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 로망스클럽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으음······ 어!”
송이는 누군가 자신의 입을 틀어막는 그 순간 화재가 발생해 아빠가 죽은 그날 일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왜 그날이 떠올랐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지만 그걸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그림자에게 구조요청을 했다.
입을 막고 있던 손이 천천히 떼어지며 민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바로 속으로 그림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그리고는 민철을 째려보며 말했다.
“깜짝 놀랐잖아.”
“조용히 하고, 잠깐만. 저기를 봐.”
“어디를?”
“저기 말이야.”
민철이 가리키는 곳에 이두철과 구대진이 로망스클럽으로 오고 있었다. 그 중 대진이 뒷골목을 유심히 살피고 있었다.
“그림자 아저씨랑 얘기하는 건 알겠는데 큰일 날 뻔했어.”
“뭐가? 그냥 아무 일 없이 지나가는 걸 수 있잖아.”
“저걸 봐도 그 소리야?”
두철은 초조한 듯 클럽 앞을 서성거리며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슬쩍슬쩍 봤다. 그런 두철을 지켜보는 대진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누가 있는지 살피는 듯했다. 그런 대진의 눈에 송이가 눈에 들어왔고 민철은 다급히 송이를 뒤로 끌어당겼다.
“이리 오라고. 그러다 들키겠다.”
“어, 정말 큰일 날 뻔······.”
손을 가슴에 올리며 송이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선가 노랫소리가 들려왔고 휴대전화 벨소리였는지 두철은 곧바로 전화를 받았다. 송이와 민철은 숨을 죽이고 통화내용에 귀를 기울였다.
대진은 뒷골목이 수상해 다가가려다 통화소리에 멈칫해서는 두철을 보았다. 다시 뒷골목을 살피려 발을 떼려는데 전화를 끊은 두철이 말을 걸었다. 다행히 대진은 두철을 따라 로망스클럽 안으로 발길을 돌렸다.
‘아저씨, 염색머리 일진들이 들어가요.’
‘어, 고마워.’
그림자에게 그 사실을 알리고는 송이는 민철에게 물었다.
“너는 여기까지 무슨 일로 온 거야?”
“무슨 일은? 바로 이거 때문에 온 거지.”
“이거?”
“그래, 너의 이런 덜······ 아니, 네가 위험할 것 같아서. 사실은 하굣길에 너한테 물어보려고 했거든, 운동은 언제부터 시작하는지. 근데 네가 급하게 나가버리는 바람에······.”
“무슨 소리야? 애들이 따라왔을 때 너도 뒤에 있는 거 봤는데. 그때 물어보면 됐잖아.”
머쓱한 민철은 괜히 뒷머리를 매만지며 미간을 찌푸렸다.
“아이, 봤어? 그래, 그때 물어보려고 했는데 애들 있는데서 말하기 그래서. 안 그러냐? 너랑 같이 운동한다고 하면 얘들이 우리 사이를 오해할 거 같기도 하고. 내가 그 새끼······ 아니, 석진이 그 놈한테 복수한다는 것도 알게 될 거고. 그럼 쪽팔리잖아. 그래서 말 못했어. 따로 둘만 있을 때 하려고 했는데 네가 바로 달려가는 거야. 그래서 좇아갔는데 뭔가 심상치 않아 보여서. 괜히 말을 걸면 따라오지 말라고만 할 것 같고.”
말이 길어지자 송이는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았냐며 핀잔을 놓았고 민철은 부끄럽기도 하고 자신이 왜 이렇게 변명을 늘어놓는지도 모르겠는지 퉁명스럽게 쏘아붙였다. 송이와 민철은 또 서로의 감정을 할퀴는 말들을 주고받으며 투덕거렸다.
“됐고. 언제부터 운동할 건데? 그거나 말해.”
“그게 지금 중요한 게 아니라고. 아저씨가 정신없어서 지금은 안 돼. 그러니까 잠깐 기다려.”
“그래, 알았다. 근데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건데?”
“그게 말하면 긴데······ 그냥 조용히 있어주면 안 될까? 나중에 다 말해줄게.”
짧게 한숨을 내쉬는 민철은 화를 삼키듯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래, 네 마음대로 해. 난 그냥 조용히 옆에 찌그러져 있을 테니까.”
“좋은 생각이야.”
“너······ 으그. 내가 참자. 참아.”
로망스클럽을 주시하고 있는 송이 뒤로 민철이 가슴을 치며 중얼거렸다.
클럽 출입구 앞으로 승용차 한 대가 섰다. 차 안에는 칠구와 기정의 아빠가 타고 있었다. 기정아빠는 술을 걸쭉하게 들이켰는지 벌써 얼굴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칠구는 안전벨트를 풀며 말했다.
“아이, 형님. 들어가서 한잔 더 하고 가자고요. 저랑 술 한 잔 하셔야죠. 저는 운전한다고 술 한모금도 못 마시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그냥 헤어지면 섭섭하죠.”
“아이고, 동생. 이리 생각해줘서 정말 고마워. 내가 이러면 미안해서 그러지. 내가 받기만 하고 줄 능력이 안 돼서 말이야. 그러니까 그만 가자고.”
창밖의 로망스클럽 간판을 쓰윽 보고 기정아빠가 말을 이었다.
“여기는······. 아이고 여기는 비싼 곳 같은데 이러면 내가 너무 부담스러워서 말이야.”
“아니에요. 여기 제가 잘 아는 형님이 하는 곳인데 오늘 쉬는 날이에요. 그래서 형님이랑 마신다고 제가 부탁해놓지 않았겠습니까? 언제 또 이렇게 같이 술을 마실 수 있겠어요? 간만에 백마부대 전우끼리 뭉쳤는데 이렇게 헤어지기 아쉬워서 그러지 않습니까?”
기정아빠는 붉게 충혈 된 눈을 깜빡거리며 칠구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백마부대? 지금 백마부대라고 했어?”
“에? 제가, 제가 백마부대라고 했다고요? 에이, 형님 몇 잔 드셨다고 벌써······ 제가 언제요? 백골부대, 철원에 있는. 에!”
“그렇지, 백골부대. 내가 잘못 들어나?”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알고 헤헤거리며 웃어 넘겼다.
“그러니까 들어가시죠.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가는 것도 그렇잖아요. 이렇게 형님 보내면 제가 뭐가 됩니까? 벌써 준비는 다 해놨을 텐데.”
“준비를 다 했어?”
“당근이죠.”
“아이, 미안해서 그러지······.”
“괜찮다니까 또 이러시네. 어서 들어가서 한잔 제대로 빨죠. 저도 좀 마시자고요, 간만에.”
칠구의 부추김에 기정아빠는 못 이기는 척 안전벨트를 풀었다. 칠구는 조수석으로 달려갔다. 조수석 문이 열리고 기정아빠가 발을 내딛자마자 휘청거리며 쓰러지려는 것을 칠구가 부축하며 클럽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기정아빠는 벌써 제대로 걷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한 상태였다.
안으로 들어선 칠구 앞에 두철과 대진이 달려와 허리를 깊게 숙여 큰소리로 인사하며 맞았다.
“오셨습니까? 형님!”
손을 내저으며 뒤로 빠져있으라고 눈짓을 줬지만 그들은 영문을 모르고 그대로 서서 칠구만 빤히 쳐다보았다. 기정아빠는 염색머리 한 청년들을 보고 살짝 놀란 눈으로 칠구에게 물었다.
“동생, 이 청년들은 누구야? 자네를 형님이라고 부르네.”
“아, 아닙니다. 동네 아는 동생들이에요. 제가 술자리 좀 봐달라고 부탁을 했거든요.”
칠구는 두철에게 눈짓을 보내며 준비 해놨는지 물었다. 두철은 룸을 가리키며 안내했고 칠구는 밖에서 기다리라고 지시하고는 기정아빠와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두철은 들어가려는 칠구를 불러 세웠다.
“칠구 형님, 잠깐······.”
순간 칠구의 얼굴이 일그러져서는 나중에 애기하자고 말하며 할 말이 많지만 참는다는 듯 입술을 깨물었다. 두철은 고개를 푹 숙이며 빠르게 뒤로 물러났다. 룸 문을 닫고 기정아빠를 소파에 앉혔다.
“칠구는 뭐야? 이름이 동수 아니었어?”
“예, 맞습니다. 동수가 맞고요. 칠구는 동네에서 동생들이 부르는 애칭 같은 겁니다.”
“그래. 동생들이 좀 노는 애들 인가봐. 머리를 색 노랗게 염색을 하고. 난 파랗게 염색한 건 처음 봐. 어떻게 저렇게 염색할 수 있는지······ 참, 요즘 친구들······.”
“그렇죠. 요즘 친구들이······. 자아, 그러지 말고. 제 잔 받으십시오.”
“어, 고마워.”
술을 받은 기정아빠는 칠구와 술잔을 맞부딪치고는 들이켰다.
“형님, 드시고 계세요. 잠깐 동생들 좀 보고 오겠습니다.”
“어, 그래. 아니, 그러지 말고. 같이 마시지. 고생들 한 것 같은데······.”
“에이, 아닙니다. 전우끼리 오늘 제대로 한잔 해야죠.”
“전우······ 어, 그래. 알았어. 다녀와.”
룸에서 나온 칠구는 두철과 대진에게 갔다. 칠구를 보자마자 두철이 고개 숙여 말했다.
“형님, 나오셨습니까? 근데 누구십니까? 형님이 형님이라고 부르시는 거 보니까, 조직에 계신······ 아악!”
두철의 정강이를 칠구가 걷어찼다.
“조용! 이 새끼는 뭐가 이리 말이 많아. 야, 눈치가 없으면 그 혀라도 적당히 굴려 새끼야. 멍청한 새끼들······. 내 말 잘 들어. 밖에 나가서 누가 오는지 살피고 클럽으로 누가 들어오면 바로 나한테 알려. 알겠어?”
“아, 예. 형님.”
두철과 대진이 바로 밖으로 나가려 하자 칠구가 한숨을 내쉬며 불러 세웠다.
“아이, 참. 야, 야!”
“예, 형님.”
“한 놈만 나가, 한 놈만. 여기서 내 심부름해야 할 놈은 있어야 할 거 아니냐. 이리 눈치가 없어서······ 씨.”
두철이 눈짓을 주자 대진은 칠구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고는 밖으로 뛰어나갔다. 두철은 칠구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저는 무슨 심부름을 하면 될까요?”
“내가 부르면 방으로 들어오고. 내가 시키는 것만 해. 그 입 열지 말고. 특히 나한테 형님, 형님 하지 말고. 알겠어?”
“그럼 뭐라고 부릅니까?”
미간이 일그러진 칠구는 때릴 듯 손을 치켜 올렸다.
“아이 씨······ 그냥 말하지 말고 시키는 대로만 하라고 했잖아. 이걸 어디서 쓰지, 정말. 너 이 정도였어?”
“아닙니다. 형······ 아니, 칠······ 아니.”
양손으로 칠구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앞에만 서면 제가 작아집니다. 저도 모르게······.”
“그래, 더 작아져. 그 입 열지 말고, 어?”
자기 입술을 손으로 잡으며 두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 좋다. 문 앞에 있다가 부르면 들어와.”
고개만 연신 끄덕이는 두철을 보고 칠구는 피식 웃으며 룸 안으로 들어갔다. 그제야 두철은 입에서 손을 떼며 참았던 욕을 뱉어냈다.
룸 안으로 들어간 칠구와 기정아빠는 신이 났는지 룸 밖으로 웃음소리가 끝이지 않고 새어나왔다. 그러다 얼마가지 않아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칠구가 밖으로 나왔다.
“에이, 싱겁게 끝났네. 술을 겁나 못하네. 괜히 걱정했어, 씨.”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두철은 꾹 참고 말을 아꼈다. 칠구는 두철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가 저 인간이 일어난다 싶으며 저기, 저기 술병 있지?”
두철이 고개를 끄덕이자 칠구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 저 병으로 머리를 내리쳐서 기절시켜. 깨면 말이야.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두 눈이 휘둥그레 커져서는 칠구를 빤히 쳐다봤다.
“아이, 새끼. 말해, 그냥. 뭐, 뭐가 궁금해?”
“아니, 그래도 되는 겁니까? 형님이라고 부르······.”
칠구가 싹둑 잘라 말했다.
“형님은 개뿔.”
욕을 뱉어내며 기정의 아빠라고 말하는 칠구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며 두철이 되물었다.
“기정이 아빠라고요?”
“놀라긴, 아무튼 잘 지켜봐. 깨는가 싶으면 기절 시키고. 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두철은 소파에 쓰러져 자고 있는 기정아빠를 보며 대답했다.
칠구는 홀로 나가 의자에 앉았다. 들고 있던 휴대전화로 전화를 걸었다. 받지 않는지 휴대폰을 귀에서 떼서 문자를 보내는 듯 쓰고 지우고를 반복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쓴 것을 확인한 듯 작게 읽더니······.
“기정아, 전화를 안 받아 문자 남겨. 이거 보면 아빠한테 전화 줘.”
문자발송 버튼을 눌렀다.
독자 여러분의 추천, 댓글 그리고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