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직업병이 아니라고?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모텔로 가는 길목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건물들이 즐비하게 서 있었다. 어스름한 어둠이 길 아래로 내려앉지 못하고 밝게 빛나는 간판들 사이 틈으로 사라졌다. 그 길 위에는 술에 얼큰히 취한 사람들과 욕을 내뱉으며 싸우는 사람들 그리고 큰 목소리로 떠들며 지나가는 사람들로 어수선했다. 그 길을 송이는 조심스럽게 지나가고 있었다.
네온사인에 비치는 불빛에 사람들의 그림자는 나타났다 사라지기도 하고 여러 개로 보이기도 했다. 송이의 그림자는 오직 하나만 짙게 드리워져 같이 걷고 있었다.
“친구들이 다 괜찮네. 너처럼 변덕스럽지는 않아서 말이야.”
그림자는 걸걸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농담, 농담이야. 친구들 생각이 하나같이 바르고 명석해서 말이야.”
송이가 한마디 하려다 그냥 피식 웃고 넘어갔다.
“맞아요. 저보다 다 괜찮은 친구들이에요. 아까는 정말 친구들한테 감동 먹었잖아요.”
“그랬어? 그래, 그래서 네가 아무 말도 못했구나.”
“그게 아니라······ 제 생각이랑 같아서······.”
“정말?”
“아이, 정말. 또······.”
“이번엔 농담 아닌데······. 장난이야, 장난. 인상 풀어.”
송이는 자꾸 장난을 걸어오며 웃는 그림자를 째려보다 다시 앞을 바라보고는 입을 삐죽거렸다.
“치, 못됐어.”
“친구들 말대로 반장을 만나서 얘기가 잘 될까 모르겠어.”
“알아요. 그래도 우리 반 친구잖아요. 그 애도 무슨 사정이 있을 거예요. 우리가 도울 수 있다면 돕고 싶어요. 친구들 말처럼.”
“그래, 아는데 그러다 더 큰 상처로 돌아올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러지. 아까는 말 못했지만 소희라는 그 반장아이, 보통 친구는 아닐 것 같아서 말이야. 오히려 너희를 괴롭히거나 협박할 수도 있을 거야.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 거고.”
“친구들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 정도는 생각하고 얘기했을 거예요. 쉽게 그런 결정을 한 건 아닐 거라고요.”
“물론이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머리가 잘 여물었다고 해야 하나, 생각들이 바르고 착해. 다들.”
“머리가 여물어요?”
“비유가 그렇다는 거지. 송이, 너는 자신 있는 거야? 왜 혼자 나서서 하려는 거야? 애리가 보니까 말도 조리 있게 잘하고 너보다는 나······ 아니, 나는 객관적으로······.”
송이가 눈을 흘기며 그림자의 말을 잘라 말했다.
“저도 그건 알아요. 그렇다고 애리한테 모두 맡길 순 없잖아요. 애리는 반장도 만나야 하잖아요. 기정이가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했고요. 우리가 우르르 몰려가서 설득한다고 해도, 기정이는 자신을 몰아세운다고 느낄 수 있다고요. 제가 먼저 사정을 들어보고 그 뒤에 애들과 함께 해결하는 게 좋을 것 같았어요.”
“오호, 그런 깊은 뜻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계속 장난처럼 말하는 그림자가 얄미워 송이는 그림자를 째려봤다.
“저를 너무 띄엄띄엄 보는 거 아니세요? 저 그 정도는 아니거든요?”
“물론 아니지. 그런 뜻이 아니라 나도 생각 못한 거라서······. 대견해서 한 말이야.”
송이는 아닌 것 같다고, 그림자는 맞다고 옥신각신하는 사이 송이가 뭔가에 깜짝 놀라며 소리쳤다.
“어머! 왜 그러세요?”
자신한테 하는 소리인 줄 알고 그림자가 올려다보며 내가 뭘 하는데, 술에 취한 남자가 송이의 손목을 덥석 잡고는 초점 잃은 눈을 껌벅거리며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다.
“왜 이러세요?”
“아가씨, 나랑 술 한 잔 해. 어? 어디로 갈까? 저기로?”
뒷걸음치며 취객의 잡힌 손목을 빼보려 했지만 취객은 더 세게 송이의 손목을 잡아 끌뿐이었다. 그림자가 다급하게 말했다.
‘송이야, 소리 질러. 도와달라고 소리 지르라고. 아이, 어쩌면 좋냐? 나라도 어떻게 해주면 좋겠는데 그림자라······.’
그림자의 말을 들은 송이는 도와달라고 주변사람들에게 소리쳤다. 하지만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피하기만 할 뿐 선뜻 나서서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송이는 그림자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고, 학교에서 귀신인 척 한 것처럼 해보라며 울먹였다.
취객은 자신에게 하는 말인 줄 알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에이, 나 귀신 아니야. 그렇게 나쁜 사람도 아니고. 시간 되면 술이나 한잔 하자는 건데, 왜 그래?”
“이거 놓으시라고요. 저는 학생이라고요, 학생! 교복을 보면 모르시겠어요?”
“학생? 학생이면 어른 말을 들어야지. 딱 한잔만 하자고, 어?”
‘이 인간, 제 정신이 아니네. 송이야, 어쩔 수 없다. 내 말대로 해. 알았지?’
‘어떡해요?’
‘일단, 순순히 따라가.’
‘뭐라고요? 이 아저씨가 어딜 갈 줄 알고요?’
‘내 말대로 해. 따라가는 척하면서 널 잡고 있는 손에 힘이 빠져다 싶을 때 그 남자의 엄지와 검지 사이로 힘껏 손목을 빼내는 거야. 그때 손만 빼서는 안 돼, 허리를 함께 돌려 상체 전체가 함께 움직여야 해. 내 말 알겠어? 할 수 있겠니?’
‘다시 한 번만 더 설명해 주세요.’
그림자는 취객에게 잡힌 송이의 손목을 빼는 방법을 다시 설명해주었다. 송이는 그림자의 말대로 취객에게 알겠다고 말하고 어디로 갈 거냐면 그의 경계심을 풀었다. 취객이 잡고 있던 손목의 아귀힘이 약해졌다 느껴질 쯤 그림자가 알려준 방법으로 그의 손에서 손목을 힘껏 빼냈다.
그림자 말대로 되는 것을 보고 송이는 깜짝 놀라면서도 도망치라는 그림자의 외침에 무작정 취객에게서 도망쳤다. 그림자는 뒤늦게 송이를 뒤따라 달려 나갔다.
취객은 순간 도망가는 송이를 허망하게 쳐다보다 뒤따라 달려가는 그림자를 보고는 깜짝 놀라서는 눈을 비비고 다시 그림자를 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뒤따르는 것이 눈에 들어오자 취객은 화들짝 놀라 주저앉았다.
도망칠 생각에 모텔이 있는 방향과는 다른 길로 송이가 내달리고 있었다. 그림자가 이 길이 아니라고 외쳐 봤지만 송이는 듣지 못했는지 무작정 앞만 보고 달렸다. 힘이 부친 송이는 멀리 가지 못하고 멈춰 서서는 허리를 숙인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림자는 송이 옆으로 드리우며 물었다.
“내 말 안 들려?”
숨을 헐떡이며 송이는 간신히 대답했다.
“뭐라고요? 왜요? 이 정도 달려왔으면 됐겠죠?”
“그래, 잘 달리더라. 뒤에서 누가 쫓아와야 좀 빨리 달리기는 하는 것 같네. 그래도 그리 멀리는 못 가는 것 같고. 이러면 안 되는데······ 그 나이에, 쯧쯧. 그러니까 운동을 좀 하는 게 어때?”
송이는 숨을 고르고는 고개를 들며 그림자를 흘겨봤다.
“또 그 소리에요? 그래요, 그래. 하면 되잖아요. 내일부터요, 내일.”
“내일? 에이, 내일가면 또 내일로 미룰 것 같은데. 그냥 오늘 밤부터 하자. 어?”
“아이, 정말. 왜 사람 말을 그렇게 못 믿어요?”
“사람 말을 못 믿는 게 아니라 네 말을 못 믿는 거지. 안 돼, 오늘부터 당장 시작해. 오늘 같은 일이 또 있을 수 있으니까 호신술도 좀 배워두고.”
호신술 배울 돈이 어디에 있느냐며 송이는 돈 달라고 엄마한테 말도 못 꺼낸다고 그런 소리하지 말라고 했다. 그러면서 취객에게 했던 동작이 혹시 호신술은 아니었냐고 물었다.
“그게 호신술······. 그런가?”
“난 또 호신술을 배우라고 하셔서 좀 아시나 했죠?”
“그러고 보니, 내가 호신술을 알고 있는 것 같기도 한데. 잠깐만 있어봐.”
“왜요?”
“아니, 기다려봐.”
그림자는 팔과 다리를 움직이며 무술 같은 동작들을 해보였다. 그리고는 혼자 호들갑스럽게 된다며 몸이 다 기억을 한다고 흥분해 말했다.
“뭐가요?”
“아, 호신술 말이야. 그래, 내가 형사라서 호신술 정도는 아는 것 같다. 돈 필요 없겠어, 내가 가르쳐줄게. 어때?”
“아저씨가요? 정말 호신술도 할 줄 아시는 거예요?”
“그래. 혹시나 해서 몸을 움직여봤는데······ 동작들이 생각나잖아. 신기하다. 기억들이 조금씩 돌아오는 듯한 기분도 들고.”
흥분해 호들갑스럽게 말할 때는 언제고 갑자기 모든 기억들이 언제 돌아올지 모르겠다며 빨리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지금 보니까 금방 다 돌아오겠는데, 왜요? 몸이 기억하고 있잖아요. 그러니까 힘내세요.”
“힘? 야, 나는 원래 힘이 넘쳐. 네가 문제지. 송이야, 오늘부터 나랑 운동하는 거다?”
“아휴, 정말. 알았어요. 못 말려, 정말. 제가 그렇게 뚱뚱한 게 보기 싫은 거예요? 그냥 저는 이렇게 살고 싶은데, 뚱뚱한 게 어때서요? 참 이상해, 사람들은.”
“아니야. 네가 뚱뚱해서가 아니라 너의 건강이 걱정 돼서 그러지. 너 뛰는 것 보니까 달리는 방법도 잘못 됐고. 그러다 네 무릎도 금방 상한다고. 건강한 몸은 건강한 정신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거야. 몸이 약해지면 정신도 함께 약해질 수밖에 없거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말이야. 그래도 몸이 튼튼하면 마음도 함께 단단해질 수 있다고. 그래서 운동을 하자고 하는 거니까, 오해 마라. 아, 호신술은 아까 같은 일이 또 있을 수 있으니까, 특히 여자들에게는. 그래서 배워두면 좋을 것 같다고 한 거고. 내가 또 호신술을 알고 있으니 다행이잖아. 돈도 굳고?”
송이는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에! 고마워요, 아저씨. 아저씨를 만나고 저도 좀 어깨를 피고 사는 것 같은 느낌이에요. 뭔지 모르겠지만요.”
“그래? 그럼, 다행이네. 그럼 이제 집으로······ 아니, 모텔로 갈까?”
“네, 가요. 아, 운동은 언제 할까요?”
“일단 모텔로 가서 네 엄마한테 눈도장은 찍고 나와야 하지 않을까?”
“벌써 상황파악이 다 되셨군요. 고마워요. 아마도 왜 이렇게 늦게 왔냐고 화부터 내실 거예요.”
그림자는 너털웃음을 쳤다.
“그래, 어서 가자.”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느끼며 화기애애하게 투숙 중인 숙소로 향했다. 웃으며 걷고 있던 그림자가 갑자기 멈춰 서서는 고개를 뒤로 돌린 채 경직된 목소리는 말했다.
“송이야, 천천히 그냥 걸어. 나 보지 말고.”
“왜요? 갑자기.”
“누가 널 미행하고 있다. 이번엔 제대로 확인을 해야겠어.”
“그냥 직업병 아니고요?”
“아니야. 아까부터 계속 우리 뒤를 밟고 있어서 그래.”
“아, 죄송해요. 진짜인가 보네요?”
“그러니까 모텔까지 앞만 보고 걸어가. 내가 누군지 확인하고 올 테니.”
“간다고요? 어딜 가요? 그냥 제 옆에 계세요.”
“괜찮을 거야? 밤이라 사람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그래도······.”
“내 걱정은 말고 그냥 이대로 천천히 걸어가.”
“그러지 말고 그냥 빨리 들어가요. 이상한 사람일 수도 있잖아요. 그러다 갑자기 달려와 저한테 해를 입히면 어떡해요?”
“아닐 거야. 분명 저번에도 너를 미행했던 자일 것 같아서 그래.”
“뭐라고요? 그럼 그때도 우리를······ 아니, 저를 미행했다는 건가요?”
“그래서 그걸 확인하려고. 그러니까 다녀올게.”
“아, 네. 조심······ 아니, 네. 다녀오세요.”
송이는 그림자가 갔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앞만 보고 가라는 말을 따랐다. 그래도 궁금한 나머지 말을 걸었다.
‘가셨어요? 아니면 아직 옆에 계세요?’
‘말 걸지 마. 가고 있다고.’
‘아, 죄송해요.’
송이는 투숙하고 있는 모텔에 가까워지자 초조한 나머지 다시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한데 말 걸어도 될까요?’
‘왜 이 자가······.’
‘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독자 여러분의 추천, 댓글 그리고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Comment '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