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진술에 앞서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금남경찰서 형사과 강력2팀에 도착한 송이와 기정에게 담당 형사는 잠시 다녀올 곳이 있다며 의자에 앉아 기다리라고 했다. 밤 시간이었지만 경찰서 안은 여전히 한참 영업 중인 가게인 것처럼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정은 경찰서에 들어온 뒤로는 고개를 숙인 채 말도 하지 않았다. 송이는 기정을 힐끔 보고는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예요?’
‘어, 걱정 마. 간단히 조서를 작성할 거야. 사건 개요에 대해서 말이야. 형사가 물어보는 거에 잘 대답하고 있는 그대로 말하면 돼. 아, 나에 대해서는 빼고. 그건 말 안 해도 알겠지만.’
‘당연하죠. 그걸 말한다고 믿기나 하겠어요.’
‘그래, 경찰서라고 일반인들은 위축될 수 있는데 별 것 없어. 똑같이 사람들 사는 곳이야. 여기는 강력사건을 담당하는 곳이라 좀 험악한 꼴을 볼 수도 있긴 하겠지만.’
‘그러니까요. 이 밤에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지······.’
‘밤이니까 그렇지. 술이 문제야, 술이. 어, 형사 온다.’
담당 형사가 온다는 소리에 송이는 얼른 고개를 들었다. 형사가 책상 앞에 앉아서는 말했다.
“어, 곧 온다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줘요.”
“또 기다려요? 아, 네.”
그림자는 형사의 말에 어이없어했다.
‘뭘 기다려? 기정이한테 진술을 들으면 될 일을······. 이상하네.’
송이는 형사의 눈치를 보고는 고개를 숙여 그림자에게 물었다.
‘뭐가 이상한데요?’
‘아니, 지금 깡패 자식을 기다리자고 하는 거 아니야. 왜?’
‘그걸 왜 나한테 물어요?’
‘묻는 게 아니고 나도 의아해서 그러지. 기정이랑 너한테 그동안 일들을 물어보면 되는 일인데 깡패 자식을 기다린다는 건······. 뭐야, 대질신문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대질신문이요?’
‘어. 대질신문이 말이야······.’
‘아니요. 그건 뭔지 알죠? 그러니까 우리랑 그 깡패 아저씨랑 같이 신문을 한다는 거잖아요. 근데 그게 왜요? 뭐가 잘못된 거예요?’
‘그렇지. 너희는 피해자야. 그것도 아동성착취 범죄라고, 이게 보통 사건이야. 근데 피해자랑 피의자를 같이 놓고 신문을 하겠다고? 미친 거 아니야. 송이야, 만약에 그러면 바로 말해. 범죄자와 분리시켜 달라고. 알겠지?’
‘그냥 분리시키셔달라고 하면 될까요?’
‘내가 말하는 대로 하면 돼. 조서를 쓸 때 가명조서로 해달라고 하고.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요청해.’
생소한 단어에 송이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가명조서요?’
‘아, 그게······. 가명조서라는 게 범죄를 신고하거나 진술을 할 때 범죄자에게 보복당할 수 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조서나 진술서를 작성할 때 범죄를 신고한 사람의 성명이나 연령, 주소 그리고 직업 등을 적지 않게 하는 거야. 그래서 피해자나 참고인의 신변을 보호해주는 제도인 거지’
‘그런 게 있구나. 그럼 저 형사 분한테 가명조서로 해달라고 하면 될까요?’
‘맞아. 그리고······ 아니다. 나중에 진술할 때 내가 말해줄게. 내 말대로 저 형사한테 전하면 될 거야, 어.’
‘네, 알겠어요.’
든든한 기분이 든 송이는 잠시 기정을 살폈다.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기정의 손을 잡으며 말을 걸었다.
“기정아, 너무 긴장하지 마. 너는 잘못한 게 없어. 사실대로만 말하면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했어.”
그제야 고개를 들어 송이를 바라봤다. 그리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고마워, 송이야. 근데 누가 문제가 없을 거라고 한 거야, 저기 저 형사 분이?”
“어? 아, 아니. 그게······ 아무튼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 응.”
“정말 문제없을까? 그래도 내가 호텔까지 따라 들어갔는데······. 나도 처벌받는 거 아닐까?”
여전히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하는 기정의 목소리는 작아 들어갔다.
“아니야. 아니라고······ 아닐 거야. 너도 협박을 받고 간 거잖아, 그치?”
놀랐는지 기정의 눈꺼풀이 살짝 떨렸다.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어? 아니······ 그렇지 않고 네가 거길 왜? 아니야?”
그림자 아저씨에게 들었다고 속 시원하게 말할 수 도 없어 답답한 송이는 가까스로 얼버무렸다. 기정은 자신을 믿어주는 송이가 고맙고 반가워 고개를 연신 끄덕이며 자신도 모르고 간 거라고 호텔 앞까지 가서야 알았다고 말하는데 송이가 손을 힘주어 잡아주었다.
“알아. 말 안 해도 돼. 나중에 저 형사한테나 잘 설명해.”
그제야 기정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바쁘게 일을 보던 담당 형사가 자리로 돌아와 부모님께 연락을 했는지 물어왔다. 송이와 기정은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머뭇거렸다.
“부모님이 오셔야 학생들을 보낼 수 있는데. 어서 전화 드려요. 혹시 부모님이 안 계시나?”
“아니······.”
“아니면 빨리 연락드려서 오시라고 해요.”
기정과 송이는 고개를 끄덕일 뿐 확실하게 대답하지 못했다. 송이는 엄마한테 이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걱정이었다. 그러면서 기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
“너도 전화 못할 사정이 있는 거야?”
“너도?”
“응. 아빠는······.”
“맞다. 미안. 그래도 엄마는······.”
“그렇지. 그런데 엄마가 너무 무서워서. 이런 일로 경찰서에 오시면 날 죽이려 드실 거야.”
자신도 모르게 기정은 피식 웃고 말았다. 자신과 처지가 비슷한 것이.
“나랑 똑같구나. 난 아빠. 맨날 술에 쩔어 사셔. 일이 힘드신지 술을 손에서 못 놓으시더라고. 그러면 때리지나 말지.”
“때려? 나도. 우리 엄마도 화가 났다하면 날 막 때려. 내 잘못이 아니어도 말이지.”
“나도 그래. 술 취해서 와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때리는데······ 그때는 무조건 집에서 나와야 해. 안 그러면 정말 날 죽일 것 같아서······ 아니, 사실 너무 두려워. 이러다 내가 아빠를 죽일지도 모르겠······ 아, 내가 별 얘기를 다 한다.”
동변상련이란 것일까, 자신도 모르게 속에 있던 말들이 스스럼없이 나왔다.
“아니야. 비밀로 할게. 너도 내 얘기는 비밀이야. 민정이도 모르는 얘기거든.”
“정말?”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비밀이다. 그래도 아빠한테 맞는 것보다는 내가 난 건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이 나온 송이를 기정이 물끄러미 바라보며 울먹이듯 미소 짓고 있었다. 송이는 기정을 안으며 등을 쓰다듬어주었다.
“기정아, 우리 울지 말자. 응?”
“응. 고마워, 송이야.”
그들이 서로를 보듬으며 안고 있는 사이 클럽 조직원이 형사과로 들어왔다. 바로 그 뒤로 친구들의 모습도 보였다. 민정과 애리는 손을 흔들며 달려왔고 민철과 동진은 경찰서가 마냥 신기한 듯 안을 두리번거리며 들어왔다.
용의자를 데리고 온 경찰관이 형사 앞에 그를 앉히자 송이가 벌떡 일어나 그들에게 갔다.
“어, 학생. 부모님이랑 통화 됐고? 오······.”
“아니요.”
“어? 왜? 못 오신다고 그래? 무슨······.”
“그게 아니라요. 지금 이 사람하고 우리랑 여기서 같이 진술을 받으실 건가요?”
“그런데, 왜? 잠깐 뒤에 가서 앉아 있어. 금방 끝내고 부르······.”
“아니요.”
말끝마다 끊는 아이가 형사는 어이가 없었는지 귀찮다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러지 말고, 가서 앉아 있어. 학생. 이 사람 먼저 진술을 받아야 하니까······.”
“저기, 오민식 형사님.”
또 말을 끊자 형사는 한층 강압적인 목소리로 나왔다.
“저기, 학생. 자꾸 어른 말을 말끝마다 끊으면 못써. 내 말 끝까지 들어. 자리로 돌아가 있어. 어서.”
“아니요. 지금 뭐하시는 거죠? 지금 이 자는 아동성착취범이라고요? 제 친구는 그 피해자고요.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같이 진술을 받겠다는 건가요? 지금 당장 이자와 분리시켜주세요.”
주눅 들지도 않고 똑 부러지게 말하는 학생에게 형사는 말문이 막혔는지 잠시 멍하니 쳐다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저기, 학생······ 아동성착취범이라고 했어? 어디서 그런 말을 들었는지 모르겠는데 아동성범죄인지는 상호간의 진술을 들어보고 판단해야 하는 거고. 지금 그걸 확인하려고 하는데 학생이 방해를 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아동성범죄인 걸 지금 확인하겠다고요? 호텔에서 학생이 도망쳐 나오는 걸 직접 보셨잖아요. 그곳에서 범죄자를 체포하셨고요. 제가 지금 말씀드리는 건 아동성착취범과 피해자를 같은 공간에 두는 게 문제라는 거예요. 당장 분리시켜 달라고요. 제 친구가 이 상황에서 제대로 진술이나 할 수 있겠어요? 지금 제 친구를 조사할 게 아니라, 당장 로망스클럽을 압수수색해서 범죄자들을 모두 잡아드려 조사하시라고요. 이 사람은 클럽의 깡패 중 한 사람일 뿐이라고요. 지금 당장 호텔 CCTV도 확보해서 증거부터 수집하셔야 하는 게 아닌가요?”
형사는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또 한 번 말문이 막혔다. 친구들도 뒤에서 놀란 눈으로 보고 있는 건 마찬가지였다.
“저기······ 학생.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해요. 일단은 이쪽 말도 들어봐야지. 그리고 말대로 호텔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우리도 모르잖아. 저기 학생 옷을 보니까 학생인지 모르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형사에게 그림자가 버럭 화를 내고 말았다.
“뭐 이딴 게 다 있어! ······내가 뭐라고 한 거야?”
그걸 그대로 송이가 입 밖으로 내뱉었다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아니, 학생. 여기가 어디라고······. 이러면 공무방해라고. 공무집행방해죄는 모르나? 아동성착······ 아니, 아동성범죄는 잘도 아는 것 같은데.”
그림자의 말을 전하는 송이의 말이 안 통하자 안 되겠다 싶었는지 그림자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안 되겠다. 국선변호사를 신청해야 할 것 같아. 학생이라고 무시하는 건지, 아니면 저것도 남자라고 남자 편을 드는 건지. 너희들로는 안 되겠어.’
‘국선변호사요?’
‘그래, 사회적 약자를 위해 사건 발생 초기부터 수사, 재판까지 전 과정을 법률적으로 지원해 주는 국가에서 선임해주는 변호사가 있어. 내가 말하는 대로만 전해.’
그림자의 말을 형사에게 전달했다.
“저기, 국선변호사 선임을 신청할게요.”
“뭐? 국선변······ 저기, 학생······.”
“조서도 가명조서로 해주시면 좋겠어요.”
전문용어가 학생의 입에서 줄줄 나오자 형사는 황당한 얼굴로 조심스레 물었다.
“학생, 경찰대 준비하나? 아니면 가족······ 아, 아버님이 경찰이셔?”
“아니요. 아는 아저······ 삼촌이요.”
“아, 그래. 삼촌. 어디 경찰서에 계시는데?”
“그게······ 아, 지능범죄수사팀에 남궁이한 경위라고 계세요.”
형사는 순간 눈빛이 바뀌며 옅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렇구나. 지능범죄······. 그래서······ 아, 알았어. 저기, 이 형사. 이자 취조실로 데리고 가.”
“예. 오 형사님.”
옆 자리에 있던 이 경장은 조직원을 이끌고 취조실로 이동했다. 오 형사는 송이에게 손짓하며 앞으로 와서 앉으라고 했다.
“부모님은? 전화는 했어?”
“저기, 꼭 부모님이 오셔야 하는 건가요?”
“아니, 뭐······ 학생은 참고인이라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저기 피해자 학생은 부모님이 꼭 오셔야 해. 미성년자 피해자는 법정대리인이 필요하거든. 부모님이 아니라도 상관은 없어.”
“그래요. 그럼 어쩌지······.”
그때 뒤에서 민정이 다가와 말했다.
“저희 부모님이 대신 오시면 안 될까요? 기정이가 무슨 사정이 있는 것 같아서요.”
“어? 학생 부모님이? 그래, 그럼. 그분들이 괜찮다면 우리도 상관없지. 그 전에 학생들 진술을 받아볼까? 아니, 국선변호사 입회하에 진술할 건가? 지금이라도······.”
송이는 그림자에게 물어보고 오 형사에게 말했다.
“아니에요. 그냥 국선변호사 없이 할게요.”
“그래, 일단 얘기를 들어볼까? 저기 학생 이리 와서 앉아요.”
오 형사는 기정을 가리키며 오라고 손짓했다. 고개 숙이고 있던 기정에게 애리가 다가가 함께 앞으로 왔다. 기정은 앉으며 불안했는지 송이의 손을 잡았다. 송이도 같이 손을 잡아주었다.
“저기, 잠깐만. 임송이 학생 아니야?”
형사과에 들어와 무슨 일인가 지켜보던 방기철 형사가 송이인 것을 알아보고 말을 걸었다.
“아, 그때 그 형사님······.”
“그래, 나 알아보겠지? 방기철 형사야.”
“네, 안녕하세요.”
“근데 듣기로는 남궁이한 경위가 삼촌이라고?”
“네? 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라 당황한 송이는 고개를 숙인 채 그림자에게 물었다.
‘어떡해요?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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