으로 해보면 될 거야. 그게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건데, 말 그대로 상상훈련. 그것도 꽤 효과 있어. 그렇게 여러 번 머릿속으로 해보고 실제로 동작을 해보면 더 빨리 익힐 수 있을 거야.’
“그래요? 민철아, 그래도 된다고 하시는데. 들은 동작을 머릿속으로 해보면······.”
“이미지 트레이닝 말하는 거구나.”
말하기도 전에 뭔지 바로 알아듣는 민철이 송이는 의외라는 듯 바라보았다.
“어, 바로 알아들었네. 맞아.”
“그럼 오늘은 그걸로 마무리 하는 거지?”
민철의 질문에 송이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그렇죠? 아저씨.”
그림자는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만들어 보였다. 다음 버스가 들어오고 그들은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그림자에게 호신술을 차근차근 들으며 집으로 향했다.
***
차 뒷좌석에 파랑머리 이두철과 노랑머리 구대진이 박달만의 팔을 잡고 양옆으로 앉아 있다. 운전석에 앉은 칠구는 몸을 완전히 뒤로 돌린 채 달만을 쳐다봤다.
“이제 들어볼까?”
“형님, 이거 하나만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이, 뭔데?”
“절대 저한테 들었다는 말씀은 말아주십시오. 그것만 정말 부탁드립니다. 제발······.”
달만은 양손을 싹싹 빌며 애걸했다.
“알았어. 알았으니, 말해. 누구야?”
“보름 전인가 선글라스를 쓴 남자가 갑자기 제 앞을 가로막고 할 얘기가 있다는 게 아니겠습니까.”
“이 새끼 봐라, 머리 굴리다 걸리면 너 진짜 죽는다.”
엉덩이까지 들썩거리며 달만은 손사래를 쳤다.
“아닙니다, 진짭니다. 진짜로 모르는 사람이 갑자기 그래서 놀랐는데, 제 이름을 아는 겁니다. 그래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육팔형님을 아냐고 묻지 않습니까?”
“그래? 역시 육팔이 그 새끼였네.”
“아닙니다.”
“어? 아니라고?”
“예. 저도 처음에 육팔형님이 부르신 걸로 알고 그자를 따라갔는데 그자가 뜬금없는 제안을 하지 않겠습니까? 아시겠지만 한 여학생을 교통사고로 위장해서 죽여 달라는 거였습니다.”
“씨발, 그래서 누구냐고? 결론부터 말해. 아이, 이야기꾼 나셨네.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듣기로는 의원이라고 했습니다.”
“의원? 의원이면······ 어? 국회의원?”
“저한테 그런 제안을 하면서 엄청난 돈을 제시했습니다. 저도 모르게 바로 승낙해버렸고요. 사실, 이런 꼴로 사는 것보다는 낫게다 싶어서······. 근데 운 좋게 그 얘가 무단횡단을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신이 돕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쪽 눈썹이 치켜 올라간 칠구는 손을 들어 달만의 말을 끊었다.
“잠깐. 그러니까, 의원. 그 의원 나리 이름은 몰라?”
“저도 처음엔 육팔형님이 지시하신 줄만 알았습니다. 근데 얘기하는 걸 들어보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아서 누굴까 싶어 그 남자 나갈 때 몰래 뒤따라갔죠. 나가던 그 남자가 누군가에게 전화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몰래 숨어서 엿들었는데 의원님이라고만 하는 게 아니겠어요. 그래서 이름은 못 들었습니다. 혹시 몰라서 그 남자 차량번호를 적어놓았습니다.”
“오호, 자식. 잘했네. 그 번호 나한테 문자로 보내. 그럼 육팔이가 아니었다? 확실해? 너 이 새끼 거짓말이면 나한테 진짜 죽는다. 나중에라도 거짓말이라는 게 드러나면 그땐 죽는······ 아니, 아니지. 나머지 다리도 똑같이 만들어 준다. 알았어? 평생 그 꼴로 살기 싫으면 지금이라도 똑바로 말하는 게 좋아.”
험상궂은 얼굴로 협박하는 칠구에게 달만은 고개를 가로저어보였다.
“아닙니다, 정말입니다. 제 말을 믿어 주십시오. 분명, 의원님이라고 했고. 그 사람이 저한테 큰돈을 주겠다며 제안한 겁니다.”
“좋아. 오늘은 이 정도로 하지. 우리가 만났다는 사실은 아무도 몰라야 한다. 그 입 잘 간수하라고. 특히 술 마시고, 새끼야. 그럴 자신이 없으면 새끼야 술을 처마시지 마. 쯧. 알았어?”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달만은 명심하겠다고 대답했다.
“내려.”
“예, 감사합니다. 형님.”
노랑머리 대진은 차에서 내려 달만을 끄집어 내렸다. 그리고 다시 차에 올라탔다.
“이거, 이거. 골치 아프게 생겼네. 육팔이가 아니라는 거지?”
두철이 칠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의원이면 그때 그 의원 아닐까요? 기정이랑······.”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 그 새끼네. 아이, 새끼. 뒤처리 깔끔하네. 그래도 나한테 들켰다는 거지. 내가 누구야?”
“칠구형님이십니다.”
“그래, 칠구. 칠구라고. 황 의원을 잘 이용하면······. 그래그래. 야, 너희도 내려.”
“예? 아, 예. 형님.”
두철과 대진은 바로 차에서 내렸다. 석진도 차에서 내리려는 것을 칠구가 붙잡았다.
“야, 너는 잠깐 있고.”
“저요? 저는 왜?”
“이 새끼가, 있으라면 있어. 내가 할 얘기가 있으니까 그렇지, 새끼야.”
손을 번쩍 들어 올려 위협을 가하자 석진은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푹 숙였다.
“소희 반에 기정이 그 년하고 친하다고 했던 얘 있지. 너 몰라?”
“애리 말씀입니까?”
“걔가 애리야? 좀 알아봐, 기정의 일을 얼마나 알고 있는지. 알아볼 수 있지?”
“저는 같은 학교도······.”
석진의 말이 나오기 무섭게 칠구는 눈을 흘기며 손을 올렸다.
“이 씨······.”
“알겠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제가 아는 친······ 아니, 똘마니가 하나 있는데 그놈에게 알아보겠습니다.”
“그래그래. 알아보고 보고해.”
올렸던 손으로 석진의 머리를 쓸어내렸다.
“예, 형님.”
“이제 내려. 아, 너. 소희 이제 그만 만나라. 연락도 하지 말고.”
예라고 크게 대답하고는 석진은 차에서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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