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미필적 고의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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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에서 기다리고 있던 송이 앞으로 그림자가 드리웠다. 하지만 한참을 말없이 있는 그림자에게 송이가 먼저 말을 걸었다.
“오셨으면 말을 하셔야죠. 왜요?”
‘아······ 그게······.’
자신이 본 상황을 설명하기가 난처한 듯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그림자는 자신의 얼굴이 보이지 않는 것이 오히려 다행이라고 잠깐 생각했다.
“왜요? 무슨 일이 있는 거예요?”
‘아니야, 기정이랑은 통화는 됐어? 계속 안 받아?’
“아까 말씀드렸잖아요. 민정이가 집에 가면······.”
그림자가 그제야 생각난 듯 말 중간에 끼어들어 아직 이냐고 물었다.
“조금 있으면 집에 도착할 거예요. 객실에서는 정말 아무 일 없었던 거예요? 소희랑 그 일진······ 걔가······.”
일진의 이름을 말 못하는 송이 대신 민철이 강석진이라고 말해주었다. 그 소리에 송이가 깜짝 놀라 그림자에게 말하는 자신의 말이 들리는 거냐고 물었다.
“뭐라는 거야? 너 계속 소리 내서 말하고 있었어.”
“아, 그러네. 아무튼 소희랑 석진이가 왔잖아요. 왜 온 거예요?”
‘어? 그게 그러니까······. 아이,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무슨 일이 있었긴 있었군요. 무슨 일인데 그러세요?”
찹찹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림자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송이가 들고 있던 휴대전화에 진동이 울렸다. 바로 전화를 받았다.
“민정아, 기정이는?”
떨리는 민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야······. 어쩌면 좋아, 기정이가 없어.”
“없다니? 어디 간 거야?”
“아니, 집에 없어. 엄마도 기정이가 언제 나갔는지 모르신대.”
“왜? 왜 기정이가······.”
놀란 얼굴로 민정에게 묻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송이야, 그 깡패 놈이 기정이를 부른 것 같다.’
“깡패요? 객실에 있는 그 깡패 말이에요?”
‘어, 맞아.’
그림자에게 말한 송이의 말을 민정이 듣고 깜짝 놀라 물었다.
“송이야, 그게 무슨 소리야? 깡패라니? 기정이가 그때 그 깡패들한테 간 거야? 그럼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 아니야. 민정아. 잠깐만 기다려줘.”
송이는 입을 틀어막으며 속으로 그림자에게 말했다.
‘어떡하면 좋죠? 경찰에 신고해야 할까요?’
‘나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발을 동동 구르며 송이가 소리쳤다.
‘아저씨가 모르면 누가 알아요?’
다행히 입 밖으로 낸 소리가 아니어서 발 구르는 소리만 계단에 울릴 뿐이었다. 송이가 한참 말이 없자 민정이 답답해 불렀다.
“송이야, 송이야. 그림자 아저씨랑 얘기 중인 거야? 뭐라고 그러셔? 기정이가 어디에 있는지 아는 거야?”
“민정아, 미안해.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기정이가 협박을 받고 집 밖을 나간 것 같아. 일단 무슨 일인지 알아보고 다시 전화 줄게.”
“응, 알았어. 빨리 연락 줘. 엄마가 걱정이 많으셔.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시고.”
“알았어. 조금만 기다려줘. 미안해.”
“아니야. 네가 왜 미안해. 알았어, 응.”
송이는 전화를 끊으며 그림자에게 말했다.
‘객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예요? 기정이가 사라진 거랑 연관이 있는 거죠?’
그림자가 대답하지 못하고 있는데 민철이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송이야, 기정이가 집을 나왔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던 송이는 민철을 올려다보았다.
“기정이가 민정 집에 없다고 해서. 그림자 아저씨는 저 깡패들이 기정이를 부른 것······”
송이가 말하던 중에 갑자기 그림자가 떨어져 나와 계단으로 향했다. 송이는 급히 그림자를 불러 세웠다.
‘어디 가세요?’
‘다시 객실로 가봐야겠어.’
‘도대체 거기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요? 왜 말을 못하세요?’
‘그건 나중에 얘기해줄게. 지금은 그 깡패 녀석을 놓치면 안 될 것 같아. 분명 기정이랑 만날 거야.’
‘기정이가 여기로 온다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곳에서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아서. 가서 좀 더 지켜봐야겠어. 보는 것도 곤욕이다, 이거.’
‘곤욕이요? 무슨 일인데요?’
‘아, 아니야. 나중에······.’
그 말을 끝으로 그림자의 말이 들려오지 않았다. 송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답답한 마음에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송이를 더욱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던 민철이 어깨를 흔들며 물었다.
“왜? 지금 뭔가 잘못 되고 있는 거야? 아저씨는 뭐라고 하는데?”
“아저씨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대.”
“뭐? 정말이야?”
송이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럼 어떡해? 아저씨도 어쩌지 못하면······. 근데 객실에서는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아저씨가 뭐라고 말 안 해?”
“말을 안 하시네. 나중에 얘기해주겠대.”
“그것도? 아휴, 난 너무 답답하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하나도 모르겠어.”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객실 앞에서 서성거리는 대진의 눈을 피해 그림자는 객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앉아 있는 기정아빠를 칠구가 발로 걷어차는 모습이었다. 그림자는 벽에 붙어 지켜보았다.
기정아빠에게 죽을 수 있다는 협박을 하더니 칠구는 실실 비웃으며 객실을 나갔다. 석진과 소희도 키득거리며 객실을 나서다 소희가 벽에 어둑한 것이 드리운 것을 보고는 깜짝 놀라며 객실을 뛰쳐나갔다.
그림자는 벽에서 나와 쓰러져 있는 기정아빠에게 다가가 상태를 확인했다. 배를 움켜쥐고 있는 그는 바닥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울분에 찬 목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그림자는 잠시 기정아빠를 살펴보다 객실을 나와 송이에게 말했다.
‘송이야, 깡패들이 객실을 나갔어. 여기로 기정이가 올 것 같지는 않아. 뒤를 좀 더 쫓아야겠다.’
‘언제까지 뒤만 쫓을 건데요? 기정이가 확실히 깡패를 만나는 건 맞아요?’
조금은 신경질적으로 말하는 송이의 기분을 이해한다는 듯 그림자는 차분하게 말했다.
‘송이야, 나도 지금 상황에서는 확답을 줄 수가 없어서 미안하다. 저들을 뒤쫓아 가서 상황을 좀 더 지켜봐야할 것 같아서 그래. 그러니까······.’
‘아니, 알았어요. 내려갈게요.’
송이도 방법이 없다는 걸 알고 답답함에 한 소리였기에 뭐라고 더는 하지 못하고 그림자의 말을 따랐다. 송이와 민철은 1층으로 내려가 칠구와 일진들을 찾았다. 그들은 1층 로비로 나와 야외주차장으로 가고 있었다. 송이는 그림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 그들 뒤를 조심스럽게 쫓았다.
칠구가 야외주차장으로 나오자 한 차량에서 이두철이 내려 뒷좌석 문을 열고 기다렸다. 칠구는 두철의 어깨를 토닥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대진은 조수석으로 가서 탔고 소희와 석진은 어찌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보고 있을 때 뒷좌석 창이 내려오며 칠구가 말했다.
“너희들은 이제 돌아가. 오늘 있었던 일은 모두 잊고. 그 입 조심해라, 어?”
석진은 차에 가까이 다가가 고개를 꾸벅 숙이며 대답했다.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형님. 조심히 가십시오.”
“야, 너. 이리 와봐.”
칠구는 소희를 가리키며 손짓했다. 소희는 겁에 질린 얼굴로 다가섰다.
“야, 저놈하고 헤어져. 어? 시간되면 나 보러 오고. 여기.”
소희에게 휴대전화를 건네는 칠구의 한쪽 눈이 찡긋했다.
“번호······?”
“그래, 네 번호 찍으라고.”
부끄러운 듯 소희는 고개를 숙이며 휴대전화에 번호를 입력하고는 건넸다.
“저런 자식보다 내가 훨씬 낫지. 안 그래? 내가 연락할게. 그럼 들어가.”
소희는 얼떨떨하게 미소를 지어보였다. 차가 출발하자 석진은 다가와 화를 내며 말했다.
“야, 너 정말 나랑 헤어질 거야?”
“너도 남자니? 됐어. 꺼져!”
매몰차게 소리치며 소희는 뒤돌아서 갔다. 석진도 소리치며 화를 냈지만 뭐라 더 하지 못하고 체념한 듯 뒤돌아섰다. 송이와 민철은 차가 출발하는 것을 보고 곧바로 뒤따라 달려가 호텔 앞에 대기하고 있던 택시에 올라탔다. 앞서 나간 차를 뒤쫓아 달라고 했다.
택시가 출발함과 동시에 불쑥 그림자가 드리우며 송이 옆으로 찰싹 붙었다.
호텔에서 나오던 소희는 송이와 민철이 택시를 타고 가는 것을 보았지만 칠구를 쫓는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하고 둘의 관계를 의심했다. 이번에도 검은 물체가 택시 안으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놀랐지만 헛것을 봤다고 여겼다.
차가 호텔을 빠져나오자 칠구가 입을 열었다.
“두철아, 잘 모셨냐?”
“아, 예. 말씀하신 호텔로 가니까 호텔 앞에서 의원님 보좌관이라는 분이 기다라고 계셨습니다.”
“그랬구나. 그래서?”
“같이 따라 올라가려고 했는데 보좌관이 기정만 들여보내겠다고 하셔서···”
“그럼 의원 양반은 못 봤고?”
“예. 잘못한 겁니까?”
“아니. 잘못은 아닌데······. 그래서 걔는 사고 안쳤고?”
“조금 울기만 했고 난동 피지는 않았습니다. 형······ 그러니까······.”
두철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 머뭇거리자 칠구가 욕을 뱉어내며 그냥 형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아, 예. 아휴. 이제 좀 속이 뚫린 것 같네요. 형님하고 통화한 뒤로는 아무 말 없이 잘 따르던데요. 보좌관 따라서 올라가는 거 보고 왔습니다.”
“그래그래. 어서 가자. 의원 난리한테 얼굴 도장은 찍어야지.”
큰소리로 웃던 칠구는 등을 좌석등받이에 붙이며 다리를 꼬아 앉았다. 두철은 룸미러로 칠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형님, 이제 기정은 어떻게 되는 겁니까? 클럽에서 일하게 되는 겁니까?”
“에이, 아직은 안 되지. 나이가 있는데······. 일단 잘 데리고 있으면 쓸모가 있을 것 같다. 뭐, 의원 양반이 또 부를 수 있으니 잘 데리고 있어야겠지. 네들이 잘 감시하고. 쓸데없이 걔 건들지 말고, 알았어?”
“물론이죠. 저희 그런 놈······ 아니, 아닙니다. 절대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래그래. 이제 다 왔나?”
“예, 저기 보이는 호텔이 그곳입니다.”
“그래, 호텔 앞에 차 세우고 너희는 안 보이는 곳에 가 있어. 괜히 의원 양반 앞에 너희들 보이면 내 얼굴이 뭐가 되겠냐? 어?”
“알겠습니다. 어!”
뭔가를 보고 두철이 놀라자 칠구가 좌석에서 등을 떼며 물었다.
“왜? 왜?”
“아니, 저기 기정이······.”
“어디?”
칠구는 앞좌석으로 고개를 빼 앞 유리로 밖을 살폈다. 두철은 정지신호에 차를 세우며 기정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기정은 횡단보도로 걸어오고 있었다.
“쟤는 뭐야? 왜 벌써 나와서······ 아이, 의원 양반은 벌써 간 거야? 야, 빨리 출······ 아니다.”
대진에게 손짓하며 칠구가 지시했다.
“야, 너 내려서 쟤 데리고 와. 빨리.”
“아, 예. 형님.”
차에서 내린 대진은 정차 중인 차들 사이를 지나 인도로 들어섰다. 그때 신호등 앞에 도착한 기정은 횡단보도를 건너기 시작했다. 녹색등이 깜빡이고 있어 금세라도 적색등으로 바뀔 듯 했지만 기정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반대쪽으로 건너가는 기정을 보고 대진은 횡단보도를 향해 달려갔다. 대진이 신호등 앞에 도착했을 땐 신호가 적색등으로 바뀐 뒤였다. 차들이 움직이기 시작해 횡단보도로 들어설 수 없었다. 갑자기 경적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기정은 그제야 반대편 차도를 걷고 있었고 정차해 있던 차들이 경적을 울린 것이었다. 경적 소리에도 기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터벅터벅 앞만 보고 걸어갔다. 기정의 눈은 초점을 잃은 듯 흐리멍덩한 눈빛으로 어디를 보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칠구를 뒤쫓아 오던 송이의 일행도 경적소리에 횡단보도로 눈이 갔다. 그제야 기정이가 그곳에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저기요. 기정이에요. 아저씨······ 아!”
자신도 모르게 송이는 입 밖으로 소리를 내고 말았고 기사아저씨는 자신을 부른 줄 알고 대답했다.
“왜요? 여기선 못 내려요. 저기 횡단보도 앞에서 내려줄게요.”
“아, 예.”
송이는 기사아저씨에게 대답하고는 속으로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보셨죠?’
‘어, 봤어. 어딜 가는 걸까?’
‘어딜 가는 게 아니라 어디서 오는 것 같은데요. 빵빵 소리에도 저렇게 그냥 걷고만 있잖아요.’
‘그러네. 무슨 일이······ 어!’
“안 돼!”
“송이야, 눈 감아!”
민철은 송이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자신의 품으로 안았다.
“아이고, 사고가 났네. 그러니까 왜 빨간불에 건너······. 아무튼 요즘 것들은······ 쯧쯧.”
그랬다. 기정이가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널 쯤 마지막 차선에서 트럭이 기정을 보지 못하고 달려왔고 기정은 그 트럭에 부딪혔다.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송이는 민철의 손을 뿌리치며 차에서 내리려고 했다. 민철이 팔을 잡으며 말렸다.
“야, 위험해. 차가 달리고 있다고.”
“그래요, 학생. 갑자기 문을 열려고 하면 어떡해? 잠깐만 기다려요. 근데 저기 사고 난 아가씨랑 아는 사이에요?”
대답하지 못한 채 울먹이는 송이를 민철은 토닥이며 대답했다.
“네, 아저씨. 반 친구에요. 빨리 좀 세워주세요.”
“아이고, 여기서 만나기로 했나 보네. 그래요. 알았어요.”
택시기사는 급히 차를 갓길에 세웠다.
“고맙습니다.”
민철은 송이를 챙기며 택시에서 내렸다. 한동안 그림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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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
- 작가의말
※ 미필적 고의 : 어떤 행위로 범죄 결과가 발생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행하는 심리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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