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하이파이브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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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뭐하는 겁니까? 지금 저를 의심하는 겁니까?”
“의심이요? 무슨 의심 말입니까?”
“아니, 내가 임 주임을 죽이기라도 했다는 거예요, 뭐예요?”
오 팀장은 언성을 높이며 방 형사에게 다가왔다.
“오오. 진정하세요. 오해하신 것 같습니다. 임승택 씨는 자살했습니다. 왜 타살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가 타살이라고 한 적은 없는데.”
마른침을 삼키는 오 팀장은 눈을 깜빡거리며 안절부절 못하는 눈치였다.
“뭡니까? 지금.”
“뭐가, 뭐예요? 그럼 나한테 왜 그런 걸 묻습니까? 알리바이라도 대라는 것처럼 들려서 그런 거 아닙니까. 그런 건 타살이라고 생각하고 묻는 거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방 형사는 손뼉을 탁 치며 크게 웃었다.
“아이고, 그래서······ 아닙니다. 그날 임승택 씨를 만난 사람이 누구인지 그걸 찾고 있어서 혹시나 사무관님이 만나신 건 아닐까 해서 물은 거죠.”
“뭐라고요? 그럼 지금까지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겁니까? 뭡니까?”
흥분하는 오 팀장에게 방 형사는 가라앉히라는 듯 손짓하며 말했다.
“그게 아니라 수사하는 저로써는 그렇게 한 명씩 수사대상에서 제외를 시켜야 해서 말이죠. 절차상 묻는 겁니다. 그러니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제가 알아보니까 그날 오후 4시부터 6시 사이에 자리에 안 계셨다고요.”
“참······ 잘도 알아냈네. 이거 참.”
입을 쩝쩝대며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있는 오 팀장에게 방 형사는 의심의 눈초리로 물었다.
“뭡니까? 정말 임승택 씨랑 같이 있으셨습니까?”
화들짝 놀라서는 오 팀장은 손을 내저었다.
“아니에요, 아니. 그날 좀 몸이 뻐근해서 사우나에 갔어요. 그 금남시청 앞에 사우나 하나 있잖아요. 가서 알아봐요, 내가 거짓말을 하는지? 대신 이것 비밀입니다. 아이, 참······.”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오 팀장은 입을 다셨다. 그 모습에 방 형사는 피식 웃어넘겼다.
“그러셨습니까? 그래서······ 알죠, 알아요. 공무에 얼마나 피곤하시겠어요. 이해합니다. 저도 가끔 땡땡이 치고 그렇습니다. 사람이 좀 그래야죠. 안 그래요? 누가 알아준다고, 그죠?”
“아이, 방 형사님이 또 그렇게 말해 주니 한결 마음이 가볍네요.”
오 팀장은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러니 협조 좀 잘 부탁드립니다. 사무관님 팀원들이 영 비협조적이라서 말입니다. 일하기가 너무 힘듭니다. 괜찮으시죠?”
“이거 뭐예요? 이해한다더니······.”
“물론, 이해하죠. 협조 좀 부탁드리는 건데, 안 됩니까? 그럼 나도 뭐······ 대한민국 경찰로 그냥 넘어갈 수가 없네요. 형사사건은 아니니 어쩔 수 없지만 경찰이라 공무원의 일탈을 그냥 보고 넘어가는 건 양심상······.”
은근히 협박해오는 방 형사의 손을 잡으며 말을 끊었다.
“아이, 왜 그럽니까? 또.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내가 팀원들한테 말해서 잘 좀 협조하라고 하겠습니다. 그럼 되겠습니까?”
방 형사는 싱글벙글 웃으며 오 팀장이 잡은 손을 토닥였다.
“아이고, 감사합니다. 역시, 천주교 신자시라 다르십니다. 그럼 가족들한테 가 보세요.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전화 좀 잘 받아주세요. 예?”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고는 오 팀장은 주차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방 형사는 수첩을 꺼내 뭔가를 체크하더니 성당 밖을 유유히 걸어 나갔다.
***
버스 정류장까지 달려온 송이에게 그림자가 뒤따라와서는 말했다.
“골반 아프다는 거 다 거짓말이지?”
“아니거든요. 진짜 아프거든요.”
이리저리 움직이는 그림자는 송이의 얼굴을 살피는 듯 보였다.
“이게 아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사람을 잘도 가지고 노네. 연기 잘하더라? 어쩜 그렇게 사람을 잘 속이냐? 깜빡 속아 넘어갔지 뭐야.”
“누가 먼저 장난을 쳤는데요? 정말 놀라긴 놀랐거든요. 울 정도는 아니었지만.”
“아무튼 대단해. 그런 쪽으로 도가 텄어. 내가 봤을 때 넌 그쪽으로 뭐라도 하면 잘 할 것 같다.”
송이는 팔로 엑스 자를 만들어보였다.
“진로상담은 그만하세요. 제가 알아서 해요, 그건.”
“그래, 잘 나셨네요. 참.”
“흥, 유치해 정말. 얘는 시간 맞춰 온다고 하더니 아직 인가 봐요.”
휴대전화를 꺼내 시간을 확인하는 송이에게 그림자는 우리가 일찍 나온 거 아니냐고 물었다.
“아니요. 딱 맞춰 나왔는데요.”
“그래? 그럼 금방 오겠지.”
“아무튼 아저씨는 민철한테 한 없이 인자하시네요.”
“그게 아니라······ 아이 참. 이 자식은 왜 이렇게 안 오는 거야? 약속한 시간에 딱 맞춰 와야지. 쯧쯧. 인간이 덜 됐어, 아주. 시간 약속 하나 못 지키는 거 보면 싹수가······.”
보란 듯이 일부로 민철의 흉을 보는 그림자가 웃겼지만 송이는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됐어요. 일부러 그렇게까지 할 필요 없거든요. 아무튼 능글맞아요.”
“능글맞은 게 아니라 위트가 있는 거지.”
자기가 말하고도 민망했는지 그림자는 크게 웃고 말았다. 송이도 힐끗 째려보며 따라 웃고 넘겼다. 버스가 정류장 앞에 섰다. 민철이 내려 바닥을 보며 웃고 있는 송이에게 다가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아저씨.”
“어머, 깜짝이야. 얘, 놀랐잖아?”
“뭘 그렇게 놀라? 매번. 인사한 거잖아. 뭐하다 그렇게 놀라 그리고?”
“뭐가? 아니야. 왜 이제야 와?”
“야, 10분밖에 안 늦었거든. 별······.”
“10분은 늦은 거 아니니? 늦었으면 미안하다고 먼저 말하는 게 예의지.”
“그······ 아휴, 그래. 미안하다.”
보자마자 툴툴대는 송이에게 민철은 뭐라고 한마디 하려다 말싸움해봐야 자신이 손해라 생각하고 바로 사과했다. 그림자는 민철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송이에게 말했다.
‘늦을 만 했네.’
‘그게 무슨 소리에요?’
‘딱 보면 몰라?’
‘뭘 보면 알아요?’
‘모르면 됐다. 그만 가자.’
‘치, 뭘 모른다는 거야.’
그림자는 민철의 머리 스타일과 옷을 보고 바로 눈치를 챘다. 오늘따라 유난히 외모에 신경을 쓴 것을 말이다. 하지만 송이는 알아보지 못했다.
“야, 뭐해? 아저씨가 뭐래?”
“아니야. 어! 버스 왔다. 저거 타.”
“어딜 가는데?”
“지능범죄 수사대.”
“거길 왜?”
“그냥 따라와.”
그렇게 말하고는 송이는 버스에 휙 올라탔다. 인상을 팍 쓰며 뒤따르던 민철은 송이 뒤에서 때리는 시늉을 해보였다. 버스에 탄 송이는 민철에게 지능범죄 수사대에 가는 이유를 설명했다. 그리고 그곳에 도착한 송이는 주위를 둘러보며 그림자에게 속으로 말했다.
‘여기가 맞아요?’
‘모르겠어. 기억이 안 나. 좀 더 둘러보고 말해줄게.’
‘그러세요.’
지능범죄 수사대 외곽을 돌며 송이가 말이 없자 민철이 답답한 듯 물었다.
“뭐야? 안에 안 들어가?”
“우리가 어떻게 들어가? 저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지능범죄 수사대 정문은 철문으로 굳게 닫혀 있었다.
“그럼 여길 왜 온 거야?”
짜증이 잔뜩 묻은 목소리로 민철이 묻자 송이도 덩달아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말했잖아. 아저씨 기억을 찾으려 왔다고.”
“여기서 본다고 무슨 기억이 떠오르겠어? 안으로 들어가야 뭐라도 생각나지 않겠냐? 안 그래요, 아저씨?”
“그걸 누가 몰라? 안에 못 들어가니까 그렇지. 아이, 참. 얘는.”
그렇게 말하며 송이는 힐끗 째려봤다.
“답답하네, 정말. 아! 잠깐만.”
갑자기 주머니를 뒤지던 민철이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는 지갑에서 명함을 꺼내며 말했다.
“아저씨, 박동식 형사님한테 전화해 보는 건 어떨까요?”
송이는 민철을 한심한 듯 쳐다봤다.
“뒷북도 참. 안 돼.”
“왜 안 돼? 아저씨랑 동료라며? 그럼 여기서 일하고 있을 거 아니야.”
“그게 아니라 아저씨가 아직 그 형사님을 못 믿으셔.”
“정말요?”
이마를 긁적이던 민철은 바닥에 드리운 그림자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상관없잖아요. 제가 전화해볼게요. 저번에 병원에서 기정이 문제로 연락한다고 했거든요. 기정이 일로 상의드릴 게 있다고 하면 안에 들어갈 수 있지 않을까요?”
민철의 솔깃한 제안에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그거 좋겠네요. 아저씨, 어떠세요?”
잠시 뜸을 들이다 그림자가 이내 말문을 열었다.
‘좋은 아이디어이긴 한데 기정의 일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아······ 또 그렇긴 하네요.”
그림자의 말을 듣지 못하는 민철은 송이를 빤히 쳐다보며 물었다.
“뭐가? 아저씨가 뭐라고 해?”
“아, 기정의 일을 이용하는 것 같아서 마음에 안 내키시는 것 같아. 듣고 보니 나도 그렇고.”
“그래? 아니, 기정의 일은 우리만으로 어떻게 할 수 없잖아. 누구의 도움을 받기는 해야 하는데······ 아저씨 동료면 믿······ 아, 아직 모르겠다고 하셨죠. 그래도 경찰인데 조언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냥 도움 받는 건데······.”
“아저씨, 어쩌죠? 민철이 말도 틀리지는 않는 것 같고요. 아이, 저도 모르겠어요. 뭐가 좋은 건지.”
“아저씨가 뭐라고 하셔?”
“아직, 잠깐만.”
고개를 끄덕이던 송이가 민철에게 그림자의 말을 전했다.
“일단 네 말대로 해보자고 하시네. 대신 아저씨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고. 그림자 말이야.”
“아, 알았어. 그럼 전화해볼게.”
“근데 오늘 일요일인데 괜찮을까?”
“어, 그러네. 맞다. 그럼 어떡해?”
“어, 알았어요. 아저씨가 전화해보래. 주말이라도 나와 있을 거라고.”
“그래? 알았어.”
명함에 있는 전화번호로 민철이 전화를 걸었다. 바로 남자 목소리가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왔다.
“여보세요?”
“아, 안녕하세요. 저는 송이 친구 김민철이라고 하는데요.”
“송이 친구? 아, 어제 병원에서······.”
“예. 기억하시네요.”
“근데 무슨 일로 전화했어요?”
“아니, 그때 말씀드렸는데······.”
“무슨······ 미안해요. 기억이 안 나서 그래요.”
“아, 네. 그럴 수 있죠. 같은 반 친구 일로 상의드릴 것이 있어서요. 그 친구가 성······ 그러니까······ 아, 지금 어디에 계세요?”
“어? 나요?”
“네.”
“지금 근무 중인데 그건 왜요?”
“그러세요? 잘 됐네요.”
“뭐가요?”
“제가 여기 근처에 와 있거든요. 그래서 생각나서 전화 드린 거예요. 지금 바로 찾아뵐 수 있을까요?”
“지금요? 이거······ 어쩌죠? 내가 좀 바쁜데······.”
“그러세요? 그럼 언제 시간이 괜찮으세요?”
“그게······.”
민철에게 가까이 서서 유심히 듣고 있던 송이가 나지막이 물었다.
“지금 안 된데?”
휴대전화를 손으로 가리며 민철이 말했다.
“어. 그러니까 말 시키지 마.”
“알았어. 치.”
말하려던 박 경위는 수화기 너머로 여자 목소리가 들려 누가 같이 있는지 물었다.
“네? 아, 예. 죄송해요. 송이가 물어봐서요.”
“지금 임송이 학생이랑 같이 있는 거예요?”
“아, 예.”
“송이 학생과도 연관된 일인 거예요?”
처음 무덤덤하게 전화를 받던 박 경위의 목소리에 활기가 도는 듯했다.
“송이도 같은 반이라 서요.”
“그래요. 그럼 오후에 내가 시간이 되는데 그때 볼까요?”
“정말요? 감사합니다.”
“뭐······. 그럼 밖에서 보죠. 어디가 편해요?”
“아니요. 제가 그곳으로 갈게요.”
“여기로요? 그러지 말고······.”
“아니에요. 바쁘시잖아요. 저희가 가는 게 좋죠. 송이랑 같이 가도 되겠죠?”
“그럴래요? 그래요, 그럼. 오후 4시쯤에 전화를 줄래요. 그때는 괜찮을 것 같은데 또 몰라서요. 미안해요. 그때 무슨 일이 생기질 몰라서 그래요.”
“아니에요. 알겠습니다. 연락드릴게요.”
전화를 끊은 민철은 송이에게 손바닥을 들어보였다. 하지만 송이는 그런 민철을 외면하며 고개 숙여 그림자를 봤다. 민철은 허공에 대고 하이파이브하고는 머쓱하게 손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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