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쉽지 않은 결정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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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남경찰서 형사과로 박동식 경위가 들어섰다. 그를 본 한 젊은 형사가 나와 앞을 가로 막아섰다.
“저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방기철 형사님을 뵈러 왔는데, 약속 잡고 왔습니다.”
“그러세요. 잠시 만요.”
젊은 형사는 형사과 사무실을 둘러보다 한 곳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아, 저기 계시네요. 저기, 푸른색 셔츠 입은 분이 방기철 형사님이세요. 저기로 가보시면 됩니다.”
박 경위는 가볍게 목례하고 젊은 형사가 가리킨 곳으로 발걸음을 뗐다. 방 형사는 팀장과 대화를 나누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박 경위를 보고 바로 알아본 듯 먼저 말을 건넸다.
“박 경위님?”
“안녕하세요, 박동식 경위라고 합니다.”
“아이고, 반갑습니다. 방기철 경위입니다. 아, 잠깐만요.”
방 형사는 서류철을 자신의 책상 위에 툭 던져놓고 박 경위에게 다가섰다.
“자, 나가서 얘기하실까요? 담배 피십니까?”
“아, 아니요.”
“그래요? 야아, 편······ 아닙니다. 저는 담배 하나 피워야겠는데, 괜찮으시죠?”
“그럼요.”
“그럼 저를 따라 오시죠.”
방 형사는 손을 뻗어 출입문을 가리키며 앞서 걸었다. 박 경위는 눈썹을 실룩거리며 그의 뒤를 따랐다. 그들이 나온 경찰서 뒤편에는 길고 넓게 늘어져서 뜨거운 태양을 가려주는 등나무가 있었다. 그곳에서 방 형사는 담배를 한 개비 꺼내 물고는 입을 열었다.
“남궁 형사랑 동료시라고?”
“동기면서 지능범죄수사팀에서 함께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시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청산동 화재사건을 담당하고 계신다고해서 몇 가지 확인할 것이 있어 찾아왔습니다.”
방 형사는 담뱃재를 바닥에 딱딱 떨며 시큰둥하게 말했다.
“통화할 때도 말했지만 별거 없었어요. 곧 자살사건으로 종결될 겁니다.”
“남궁 형사가 그곳에 왜 갔는지는 알고 계십니까?”
다 알고 있다는 듯 방 형사는 입술을 실룩거리며 박 경위를 쳐다봤다.
“뇌물이요? 알고 있어요. 그것 때문에 부인한테 문자로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거 아닙니까?”
“그럼 남궁 형사가 임승택 씨 뇌물사건 조사차 갔던 것으로 보고 계시는 거군요.”
“그게 아니면 뭐겠어요? 지능범죄수사팀에서 임승택 씨를 내사하고 있었던 거 아닙니까? 도시계획과 공무원이 뇌물을 받았다는 제보를 받고 말이죠.”
처음 듣는다는 듯 박 경위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되물었다.
“도시계획과요? 아니요. 행정지원과에 있을 때 뇌물을 받았다는 첩보가 있어서 내사 중이었습니다.”
“그래요? 행정지원과에 있을 때······?”
“그럼 도시계획과로 보직이동한 뒤에도 뇌물을 받았던 겁니까?”
알아도 몰라도 상관없다는 듯 방 형사의 반응이 미적지근했다.
“그런가? 아니, 아직 거기까지는 말해 줄 수는 없고. 그것보다 행정지원과에 있을 때 뇌물을 받았던 첩보는 확인이 된 겁니까? 뭐라도 나왔어요?”
“저도 그것 때문에······. 남궁 형사가 첩보를 제공한 제보자를 만나러 나갔다가 그 사고를 당한 거라서 말이죠.”
“그럼 박 경위님은 모르시고?”
“네. 어떤 제보인지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 금남시청 공무원 뇌물사건을 내사 중이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거든요. 남궁 형사가 제대로 된 정보라고 판단되면 그때 말해주겠다고 해서······.”
“그랬군요. 아, 남궁 형사 핸드폰은 그 집 현관 앞에서 발견됐는데, 화재로 거의 다 녹아내려서 건진 게 없어요.”
“하나도 말입니까?”
“네. 국과수에 넘겨서 뭐라도 하나 나와 줬으면 했는데······. 전혀. 아, 그리고 임승택 씨 딸이 그날 같이 있었어요. 그건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저도 만나봤는데, 그날 일을 전혀 기억 못하고 있더라고요.”
“그래요? 정말이었네.”
“네? 뭐가 말입니까?”
“아니, 나도 만나봤는데 그날 그 집에서 있었던 일만 기억이 안 난다고 하더라고요. 난 또 뭘 숨기고 있는 건 아닐까했는데 그게 정말이었나 보다고요. 분명 그 학생이 뭔가를 봤을 것 같은데······.”
“뭘 말입니까?”
“네? 아, 아니에요. 혼잣말이에요.”
“지금까진 별다른 건 없다는 건가요? 정말 뇌물사건이 알려질까 자살한 걸로 보시는 겁니까?”
“그게 아니면 뭐가 있겠어요. 타살? 저도 혹시나 해서 여러모로 수사를 해봤지만, 아니에요. 그 부인이 돈 때문에 남편하고 자주 싸웠다고도 하는데 그것 때문에 남편을 자살로 위장할 필요는 없을 거고. 아무리 보험금······ 그리고 자살로 판정 나서 보험금도 못 받고요. 자살이 아니라 사고로 화재가 발생해야 보험금이라도 나올 텐데. 지금은, 타살로 볼 증거가 없어요.”
“그렇군요. 남궁 형사가 빨리 일어나야 뭔가 좀 해결이 될 듯하네요.”
“나도 그걸 바라고 있는데 남궁 형사가 정말 뇌물 건으로 수사 차 갔는지가 말이죠.”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남궁 형사도 용의 선상에 올려놓으신 겁니까?”
박 경위의 음성과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방 형사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에이, 말이 그렇다는 거죠. 모든 것을 열어놓고 수사를 하는 게 형사의 기본자세 아닙니까? 같은 일 하면서 왜 그래요?”
“아무리 그래도······.”
“그건 그렇고, 뭐 좀 나오면 나한테 좀 알려줘요. 뭐, 없겠지만 혹시나. 일주일 내에 이 사건 종결될 겁니다. 그러니까 그전에, 그전에 뭐라도 나오면 전화 줘요.”
“그래야죠. 근데 남궁 형사의 휴대폰 통신기록을 조사한 걸로 아는데 별다른 게 없었나 봅니다.”
“아하, 통신기록······. 에, 없어요. 마지막 통화기록이 금남경찰서 근처 공중전화에서 걸려온 거였는데, 통화내용을 확인할 수 없으니······. 뭐, 제보자가 아니었을까 해요.”
“제보자요? 또 다른 건······ 아, 아닙니다. 나중에 뭐라도 나오면 저한테도 공유 부탁드립니다.”
“아이, 당연하지. 아니, 당연하죠. 그럼, 더 할 얘기 없으면······.”
“저기, 화재 현장에 타살 흔적은 전혀 없었던 게 확실합니까?”
방 형사는 지그시 박 경위의 눈을 바라보다 물고 있던 담배를 바닥에 뱉으며 되물었다.
“그건 왜 또 물어요? 왜? 타살이라고 보는 겁니까?”
“아니요. 그냥 자살할 사람이 집에 불까지 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의구심에······. 그리고 임승택 씨의 딸이 집에 있었고 말입니다. 그런데 기억을 잃었다는 게······.”
“그거야 가스폭발로 충격을 받아 단기기억을 잃은 거고. 방화가 아니라 화재라니까요. 그 집 딸이 실수로 불을 붙인 거라고요. 발화지점이 현관으로 나왔어요.”
“그게 사실이었군요. 아, 알겠습니다.”
“저기, 박 경위님. 뭐라도 알고 있는 게 있으면 다 말해요. 뭔가 알고 있는 눈친데.”
“제가요? 몰라서 여기까지 찾아온 건데. 아닙니다.”
“그래요? 알았어요. 그러고 보니 나랑 같은 손이 다쳤네. 왜요? 나처럼 개한테 물리기라도 했어요. 아이, 난 키우는 개새끼가 물어서······.”
방 형사는 멋쩍게 웃으며 파스 붙인 손을 들어보였다.
“근데 왜 파스를 붙으셨습니까?”
“에이, 개한테 물린 게 무슨 자랑이라고. 아, 미안해요. 그쪽한테 그런 게 아니라······.”
“아닙니다. 저는 개한테 물린 게 아니라 조금 다친 겁니다, 그냥.”
“그래요? 그럼 이제 들어가 봐도 되겠죠?”
“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요. 동기 분이 빨리 쾌차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그래야죠. 그럼.”
박 경위는 방 형사에게 목례하고 뒤돌아 갔다. 그런 그를 방 형사는 물끄러미 바라보며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
마지막 수업 끝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학생들은 가방을 챙겨 교실을 빠져나가기 바빴다. 마지막 수업이 담임 수업이라 종례도 겸했기에 바로 하교할 수 있었다. 하지만 동진과 민정 그리고 애리는 자리에 그대로 앉은 채 송이만으로 지켜봤다. 그런 그들을 민철이 보고는 동진에게 말을 걸었다.
“야, 왜 안 가고 저 재수탱이만 보고 있는데?”
“넌 운동이나 하러 가.”
“그래, 갈 거야. 근데 옷을 못 갈아입잖아.”
“그냥 갈아입어 볼 것도 없는 자식이······.”
“뭐? 아이, 씨······.”
민철은 주먹을 치켜들다 말고 운동복을 챙겨서 교실 밖으로 나갔다. 그동안에도 동식과 민정은 송이만 쳐다보았다. 송이는 무슨 고민이 있는지 잔뜩 이마를 찌푸린 채 눈을 감고 앉아있었다.
‘왜 이러는 거야? 갑자기.’
‘뭐가 갑자기예요? 도둑이 누군지 알았으면 경찰에 신고하면 될 일이잖아요. 그것도 아니면 쌤한테 말하면 되는 일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려고 그래요?’
‘뭘 걱정하는지 아는데 그렇게 위험한 일은 아닐 거야. 그래도 친군데, 애들한테도 그렇게 말해놓고 이제와 이러면 어떡해? 애들도 너만 기다리고 있다고.’
‘저 못해요. 자신 없어요. 제가 걔를 어떻게 설득시켜요? 그러다 괜히 험한 꼴이나 당하지 않을까 모르겠어요.’
‘생긴 거 닮지 않게 쫄기는······ 아, 미안.’
‘됐어요. 다 말해놓고 매번······. 그래요. 이렇게 산만하게 생겨도 속은 콩알만큼 하다고요. 그러니까 그냥 쌤한테 말하고 끝내요. 예?’
‘그럴 거면 뭐하려고 쌤한테 경찰에 신고하지 말라고 한 거야?’
‘그거야 그때는······ 아이, 몰라요. 너무 겁난단 말이에요.’
‘그래, 무서울 수 있어. 나만 믿고 따라와. 어? 내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돼. 지금까지 잘 했잖아. 어?’
‘그래서 여기까지 온 거잖아요. 이게 뭐예요? 제가 무슨 형사도 아니고. 아저씨가 형사지, 저는 그냥 고딩이라고요. 왜 제가 나서서 이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그거야 네가 도둑으로 의심을 받고 있으니까, 그런 거잖아. 같은 반 친구가 나쁜 길로 빠졌는데 그냥 모른 척 하는 것도 아니라고······. 그건 내가 말했지만 너도 동의했잖아. 그래서 친구들하고 여기까지 해온 거고. 이제 다 왔어.’
‘만약에라도 친구들이 다치면 어떡해요?’
‘네가 다칠까봐 그런 건 아니고?’
눈을 감고 있던 송이가 눈을 치켜뜨며 그림자를 날카롭게 내려다봤다.
‘또 그 눈······. 그 눈은 네 엄마한테······ 아니다. 그래, 그럼.’
눈을 뜬 송이를 본 민정이 말을 걸어왔다.
“송이야, 이제 결정한 거야? 왜 그래? 한참을 기다렸잖아. 애리를 봐, 저기.”
정애리는 팔짱을 낀 채 송이를 노려보고 있었다. 송이가 쳐다보자 애리가 일어나 천천히 다가왔다.
“임송이, 너 뭐하는 거야? 우리가 우습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도둑이 누군지 안다면서 왜 말을 안 하고 사람을 이렇게 기다리게 하는데?”
민정이 애리에게 다가가 말렸다.
“애리야, 잠깐만. 송이가 무슨 생각이 있나 보지. 말 못할 사정이 있을 수 있고. 그렇지, 송이야?”
송이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대로 고개를 숙여 버리고 말았다.
“얘 봐, 정말. 뭐야? 너 거짓말이었니? 도둑이 누군지 안다고 한 게 거짓말이었냐고?”
“뭐? 거짓말? 에이, 왜 송이가? 송이, 거짓말 못해. 그렇지? 송이야.”
송이는 속으로 차라리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속마음을 읽은 그림자가 속삭이듯 송이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러지 말고, 차라리 친구들한테 의견을 물어보는 게 어때? 어떻게 하는 게 좋을지 말이야. 그럼 그 의견에 나도 따를게.’
송이는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돌려 옆에 드리워진 그림자를 내려다봤다.
‘정말이죠? 나중에 딴소리하기 없어요.’
‘그래, 알았어.’
“송이야, 너······. 아까부터 바닥을 보면서 뭐하는 거야?”
동진은 송이를 유심히 지켜보다 송이의 행동에 이상한 점을 발견하고 다가와 물었다. 동진의 물음에 송이는 난처한 듯 쳐다보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아니, 그냥 생각 좀 정리하느라고······.”
“생각? 바닥을 보······ 어, 그림자가······.”
동진이 송이의 그림자를 보고 놀라 손으로 가리키려는데 송이가 일어나 애들을 불러 모았다.
“너희들한테 물어볼게 있어.”
갑자기 일어선 송이 앞으로 애들이 다가와 동진도 어쩔 수 없이 그림자에서 송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민정과 애리는 송이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하려고 저러는지 궁금한 듯 눈을 크게 떠서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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