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 그들의 속셈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로망스클럽 건너편 골목에서 파랑머리를 한 이두철이 담배를 피며 패거리들과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노랑머리 구대진은 대기하고 있던 일진들과 함께 서기정 주변을 에워싸 로망스클럽으로 오고 있었다. 멀리서 대진이 오는 것을 본 두철의 패거리들 중 한명이 소리쳤다.
“짱, 저기 옵니다.”
두철은 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던지고는 골목에서 나와 대진을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대진은 두철을 보고 손을 흔들며 환히 웃어 보이고는 겁에 질려 있는 기정 옆으로 바짝 붙었다.
“우리가 하라는 대로 하면 아무 문제없어. 괜히 쓸데없는 소리해서 맞지나 말고. 두철이 성격 잘 알지? 너도.”
위압적인 대진의 음성에 기정은 아무 말도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래그래.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안 그래? 다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나도 두철이는 어떻게 못하거든. 그래서 그런 거니까 새겨들어.”
기죽은 목소리로 겨우 네라고 대답하며 기정은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대진은 기정에게 어깨동무하며 두철에게 갔다.
“우리 왔다.”
“어, 고생했다. 빨리 들어가자.”
두철은 대충 인사하고는 무작정 기정의 팔을 잡아끌며 로망스클럽으로 향했다. 기정은 아무런 설명 없이 끌고 가는 두철이 무섭기도 하고 놀라기도 해 대진의 팔을 붙잡고 버텼다.
“씨, 뭐야? 왜 이래?”
순간 욱한 두철이 화를 내며 기정에게 손을 들어보이자 대진이 얼른 말렸다.
“두철아, 잠깐만. 그렇게 무작정 끌고 가려고 하니까, 얘가 놀라잖아.”
대진은 허리까지 숙여 기정의 얼굴을 보고 살살 달래기 시작했다.
“기정아, 내가 말했잖아. 하라는 대로만 하면 아무 일 없다고. 괜찮으니까 두철이 따라서 들어가. 두철이 성질······.”
그새를 기다리지 못하고 두철은 기정의 팔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뭐하는 거야? 야! 너, 아무 말 못 들은 거야?”
“두철아, 그걸 어떻게······ 아니, 왜 그래? 잠깐만 기다려. 내가 알아서 잘 설명할게. 너는······”
“이것들이 지금 뭐하는 거야? 아휴, 잘들 한다. 야, 대진아.”
험상궂은 얼굴로 노려보는 두철에게 대진이 빠르게 붙어서는 작게 말했다.
“잠깐만, 나랑 얘기해.”
두철을 억지로 벽 쪽으로 끌고 갔다. 그런 대진에게 두철의 입에서 짜증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쩌려고 그래? 너.”
대진이 두철에 귀에 대고 나지막하게 말하는데 그들 옆으로 그림자가 빠르게 드리웠다 사라졌다. 그들은 그림자를 보지 못했다.
“너도 잘 알면서 왜 그래? 그걸 어떻게 설명하고 데리고 와. 상황에 닥치며 쟤도 다 알거야. 그러니까 그냥 조용히 데리고 들어가. 형님도 이해하실 거야. 저런 물건을 어디서 데리고 오냐? 안 그래?”
“아이, 그래도······. 아휴, 그러다 쪽박이라도 나면 그때는 너나 나나 다 죽는 거야? 알고나 그래?”
두철의 목소리가 커지자 진정하라는 듯 손을 두철의 가슴에 갖다 대며 작게 말했다.
“알아, 나도. 그래서 어떤 애인지 다 알아보고 데리고 온 거잖아. 조금만 어르고 달래면 말 잘 듣는 애라고 했어. 그러니까 적당히 하고 데리고 가. 가기 전에 울면 안 되잖아.”
“아이, 씨. 정말 확실하지?”
“그래, 걱정 마.”
자신 있다는 듯 대진이 욕설을 뱉으며 웃어보이자 두철도 마지못해 욕으로 응수하며 따라 웃었다.
“그러니까 믿고 데리고 가.”
“알았어, 새끼야. 어이, 기정이라고 했지? 이리로 와봐.”
실실 웃으며 두철이 부르자 기정은 눈치를 살피며 발걸음을 뗐다.
“아까는 화내서 미안해. 저기 보이지, 로망스클럽? 가서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무슨 일인데요?”
“아이, 씨······. 아, 그러니까······.”
성질을 못 이기고 화부터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기는 참았지만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서둘러 대진이 끼어들었다.
“기정아, 저기서 네가 뭘 하겠어? 들어가면 다 알려 주실 거야. 그러니까 더 묻지 말고 두철이 따라서 들어가, 그러면 돼. 어?”
“그래그래. 나도 뭐라고 들었는데 기억이 안 나서 그래. 들어가면 다 설명해줄 거야. 이제 들어가도 되겠지?”
더는 뭐라고 묻지 못하는 기정에게 두철은 손목을 움켜잡고는 로망스클럽으로 향했다. 패거리들은 일제히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그들 뒤로 그들의 그림자와는 다른 또 다른 그림자가 움직이며 골목을 나와 어둑한 그늘 속으로 사라졌다. 그러더니 한 블록 떨어진 골목에서 다시 그림자가 나타나 송이 옆으로 붙었다.
‘내 얘기 다 들었지?’
‘네. 어쩌면 좋죠?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해야지. 그런데 지금은 아니야. 확실한 물증을 잡아야 해. 괜히 잘못 신고했다간 허위신고로 우리가······.’
‘잘못 신고하는 게 아니잖아. 분명 기정이한테······.’
흥분해 말하는 송이의 말을 그림자가 빠르게 잘랐다.
‘송이야, 내말 다 듣고. 어? 흥분부터 하면 안 돼.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자는 거야. 그쪽에서 마음만 먹으면 허위신고죄나 무고죄로 역고소를 할 수도 있다고. 그래서 그런 거야? 물증이 없는 상태에서 그쪽에서 발뺌을 해버리면 우리도 어쩔 수 없다고. 그렇다고 기정의 말을 경찰이 그대로 다 믿어주지도 않을 거고.’
‘왜요? 기정이가 직접 당한 일이면 기정의 말을 들어줘야죠. 왜 믿어주지 않는다는 거예요? 저희도 이제 열일곱 살이라고요. 열일곱 살 말을 못 믿으면 누구 말을 믿는다는 말이에요?’
그림자의 짧은 한숨소리와 함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게 아니야. 수사는 물증을 기반으로 해야 하는 거라서 그래. 누구의 말만 듣고 수사를 할 수 없어. 그 자체가 그래. 그리고 이건······ 너희들한테 말하기 부끄럽지만. 경찰이나 검찰이나, 그러니까······.’
머뭇거리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자 송이가 대뜸 끼어들었다.
‘비리 경찰이나 검찰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거죠?’
‘어? 아······ 그래. 알고 있을 거야. 다 그런 건 아니지만 나도 그렇고. 일부 그런 경찰이나 검찰이 있을 수 있어서. 이런 종류의 사건에는 그런 경우가 비일비재하거든. 그렇지 않고는 저렇게 학생들이 클럽에 들락거릴 수도 없고.’
이해했다는 듯 송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있지만 수사는 증거를 바탕으로 해야 하는 게 맞다며 그게 기본이라고 그림자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나 송이에게는 그 얘기보다는 자신만 뚫어지게 쳐다보는 친구들이 계속 신경이 쓰였다.
‘그래서 어떻게 하시겠다는 건데요? 지금 친구들이 궁금해 죽을 표정으로 저만 보고 있다고요. 저기 보이시죠?’
‘나도 보이거든.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확인을 해야겠어.’
‘직접 들어간다고요? 그럼 저는요? 저는 어떡하고요? 우리가 떨어져 있으면 위험하잖아요.’
‘나도 그게 걱정인데······. 밖에 애들이 진을 치고 있어서 가까이 갈 수도 없고 말이지.’
‘그러니까요. 저기 앞까지는 문제없었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멀어질지 모를 일이잖아요.’
그림자도 그걸 모르는 것은 아니어서 통증이 온다 싶으면 그때 멈추면 된다고 말하려는데 민정이 송이의 팔을 붙잡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송이야, 저기 그 파랑머리가 나왔어.”
로망스클럽에서 두철이 나오는 있었다.
“어. 잠깐만, 민정아.”
송이는 로망스클럽 쪽을 한번 보고는 다시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기정이가 없어요. 기정이만 두고 나왔나 봐요. 어떡해요?’
‘그러니까 내가 들어가 보겠다고. 여기에 있다가 내가 경찰에 신고하라고 하면 그때 경찰에 신고해. 알겠지? 친구들한테 잘 설명하고. 절대 먼저 나서지 말라고 하고. 알겠어?’
고개를 끄덕이며 송이가 가능한 클럽 가까운 곳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사람들 눈에 안 띄게 조심하라고 걱정스레 말하자 그림자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걱정 마. 너희들이나 저놈들한테 걸리지나 말고. 사람들은 그림자 따위에 신경도 안 써. 신경 쓸게 얼마나 많은 데 그림자에나 신경을 쓰겠어.’
‘그래도 그림자 따위는 아니죠. 그림자 형사······ 아니, 탐정?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요?’
‘그림자 탐정? 왜? 나 형사야? 그림자 형사가 맞지.’
‘그래요, 그림자 형사. 그래도 지금은 형사로 나서지 못하니 탐정이 더 어울릴 것 같아서요.’
‘그런가? 아무튼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여기서 대기해, 나는 간다.’
송이 곁에 있던 그림자가 서서히 떨어져 나와서는 로망스클럽으로 향했다. 친구들은 그 모습을 여러 번 봤으면서도 매번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송이는 친구들에게 그림자의 계획을 전했다.
***
파랑머리 두철은 클럽에 들어가서는 기다리고 있던 칠구 형님이라는 자에게 기정을 넘기고는 바로 클럽을 나왔다. 기정은 낯선 곳에 낯선 사람들 틈에 서서 불안에 떨었다. 뭐라고 말조차 꺼낼 수 없을 정도의 위압감을 느꼈다. 칠구는 룸 안으로 기정을 데리고 가서는 소파에 앉았다.
“앉아, 편히.”
기정은 손발이 떨릴 정도의 불안한 마음에 그의 말을 듣지 못해 멀뚱히 서 있었다.
“괜찮다니까, 앉아. 이름이 기정이라고? 서기정, 맞아?”
앉아 있는 그가 뭐라고 말하는 것 같았지만 뭐라고 했는지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기정은 극도로 긴장하고 있었다.
“아이, 씨. 야, 너 말 못해? 야!”
버럭 소리 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 기정은 고개를 푹 숙이며 두 손을 모아 빌 듯 말했다.
“아, 네. 죄송해요, 죄송해요.”
“뭐가 죄송······ 아이, 됐고. 이름이 기정이······ 서기정이 맞냐고? 고딩?”
“네. 2학년이에요.”
“그래, 딱 좋네. 경험은 없고?”
“무슨······.”
“아, 아니다. 됐고. 앉아, 앉으라고. 안 잡아먹어.”
떨리는 목소리로 예라고 대답한 기정은 짧게 심호흡하며 소파에 앉았다.
“긴장할 것 없어. 다 처음은 그런 거야. 힘들지, 당연. 그래도 그만큼 큰돈을 벌 수 있으니까, 좋게 생각해. 어디서 고딩이 그런 큰돈을 벌 수 있겠어? 그 시간 일하고.”
“그런데 무슨······.”
기정이 말하려는데 룸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 마담 왔어?”
“저 애야?”
고개를 끄덕이며 칠구는 히쭉 웃어보였다. 마담은 기정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얘, 너 일어나봐.”
“그래, 이제 이 마담 언니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그럼, 잘 부탁해. 마담.”
“알았어. 가봐.”
“꼬마 아가씨, 좋은 밤 보내고.”
그가 히쭉거리며 룸 밖으로 나가자 마담은 그쪽을 째려보며 욕을 뱉어냈다.
“별 미친 새끼······. 이름이······ 아니, 됐다. 이름 알아서 뭐하게. 너도 그냥 마담 언니라고 부르고. 나는 미쓰 리로 부를게.”
“저는 서 씨인데······.”
“그래? 그럼, 미쓰 서라고 할게. 그렇게만 알자고. 또 볼일은 없을 것 같으니까. 그리고 또 보면 되겠어, 학생이라며?”
“네. 그런데 마담 언니, 제가 무슨 일을 하는 거죠?”
깜짝 놀란 마담은 짙은 눈썹을 치켜뜨며 기정을 쳐다보았다.
“뭐? 모르고 왔어?”
“네. 여기 오면 알려준다고 해서······.”
“이런, 개자식들. 하여튼 하는 짓거리가······.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씨. 거기 소파에 앉아서 잠깐 기다리고 있어, 금방 다녀올게.”
마담은 기정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씩씩대며 밖으로 나갔다. 기정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다시 소파에 앉아 문 쪽을 보고 있었다. 그때 그림자가 문아래 틈 사이로 사라지는 것을 보고는 눈을 깜빡거리다 눈을 비비고는 다시 그곳을 살폈다. 그때는 이미 사라진 뒤라 기정은 잘못 본 것이라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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