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친구를 위한 길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DUMMY](http://cdn1.munpia.com/blank.png)
“어서, 말해봐. 답답해 죽겠다, 송이야.”
“미안해. 사실, 도둑이 누군지 알아. 그런데 우리가 직접 나서서 해결하는 게 맞는지 모르겠어. 여기서 멈추고 경찰······ 아니, 쌤에게 말하고 우리는 빠지는 게 좋지 않을까 해서. 너희들 생각은 어때?”
민정은 고개를 갸웃하며 먼저 말했다.
“갑자기? 그럼, 뭐야? 처음부터 경찰에 맡기는 게 좋았잖아. 그런데 넌 도둑이 누군지 어떻게 안다는 거야? 분명 너랑 나 같이 있었잖아.”
“그건 나중에······ 어때, 애들아?”
애리는 팔짱을 풀며 눈을 낮게 깔았다.
“처음에 내가 널 도왔던 건 친구를 생각하는 네가 마음에 들어서 그랬던 거야. 그런데 이제 와서 그 친구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는 거니? 그래, 임송이?”
“아니······.”
송이가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자 동진은 그런 송이가 안쓰러웠는지 대신 나서서 말했다.
“애리야, 네가 무슨 말하는지 아는데. 이건 처음부터 경찰이 해야 할 일이었어. 그런데 도둑이 누군지 알아냈으니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모두 한 거 아닐까? 그런데 도둑이 누군지 말해줄래? 송이야. 그리고 어떻게 도둑이란 걸 증명할 거야? 증거라도 있는 거야?”
“그건······ 나중에······.”
애리는 송이의 팔을 밀치며 참았던 화를 쏟아냈다.
“임송이, 뭘 자꾸 나중이라는 거야! 정말 도둑이 누군지는 아는 거니? 너한테 실망이야. 돈을 훔친 그 친구를 돕기 위해 나서는 줄 알았어. 그런 의협심이 있는지 알고 나는 널 도운 거라고. 난 여기서 그만 빠질 게. 이제 너희들이 알아서 해.”
민정은 애리를 말리려했지만 어쩌지 못하고 송이의 팔을 잡았다.
“애리야······. 송이야, 정말 왜 그래? 갑자기. 처음에 너 완전 멋있었는데, 형사처럼. 왜 갑자기 마음이 바뀐 거야?”
애리는 자리로 돌아가 가방을 들고 송이를 지나치며 실망했다는 듯 ‘흥!’하며 옆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그때 송이가 애리를 불러 세웠다.
“애리야, 잠깐만.”
“왜? 또 할 말이 남은 거니?”
“너희들이 다칠까봐 그래. 아니, 나도 다칠까봐 겁이 나서······. 그런데 애리가 말한 게 계속 걸리기는 해. 맞아. 나도 처음엔 돈을 훔친 그 친구가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가 있을 거라고, 그래서 도와주고 싶고······. 그런데······.”
“도대체 누군데 그래? 뭐가 그렇게 겁이 나냐고?”
동진은 화를 내는 애리를 말리고는 송이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송이야, 우리를 믿고 말해줄래. 지금까지 남아서 널 기다린 것도 너를 믿었기 때문이야. 그러니까 너도 우리를 믿고 겁내지 말고 뭔지 말해줬으면 좋겠어.”
민정은 동진의 말이 멋져 보였는지 애틋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동진이 너, 다르게 보인다. 멋져······.”
민정은 스스로 깜짝 놀란 듯 손으로 자신의 입을 때리며 중얼거렸다.
“아, 내가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래 송이야, 우릴 믿고 말해. 뭐야? 응?”
송이는 마음을 가다듬듯 숨을 짧게 내뱉고는 친구들을 둘러보았다.
“좋아, 그럼. 너희들 믿고 말할 게. 아니, 일단 나를 따라와.”
“송이야, 어디를 또?”
송이는 민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가방을 매고 교실을 나섰다. 친구들은 서로를 바라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리며 송이를 뒤따랐다. 교실을 나온 송이에게 그림자가 따라붙으며 말을 걸었다.
‘무슨 생각이야? 이건 계획에 없었어. 그냥 나중에 따로······.’
‘아니요. 애들한테 직접 보여줘야 믿을 것 같아서요.’
‘위험하다고 한 건 너야? 이건 애들을 더 위험에 빠트리는 일일 수 있다?’
‘그냥 멀리서 보기만 할게요.’
‘아이고, 참. 겁이 많은 줄 알았더니 또 이런 면이 있었네. 무슨 무대뽀도 아니고······.’
‘무대뽀요? 그게 뭐예요?’
‘아, 미안. 근데 정말 몰라?’
‘모르니까 묻죠?’
‘그게 일본말이라서. 내가 나이가 좀 있잖아.’
자기가 말해도 민망했는지 그림자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무대뽀······? 무슨 말인지 몰라도 한글을 애용하시죠.’
‘어, 그래. 미안.’
‘근데 무슨 뜻이에요?’
‘아니야, 몰라도 돼.’
‘치, 좋은 말은 아니군요.’
‘근데 정말 괜찮겠어?’
‘몰라요. 이제.’
‘애 정말······. 못 말리겠네. 변덕이 이런 변덕이······ 아, 쏘리.’
‘한글을 애용하시라고요. 좋은 우리말을 두고 왜 자꾸 외래어나 외국어를 쓰는지 모르겠어.’
‘이야, 애국자 나셨네.’
송이는 잠시 멈춰 서서 그림자를 째려봤다.
‘뭐라고요?’
‘아, 미안. 미안.’
뒤따르던 민정이 갑자기 멈춰 서는 송이에게 말을 걸었다.
“송이야, 여기는 왜? 그런데 너 자꾸 아래를 보면서 뭐라고 하는 거야?”
“어? 내가?”
“뭐라고 소곤거리듯 말하는 것 같기는 한데, 잘 안 들려서. 우리한테 하는 얘기는 아니 것 같고.”
“아니야, 혼잣말······ 아니, 속으로 말한다는 게······.”
“그래? 너 그날 이후로 좀 많이 달라진 거 알아?”
“그날이면······ 아, 아빠 돌아가신 후로 말이야.”
“응, 아직 며칠 지나지는 않았지만······. 그래, 충격이 심하겠지. 이해는 해. 그런데 너 자꾸 멍하니 생각에 빠져있는 것도 자주 보이고, 누구랑 얘기하는 것 같기도 한데······. 허공에 대고 뭐라고 하는 것이, 혹시 귀신······ 아니겠지. 그냥 너희 아빠한테 하는 말인가 싶기도 하고.”
“아니야, 민정아. 난 괜찮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동진이 다가와 물었다.
“그런데 어딜 가는 거야? 여기는 왜?”
“아니, 미안해. 여기가 아니고 좀 더 가야해. 괜찮지?”
동진 뒤에 서 있던 애리가 옆으로 나오며 말했다.
“괜찮은데, 어디를 가는지는 알려주면 안 될까?”
“아, 그래. 저기 기찻길 아래 굴다리 공터가 있잖아. 거기로 갈 거야.”
민정이 깜짝 놀라며 송이의 옷자락을 잡았다.
“송이야, 거기는 왜? 거기는 낮에도 불량배들이 많은 곳이라고. 그길로 다니지 말라고 했단 말이야.”
“아는데······.”
송이가 민정을 안심시키려 말하려는데 동진이 동시에 말했다.
“돈을 훔친 애가 그곳에 있는 거야?”
“맞아. 그래서 너희들이 직접 보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늦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좋아, 그래. 그럼 좀 빨리 걷자.”
동진이 그렇게 말하며 앞으로 나섰다. 그 뒤로 애리도 말없이 뒤따랐다. 민정은 발걸음을 떼지 못하고 송이의 팔을 잡았다.
“꼭 우리가 가서 봐야 하는 거야? 그냥 경찰에······.”
“민정아, 걱정 마.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거야. 그 친구가 왜 돈을 훔쳤는지 그 이유도 알 수 있을 거고.”
“정말? 무슨······ 아이, 무서운데.”
“저기 봐. 동진이가 앞장서서 가니까 괜찮을 것도 같은데. 어때? 동진이.”
“어? 어, 아니······ 그러게 오늘 보니 동진이 괜찮······ 아이, 몰라.”
자신을 밀치는 민정에게 송이는 피식 웃고는 팔짱을 끼며 함께 걸었다.
“괜찮아, 우리끼린데. 어서 가자.”
“비밀이야?”
“뭐가?”
“아이, 애는······.”
송이는 장난이라는 듯 민정을 보며 키득 웃었다.
“어서 가자. 동진이가 기다린다.”
송이와 민정은 팔짱을 낀 채 기다리는 동진과 애리에게 달려갔다. 그들이 기찻길 아래 굴다리 공터 근처에 도착했을 때 왁자지껄한 남녀 학생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송이는 애들 앞으로 나와 막아섰다.
“애들아, 잠깐. 멀리서 지켜볼 거야. 그러니까 먼저 나서면 절대 안 된다고. 특히 동진아, 응?”
“그래, 알았어. 대충 짐작은 간다.”
“나도.”
애리까지 뭔가 알 것 같다고 하자 민정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애리와 동진을 번갈아봤다.
“너희 뭐가 짐작이 된다는 거야?”
“넌 모르면 지켜봐.”
“애리, 너 정말······.”
애리가 무시하는 것 같아 화가 난 민정에게 송이가 팔을 살짝 잡아끌었다.
“민정아, 일단 저기로 가자. 저기서 지켜보면 금방 왜 그런지 알거야, 응?”
“알았어, 치.”
송이와 친구들은 굴다리 공터가 보이는 기찻길 위쪽으로 올라가 조심스럽게 내려다봤다. 공터에는 남녀 학생들이 모여 있었고 담배를 피며 웃고 떠들고 있었다. 남학생 교복과 여학생의 교복이 달랐다.
여학생들 교복은 송이가 다니는 금남고등학교 교복이었다. 그곳에 서기정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서기정은 시시덕거리는 학생들 발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있었다.
“야, 얘를 어쩌면 좋냐? 얘 때문에 걸릴 뻔 했다며?”
“그러니까 하는 짓이 매번······.”
한 남학생이 거친 욕을 뱉어내며 서기정 앞으로 걸어왔다.
“이제 어떻게 할 거야? 갖다 바쳐야 할 돈이 생각보다 많이 모자라서 말이야. 그러니까 쉽게, 쉽게 하자고 했잖아. 뭘 그렇게 어렵게 하려고 그래. 쉽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굳이······.”
고개 숙이고 있던 기정이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해. 그것만은 싫어. 내가 어떻게든 돈은 맞춰서 가져오면 되는 거잖아. 그러니까 제발 그것만은······.”
“얘가 정말 말귀를 못 알아 처먹네. 얘를 어쩌면 좋지?”
남학생과 등을 지고 서 있던 여학생이 입에도 담기 어려운 욕설을 쏟아내며 기정을 돌아봤다.
“기정아, 그냥 까라면 그냥 까. 지금까지 봐준 것도 꼴에 같은 반 친구라서 그런 건 줄 고맙게 알고. 나도 더는 뭐라고 못하겠어. 너 하는 꼴이 그렇잖아. 괜히 더 쳐맞기 전에 그냥 까라는 대로 까라고. 오늘도 나 아니었으면 너 애들한테 딱 걸렸어, 알아?”
기정은 울먹이며 그 여학생 앞으로 기어와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반장, 도와줘. 같은 반 친구잖아, 어?”
굴다리 공터 위에서 지켜보던 친구들은 반장이라는 말에 충격을 받은 듯 입을 벌릴 채 서로 눈을 마주쳤다. 쥐 죽은 듯 눈을 의심하며 반장이 맞는지 다시 아래를 뚫어져라 내려다봤다. 역시나 불량배들 사이에 반장 소희의 얼굴이 보였다. 민정은 작은 목소리로 송이에게 물었다.
“송이야, 넌 알고 있었던 거야?”
송이는 말없이 민정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랬던 거야?”
“응. 반장이 연관되어 있어서. 일단 좀 더 지켜보자.”
“응.”
동진과 애리도 민정과 송이의 대화를 귀 기울여 듣다 다시 공터로 시선을 돌렸다.
“반장, 다시는 안 걸리도록 잘 해볼게. 아니면 다른 반 애들 돈을 훔치면 되잖아, 어?”
“내가 반장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했지. 짱이라고 부르라고. 그리고 너 그러다 진짜 걸리면 어쩔 건데? 너 하나 학교 잘리는 거 문제는 안 되는데, 괜히 나한테까지 똥물 튈까봐 그런 거잖아. 그냥 깔끔하게 몸으로 때우라고. 그러면 쉽잖아, 안 그래?”
“아냐, 절대 너희들 얘기 안 할게. 그러니까 한번만 더 기회를 줘. 정말 안 들킬 자신 있어. 어? 지금 반 애들 모두 송이를 의심하고 있는 거 반······ 아니, 짱도 알잖아.”
“너 바보니? 정말 말귀를 못 알아 처먹는구나. 너.”
공터 위에서 지켜보던 민정이 이번에도 궁금한 것을 못 참고 동진에게 물었다.
“동진아, 몸으로 때우라는 게 뭘까?”
“어? 아니······. 그, 그게······.”
동진의 얼굴이 갑자기 빨갛게 달아오르더니 말을 더듬으며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왜 그래, 동진아?”
“아, 아니. 아르바이트 같은 걸 하라는 거겠지. 어?”
“그래. 근데 얼굴은 왜 그렇게 빨게 졌어?”
“갑자기 더워서 그래.”
동진은 급히 손으로 얼굴에 부채질을 해댔다.
“더워?”
민정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시 아래로 눈을 돌렸다.
“기정아,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말했잖아. 도둑질은 언젠가는 들키게 돼 있다고.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이라고. 아무튼 무식해서 뭘 알아야지.”
반장은 기정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탁탁 때리며 말을 이어갔다.
“너는 이 머리가 나빠서 할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다고 했잖아. 알바도 제대로 못해서 애들 돈이나 뽀리는 년이. 그러니까 쉽게 그냥 네 몸을 굴려, 이년아. 그게 너한테 딱이야, 쉽잖아. 물주는 우리가 알아서 찾아 물어다 준다고, 어!”
반장은 말하다 점점 자기 분을 참지 못하고 화를 쏟아냈다.
“소희야, 그것만은······ 제발. 난 진짜 못해. 못한다고, 응? 소희야, 이렇게 부탁할게, 응?”
기정은 눈물범벅인 된 얼굴로 반장의 다리를 잡고 애원했다. 반장은 기정을 발로 밀치며 쌍욕을 뱉어냈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잘 했어야지. 몰라, 그게 그렇게 싫으면 집에 가서 네 엄마한테 용돈 올려 다라고 그래, 기정아. 그러면 되잖아. 그건 못하겠어?”
기정은 양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애걸하듯 부탁했다.
“소희야, 이러지마. 제발. 우리 집 사정 너도 잘 알잖아. 제발 부탁해······.”
“내가 뭘 알아? 미친!”
반장은 기정의 가슴을 세게 걷어찼다. 기정은 뒤로 벌러덩 넘어졌고 그 뒤로 남녀 학생들이 달려들어 온갖 욕을 해대며 기정을 발로 짓밟기 시작했다. 짱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그 모습을 지켜보다 비린한 웃음을 보이며 입을 열었다.
“야, 얼굴은 안 돼. 안 보이는 곳으로, 어?”
그렇게 말하고는 소희를 자기 옆으로 끌어당기며 입을 맞췄다. 기정이 폭행을 당하고 있는 것을 위에서 지켜보던 송이와 친구들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독자 여러분의 추천, 댓글 그리고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Comment ' 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