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로망스클럽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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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희와 석진 사이에 오간 대화를 얘기해주던 그림자가 다짜고짜 로망스클럽으로 가자고 하자 거기는 왜 가냐고 송이가 물었다.
“그 일진 얘가 한 말이 어디서 나왔겠어? 로망스클럽이야. 거기서 봤던 그 깡패 자식 입에서 나온 게 분명하다고.”
“그래서 거길 가서 어떻게 하려고요?”
“내가 몰래 들어가서 무슨 작당들을 하는지 들어봐야겠어. 그러니까 저번처럼 밖에서 기다리고 있기만 해. 내가 들어가서 몰래 듣고 올 테니.”
“그런데요. 그게 가능한 거예요? 기정이가 아니라고 하면 되는 거잖아요. 우리도 직접 보고 들었잖아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을까요?”
“송이야······. 이런 말을 너한테 하는 게 정말 어른으로 미안하고 창피한데 말이야. 사실, 그게 가능할 수도 있거든. 저번에도 말했지만 나 같은 경찰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모기 같은 경찰들도 있어서 말이야. 증거 조작이니 그런 말 못 들어봤어? 증거도 조작할 수 있고 증인도 가짜로 만들어 낼 수도 있는 게 현실이라서 그래.”
“조작이요? 증거를 조작해요? 누가······ 경찰이 말이에요?”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송이에게 그림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여 보였다.
“맙소사······ 아니, 증거가 있잖아요. 소희랑 석진이가 기정이한테 몹쓸 짓한 것도 제 휴대폰에 있다고요. 그런데도 안 되는 거예요?”
“마음만 먹으면 다 조작할 수 있어. 공권력이 그래. 투명하지 못하다고, 아직은. 미안하다. 어린 너한테 이런 말까지 한다는 게······.”
“막을 방법은 있는 거예요?”
“빼도 박도 못할 확실한 증거를 찾아야 해.”
“그걸 어떻게 찾아요? 아저씨 말을 누가 믿어요? 아니, 내 말을 누가 믿겠어요. 그것도 그림자한테 들은 얘기라고 하면 말이에요.”
“그러니 일단은 내가 몰래 들어가서 그들이 도대체 무슨 꿍꿍이인지를 알아낸 뒤에 방법을 찾아봐야 할 것 같아서 그래.”
살짝 입술을 깨물고는 그림자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알겠어요. 일단 가면서 얘기해요.”
송이는 로망스클럽으로 향하며 말을 이어갔다.
“민정이한테 전화가 왔었어요.”
“어, 들었어.”
“들으셨어요?”
“어. 네 얘기는 들었지. 기정이는 잘 있다고 그러지?”
“네. 다행히 잘 있다내요. 잘하면 내일 학교에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요.”
“그건 좀······ 좀 더 쉬었으면 좋겠는데······.”
“민정이 엄마도 그러라고 하셨나 봐요.”
“아무튼 다행이네. 그런 일을 당하고 많이 힘들어할 줄 알았는데 말이야.”
“맞아요. 저 같았으면······ 아니, 상상하기도 싫어요. 너무 끔찍할 것 같아요.”
그림자는 멈칫하며 뒤를 돌아보더니 다시 발걸음을 뗐다.
“왜요? 누가 또 미행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아니야. 그렇지, 기정이가 그래도 내공이 있는 아이라서 다행이야.”
“내공이요?”
“아, 마음이 단단하다고. 기정의 아버지 얘기를 듣고 그동안 기정의 삶이 어땠을까 미루어 짐작해보면 그럴 것 같아서.”
“무슨 말인지 알겠네요. 그런 내공이면 저도 한 내공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하고는 송이가 키득거리며 웃어보이자 그림자도 따라 걸걸하게 웃었다.
“당연히 한 내공하지. 매번 지는 법이 없으니 말이야. 아니, 어쩔 땐 나보다 더 센 것 같던데?”
“뭐라고요? 못 됐어, 정말.”
입을 삐죽대는 모습에 그림자가 더 크게 웃음 짓자 이번엔 송이가 따라 웃었다.
“그래, 웃어. 심술 맞은 표정보다는 웃는 얼굴이 더 좋아 보인다.”
“자꾸 그렇게 놀리실 거예요?”
“놀리는 건 줄 안 거야? 아이, 눈치도 빠르네.”
“정말 밉상이에요, 아저씨. 생긴 걸 못 봤지만 분명 밉상 얼굴일 거예요, 아저씨 얼굴은.”
“아닌데. 내가 봤거든. 수액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이 땡땡 부어 있었는데 그래도 빛이 나더라, 얼굴에서.”
“에이, 말도 안 돼. 부어 있는 환자 얼굴에서 어떻게 빛이 나요? 순 거짓말쟁이.”
“아니야. 정말인데······. 아이, 보여줄 수도 없고. 나중에 내가 깨어나면······.”
그림자가 말하다 멈칫하자 잠시 정적이 흘렀다. 의식을 잃고 있는 자신의 신세를 생각하니 이런 농담이나 하고 있는 것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졌다. 송이도 괜한 얘기를 꺼냈다 싶었는지 그림자에게 말을 걸지 못했다. 그렇게 둘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잠시 흘렀다. 그러나 곧 그림자가 정적을 깨며 입을 열었다.
“됐다. 아무튼 그렇다고. 무슨 얘기하다 이 얘기까지 한 거야. 쓸데없이 얘기가 삼천포로 빠졌다, 그치?”
“그러게요.”
또 다시 둘 사이에 어색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그림자는 다른 얘기로 화제를 돌리려했지만 송이의 단답형 대답에 분위기는 다시 싸늘해지고 말았다. 그렇게 둘은 말없이 로망스클럽까지 갔다. 클럽 맞은편 뒷골목으로 들어선 그림자가 먼저 말을 걸었다.
“혼자 밖에 있어도 괜찮겠어?”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하시면 어떡해요? 저 혼자 밖에 없는데. 괜찮아요. 어서 들어가 보세요. 무서우면 아저씨한테 말 걸게요. 그렇게라도 해야죠, 뭐.”
송이는 어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래, 그렇게 해. 여기에 있지 말고 다른 곳에 있어. 혹시나 저번에 온 머리 파랗고 노란 일진들이 여기로 올지 모르니까, 어?”
“여기 말고는 있을 만하는 곳이 없는데······. 그냥 여기 있을게요. 그러니까 빨리 갔다 오셔야 해요. 아셨죠?”
“알았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말하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림자는 송이에게서 떨어져 나와 주위를 살피며 로망스클럽으로 향했다. 그림자가 클럽으로 사라진 뒤 초조한 마음에 주위를 살피고 있던 송이의 눈에 누군가 다급하게 숨는 것이 보였다.
살짝 겁도 나고 누군가 궁금하기도 해 그쪽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지만 한동안 아무도 보이지 않아 송이는 잘못 본 것이라 생각했다.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진정시키려고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거기는 어때요?’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
‘어, 여기는 오늘 장사를 안 하는 것 같아. 직원들이 안 보이는 게······. 이 시간이면 홀에서 준비가 한창이어야 할 텐데 종업원 한 명이 다야. 그것도 홀에 앉아 졸고 있네.’
‘정말요? 그럼 어떻게 해요?’
‘조금만 더 둘러보고 나갈게. 밖에는 수상한 느낌은 없지?’
‘수상한 느낌이요?’
‘어? 아, 아니야. 내가 형사여서 그런지 괜히 그런 말이 튀어나왔네. 신경 쓰지 마. 그냥 아무 일 없냐고 묻는 거였어.’
‘네. 여기는······ 어? 으음······.’
‘왜? 무슨 일이야? 송이야.’
‘아저씨, 나 어떡해요? 누가 제 입을 막고 끌고 가요. 아저씨, 살려주세요!’
누군가가 송이의 입을 막은 채 뒷골목 안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송이는 속으로 그림자에게 구해달라고 외쳤다.
‘송이야, 바로 나갈게.’
다급하게 클럽 출입문으로 달려가려는데 송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니에요, 아저씨.’
‘어? 뭐가 아니야?’
‘오실 필요 없다고요.’
‘왜? 무슨 일인데?’
‘민철이었어요. 김민철이요.’
‘아, 민철. 아휴, 나는 또······.’
‘뭐예요? 놀라지 않으시네요.’
‘놀라야 하나?’
‘아니, 아니면 민철이가 왜 왔는지 정도는 물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알고 있었어.’
‘알고 계셨다고요?’
‘어. 그 공터에서 나오는데 뒤에서 누군가 미행하는 것 같아 지켜봤는데 민철이더라.’
‘근데 왜 말씀 안하셨어요?’
‘말하면 네가 민철이한테 뭐라고 할 거 아니야. 돌아가라고 하거나 뭐, 좋은 말은 안 나왔을 거 같은데. 아니야? 난 좋았거든.’
‘뭐가 좋아요? 아무튼 몰라요. 미리 알려줬으면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 거 아니에요.’
‘또 이런다······. 다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라니까. 민철이한테······.’
‘아, 맞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요. 여기에 염색 머리한 일진들이 와 있어요.’
‘어디? 여기로 오고 있어?’
‘아니요. 클럽 밖에서 어슬렁거리고 있어요. 그래서 민철이가 날 숨기려고 그랬던 거고요.’
‘그런 거였어. 민철이 자식······.’
‘그냥 다시 나오실 거예요? 어떡해요?’
‘미안한데, 조금만 더 둘러보고 나갈게.’
‘저기 일진들이 온 거 보면 무슨 일이 있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 돼요.’
‘알았어, 금방 나갈게. 조금만 민철이랑 잘 숨어 있고.’
출입문 앞까지 나왔던 그림자는 다시 안으로 들어가 룸을 하나씩 살폈다. 송이와 민철이는 뒷골목 담벼락 뒤에 숨어 파랑머리 이두철과 노랑머리 구대진을 지켜봤다. 두철이 휴대전화를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형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 예, 알겠습니다. 들어가서 준비해 놓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두철은 휴대전화를 집어넣으며 대진에게 말했다.
“야, 들어가자.”
“잠깐만, 두철아.”
“왜? 칠구 형님이 빨리 준비하라고 했다고.”
“아니 저기 말······.”
“새끼야, 내 말 못 들었어? 빨리 준비해야 한다고. 금방 오신다고 했다고, 어서.”
“어? 어, 알았어.”
대진은 맞은편 뒷골목에 드리운 낯선 그림자를 보고 그곳을 살펴보고 싶었다. 그러나 두철이 다가와 팔을 잡아당기며 클럽으로 끌고 들어갔다. 그들이 클럽으로 들어서자 송이는 그림자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두철과 대진은 클럽으로 들어와 졸고 있던 종업원을 깨워 칠구가 지시한 것을 설명했다. 종업원은 서둘러 룸으로 그들을 안내한 뒤 주방으로 달려갔다. 두철은 대진에게 종업원을 따라가서 도우라고 말하며 룸 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두철은 룸에 술과 음료를 갖다놓고 그 사이 대진은 안주를 들고 룸에 들어섰다.
“그 형은 어디 갔어?”
“열쇠만 주고 가버렸어.”
“갔다고? 아이, 우리보고 어쩌라는 거야?”
종업원은 대진에게 클럽 열쇠를 넘기고 도망치듯 클럽을 빠져나갔다.
“안주는 주방에서 마음대로 가져가서 먹으라고 했어. 근데 여기서 자기 본 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하더라.”
“도대체 무슨 일인데 이러는 거야? 젠장, 정말.”
“그래도 맞지는 않을 것 같아서 다행이다. 어제 일로 미안해서 그런 거 아닐까?”
두철은 히히거리며 웃는 대진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야, 정신 차려! 그랬으면 이런 일을 우리한테 시키겠어? 다 세팅된 곳에 우리를 불렀겠지.”
그래도 대진은 맞은 머리를 비비며 멋쩍게 웃었다.
“오늘 쉬는 날이라서 그런가 보지. 일단 기다려보자. 오면 무슨 일인지 알겠지.”
“그래. 젠장, 뭐하고 아직까지 안 오는 거야?”
그늘에 숨어 그들을 지켜보던 그림자에게 송이가 말을 걸어왔다.
‘아저씨, 클럽 앞에 차가 한대 멈췄어요.’
‘누가 내렸어?’
‘아니요. 아직은 아무도 안 내렸어요.’
‘그냥 앞에 주차하는 거 아닐까?’
‘그런가······. 근데 들어간 일진들은 안에서 뭐해요?’
‘나도 모르겠어. 술판을 벌릴 생각인지. 이놈들한테 술을 먹이려고 그러는 것 같기도 하고.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은데. 누가 올 건가봐. 근데 여기서 일하는 놈은 그냥 나가버리네.’
‘아, 그래요? 민철이랑 얘기하느라 못 봤나 봐요. 죄송해요.’
‘아니야, 괜찮아. 중요한 인물은 아니라서.’
‘그럼 저 차에 있는 사람들일까요?’
‘거기서 차 안에 있는 사람들 보여?’
‘자세히는 안 보여요. 가까이 가서 볼까요?’
‘아니야. 그냥 있어. 괜히 눈에 띄며 안 되니까. 민철이한테도 절대 나서지 말라고 하고.’
‘네. 어! 차 문이 열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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