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어떤 관계?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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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성범죄 사건으로 신고가 접수되어 정식으로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는 오 경위는 이 사실을 기정의 부모에게 고지할 것이라고 알렸다. 기정은 당황하며 신고접수를 포기하려했다. 그림자는 다급히 송이를 통해 기정을 설득했고 민정의 아빠가 일단 법정보호자로 대신 서명하는 것으로 신고접수를 마무리 지었다.
당분간 기정의 부모에게 알리지 않고 최대한 뒤로 미뤄 수사가 어느 정도 진척된 이후 고지하기로 오 경위가 배려를 해주었다. 추후 요청이 있을 때 경찰서에 내방하여 추가로 조사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를 마지막으로, 송이와 친구들은 경찰서를 나왔다.
기정은 민정과 함께 민정의 아빠 차에 올라탔다. 차로 데려다 준다는 것을 극구 사양한 친구들에게 민정의 엄마는 택시를 타고 가라며 택시비를 일일이 건네주었다. 뒤늦게 나온 송이에게 민정의 엄마가 돈을 건네자 송이는 감사한 마음인지 아니면 자신의 엄마에게는 느껴보지 못한 따뜻함은 느꼈는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런 송이에게 민철이 핀잔을 주며 택시비를 대신 받았다. 민정의 엄마는 송이를 살짝 토닥여주고 차에 올라탔다. 기정과 민정은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고 차가 천천히 움직이며 경찰서를 빠져나갔다. 애리는 여전히 눈물을 흘리는 송이 옆으로 와서는 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송이야, 괜찮아? 오늘 많이 힘들었지? 알아. 그래도 잘 끝났잖아. 다 네 덕분이야. 물론 그림자 아저씨도 있었지만.”
눈물을 훔치며 송이는 미소 지어 보였다.
“아니야. 내가 한 게 뭐가 있다고. 그림자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한 것뿐이야. 너희가 옆에 있어서 할 수 있었고.”
“그래, 쟤가 뭘 해? 다 그림자가 했지. 안 그래?”
민철은 그렇게 말하며 동진에게 동조를 바라는 눈빛을 보냈다.
“에이, 그래도 송이가 제일 고생 많이 했지. 아까 경찰서에도 그 형사한테 한마디도 지지 않고 할 말 다하고 요구할 건 요구했잖아. 얼마나······.”
“야, 그것도 그림자가 하라는 대로 한 거겠지. 그렇지?”
동진의 말을 민철이 자르며 얄밉게 물었지만 송이는 남은 눈물을 마저 닦아낼 뿐 화내지 않았다.
“맞아, 애들아. 그림자 아저씨가 하라는 대로 한 거야. 민철아, 호텔에서는 고마웠어. 그림자 아저씨도 네가 참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고 전해 달라하셨고.”
“뭐? 아, 그래? 아······ 이게 아닌데······.”
화를 내줄 알았던 송이가 고맙다고 하니 민철은 머쓱해져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송이의 눈을 피했다. 애리와 동진은 그런 민철을 보며 웃고 말았다.
“야, 왜 웃어? 아이, 참. 미안해, 송이야. 나는 그저······.”
“아니야. 맞는 말인데 뭘? 이제 집으로 가자. 동진아, 애리랑 집이 같은 방향이지?”
“어, 맞아. 왜?”
“아니, 애리 좀 집까지 데려다 주고 가라고. 자정이 넘어서 말이야.”
“어, 그래. 걱정 마. 그럼 민철아. 네가 송이 좀 집까지······.”
송이가 손을 내저으며 동진의 말을 막았다.
“아니야, 그럴 필요 없어. 민철아, 나는 괜찮아. 그림자 아저씨도 있고. 오늘 고생 많았으니까 빨리 들어가서 쉬어. 그럼 나 먼저 갈게.”
송이는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는 경찰서를 나섰다. 동진은 민철의 등을 떠밀며 눈짓을 보냈다. 민철은 싫다고 몸을 비틀어보였지만 이내 송이 뒤를 쫓아갔다. 민철이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송이를 뒤따라가는 것을 뒤에서 지켜보던 동진과 애리는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경찰서를 나서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송이야, 택시 안 타?”
“그냥 걸어서 가려고요. 엄마한테 부재중 전화가 다섯 통이나 왔어요. 애매하게 빨리 들어갔다가는 엄마한테 잔소리나 들은 것 같아서요.”
“아, 그런 깊은 뜻이······.”
피식 웃더니 송이가 말했다.
“다 알면서 물어본 거죠?”
“대충은 짐작했지. 그것도 좋은 방법이야.”
“좋은 방법이요?”
“그래, 피하는 거 말이야. 부딪혀 상처 받는 것보다 잠깐이라도 피해서 상처 받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가능하면 나는 계속 그랬으면 좋겠는데, 엄마와 딸 사이니 그건 쉽지 않겠지?”
“그렇죠. 엄마인데 어떻게 안 보고 살아요. 부딪힐 수밖에 없죠. 그래도 이렇게라도 피할 수 있을 때는 피해볼게요.”
“좋을 대로. 나야 제 3자이니.”
“뭐예요? 갑자기.”
“아니, 내가 모녀 사이에 모르는 것도 있을 테니 함부로 말 안하려고. 그냥 가능하면 너의 말만 들어주려고. 그게 너한테도 좋을 것 같고, 아닌가?”
“고마워요, 아저씨. 제가 괜히 화내고 예민하게 투덜거렸던 거 사과드릴게요. 무섭고 겁이 나서 저도 모르게 아저씨한테 그랬던 것 같아요.”
“괜찮아. 그게 당연한 거야. 어른한테 투정부리지 누구한테 투정을 부리겠어. 그래도 조금은 예의를 갖추면 더 좋고.”
그림자는 그렇게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네에, 앞으로 조심할게요. 죄송해요, 아저씨.”
“아니야. 지금처럼 해. 난 그렇게 너랑 투덕거리며 얘기하는 것도 재밌고 좋은데 뭐. 내가 누구랑 이렇게 대화를 할 수 있겠어, 너 아니면? 그러니까 화나거나 삐졌다고 입 다물지 말라고. 그건 정말 못 참겠더라. 답답해 죽겠어, 어?”
알겠다며 송이는 잔잔한 미소를 짓고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상현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민철이 계속 따라오고 있다며 그림자는 너 때문에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송이는 뒤돌아보고는 정말이라며 놀란 듯 걸음을 멈췄다. 그제야 민철은 쭈뼛쭈뼛 송이에게 다가왔다.
자신은 괜찮다며 그냥 집으로 가라는 송이에게 민철은 뭐가 괜찮냐고, 이 밤에 여자 혼자 무섭지 않느냐며 투덜거리듯 말했다.
“얘기 들었어. 모텔에서 지낸다며?”
“동진이가 말했어?”
“그게 뭐가 중요해? 모텔이면 이 시간에 술 취한 사람들도 많을 텐데······. 호텔에서 네가 걱정 돼 그림자가 나를 부른 거 아니야? 그러니까 집까지 데려다 줄게. 오늘의 임무는 그것으로 끝.”
‘임무’라는 단어를 되뇌며 송이는 피식 웃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자 민철은 고집도 참 세다며 그냥 넘어가라고 핀잔을 주었다.
“누가 고맙다는 소리 듣겠데? 넌 아직도 그러냐? 그 모난 성격 좀 바꿔. 그러니까 남자가 없는 거야.”
“또 시작이니? 웬일로 네가 집까지 데려다 준다 했다. 이럴 거면 그냥 집으로 가줄래.”
“아이, 씨. 그래, 혼자 가라, 가. 나도 그런 소리 들으면서 같이 가는 건 아닌 것 같다.”
뿔이 잔뜩 난 목소리로 민철이 말하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뒤돌아갔다. 그 모습에 그림자가 혀를 차며 송이에게 말했다.
‘민철도 너한테 어렵게 성의를 보인 거잖아. 왜 그렇게 매몰차게 굴어?’
‘그게 아니라 민철이가 속을 뒤집어 놓으니까 그렇죠. 그리고 보통 세 번까지는 물어봐야죠. 그걸 못 참고 그렇게 모난 성격이라니 남자가 없다느니, 왜 그런 말을 하냐고요. 아무튼 남자들······ 아니, 민철이는 참 이상한 애에요.’
‘아이고, 정말 여자······ 아니, 네 속을 모르겠다. 민철이가 그걸 어떻게 알아? 딱 보니까 민철이 저 녀석도 여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나처럼 말이야.’
‘그게 여자가 아니라 사람이······.’
그림자가 딱 잘라 말했다.
‘남자는 다르다고. 남자는 여러 번 묻지 않아. 일단 민철이 불러. 불러서 얘기해. 어? 사실은 맞잖아. 이 시간에 모텔 가는 길이 보통 길이야. 너 혼자는 위험할 수도 있고 저번처럼 이상한 놈이 달라붙을 수도 있잖아.’
송이가 머뭇거리자 그림자가 큰소리로 재차 붙잡으라고 소리쳤다. 송이는 마지못해 민철에게 달려가 불렀다.
“왜? 또 무슨 말을 하려고?”
“아니······. 미안해. 내가 그러니까······.”
말을 못하고 주뼛거리기만 하는 송이를 보고 민철은 피식 웃었다.
“됐어. 무섭구나, 그치?”
“응, 맞아. 혼자 가려니 무섭네. 같이 가줄래?”
“그래, 그렇게 부탁해도 돼. 어서 가자, 많이 늦었다. 그런데 택시 안 탈거야?”
“아니, 택시 타.”
“그럼 잠깐만.”
휴대전화를 꺼낸 민철은 택시 앱으로 콜택시를 불렀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송이와 민철 사이에 어색한 공기가 흘렀다. 그림자는 둘 사이가 궁금해 송이에게 민철이랑 예전에 무슨 일이 있었냐고 조심스레 물었다.
당황해하며 말을 못하는 송이를 보고 둘 사이에 뭔가가 있었다는 걸 그림자는 눈치를 챘다.
‘있었구나, 그치? 네가 민철이를 대하는 것도 그렇고, 민철이가 유독 너한테만 밉상을 부리는 것도 그렇고. 좀 이상했거든. 둘 사이에 무슨 사연이 있는 연인처럼······.’
연인이라는 말에 송이가 버럭 화를 냈다.
‘아니거든요! 학생이 무슨 연인이에요?’
‘정말 아니야? 너는 아닌데 민철은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말해봐.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송이는 아니라고 딱 잡아뗐다.
‘에이, 알았어. 말하기 싫으면 말 안 해도 돼. 그런데 너희 둘 지금 너무 어색하다. 무슨 말이라도 해. 옆에서 보는 내가 다 숨이 막혀.’
‘무슨 말을 해요? 말이 통해야 무슨 말······ 아니, 아니에요. 그냥 이렇게 있는 게 편해요.’
“저기, 송이야.”
갑자기 민철이 말을 걸어오자 그림자는 호들갑스럽게 민철이가 말을 건다며 잘 얘기해 보라고 했다.
“어, 왜?”
“지금 그림자랑 얘기하고 있니?”
“어? 그걸 어떻게······.”
“아니, 네가 계속 바닥을 보고 있어서. 매번 그림자랑 대화할 때 아래를 보고 있는 걸 봐서 그런 것 같았지.”
“맞아. 그림자 아저씨랑 얘기하고 있었어. 민철아, 아저씨가 그림자라고만 하지 말고 아저씨를 붙여달라고 하셔.”
민망한 듯 민철은 머리를 긁적이며 바닥의 그림자를 봤다.
“아, 정말? 알았어요. 그림자 아저씨라고 할게요. 아, 할게.”
“그런데 왜 불렀어? 그게 궁금했어?”
잠시 머뭇거리며 민철이 말을 잇지 못하자 송이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괜찮다고 말해보라고 했다.
“그게, 그림자 아저씨랑 좀 얘기할 수 있을까? 그러니까 그림자 아저씨한테 부탁할 게······ 그게 가능할까?”
“뭐라고? 내가 아니라 그림자 아저씨한테 할 말이 있다는 거였어?”
“그렇지. 왜? 안 돼?”
“아니, 안 되는 건 아닌데······ 아니야, 뭔데 말해. 내가 전해줄게. 아니, 말하면 아저씨는 다 들을 수는 있어. 아저씨 말만 안 들릴 뿐이지.”
“그렇지. 그럼 그림자 아저씨. 아저씨가 형사라고 들었어요. 형사면 무술 실력도 꽤 되실 것 같은데, 맞나요?”
그림자는 민철의 질문에 대답했고 송이가 그걸 대철에게 전달했다.
“그게 왜 궁금한지 물어보는데?”
“사실은······. 그때 다 보셨죠? 제가 석진이······ 그 강석진이라고 일동고 일진이라는 자식한테 맞짱 떠서 열라 터졌거든요. 쪽팔리게······.”
“송이······ 아니, 내 앞에서 그런 얘기해도 괜찮으냐고 묻는데?”
송이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말하던 민철은 창피한 듯 고개를 숙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이, 쪽팔리게······. 당근 쪽팔리지. 그래도 그 자식한테 복수를 하려면 어쩔 수 없어서. 아저씨, 제가 그 자식한테 복수를 하고 싶은데 보셨지만 제 실력으로는 다시 맞짱을 떠도 안 될 것 같아서요.”
“그렇다고 하네. 너는 하체가 문제라고.”
“하체? 정말요?”
“그래, 하체가 부실하다고. 그때 보니까 석진이는 하체가 재빠른 아이라고 하시는데. 넌 상체는 잘 발달되었는데 하체가 부실하고. 하체 운동을 좀 더 해야겠다고.”
“하체 운동만 잘하면 될까요?”
“당연히 안 된다고 하시네.”
“안 돼? 그럼 하체운동하고 또 뭘 더 해야 하는 건가요?”
갑자기 송이가 질색을 하며 싫다고 하자 민철이 놀라 빤히 쳐다보았다.
“어?”
너한테 한 말이 아니라며 송이가 손을 내젓고는 속으로 그림자에게 말했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전 싫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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