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기억의 조각 찾기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송이의 휴대전화 너머로 박동식 경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저 송이에요. 방금 전에······.”
“어, 무슨 일이에요? 설마 그 사이에 기억이 난 거예요?”
“아니요. 그게 아니라 여쭤볼 것이 있어서요.”
“그래요. 뭔데요?”
“남궁이한 형사님의 집 주소를 알 수 있을까요?”
“집 주소요? 이한이 살던 집말이에요?”
“네.”
“미안한데······. 그걸 왜 묻는지 물어봐도 되겠어요?”
예상했던 질문이었지만 막상 대답하려니 긴장되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다행히 그림자의 코치로 송이는 곧바로 물음에 대답했다.
“그게요······. 병원에서 남궁 형사님 어머니한테 얘기를 들었는데······. 형사님이 병원을 옮길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깨어나시면 인사라도 드리고 싶은데 병원을 옮기면 어딘지 찾아갈 수도 없고 해서요. 그래서 집 주소를 알아두면 나중에라도 직접 찾아가서 인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요.”
“그럼, 어머님 집 주소를 알아보고 연락 줄게요.”
“아니요. 남궁 형사님이 살던 집이요. 아, 할머니한테 들었어요. 혼자 사신다고······.”
“그래요? 그래도 퇴원하면 혼자 못 있을 거예요. 그럼 어머니가 사시는 집에서 함께 있을 텐데 내가 알아보고 연락 줄게요.”
“그럼 감사하죠.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요. 아저씨······ 아니, 남궁 형사님의 집으로 가실지도요. 집 주소 모르세요?”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알았어요. 어머니께 집 주소 알아보고 연락 줄게요.”
“남궁 형사님이 사시는 집 주소는 아신다면서요? 그거 먼저 알려주시면 안 될까요?”
“안 되는 건 아닌데······. 뭐가 그렇게 급한 거예요? 혹시 나한테 숨기는 거라도 있어요?”
송이는 박 경위의 말에 덜컥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던 송이는 마른 침을 삼키며 말하려는데 박 경위가 웃으며 먼저 말을 이었다.
“아니에요. 그냥 하는 소리에요. 괜한 소리를 해서 학생만 놀라게 했네요. 내가 경찰이라 그래요. 학생이라 그런지 참 순진하네요. 범죄자가 그랬으면 딱 걸린 거예요, 그거.”
그렇게 말하고는 박 경위는 크게 웃었다. 송이는 아무 말도 못한 채 놀란 가슴만 쓸어내렸다. 수화기 너머로 잠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자 박 경위는 괜히 미안했는지 상황이 웃겨서 그런 거라며 송이 때문에 웃은 게 절대 아니라고 했다.
지레 짐작하여 사과하는 박 경위의 모습에 송이는 잠시 얼떨떨했지만 곧바로 이한의 주소를 보내달라고 조심스레 부탁했다. 문자로 보내주겠다는 박 경위의 대답을 듣고 전화를 끊은 송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민철이 물었다.
“집 주소 알아낸 거야?”
그제야 어색하게 굳어 있던 송이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응. 집 주소 알아내기 성공. 아저씨, 성공이에요! 성공!”
발을 동동 구르며 신나하는 송이가 민철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올렸다. 그러나 이번엔 민철이 들어오는 버스를 보고는 외면했다. 송이는 눈을 흘기며 손을 내렸다.
“저기, 집 가는 버스 왔는데, 안 타?”
“치, 잠깐만.”
콧방귀를 끼며 송이는 고개를 휙 돌렸다. 그 모습에 민철은 어깨를 으쓱하며 물었다.
“왜? 뭐야?”
“됐어. 잠깐만 기다려. 아저씨한테 말하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송이가 괜스레 얄미워 보인 민철은 뒤에서 몰래 꿀밤을 때리는 시늉을 해보였다.
‘아저씨, 바로 가보실 거예요?’
민철의 행동이 다 보이는 그림자는 웃음을 참으며 송이의 물음에 대답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왜? 배고파서 그래?’
‘뭐, 그것도 그렇지만······. 아저씨가 걱정 돼서요.’
‘내가? 왜?’
‘잘은 모르겠지만 아저씨······ 여자 친구 분 돌아가신 것 때문에 힘드신 거 아니에요? 그것 때문에 기억도 조금 돌아온 거고요. 그래서 아까 거기서도 힘들어하셨던 거잖아요. 그 상태로 가셔도 되는지 묻는 거예요?’
‘뭐야? 어쩜 그렇게 배려심이 깊어. 언제 또 내 마음에 왔다 간 거야?’
조심스레 자신의 감정을 걱정해주는 송이가 고마워 그림자는 괜히 더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우, 느끼해. 왜 자꾸 그런 느끼한 멘트를 던지시는 거예요? 저는······ 아니, 하지 마세요.’
‘미안, 나도 모르게 입에서 툭 튀어나왔네. 나 정말 바람둥이였나? 아니, 아니야. 나는 로맨티스트였을 거야.’
‘농담을 하시는 것 보니까, 괜찮은가 보네요. 제가 괜한 걱정을 했네요. 바로 가시죠.’
소리 내어 크게 웃던 그림자는 이내 진정됐는지 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고마워, 송이야. 생각해줘서. 이렇게라도 하면 조금이나마 나아질까 싶어서 그런 거야. 너라도 내 얘기를 들어주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내가 조금 이상하더라도 네가 좀 이해해줘. 내 집에 가서도 그러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그래. 아까 지수대에서 고통스러워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던 것도 그렇고. 내 예상이 맞는다면 또 그럴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말인지 알아요. 근데 지수대가 뭐예요? 지수대······ 아, 지능범죄 수사대를 줄여서 지수대라고 하는 구나.’
‘어, 그래. 아무튼 이해해줘서 고맙다.’
‘아니에요. 힘드시면 계속 농담하셔도 돼요. 제가 좀 참으면 되니까. 그래도 적당히 하시면 좋겠네요.’
그렇게 말하고는 웃는 송이를 보며 그림자도 옅은 미소를 지었다. 웃는 송이를 보고는 민철은 더욱 못 참겠는지 팔을 툭 치며 물었다.
“야, 뭐하는 거야? 뭘 그렇게 길게 얘기 하냐고? 나도 좀 알자. 어? 아우, 답답해 죽겠다. 집에 갈 건지 그거 물어보는데 뭐가 그렇게 오래 걸리는데? 좀 짧게 얘기하고 나한테도 좀 알려주면 안 될까? 어?”
“아휴, 정말. 속사포가 따로 없네. 뭐가 그렇게 답답한데? 얼마나 됐다고. 이야기하다 보면 길어질 수 있지. 네가 그림자 아저씨랑 얘기해봤어? 어? 모르면 좀 잠자코 있으라고,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말하기도 지친다는 듯 민철은 화를 누르고 말했다.
“알았다. 네 팔뚝 참 굵다. 그래서 어떻게 하신대? 집으로 가? 아니면 저녁 먹고 운동을 해? 어?”
“집으로.”
“또 집으로······. 아이, 참. 알았다, 알았어. 집에 무슨 맛있는 반찬을 숨겨났는지 모르겠는데 집에 가서 꼭 밥을 먹어야 한다니까, 나도······.”
밥 먹는 걸로 투덜대는 민철을 한심한 듯 쳐다보던 송이가 중간에 말을 끊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뭐? 뭐가 아니야?”
“우리 집이 아니라, 아저씨 집에 가야 한다고. 근데 문자는 왜 안 오는 거야? 그새 깜빡하신 건 아니겠지?”
민철은 놀란 눈으로 되물었다.
“아저씨 집에 간다고? 거기는 왜? 그럼 운동은 언제하고? 밥은 또 언제 먹어?”
“얘가 왜 이리 징징대. 아저씨 집에 갔다가 먹으면 되잖아. 아저씨의 기억을 되찾는 게 먼저 아니야? 너는 어쩜 네 생각만 해? 아무튼 남자들이란······ 아니, 민철이 너라는 남자는 참······.”
“아이고, 잘나셨네. 그래, 나는 나밖에 모른다. 그래서 너는? 너는 나를 생각이나 하냐? 배려하냐고? 아저씨랑 얘기하는 것도 내가 물어봐야 쬐금 알려주고. 둘만 꽁냥꽁냥 뭐라고 얘기하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말이야. 나를 옆에 세워둔 무슨 허수아비 보듯 하고. 너는 참 배려심이 넓으시네요. 어? 너는 너만 생각하는 거 아니고, 그거는?”
“얘가 정말 왜 그래? 그리고 보릿자루거든.”
“뭐가 보릿자루야?”
“허수아비가 아니라,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라고. 아저씨가 그러셨어. 알려면 좀 제대로 알고 말해.”
“야, 그게 그거지······. 아저씨는 또 뭘 그걸 다 지적하시고. 아무튼 내 편은 아무도 없어. 나 너무 외롭다.”
그림자에게 서운한 민철은 입을 삐쭉 내밀며 몸을 옆으로 돌렸다.
“아, 미쳐. 정말. 남자들 왜 이래?”
“뭐가? 나 정말 외롭다고. 이거 완전 왕따잖아. 나 이렇게는 더는 같이 못 다니겠어. 아저씨, 운동 다시 생각해봐야겠어요.”
“야, 그렇다고 무슨 왕따까지? 너무 나간 거 아니야? 아저씨도 그런 게 아니라고 하시고. 그냥 그게 생각나서 말한 것뿐이라고 하셨어. 그리고 네가 있어서······. 아······ 알았어요. 얘기할게요. 네가 있어서 아저씨 마음이 놓인다고. 너 아니었으면 지수대 안에도 못 들어갔을 거고, 아저씨 집 주소도 못 알아냈을 거래. 너의 활약이 대단했다고 그렇게 전해 달라하셨어.”
기분이 살짝 풀린 민철은 쭈뼛거리며 송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그래? 그럼, 네 생각은?”
“어? 내 생각? 그게······ 어······.”
우물쭈물 말을 못하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말했다.
‘송이야, 잘 대답해야 한다. 어? 너 괜히 솔직히 말했다가 민철이 다시 뒤돌아서면 그때는 나도 뭐 어떻게 할 수가 없어. 그러니까······.’
그림자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송이가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지. 맞아, 너 쫌 멋있었어. 고마웠고. 특히 지수대에서 내가 주저앉았을 때 대처도 잘했고. 그래, 그건 인정.”
“정말이지? 너 일부러 거짓말하는 거 아니지?”
송이는 눈을 흘기며 소리쳤다.
“아니거든. 내가 무슨 거짓말만 하는 애로 보이니?”
“알았어. 아무튼 버럭 버럭은······. 근데 지수대······ 아, 지능범죄 수사대를 지수대라고 하는 거야? 아저씨가 알려준 거야? 아니면 네가 줄여 말한 거야?”
“아니야. 지수대라고 한대.”
“그렇구나. 그럼 이제 갈까? 어떻게 가야해?”
“기다려봐. 아직 박 형사님한테 문자가 안 왔어.”
“아직도 안 온 거야?”
“응. 어, 잠깐만.”
휴대전화 진동이 느껴졌다. 박 경위가 남궁 형사의 집 주소를 보내왔다.
‘아저씨, 집 주소 알아냈어요.’
‘그래, 어서 가자.’
송이는 민철에게 남궁 형사의 집으로 가자고 말하고는 들어오는 버스에 올라탔다. 이한은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송이의 그림자로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그들이 도착한 종착지 앞에는 높은 고층 빌딩이 있었다.
“바로 앞이네. 정류장에서 엄청 가깝잖아. 지수대에서도 별로 멀지도 않고. 아저씨는 편하게 출퇴근했겠다.”
“그게 지금 할 소리니? 정말 쓸데가 없······ 아니, 빨리 가자고.”
송이는 민철의 팔을 잡아당기며 앞서 갔다. 그들이 들어선 빌딩은 주상복합 건물이었다. 아래는 상가들이 있었고 위로는 오피스텔들이었다.
“송이야, 저쪽인 것 같은데. 저쪽으로 가야 오피스텔로 올라갈 수 있나봐. 여기 좀 복잡하다. 처음 와보는 사람은 길 헤매겠어.”
“그러게. 아저······.”
송이는 말하다 속으로 말을 이었다.
‘아저씨, 여기는 기억나세요?’
‘아니. 나도 어디로 가야하는지 모르겠는데.’
‘그래요. 그럼, 잠깐만요.’
주소에 나와 있는 동수를 찾기 위해 두리번거리는 송이에게 민철이 한곳을 가리켰다.
“송이야, 저쪽이야.”
“찾았어?”
“어. 저쪽으로 가서 엘리베이터를 타면 될 것 같아.”
송이는 민철이 가리키는 곳을 보며 그림자에게 말했다.
‘아저씨, 저쪽이 맞는 것 같아요. 어서 가요.’
앞서 걸어가다 아무 말이 없는 그림자가 이상해 옆을 봤다.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송이는 멈춰 서서 뒤돌아봤다. 그림자는 뒤따라오지 않고 아까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다시 돌아가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왜요? 무슨 일이에요?’
“송이야, 뭐해? 여기라고!”
벌써 민철은 엘리베이터 앞에서 손을 들어 보였다. 송이는 잠깐만 기다려달라고 하고는 그림자에게 말했다.
‘아저씨, 무슨 일이에요? 여기가 맞는 거죠? 그래서 그래요? 아까 지수대에서 여자 친구의 사진 봤을 때처럼 그런 기분이 드는 거예요?’
‘송이야, 떠올랐어. 여기야. 내가 왜 그랬는지도 이제 알겠다.’
그림자의 목소리를 심하게 떨렸다. 울먹이는 듯 들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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