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앗, 귀신이다!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송이와 애리가 있는 교실로 찾아온 민정은 울먹이며 송이 옆으로 와 앉았다. 송이와 애리는 민정을 달래며 안심시켰고, 그들은 부둥켜안으며 아무 일 없을 것이라고 서로를 위로했다. 민정이 진정되자 송이는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정말, 아무것도 안하고 여기에 있을 거예요? 우리가 뭐라도 해야죠.’
‘나한테 맡기고 너희들은 절대 나서지 마. 알겠지?’
‘아저씨한테 맡기라고요? 어떡해요? 그림자라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요. 그러니까 우리가 뭐라도 해야죠. 민철이랑 동진이만 쟤네들한테 당하게 그냥 둘 순 없다고요.’
‘또 내 말 안 듣고 마음대로 해봐. 그때는 나도 내 마음대로 다 한다. 알겠어?’
‘뭐라고요? 지금 17살 어린 여학생한테 협박을 하시는 거예요? 아저씨가 지금까지 한 게 뭐예요? 말로만하고······ 치, 정말.’
‘아휴, 정말. 아니, 왜 자기가 불리할 때만 나이를 들먹이는지 모르겠네. 여하튼 일단은 내 말 들어. 너희들은 여기에 있어. 무슨 일이 있어도 나서면 안 돼. 애리나 민정한테 잘 얘기해서 여기 그냥 있으라고. 그렇게만 해, 내가 알아서 한다고.’
‘뭐예요? 무슨 계획이라도 있는 거예요?’
‘있으니까 그렇지. 그러니까 처음부터 내 말을 들었으면······ 아휴, 됐다. 내 입만 아프지. 제발 이번만은 내 말 좀 듣자, 어?’
‘알았어요. 대신, 제발 어떻게 좀 해보시라고요.’
‘그러려고 가고 있잖아.’
‘가요? 어디······.’
송이는 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그림자 아저씨를 찾았다. 그림자는 어느새 송이 곁에서 사라지고 난 뒤였다. 뭔가를 찾는 듯한 송이를 본 애리가 물었다.
“송이야, 왜 그래? 뭐 찾아?”
송이는 애리의 말을 못 들었는지 대답 없이 줄곧 그림자 아저씨를 찾고 있었다. 민정은 애리의 말에 대답하지 않는 송이의 옷깃을 잡고 흔들었다.
“송이야, 왜 그래? 정말. 애리가 묻잖아, 뭐라도 찾아?”
그제야 송이는 깜짝 놀라 민정을 봤다.
“아, 아니. 아니야, 미안. 뭐라고 했어?”
“얘 봐, 정말. 아니, 뭘 찾고 있는 거냐고, 애리가 묻잖아.”
“아, 아니야. 아무것도.”
송이는 애리를 보며 고개를 내저었다.
“송이야, 너 어제부터 좀 이상하다? 혼자 바닥을 보면서 중얼거리지 않나, 애들이 불러도 대답도 않고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행동하고 말이야. 그리고 기정이랑 반장이 그런 사이라는 건 어떻게 안 거야?”
민정도 그때 일이 생각났는지 덧붙여 물었다.
“아, 맞다. 급식실에서 나랑 같이 있었잖아. 근데 어떻게 도둑이 기정이라는 걸 안 거야? 그 전에 미리 알고 있었던 거야?”
“그건, 그러니까······ 미안해. 그건 말할 수가 없어. 아니, 말해도 너희들이 믿지 못할 거야. 아니야, 내가 미쳤다고 할 거야, 분명.”
애리는 고개를 갸웃하며 쌀쌀맞게 말했다.
“애가 또 이러네. 뭔데 그래? 그건 우리가 듣고 판단할 게. 미쳤다고 안할 테니 말해봐. 너 뭐가 그렇게 비밀이 맞니? 기정이랑 반장 일은 우리도 알아야 하는 일이잖아. 그래야 앞으로 우리가 널 도와 같이 할 수 있다고. 안 그래? 민정아.”
민정은 애리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송이를 고개를 돌렸다.
“송이야, 나도 좀 서운하려고 그래. 그래, 알아. 너 많이 힘든 거. 그런데 이번 일은 우리에게 모두 말해 줘야해. 뭐 때문에 그런 줄은 모르겠지만 우리한테까지 비밀로 하는 건 정말 섭섭하다. 우리가 왜 널 미쳤다고 하겠어? 뭐, 귀신이 너한테 말해주기라도 한 거야? 아니면 무당처럼 앞을 내다보는 그런 거야? 그런 거 아닐 거잖아. 왜 우리한테까지 비밀로 하려고 그래? 괜찮으니까, 말해봐. 응?”
애리와 민정이 섭섭한 눈으로 계속 캐물어오자 송이도 더는 비밀로 할 수 없겠다 생각했다.
“그게 말이야······. 알겠어. 말할 게. 대신 동진이 오고 다 있을 때 말할게. 두 번 말하기 좀 그래서. 그건 괜찮지?”
“좋아, 알았어. 애리야, 괜찮지?”
애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는 대신 꼭 말해줘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뭐 찾고 있었던 거 아니었는지 물었다. 송이가 이번에도 난감해하며 그것도 동진이가 오면 말해준다고 하자 애리는 답답한 듯 크게 한숨을 내쉬고는 그냥 넘겼다.
***
학교에 길게 노을이 내려앉아 복도 유리창을 통해 붉은 빛이 들어왔다. 복도에는 노을빛 사이로 듬성듬성 어둠이 자리했다. 복도 끝 출입구 앞에 일진들은 쓰러져있거나 무릎을 꿇고 앉아 배나 목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뭐해? 너도 덤비지 않고?”
민철은 석진에게 손을 까닥거리며 도발했다. 석진은 피식 웃음을 지더니 천천히 민철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는 민철이 먼저 달려들어 주먹을 날렸다. 석진은 고개를 숙이며 주먹을 피하고는 발로 민철의 정강이를 정확히 걷어찼다.
그 충격에 무릎을 꿇은 민철에게 빠르게 날아올라 얼굴을 발로 내리쳤다. 짧은 시간 연달아 날아든 석진의 공격을 미처 막지 못한 민철은 그대로 맞고 쓰러졌다. 그러나 곧바로 일어난 민철은 주먹을 얼굴 앞으로 올리며 석진 앞에 섰다.
“더 해보자는 거야? 그 정도면 되지 않았나? 너는 나한테 안 돼.”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거야? 한방 먹였다고 깝치지 마라.”
“아이, 새끼. 입을 살아가지고. 빡치게 하네. 그래, 좀 더 맞자.”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날라 차기를 하듯 날아올라 민철의 복부를 향해 오른발을 뻗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민철이 양손으로 막았다. 그러나 어느새 석진은 오른발로 민철의 허벅지를 박차고 날아서 왼발로 얼굴을 그대로 돌려 찼다.
눈 깜박할 사이에 오른발과 왼발이 민철에게 날아들었다. 골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을 받은 민철은 뒤뚱뒤뚱 뒷걸음쳤다. 그 순간 놓치지 않고 석진은 날아올라 민철의 명치를 무릎으로 정확히 가격했다.
속수무책으로 석진의 공격을 당한 민철은 그대로 뒤로 나가떨어져 쓰러졌다. 민철의 얼굴 아래로 붉은 노을빛이 내려앉았다. 민철은 명치를 움켜쥐며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간신히 바닥을 짚고 앉았다.
“별 것도 아닌 게······ 씨. 괜히 쫄았네. 저 것들 때문에······. 야, 뭐해? 빨리 일어나서 저 새끼 치워.”
누워있거나 앉아서 석진과 민철의 대결을 지켜보던 일진들은 서둘러 일어나 민철에게 다가갔다. 일진 중 한 명이 무언가를 봤는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온몸을 벌벌 떨며 손을 들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짱······ 저, 저기······. 저기, 저거 뭐지?”
석진은 짜증 섞인 목소리로 그가 가리킨 곳을 보며 욕을 뱉어냈다. 나머지 일진들도 그가 가리킨 곳을 보고는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저거, 저거 뭐야?”
석진도 그제야 그것을 보고 몹시 당황한 듯 헛것을 본 것은 아닌지 자신의 눈을 비비며 다시 그곳을 살폈다. 처음 목격한 일진이 벌벌 떨며 뒷걸음치며 석진에게 다가왔다.
“짱, 저거 귀신, 귀신 맞지? 움직이잖아. 그치? 사람은 아니지?”
“씨발, 몰라! 지금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어?”
“그럼 저게 뭔데?”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네가 가봐, 어서!”
석진은 그의 엉덩이를 바로 찼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자 욕을 쏟아내며 소리쳤다.
“안 가? 나한테 죽고 싶냐? 오늘 완전 여러모로 빡치게 하네. 빨리 가라고, 새끼야!”
그 일진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얼굴로 부들부들 떨리는 발을 겨우 앞으로 내디뎠다. 그들이 본 것은 복도 끝 붉은 노을이 유리창 너머로 내려앉은 복도 위에 검은 그림자가 두 팔을 들고 있는 괴기한 몸이었다.
사람 그림자처럼 보였지만 그곳엔 사람이라고는 보이지 않았기에 일진들은 귀신이라고 생각했다.
“새끼, 그게 뭐가 무섭다고. 빨리 가서 뭔지 알아보고 오라고!”
석진은 옴짝달싹 못하는 일진에게 온갖 욕설을 뱉어내며 가보라고 다그쳤다. 그래도 움직이지 않자 병진이라는 부짱의 이름을 부르며 가보라고 지시했다.
“내가?”
“새끼들이 정말, 오늘 나한테 다 죽을래?”
“아, 알았어. 내가 갈게.”
병진은 무섭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어쩔 수 없이 먼저 앞서 간 그 일진 뒤를 따랐다. 그때였다. 복도 끝에 기괴하게 서있던 그림자가 마치 좀비처럼 빠른 걸음으로 그들에게 다가왔다.
노을빛에 그림자가 보이다가 기둥에 가려 어둑한 곳에서는 사라졌다가 유리창으로 노을빛이 내리는 복도에는 기괴한 몸짓의 그림자가 다시 나타났다. 그렇게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하며 그들에게 다가왔다. 일진들은 모두 혼비백산하여 괴성을 지르며 학교 밖으로 도망쳤다.
“아악! 귀신이다! 귀신!”
“저 새끼들이······. 저게 뭐······ 아악! 귀, 귀신이다!”
석진도 달려들듯 다가오는 기괴한 몸짓의 그림자를 보고 비명을 지르며 도망쳐나갔다. 앉아있던 민철은 그들이 무엇을 보고 놀라는지 뒤돌아 봤지만 민철의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에는 그림자가 어둠 속에 숨어 있었다.
일진들이 모두 허둥지둥 정신없이 학교를 빠져나간 뒤 민철은 겨우 일어서서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복도 끝에 도착한 민철은 위층으로 올라가려는데 계단 중간에 동진이가 눈을 질끈 감고 겁에 질린 얼굴로 주저앉아 있었다.
“동진아!”
절뚝거리며 겨우 올라온 민철은 동진을 흔들어 불렀다. 동진은 번쩍 눈을 떠서는 떨리는 음성으로 겨우 입을 열었다.
“민, 민철아, 귀, 귀신이 있어. 저저기 귀, 귀신······.”
“뭐라고? 귀신? 무슨 소리야? 너는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아이, 정말이라니까? 저기 복도, 저기에 귀신이 있었다고. 내 눈으로 직접 봤다니까, 정말.”
민철은 동진의 말을 믿지 못하는 듯 대충 알겠다고 말하고는 동진을 일으켜 세웠다.
“애들은 어디에 있어?”
“애들? 아, 애들! 위층에 숨어 있어. 아니, 너, 너는 괜찮아? 미안. 내가······.”
“난 괜찮아. 애들한테 전화해서 내려오라고 해. 이제 다들 갔어. 그러고 보니 걔들도 무슨 귀신이라고 한 것 같기는 한데. 이 세상에 귀신이 어디에 있겠냐? 뭘 잘못 보고 그런 거겠지.”
“아니야, 정말 귀신이 있었다니까. 내 말 못 믿는 거야? 저기 복도에 검은 것이 막 움직였다고. 어깨를 이렇게 하면서 말이야. 그래, 마치 좀비처럼. 나 그거보고 기절할 뻔했다고. 겁나 놀랐다니까, 정말이야. 바지에 오줌까지 지릴 뻔······ 아니, 그건 아니고.”
여전히 믿지 못하는 민철은 동진이가 언제부터 여기에 있었는지가 궁금했다. 그래서 물었더니 짱에게 맞고 있는 자신을 보고도 도저히 발이 떨어지지 않아 돕지 못했다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러나 민철은 그 서운함보다는 석진에게 쥐어터지는 모습을 보인 게 더 신경이 쓰이고 창피했다.
“그게 아니라, 다 본 거냐고?”
“어? 어.”
“아이, 씨. 쪽팔리게. 야, 오늘 본 건 비밀이다. 아무한테도 말하면 안 돼. 내가 반드시 그 자식한테 복수한다. 아이, 언제 그렇게 싸움을 잘했지? 발차기 달인이 다 돼서는······.”
“뭐라고?”
“아, 아니야. 혼잣말이야. 아무튼 오늘 본 건 비밀로 해줘. 알았지? 쪽팔려서 그래.”
“알았어. 대신 너도 내가 못 나선 건 비밀로 해줘. 특히 민정이한테는······.”
민철은 동진의 어깨를 툭 치며 말을 가로챘다.
“자식, 민정이 정말 좋아하나 보네? 알았어. 그럼 우리 서로 비밀로 하는 거다. 야, 어서 애들한테 전화해.”
속마음을 들킨 동진은 부끄러워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는 민정에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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