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비릿한 설계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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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가 뭐라고 말을 걸어왔지만 내 귀엔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송이를 미행하는 자가 눈에 들어왔을 때 벼락이라도 맞은 듯 머릿속에 섬광이 번쩍하더니 찌릿한 아픔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언가가 뇌리를 스치듯 기억이 떠올랐다.
“이한, 고생 많았다.”
누군가 내 어깨를 감싸며 바짝 붙었다.
“미안. 네가 고생은 다했는데, 내가······.”
나는 그에게 미안한 듯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었다.
“됐어, 우리끼리 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 그래도 네가 다 잡은 범인인데······.”
그는 내 어깨를 툭 치며 웃어보였다.
“자식이 그래도. 마누라끼리 그러는 거 아니다? 네가 없었으면 그놈 잡지도 못했을 거야.”
“그래도······.”
“됐다니까, 자식이 자꾸 그러네. 야, 구속주나 마시러 가자. 어? 그래, 영 그러면 네가 한턱 쏘던지, 괜찮지?”
그의 말에 굳어 있던 내 얼굴이 조금은 풀어진 듯 보였다.
“그래, 알았어. 고맙다, 동식아.”
그랬다. 박동식. 송이를 미행하고 있는 자는 내 동료 경찰인 박동식이었다. 왜? 동식이가 여기에······. 그때 송이가 제 말이 들리느냐고,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묻는 목소리가 귀가에 들렸다.
‘아, 아니야. 곧 갈 테니 천천히 가고 있어.’
‘그래요? 근데 날 미행하는 게 맞아요?’
‘어? 아, 아니야. 내가 또 잘못 봤나봐.’
나도 모르게 송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인지 어색하게 웃고 말았다.
‘그럼 다행이네요. 빨리 오세요. 괜히 무서워요.’
바로 가겠다고 했지만 난 좀 더 동식을 뒤따르며 살폈다. 왜 동식이가 송이를 미행하고 있는 걸까? 송이의 집 화재사건과 연관이 있는 걸까? 아니면 송이의 부친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동식의 주머니에서 진동음이 울렸다.
“네, 박동식 경위입니다. 아, 예. 금방 가겠습니다. 네, 네.”
동식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으며 송이를 한번 쳐다보더니 급히 어딘가로 달려갔다. 동식을 쫓아가 무슨 일인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송이에게서 멀리 떨어지면 안 되기에 뒤쫓지 못하고 발길을 돌렸다.
돌아가는 길에 동식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떠오르는 기억들이라고는 조각난 사진들처럼 부분적으로 내 머릿속을 헤집어 놓을 뿐이었다. 그래도 동식에 대한 기억들은 나쁜 추억들은 아닌 듯 느껴졌다. 왠지 그를 떠올리면 가슴 한편이 따뜻했다.
함께 밤을 지새우며 일했던 기억들, 술에 진탕 취해 어깨동무하며 어두운 밤길을 걸어가는 기억 그리고 내 앞에서 그 누구보다도 더 나를 위로하며 울고 있는 동식의 얼굴이 스쳐지나갔다. 무슨 일로 울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새 도착했는지 그 아이가 말을 걸어왔다.
“왔어요? 사람들 눈에 안 띄었죠?”
“어? 어. 걱정 말라고 했잖아.”
“어떻게 걱정을 안 해요? 갔던 건요? 정말 절 미행하는 게 아니었어요?”
“그렇다니까, 왜?”
“아니요. 그게······ 아저씨는 그림자라 얼굴 표정은 볼 수 없지만 그래서인지 목소리에서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요. 뭔가 좋지 않은 일이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거든요. 웃는 것도 좀 어색하게 들렸고.”
손사래를 치며 강하게 부정했다. 그게 더 어색할 정도로.
“에이, 아니야. 내가 왜 안 좋아? 내가 좀 예민해서 그런 걸 거야. 잘 알잖아? 내 강박증. 주변이 너무 더럽고 어지럽혀 있어서 그랬어.”
“그래요. 그랬구나.”
송이는 피식피식 웃으며 말했다.
“사실은 그냥 떠 본 건데. 어떻게 목소리만 듣고 그걸 알 수 있겠어요.”
“뭐야? 난 또 네가 나에 대해 좀 알아가는구나 싶었더니······.”
“에이, 왜요? 그래도 아저씨에 대해 많이 알아가고 있는 걸요? 잠깐 떨어져 있었는데도 그립더······ 아니, 무서워서 그리웠다는 말이에요.”
삐죽거리며 변명하는 송이의 귀여운 표정에 웃음이 새어나오고 말았다.
“왜 웃어요? 정말이라고요?”
“알았어. 누가 뭐라고 했어? 역시나 나의 매력에 푹 빠졌나봐? 그래도 안 되는데, 우리는.”
얼굴을 붉히며 송이는 당황한 듯 말까지 더듬거렸다.
“뭐, 뭐요? 참. 누가 좋아한다고 했나요? 별 꼴이야. 그리고 아저씨는 그림자라고요. 누가 그림자를 사······ 아니, 좋아할 수 있겠어요. 치, 놀리기나 하고, 그림자 주제에.”
“야아, 그림자 주제는 좀 너무 간 거 아니냐? 듣는 그림자 마음도 생각을 해줘야지.”
“아, 죄송해요.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그래, 알았어. 귀엽네, 자식.”
“뭐라고요? 아이, 정말······.”
송이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휙 돌렸다.
“지금 뭐야? 부끄러운 거야? 너 설마······.”
“아니라고요! 아니에요!”
버럭 화를 내며 송이가 소리치는데도 나는 웃음을 참지 못하고 빵하고 웃음이 터져 나왔다.
“정말 못 됐어, 치.”
송이는 갑자기 또 말없이 달려갔고 나는 웃다말고 뒤쫓아 달렸다.
***
시끄러운 음악소리가 들려오다 문이 닫히며 쥐죽은 듯 조용해졌다. 웨이터는 테이블에 술과 안주를 세팅한 후에 다시 시끄러운 밖으로 나갔다. 룸에는 자산관리 사무실에서 봤던 대표와 그를 형님이라고 모시는 한 남자가 앉아 있었다.
웨이터가 나가자 대표 옆에 앉아 있는 남자가 입을 열었다.
“형님, 골치 아프게 생겼습니다.”
“또 뭐가? 보자마자 한다는 소리가.”
“죄송합니다. 형사 한 놈이 그날 사건에 대해 꼬치꼬치 묻고 다닌다고 해서 말이죠. 어떻게 할까요?”
“뭘 어떻게 해? 경찰은 건들지 마. 괜히 일만 더 커진다고. 경찰은 나라님도 컨트롤이 안 되는 족속들이야. 어느 쪽 사람인지나 알아보고 그 다음에 얘기하자. 아니, 아니야. 됐어. 그냥 둬. 짭새 새끼가 알아봐야 얼마나 알아본다고. 그래, 알아보라고 나둬. 그래도 우린 못 건드려. 내가 다 약을 쳐놨다니까. 그러니까 괜히 일 만들지 말고. 그냥 지켜보기나 하고, 나한테 보고 해.”
“그런 겁니까? 그래도 영 께름칙해서······. 놔뒀다가 더 일을 키우는 건 아닌지······.”
대표는 술잔을 들었다 내려놓으며 그를 쳐다봤다.
“아이, 아직도 이 형 못 믿는 거야? 다 엮어놨다고 못 빠져나가게. 다 그렇게 설계를 했어요, 이 사람아.”
“그래도 그 사람들은 문제없겠지만 우리 같은······ 아니, 저 같은 사람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야, 무철아. 그래서 만약을 대비해 약을 다 발라둔거야. 그 놈들은 우리 못 건드려. 그러니까 쓸데없는 걱정 말고 너는 네가 할 일만 제대로 하면 돼. 어? 네 형, 딴 생각 못하게 잘 붙잡고. 이번에 한 몫 단단히 챙기면 네 인생······ 아니, 우리 인생이 확 바뀐다니까, 어?”
“그래도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돌변할지 모르는 일 아닙니까?”
“돌변하라지? 씨. 그럼 그때는 다 죽는 거야. 그 놈들은 살 수 있을 것 같아? 그 놈들도 다 알아. 그 만큼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걸. 리스크가 크면 어떻다고?”
“수익이 높다.”
“그렇지. 파이가 커진다고. 그 자식들이 그걸 모를까? 다 알아. 아니, 우리보다 더 잘 안다고. 그런 놈들이야. 이게 얼마짜리 설계인데? 그래, 그 놈들한테는 이거 아무것도 아닐 수 있어. 더 큰 것도 잘도 해 먹었으니. 알잖아?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어? 알게 모르게 다 해 먹고 있다고. 그런데 우리만······ 아니, 너만 그렇게 벌벌 떠는 거야. 그 놈들이 그동안 얼마나 해 처먹었겠냐? 윗대가리들은 그렇게 다 해 처먹고 있다고. 네가 몰라서 그래, 이 바보야.”
“그렇죠, 우리 같은 사람들이······.”
“그래, 바보처럼 착하게 살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 착하게 나라에서 하라는 것만 해서는 머니를 벌수가 없다니까, 편법과 불법을 오가는 줄타기를 제대로 해야 한다고. 어? 내가 몇 번을 말했어? 그러니까 오늘 오는 손님들 잘 모시고. 아, 내일. 내일 밤은 정말 제대로 모셔야 한다. 거기서 삐끗하면 답 없다? 그러니까 그 놈이 똥구멍을 핥으라면 핥는 시늉이라도 해야 한다고, 어?”
“예, 형님. 그건 제가 또 잘 하지 않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그런데 오늘은 또 누굽니까?”
“너는 몰라도 돼. 그냥 내 옆에 앉아 있기만 해. 입 벙긋하지 말고. 그냥 그분이 하라는 대로 하면 돼. 술 마시라고 하면 마시고, 나가서 노래 부르라면 노래 부르고 하면 되는 거야. 어? 시키는 것만 잘하면 된다고, 알겠지?”
무철이라는 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렇다고 쫄지는 말고. 다 똑같은 놈들이야. 똑같은 사람이라고. 그 놈들이 지금은 돈 있고, 권력도 있으니까 대접해주는 거지. 그 놈들이 돈도 없고 권력도 없어봐, 사람 취급이나 하겠어, 내가? 순 양아치 새끼들. 돈 없는 국민들 세금만 야금야금 갉아 먹는 놈들이라고. 아우, 재수 없는 놈들. 그래도 어떻게 하겠냐? 지금은. 그런 놈들 아니면 우리가 머니를 만질 수가 없는데. 어? 그러니까 다 같은 놈들이라는 말이다, 내 말은. 그러니 쫄지는 말고 하라는 대로만 잘 해.”
“예, 알겠습니다. 형님.”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웨이터가 들어왔다.
“손님들 오셨습니다.”
“어, 그래. 어서 모셔.”
***
금남시를 가로 흐르는 금남천을 따라 밤 시간이었지만 운동을 나온 사람들이 꽤 있었다. 송이는 엄마가 잠든 사이에 몰래 모텔에서 나와 금남천을 찾았다. 그림자는 개천을 보고는 놀란 듯 송이에게 말했다.
“우와, 이런 곳도 있었어? 여기 살기 좋은 곳이네.”
“그러니까요. 좋죠? 저 뒤로는 산이 있고 여기 금남천이 흐르니 말이에요.”
“배산임수구만. 딱 풍수 지리적으로도 좋은 곳이고.”
배산임수라는 말에 송이는 풍수도 볼 줄 아는지 물었다. 그림자는 어디서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라며 배산임수가 무슨 뜻인지 모르냐고 묻자 송이는 안다고 하면서도 자신없어하며 뒤에 산이 있고 그 앞에 물이 흐르는 것이 아니냐고 대답했다.
“그래. 근데 왜 그렇게 눈치를 보면서 말하는데?”
“아니, 난 또 틀리면 어쩌나 했죠.”
“됐다. 그거 모른다고 못 사는 것도 아니고. 운동이나 시작해볼까?”
“저기, 얼마나 할 거예요? 엄마가 자다 깨서 찾으면 골치가 아파서요.”
“오늘은 30분만 뛸 거야. 뛰는 동작도 알려줄 거고. 무작정 뛴다고 운동이 되는 게 아니라서. 네 엄마 걱정 말고, 보니까 한번 잠들면 누가 업어 가도 모르겠던데, 뭐?”
고개를 끄덕이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네 엄마는 자신의 예상에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고 말하자 그걸 벌써 다 파악했냐며 송이가 물었다.
“파악할 것도 없어. 예상대로 다 하던데. 너 들어오자마자 폭풍 잔소리에. 온갖 잔심부름은 껌이고. 지가······ 아니, 네 엄마가 할 일도 너한테 떠넘기는 것 보고 할 말을 잃었다. 넌 어떻게 살아왔는지 네가 참 대단하더라. 나 같았으면 벌써 미쳤을 거야. 아니, 그전에 집을 뛰쳐나가겠지.
자신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는 송이는 이제는 아버지 때문에 힘들게 되었다고 말하는 목소리가 풀죽어있었다.
“제가 성인이 되면 독립하려고 했거든요. 경제적으로 독립하면 뭐라고 못하실 것 같았는데. 이제 아빠도 안 계시니 엄마 혼자······ 미안해서 안 될 것 같아요. 나마저 떠난다고 하면 엄마 혼자서 외롭고 힘들어 하실 것 같고, 혼자 계시다 어떻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고요.”
“그러고 보니 네 엄마가 자주하는 말이 있더라. ‘우리 송이가 없었으면 엄마가 힘들어 죽었을 거야.’라고 말이야. 제대로 가스라이팅을 하더라고.”
“가스라이팅이요? 그럼 진심이 아니란 말인가요?”
“진심? 진심이겠지. 너한테 고마워서 하는 소리가 아닌 것 같아서 그러지. 널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하는 소리 같았단 말이야. 그게 바로 가스라이팅이라는 거거든. 말로 너를 조종하는 거라고. 너의 마음을 약하게 만들어서 자신의 말에 순종하게. 난 그게 보이는데 너는 아직 안 보이는 거겠지? 엄마니까. 엄마가 그런다고 어떻게 생각을 하겠어? 그러니까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온 거겠지. 송이야, 송이야, 충격 받았니?”
그림자가 말하는 동안 송이는 멍하니 듣고만 있었다. 대답하지 않는 송이에게 그림자가 다시 말을 걸었다.
“송이야! 아이고, 내가 아무 생각 없이. 그래, 엄마······ 그래, 네 엄마라서 아니라고 하고 싶을 거야. 너를 사랑할 거라고 하지만······.”
“아무 말 마세요.”
“송이야······.”
“아무 말 마시라고 했잖아요!”
화가 난 듯 송이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쪼그려 앉아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간 듯 고개를 푹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그림자는 아무 말 없이 옆에 드리워져 있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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