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완전체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병원을 나온 송이에게 민철이 다가와 물었다.
“이제 어디로 가? 운동하기 전에 뭐 좀 먹어야 하지 않아?”
“저기, 민철아. 미안한데 내가 집에 가야해서 말이야. 밤에 다시 만나서 운동하면 안 될까?”
“그게 무슨 개똥같은 소리야? 그럴 거면 밤에 보자고 했으면 됐잖아.”
“너는 말을 또 그렇게······ 미안하다고. 집에 가서 할 일이 있어서 그래. 저녁 먹고 만나자.”
어이가 없었는지 민철은 헛웃음을 지으며 쳐다봤다.
“미안해, 미안하다고.”
사실대로 말하지 않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송이야, 솔직히 말해. 오해 없게.’
‘싫어요.’
‘왜?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매번 운동 핑계로 나오게 할 순 없잖아. 운동은 밤에 할 건데.’
‘정말······. 알겠어요. 잠깐만 시간을 주세요.’
고개 숙인 채 멍하게 있는 송이의 팔을 민철이 손가락으로 살짝 누르며 물었다.
“야, 뭐야? 그림자 아저씨랑 얘기하는 거야?”
놀라 움찔한 송이는 찔린 팔을 한쪽 손으로 털어냈다.
“뭐하는 거야? 잠깐만 기다려.”
“뭘 또 그렇게까지······. 그냥 말해주면 안 돼? 뭐라고 하시는데? 너 좀 이상하다고 그러시지?”
“이게 말이라고 막······. 내가 뭐가 이상해?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그 이유가 뭐냐고?”
“몰라. 아이, 정말. 사실은······ 그림자 아저씨가 너의 도움을 받으라고 해서······. 얘기했잖아? 기정이 일 조사한다고. 그 일로 내가 위험할까봐 아저씨가 너를 부르자고 해서 부른 거야.”
송이의 말에 민철의 입매가 올라갔다.
“뭐야, 그런 거야? 그럼 그렇다고 처음부터 말하지. 역시 내가 필요하신 거구나. 내가 그래도 한 싸움 하니까······.”
“됐거든. 그새를 못 참고 잘난 체는······. 아무튼 남자들은 유치해 정말.”
혼잣말처럼 송이가 중얼거린 것을 민철은 듣지 못했다.
“야, 뭐가?”
“됐어, 아니야. 도와줄 건지 아닌지나 빨리 말해.”
민철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게 지금 부탁하는 거야?”
“싫으면 말던가?”
그래도 송이는 찬바람을 일으키며 고개를 휙 돌렸다. 그 모습에 민철은 어이가 없다는 듯 흘겨보며 말했다.
“와아, 배짱도 이런 똥배짱이 없어요. 아저씨 다 듣고 계시죠? 아저씨도 참 힘드시겠어요. 이런 애랑 다니시려니······.”
“야, 김민철.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대답하라고. 할 건지 말 건지?”
“싫은데.”
살짝 놀란 듯 송이는 당황하며 되물었다.
“뭐? 싫어?”
“당연하지. 이렇게 사람을 개 무시하는데 너 같으면 하겠냐? 부탁을 하는 쪽은 내가 아니라, 너라고. 너 참 성격 특이하다. 그냥 부탁을 해, 정중히. 내가 너한테 뭘 바라지도 않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말.”
하고 싶지 않았던 부탁을 겨우 꺼냈는데 정중히 다시 부탁을 하라고 하니 송이는 속이 답답해져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싫다고 했는데 아저씨가 굳이 그러라고 해서 이러는 거뿐이야.”
민철은 바닥에 드리운 이한의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물었다.
“아저씨가 그랬다고? 정말? 네가 싫은데 굳이?”
“아니······ 그래, 아저씨가 그러는 게 좋겠다고 하도 그러셔서 어쩔 수 없이 그러겠다고 한 거뿐이라고. 정말이야.”
“그러세요? 참, 대단한 자존심이다. 그래, 그래야 임송이지. 좋아. 아저씨한테 무술을 배워야 하니까, 내가 이번도 그냥 넘어가 준다. 아저씨, 그렇게 할게요. 아저씨가 부탁하시는 거니까, 아저씨 부탁 들어드리는 거예요. 송이 부탁이 아니고요!”
재차 강조라도 하듯 민철은 바닥에 대고 크게 말했다.
“치! 유치해, 정말.”
말은 그렇게 했어도 송이는 모른 척 넘어갔다.
“그럼 밤에 나오기 전에 미리 전화해. 그래야 내가 시간 맞춰 너희 집 앞으로 갈 수 있으니까. 이제 가자.”
“아니야, 여기서 헤어져.”
“애가 정말. 아저씨가 널 보호하라고 옆에 있으라는 거 아니야. 집까지 데려다 줄게. 그게 내 임무인 것 같으니까, 그렇죠? 아저씨.”
그림자는 손으로 오케이를 만들어 보였다.
“저길 봐. 아저씨가 그렇다고 하잖아. 그러니까 앞장서. 가자.”
“그래, 고마워.”
“마음에도 없는 말은 안 해도 돼. 형식적으로 할 필요 없어.”
진심도 몰라주고 퉁명스럽게 말하는 민철에게 삐친 송이는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됐어. 알았으니까, 조용히 가.”
콧방귀를 끼며 송이는 앞으로 빠르게 나아갔다. 민철은 그런 송이를 이해 못한다는 듯 흘겨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버스를 타고 가는 중에도 송이와 민철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림자는 한동안 지켜보다 더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러는 거야? 민철은 널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 같은데 네가 계속 밀어내는 것 같아 보여. 집에 무슨 일로 가는지 그냥 말해주면 되는 거였잖아.’
‘그럼 엄마에 대해 말해야 하잖아요. 싫어요. 아까도 싫다고 말했잖아요.’
‘아까 그게 그 소리였어? 나는······. 근데 그게 왜 싫어? 그냥 말해. 네가 힘든 건 사실이고. 네 엄마가 다른 엄마와 다른 것뿐이잖아. 그러면 민철도 널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데.’
‘이해요? 아니요. 놀릴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동정하겠죠. 아저씨도 절 동정하는 것뿐이에요. 이해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아무튼 싫어요. 누구한테도 말하기 싫다고요. 내 엄마가······ 아니, 아니에요.’
더는 얘기하기 싫은 듯 송이는 고개를 돌렸다.
‘그래, 알았어. 그래도 민철한테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다 보셨잖아요. 잘난 체나 하고. 말은 왜 그렇게 재수 없게 하는지······.’
‘네가 그렇게 듣는 건 아니고?’
‘역시 아저씨도 남자라는 거죠? 됐어요. 말 안 해요.’
‘아이고. 그렇게 싹둑 잘라 말하지 좀 마. 그거 듣는 사람은 기분 좋지 않을 거야. 나도 널 안다면 아는 사람인데 마음이 좋지 않다.’
이미 마음의 문을 닫은 듯 송이는 아무 말이 없었다.
‘내가 남자라서 민철이 편을 드는 게 아니야. 아니, 편 자체를 드는 게 아니야. 민철도 그렇고 너도 그렇고 서로에 대해 뭔가 크게 오해를 하고 있는 것 같아서 그래. 예전 일로 그런 것 같은데······. 그때 나한테 얘기한 일 외에 뭐가 더 있었던 거지? 그렇지?’
하지만 송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창밖만 바라보았다.
‘좋아, 말 안 해도 돼. 대신 내 얘기는 들어.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은 내가 몰라서 그런 거니까, 그건 이해해주고. 누구 편을 드는 건 절대 아니야. 난 너희 둘이 사이좋게 지냈으면 하는 마음에서 한 말이야. 그것만 알아줘. 말하고 싶을 때 언제든지 하고. 난 어른이니까, 나한테는 그래도 돼. 그래도 민철은 너랑 동갑이잖아. 그러니까 민철한테는 너한테 하듯이······ 아니, 네가 타인에게 존중받고 싶은 그 마음처럼 그렇게 해줘. 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역지사지는 뭔지 알겠지? 아휴, 그래. 나도 이제 입 닫는다.’
여전히 창밖만 바라보는 송이를 올려다보던 그림자도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민철은 귀에 무선이어폰을 낀 채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송이의 집 앞 정류장에 버스가 정차할 때도 송이와 민철은 서로 알아서 내렸고, 송이의 집 앞까지 오는 동안에도 그들은 서로에게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송이가 집으로 들어가려는 그때가 돼서야 민철이 말을 걸었다.
“나오기 30분 전에 미리 전화해. 그래야 내가 맞춰서 올 수 있어.”
“알았어.”
마지못해 대답한 송이는 민철을 쳐다보지도 않고 집으로 들어갔다. 민철은 송이가 연립주택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난 뒤 돌아서며 무선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그리고 노래를 흥얼거리며 버스정류장으로 가는데 저 멀리서 송이엄마가 오는 것이 보였다. 민철은 그날의 기억이 떠올라 잠시 머뭇거리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는 모른 척 지나쳤다.
송이엄마가 지나간 뒤로 민철은 짧게 한숨을 내쉬고는 정류장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는데 수상한 남자가 민철의 눈에 들어왔다. 무심코 지나가려 했지만 그 남자의 행동이 심상치 않아 조심스레 뒤에서 지켜봤다. 분명 송이엄마의 뒤를 쫓는 듯 보였다. 송이엄마가 멈칫할 때마다 그도 멈춰 서서는 딴 짓을 했다.
이 사실을 송이에게 알려야 하나 민철은 잠시 고민하다 자신이 잘못 본 것일 수도 있고, 쓸데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는 것 같아서 그냥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
오색 미러볼 조명이 현란하게 돌아가는 아담한 룸에 노랫소리가 크게 울렸다. 무대 앞 노래방기기에서 음악소리가 빵빵 울리고 그 소리에 오진태 대표가 넥타이를 머리에 두건을 매든 묶은 채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 앞 테이블 위에는 도무철 변호사와 여자가 춤을 추며 몸을 부비고 있었다.
그 아래는 술잔을 들고 시시덕거리며 웃고 있는 남자와 그에서 안긴 듯 찰싹 붙어 앉아 있는 여자가 있었다. 노래 한곡조가 끝나고 오 대표가 들어와 앉으며 술잔을 들어 건배사를 외쳤다.
“서소동 개발 대박을 위하여! 미래은행 컨소시엄 낙찰을 위하여!”
건배사에 남자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제창했다. 그리고는 술잔에 든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여자와 부둥켜 앉아 있던 남자가 오 대표 옆으로 다가와 말했다.
“우리 오 대표님, 노래를 아주 야무지게 하시네요.”
“그래요? 아이, 우리 본부장님만큼 하겠습니까? 제가 조금 실력이 부족합니다.”
오 대표는 파안대소하며 본부장이라는 그에게 술을 따랐다.
“에이, 별말씀을요? 저보다 우리 대표님. 우리 오진태 대표님이 훨씬 잘하십니다.”
본부장은 그렇게 말하고는 받은 술을 단숨에 들이켰다. 다시 그 잔을 오 대표에게 건네며 술을 따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도무철 변호사가 술잔을 내밀며 끼어들었다.
“이럴 실겁니까? 저만 빼고. 저도 한잔 주십시오, 본부장님.”
“아이고, 우리 도 변을 깜빡했네. 자, 받아요. 도 변.”
본부장은 도무철 변호사에게 술을 따르며 말을 이어갔다.
“자, 이 잔 받고 이번엔 도 변이 부를 차롑니다.”
“예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변호사는 받은 술을 들이켜고는 그 술잔을 본부장에게 건넸다. 그리고 술을 따르며 말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본부장님. 정말 우리 대박 나겠지요?”
“그건 제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닙니까, 오 대표님?”
“대박입니다. 대박! 이번 입찰이 잘만 되면 돈방석에 앉는 겁니다. 에헤라디야.”
탈춤을 추듯 양 팔을 휘날리며 오 대표는 크게 웃었다. 그 모습에 본부장도 덩달아 춤을 추었고 변호사도 무대로 나가 노래를 불렀다. 흥겨운 뽕짝 노래에 오 대표와 본부장은 무대로 뛰어나와 얼싸안으며 막춤을 추기 시작했다.
한참을 기분 좋게 노래와 춤을 추며 시간을 보내던 그때 룸으로 육팔이 들어와 오 대표에게 귓속말을 하고는 나갔다.
“아이고, 내 동생이 왔나 봅니다. 도 변, 잠깐 노래 좀 꺼. 아가씨들도 내 보내고.”
“네. 대표님.”
변호사는 노래를 끊고 아가씨들은 서둘러 내보냈다. 아가씨들이 나간 뒤로 육팔이 다시 들어왔고 그 뒤로 선글라스를 머리 위에 꽂은 남자가 들어왔다. 오 대표는 그를 보자마자 두 팔을 벌려 안았다.
“이제 온 거야? 동생.”
“죄송합니다, 형님. 사정이······.”
“혹시 모시고 온 건가?”
“물론이죠.”
“정말? 좋았어. 역시 내 동생이야. 아, 여기는 미래은행 영업본부장님이셔. 인사해.”
동생이라는 남자는 본부장에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미키 정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본부장님.”
“예, 반갑습니다. 나는 박민도라고 합니다.”
“아이고, 제가 더 반갑죠. 오늘 제가 풀로 잘 모시겠습니다.”
미키 정은 그렇게 말하며 능글맞게 웃음 지었다. 박 본부장도 화색이 돌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잠시 그들을 지켜보던 오 대표가 끼어들었다.
“저기, 이제 인사들 했으니 본론으로 들어갈까? 동생······ 아니, 여기선 정 대표라고 해야지. 그래, 정 대표. 모시고 오신 분은 어디에 계셔?”
“예, 대표님. 육팔이가 모시고 올 겁니다.”
미키 정이 눈짓을 보내자 육팔은 룸 밖으로 뛰어나갔다. 누가 왔는지 궁금한 본부장이 조심스레 물었다.
“누가 또 오는 겁니까?”
“미래은행 컨소시엄의 완전체. 마지막 퍼즐을 맞춰줄 분이 오십니다.”
“오호, 그 분이 직접 오신 겁니까?”
“아마 그건 힘들 것 같고. 대리인이 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래요. 그러겠네요.”
때마침 문이 열리고 세련된 정장차림의 여자가 들어왔다.
독자 여러분의 추천, 댓글 그리고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Comment '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