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함정수사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송이의 말에 민정은 눈이 동그랗게 커져서는 말했다.
“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한 거야? 꼭 형사처럼. 멋지다, 송이야.”
“아니야. 누구나 할 수 있는 생각인데, 뭘?”
송이의 말에 그림자가 불쑥 말을 걸어왔다.
‘과연 그럴까?’
“조용하······. 아!”
송이는 그림자에게 속으로 말한다는 것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고 말았다. 민정은 놀란 얼굴로 송이에게 물었다.
“뭐? 조용하라고? 나 아무 말 안했는데, 너도 아무 말 안했지?”
민정이 동진의 팔을 흔들며 묻자 동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어, 나도 그냥 듣고만 있었는데.”
“아니야, 애들아. 너희한테 한 소리······ 아니, 말이 잘못 나왔어.”
송이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속으로는 그림자에게 투덜댔다.
‘그렇게 불쑥 불쑥 말 걸지 말라고요. 놀라서 말이 입 밖으로 튀어나왔잖아요.’
‘미안, 알았어.’
“송이야, 무슨 생각해? 너 좀 이상······ 아, 아니다. 그럴 수 있다, 어.”
민정은 송이가 아빠를 잃은 충격에 그런 것이라 미루어 짐작했다. 동진이 말했다.
“그래, 기다려주자. 송이야, 그럼 우리는 뭘 하면 되는 거야?”
“아, 너희는 나랑 같이 지켜보고 있다 증인이 되어주면 돼. 그 뒤에 같이 그 친구를 설득해주면 더 좋고. 나 혼자보다는 너희랑 같이 있으면 나을 것 같아서. 나 혼자는 무섭기도 하고.”
“그렇구나. 알았어. 그럼 이제 학원갈까? 아, 가기 전에 뭐 좀 먹고 갈래?”
동진의 제안에 민정이 송이의 팔을 잡으며 같이 가서 먹자고 말해보지만 송이는 손을 내저었다.
“아니야. 나 학원 안 갈 거야.”
“학원도 빠지게? 그래, 그러면 같이 저녁이나 먹자. 응? 너 점심도 안 먹었잖아.”
“미안해. 생각 없어.”
동진이 못 믿겠다는 듯 정말이냐고 묻자 송이가 흘깃 째려보았다.
“뭐야? 내가 거짓말이라도 한다는 거야?”
“아, 아니야. 그게 아니라······.”
민정이 동진의 등짝을 때렸다.
“이그, 아무튼. 송이야, 남자들이 이래. 신경 쓰지 말고. 알았어, 그럼 네 편안대로 해.”
“고마워. 동진아, 미안해. 내가 좀 예민했어.”
“아니야, 그럴 수 있지. 됐어. 그럼 가자. 어! 민철이다.”
민철은 운동복 차림으로 철봉에 올라 운동을 하고 있었다. 철봉을 잡은 손과 팔뚝에 힘줄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의 팔뚝에는 근육이 단단하게 부풀어 올라 있었다.
“애들아, 민철이랑 인사하고 가자. 괜찮지?”
송이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난 그냥 갈래.”
“그래. 동진아, 그냥 가자. 어?”
“민정아, 너까지······.”
“이런 말해서 미안한데, 동진이 너도 민철이랑 어울리지 마. 말하는 것도 그렇고, 반 친구들한테도 막하고. 불량학생이라고, 쟤.”
“불량학생 아니야, 겉으로만 그래. 민철이 괜찮은 애야? 좀······. 아니다, 됐다. 민정아, 그럼 잠깐 여기서 기다려, 같이 밥 먹자. 금방 다녀올게.”
민정은 말하기 귀찮은 듯 손만 까닥거리고는 송이에게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할 거야?”
“난 먼저 가볼게.”
“그럼 잘 가, 송이야. 내일 보자.”
동진은 송이에게 먼저 인사하고 민철에게 달려갔다. 민정은 그런 동진을 흘겨보고는 송이에게 눈을 둘렸다.
“송이야, 집으로 갈 거야? 아, 집은 어떻게 됐어?”
“철거하고 다시 짓기로 했데. 지금은 모텔에서 지내.”
“뭐라고? 모텔······. 괜찮아? 밤늦게 다니기 무섭겠다.”
“그러니까 밤엔 좀 무섭긴 하더라. 술 취한 사람들이 모텔 앞에 많아서······.”
“그럼, 당분간 우리 집에 와 있을래? 내가 엄마한테 말······.”
송이는 민정의 팔을 잡으며 말렸다.
“아니, 됐어. 마음만으로 고마워. 신세 지기 싫어. 아, 나 먼저 갈게. 동진이랑 데이트 잘해.”
“얘, 아니야. 우리 그런 사이 아니라고. 너까지 왜 그래?”
“이그, 농담이야. 동진이 괜찮은데 왜? 동진이도 너 좋아하는 것 같고.”
“아니라니까? 동진이는 내 스타일 아니야. 그러니까 농담이라도 그런 소리하지 마.”
좋아하는 줄 알았던 민정이 질색하며 싫은 표정을 짓자 송이도 민망해 더는 말 못했다.
“알았어. 그럼, 간다.”
“그래, 내일 봐.”
송이는 민정에게 손을 흔들며 교문으로 향했다. 그때 민정에게 동진이 달려왔다.
“민정아, 우리도 가자.”
“어. 근데 민철이한테 왜 갔다 온 거야? 맨날 붙어 다니면서.”
“아니, 그냥······. 운동 잘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민철이랑은 찐 절친이라서. 민정아, 민철이 그렇게 나쁜 애 아니야. 그러니까 내가 친구지. 안 그래?”
“그러게. 신기하기는 해. 네가 민철이랑 절친이라는 게.”
“뭐가 또 신기하기까지······. 근데 민철이랑 있다 오는데 송이 그림자를 봤거든.”
“그림자?”
“어. 넌 못 봤어?”
“갑자기 무슨 그림자?”
“아니, 송이 그림자를 보니까 좀 우리랑 달라서 말이야.”
“그러니까 뭐가?”
“정확히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송이의 몸이랑 다르다고 해야 하나? 그래, 조금 길게 보일 수 있는데 그러지도 않았어. 지금 우리 그림자를 보면······.”
민정은 쓸데없는 소리나 한다고 핀잔을 주며 밥 먹고 학원 가려면 시간이 빠듯하다고 재촉하는 바람에 동진은 그림자 얘기를 더는 꺼내지 못했다.
먼저 교문을 나선 송이는 모텔이 있는 방향이 아닌 다른 곳으로 걷고 있었다. 송이가 다른 곳으로 가는 듯하자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송이야, 이 길이 아닌데. 지금 어디 가는 거야? 학원가는 거야?”
“아니요. 학원 안 간다고 말했는데, 못 들었어요?”
“아니, 들었지. 그럼 어디 가는데? 이 길은 모텔 가는 길이 아니야.”
“알아요. 이 시간에 모텔에 가면 뭐해요? 그냥 좀 걸으려고요.”
“그런 거야? 알았어.”
“저기, 정말 도둑을 잡을 수 있을까요? 그리고······.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요?”
“뭐야? 벌써 다 하기로 해놓고.”
“막상 말하기는 했는데,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지 현타가 와서요.”
“현타?”
“아, 현실 자각 타임이라는 줄임말······ 아휴, 아무튼 그렇다고요.”
“왜 그래? 갑자기.”
“몰라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데, 억지로 하는 거라고요. 지금 내가 도둑이나 잡게 생겼냐고요. 아저씨는 내 기분을 몰라서 그래요.”
“아니, 언제까지······ 아, 미안하다. 그래도 도둑으로 의심 받는 걸 빨리 풀어야지. 내일이면 도둑이 누군지 밝혀질 테니 너무 걱정 말고.”
“경찰에 신고했으니까 우리가 나설 필요까지는 없었잖아요.”
“그건 내가 말했잖아. 경찰에 신고해도 못 잡는다고. 왜 그래? 그럼 화장실에서 말할 때 싫다고 했어야지. 이제 친구들까지 다 동원해놓고 싫다니? 뭐 이런 변덕이 다 있어?”
변덕이라는 소리에 송이는 화가 났지만 그조차 귀찮았다.
“변덕이요? 아니, 그냥··· 아휴, 그냥 그렇다고요. 누가, 누가 안 한다고 그랬나요? 아이, 짜증나! 몰라요. 아이, 짜증나니까 더 배고프네, 정말.”
“아, 그래. 배고프겠다. 뭐라도 먹어?”
“그런데 아저씨는 배 안 고프세요?”
“나? 당연히 배고프지.”
“고파요? 그럼, 내가 안 먹으면 아저씨도 같이 굶는 건가요?”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아니라고요?”
“어. 중환자실에 있는 나한테 영양분이 계속 공급되고 있는지 아직 난 거뜬하네.”
“아저씨가 무슨 식물인가요? 영양분이라니.”
“식물 맞는데.”
“네?”
“식물처럼 누워서 링거 주사기로 영양분을 받아먹고 있으니. 식물 맞지, 식물인간.”
“아······ 죄송해요.”
“아니야, 그러고 보면 너나 나나······. 이게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그러니까요. 우리가 지금 뭐하는 건지, 이 와중에 도둑을 잡겠다고 또······.”
“됐다. 배고프다며?”
“아, 맞아요. 배고파요. 지금 너무 짜증나서 뭐라도 먹어야겠어요.”
“배고픈 건 알겠는데, 짜증나서는 왜?”
“몰라요. 짜증나고 화나는 일이 생기면 배가 허해져요. 그래서 배 터지도록 먹어야 살 것 같아요. 먹는 게 입으로 들어오면 모든 게 사르르 녹듯 사라져요.”
“아, 그래서······.”
“뭐가 그래서예요?”
“아, 미안.”
“또 뭐가 미안한데요? 치! 저기 분식집에 가서 먹어요.”
“그래. 그러고 보니 스트레스가 쌓이면 먹는 걸로 푸는 것 같네. 그렇지?”
“맞아요. 스트레스······ 그 스트레스가 절 이렇게 만든 거라고요.”
송이는 자신의 배를 내려다봤다.
“그러면 안 되는데······. 저기, 운동은 안 하나?”
“운동이요? 걷는 것 빼고는, 영 저랑 안 맞아서요.”
“안 맞아? 에이,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냥 싫은 거지. 그래, 습관이 안 돼서 그럴 거야. 그런데 사실 운동이 스트레스 푸는데 최고거든. 달리는 것부터 해보자. 밤에 자기 전에 뛰는 거야. 달리면 그 순간만큼은 모든 것에서 해방된 느낌이거든.”
“아저씨는 그걸 어떻게 아세요? 기억이 하나도 안 난다면서요?”
“그렇지. 그런데 몸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그런 감각들은 떠올라.”
“에이, 싫어요. 밤엔 자야죠, 학생이.”
“그래? 그럼 밤이 싫으면 아침은 어때? 등교하기 전에 30분만이라도.”
“싫다고요. 아침에 잠도 모자란데 달리기를 하라니요?”
“처음은 힘들어. 그래도 달리다보면 모든 스트레스가 다 풀리고 머릿속 복잡한 것들도 하나도 남김없이 다 잊어질 거야.”
“달리면 다 잊어진다고요?”
“달리면 잡생각도 사라지고 몸도 홀가분해지는 느낌이 들 거야. 정신 건강에도 좋고 한결 기분이 나아진다고.”
“정말요?”
“그렇다니까, 나만 믿고 해보자. 어?”
“또 믿으래? 생각 좀 해보고요. 지금은 너무 배고파요.”
“어, 그래. 일단 먹자, 어.”
송이와 그림자는 한 분식집 안으로 들어갔다.
***
해가 저물어 내리는 가느다란 빛에 유리에 붙어 있는 시트지 글자가 길게 널브러진 듯한 그림자를 만들며 사무실 안으로 드리웠다. 드리워진 그림자는 ‘자산 관리’라는 글자였다. 그 그림자 위로 한 남자가 책상 앞에 앉아 발을 올려놓고 있었다. 사무실 안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지만 불을 밝힐 생각은 없는 듯 보였다.
사무실 문이 열리고 한 남자가 들어와 고개 숙여 인사했다.
“대표님, 저 왔습니다.”
책상 앞에 앉아 있던 그는 다리를 내리고 소파를 가리켰다.
“이리와 앉아.”
“불을 켤까요?
“아니, 그냥 둬. 난 지금이 좋아. 어스름하게 어둠이 내린 이때가 정말 좋단 말이지.”
“그러세요? 음침한 게······, 괜히 으스스하네요, 저는.”
대표가 소파로 와 앉자 들어온 그 남자도 따라 앉았다.
“간 건 어떻게 됐어?”
“일단은 선약을 잡아뒀습니다.”
“그래. 언제?”
“3일 후에 로망스클럽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얼마나 준비하라고 그래?”
“세장입니다.”
“3개라······. 좋아, 그 정도.”
“그런데······.”
“왜? 3개면 괜찮은데······. 뭐야? 1개당 10억인 거야?”
“아닙니다. 그게 아니라 새끼를 붙여달라고······.”
그 남자는 새끼손가락을 세워 보였다.
“아이, 씨. 난 또 뭐라고. 그거 뭐 어려운 거라고 그래? 별 것도 아닌 걸로, 쯧.”
“그게 아니라 젊은 애를 원해서요.”
“아이, 변태 새끼! 생긴 것도 변태같이 생겨가지고는······.”
“그 의원 나리가 워낙 영한 걸 밝힌다고 해서. 그래서 세장 밖에 부르지 않은 거라고 하더라고요.”
“더러운 새끼. 차라리 돈을 더 불지, 씨. 그래서 나보고 어쩌라고?”
“아니, 뭐······. 어쩌시라는 게 아니라 알고 계시라고.”
“뭘 알아, 내가? 너희가 알아서 하는 거지. 난 아무것도 몰라. 단, 이것만 알아둬. 그 작자 잘 구워삶아야 한다고 내가 분명히 얘기했다. 그래야, 미래은행이 컨소시엄에 합류한다고. 지금 미래은행이 갑자기 발을 빼려고 한단 말이야. 어? 그 의원 나리 한마디면 모든 게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어? 알겠어?”
“예, 알죠. 그건 제가 알아서 잘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잘 좀 하자. 쫌.”
독자 여러분의 추천, 댓글 그리고 선작은 큰 힘이 됩니다.
미스터리 추리소설
Comment '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