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멀어지면 위험해 1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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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옥 한식당에서 조찬 모임을 끝낸 사람들이 마당으로 하나 둘 나오고 있었다. 그 앞에서 한 남자가 일일이 허리 숙여 인사하며 그들을 배웅했다. 그들이 모두 한식당을 나가고 나서야 그 남자는 허리를 길게 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한 고비는 또 지났고······.”
그때 한 남자가 한식당 출입구로 들어오며 그에게 인사했다.
“형님, 저 왔습니다.”
“어, 이제 왔어?”
“들어오다 봤는데······ 방금 나간 저 분들이에요?”
“어, 맞아. 투자자들.”
“잘 된 건가요?”
“일단은. 들어가서 식사나 하면서 얘기하자.”
“투자자들하고 조찬 하신 거 아니었어요?”
“야, 내가 밥이 제대로 입으로 들어갔겠어? 배고프니까, 들어가서 먹으면서 얘기하자고.”
“예, 형님.”
그들은 방으로 들어가 한상 크게 차려진 밥상 앞에 앉았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는 상차림이었지만 손이 많이 가지 않은 듯 거의 그대로였다.
“식사들을 전혀 안 하셨나 보네요.”
“그 사람들이 우리처럼 이런 거에 환장이나 하는 줄 알아?”
“그건 그래요. 우리야 언제 한 번 먹기 힘든 요리인데······. 그분들은 매번 먹는 거니.”
“그러니까 우리도 그런 삶을 살자고. 이번에 제대로만 하면 돈방석에 앉는 거라고, 알겠어?”
“예, 형님만 믿겠습니다.”
“그래, 나만 믿어.”
“그런데 말씀은 해보셨어요? 어떻게 잘 넘어갈 것 같습니까?”
“어, 걱정 마. 잘 처리해주겠다고 약조 받았으니.”
“그래요? 잘 됐네요. 투자도 하신다고 하십니까?”
“당연하지. 이번에 제대로 해보자고. 네가 잘 해야 한다. 어디라도 하나 삐끗하면 끝이야.”
“알죠. 그런데 이거······.”
“왜? 또 뭐가 문제야?”
“아시잖아요? 고집불통인거. 원칙대로 하라고만 하니······. 어딜 찔러야 하나 모르겠단 말입니다. 돈으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야, 돈으로 안 되는 놈 없다. 그리고 안 되면 그 측근이라도 어떻게 엮으라고. 한번 발 담그면 다시는 못 빼게 만들어야 한다고, 알았어? 그게 네가 할 일이야, 어?”
“예, 저도 생각 좀······ 아니, 노력해보겠습니다. 그런데 투자자들 말입니다. 나중에 딴 소리하는 거 아니겠죠?”
“뭐? 투자? 아니면 수사?”
“둘 다요.”
“걱정하지 마. 돈에 환장한 것들이니까. 우리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지는 않거든. 돈 얘기에 두 눈이 이렇게 커져서는 귀를 쫑긋 세워서 내 얘기에 집중하더라. 그리고 법 좋아하는 것들이라 그쪽으로 나보다 더 빠삭하고.”
“그럼, 수사 건은······.”
“그거야, 걱정 마. 형 알잖아. 나 혼자 절대 안 죽는다. 알지?”
“그럼요. 그럼······.”
“당연하지. 오늘 여기서 있었던 거 다 녹취해뒀어. 까불면 다 죽는 거야.”
“역시, 형님입니다. 정말 형님만 믿습니다, 예?”
“그래. 그러니까 넌 네 일이나 잘 하라고. 거기서 망치면 답 없어. 그리고 조심하고. 이번처럼 또 그러면 안 돼. 시작도 전에 무산될 뻔 했잖아. 알겠지? 힘든 거 알아? 아는데······. 조심성 있게, 응?”
“예, 죄송합니다. 갑자기 미꾸라지 한 놈이 들어와서······. 다시는 그런 일 없을 겁니다.”
“그러자. 어서, 먹어. 먹고 얘기하자.”
“예, 잘 먹겠습니다.”
***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병원 안은 한산했다. 임송이는 자신의 그림자가 사람들 눈에 띌까 걱정됐지만 다행히 가끔 지나는 의사나 간호사뿐이었다. 병원 중환자실을 찾아 로비를 지나고 있을 때 그림자가 뒤처지며 송이와 떨어졌다.
앞서가던 송이는 뒤늦게 자신의 그림자가 옆에 없다는 것을 알아채고 뒤돌아봤다. 그림자는 뒤뚱거리며 조심스럽게 걷고 있었다. 앞에 장애물이라도 있는 듯 발을 크게 벌리며 한발 한발 더디게 걷고 있었다.
송이는 되돌아가 그림자에게 말을 걸었다.
“왜 그러세요? 어디 불편하세요?”
“아니, 미안해. 여기, 여기 보이지?”
“뭐가 보인다는 거예요? 여기 아무것도 없거든요. 아, 아저씨한테는 뭐가 보이는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 여기 바닥을 보라고. 줄이 엉망진창으로 그어져 있잖아. 아우, 미치겠어. 금을 밟지 않고 걸어야 해서······. 그런 거니까 천천히, 어?”
“금이요? 아······.”
로비 바닥이 기하학 무늬로 되어 있어 규칙적으로 일정하게 줄이 그어져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 자체로도 그림자는 불안감에 힘들었지만 그 무늬들 사이로 금을 밟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걷고 있어 긴장감은 배가 되어 있어 극도로 민감한 상태였다.
“저기 그런데 사람들이 보면 어쩌죠?”
“사람들?”
그림자는 잠시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피듯 두리번거렸다.
“아직은 별로 없으니까 네가 좀 도와줘야겠다.”
“제가요? 어떻게······.”
“미안하지만 나처럼 좀 걸어줘. 어?”
“뭐라고요? 제가 그림자를 따라하라는 거예요? 아니죠. 그림자가 저를 따라야······ 하는 게······.”
“내가 그냥 그림자야? 귀신일지도 모르고······. 그리고 네 그림자가 아니라고, 나는. 너도 이젠 알잖아. 어?”
“그러긴 한데······ 아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볼 것 같아서 그러죠.”
“이상?”
“아, 죄송해요. 그러니까 그게 아니라······.”
그림자가 또 아무 말 없이 그대로 서있는 모습에 송이는 난처한 듯 말을 이었다.
“또 화나셨어요? 죄송하다고 했잖아요. 그런 뜻이 아니라 그림자 아저씨처럼 걸으면 웃······ 아니, 아이 몰라요. 창피하단 말이에요. 사람들이 다 쳐다볼 거라고요. 차라리 그냥 천천히 걸어갈 테니 아저씨가 알아서 따라오세요. 사람들이 보면 보라죠, 뭐?”
“이야, 이렇게 나온다 이거지? 이판사판 해보자는 거야? 지금.”
“나도 몰라요. 아저씨를 귀신으로 보든 말든 내가 무슨 상관이에요. 저는 저 멀리 떨어져 있으면 되죠. 그럼 나랑 상관없는 일이잖아요.”
“이런 식으로 나온다? 비겁하게······.”
“뭐가 비겁해요? 아저씨가 먼저 화내셨잖아요. 화낼 일도 아닌데 안 그래요? 저는 17살 소녀라고요. 어떻게 저한테 그렇게 걸으라고 할 수 있어요? 반대로 생각해 보시라고요.”
“17살 소녀? 17살이었어?”
“지금 뭐예요? 그렇게 안 보인다는 말투 같은데요?”
“어······ 그렇게 들렸어? 아니······ 그래, 뭐. 그렇게 안 보여서 그런 건데, 왜? 내가 뭐?”
“치, 누가 비겁한지 모르겠네. 이런 식으로 인신공격을 다하고.”
“인신공격? 그래, 말 잘했다. 누가 먼저 인신공격을 했지? 내가 이상하다고 한 사람이 누구더라?”
“아니, 그게 이상하잖아요. 그렇게 걷는 게 이상하지 않고 안 이상한 건가요? 다른 사람들이 보면 웃······ 아니, 이상하게 볼 거라고요.”
“그래, 알았다고. 그래, 이상하게 보이겠지. 나도 내가 보인대로 말했을 뿐이야. 나이보다 좀 더 들어보여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라고. 근데 그걸 인신공격이라고 하니······ 참.”
“못됐어, 정말. 아저씨가 돼서.”
“아저씨가 뭐? 아저씨는 이러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나? 네가 더 못 됐거든.”
“됐어요. 아, 맞아. 제가 17살이라는 거 알고 있었잖아요? 아동복지법 뭐라고 하면서 설명도 해줬으면서······ 정말 못됐어. 일부러 그런 거죠? 치, 이제 정말 따로 움직여요. 아니, 저한테 떨어지세요.”
“그래, 나도 화나서 그랬다. 뭐? 떨어지라고? 그래, 나도 싫어. 네가 가면 될 일잖아.”
“좋아요, 그럼.”
송이는 새침하게 고개를 돌려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림자는 그런 송이를 무시하고 바닥을 보며 조심스럽게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림자의 빛깔이 점점 옅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동시에 힘이 빠지며 심장에 통증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아주 조금씩이었지만 점점 그 통증의 세기가 강해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송이는 중환자실에 가까워졌을 때 갑자기 현기증이 일고 심장에 통증이 느껴졌다. 무슨 이유인지 몰라 잠시 벽을 잡고 서서 심호흡을 하며 안정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걸으려는 그 순간 몸에 힘이 풀리며 누군가의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멈춰!’
환청소리에 송이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아무도 주변엔 없었다. 송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다시 심장에 통증이 느껴지며 발을 더 옮길 수 없이 아파왔다. 그리고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때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말라고. 내가 갈 때까지 그대로 있어, 제발.’
송이는 환청소리에 자신의 귀를 막으며 소리치듯 말했다.
“누구죠? 누가 말하는 거예요?”
‘나야, 그림자 아저씨. 내 목소리 모르겠어?’
그랬다. 송이의 그림자가 말하는 목소리였다. 허스키한 그 목소리.
“지금 어디에 계시는데요? 왜 내 눈에 안 보이는 거죠?”
‘난 1층 로비에 있어. 너 지금 어디야? 우리가 멀어지면 위험할 듯해. 내 모습이 점점 옅어지고 사라져가고 있다고. 그리고 가슴이······ 아, 가슴이 너무 아파.’
“정말요? 저도 지금 가슴에 통증이 느껴져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어요.”
‘그러니까, 가만히 있으라고. 내가 어떻게든 그쪽으로 갈게. 중환자실이야?’
“네. 중환자실 앞인데··· 잠깐, 그럼 지금 1층 로비에서······. 여기 5층인데. 우리가 지금 텔레파시라도 통한다는 건가요?”
‘그러게 말이야. 나도 모르게 멈추라고 말했을 때 너의 목소리가 들렸어.’
“제 목소리가요? 아닌데······. 그땐 아무 말도 안······ 설마, 제 생각을 읽······. 에이, 아니겠지.”
‘모르겠어. 일단, 거기서 기다려. 더 가지 말고, 내가 곧 따라갈게.’
“아니에요. 저도 움직여볼게요. 서로 가까워지면 통증도 줄지 않을까요?”
‘그럴 것 같기는 해. 일단, 해보자고.’
‘알겠어요.’
‘그래, 그럼.’
“어, 역시. 내 목소리가 들린 거죠?”
‘들린다고 했잖아.’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직접 말로 하지 않고 속으로 말해도 들리는 것 같아서요. 다시 해볼게요.”
‘속으로···’
송이는 말없이 속으로 말했다.
‘네. 속으로 말하는 걸 아저씨가 들은 것 같아요. 정말 텔레파시가 통하나 봐요.’
‘텔레파시라······. 지금 속으로 말한 거야?’
‘네. 정말 아저씨는 제 그림자가 맞는 것 같아요. 멀리서도 대화가 되니 말이에요.’
‘그러네. 그림자가 맞는 것 같네. 일단, 좀 움직일까? 여전히 가슴에 통증이 느끼고 내 모습이 돌아오지 않아서 말이야.’
“아, 네. 가요.”
송이는 벽을 짚고 일어나 조금씩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그림자도 바닥 무늬의 금을 피해 최대한 서둘러 중환자실로 향했다. 그림자와 송이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송이의 심장 통증이 서서히 사라졌고 그림자의 빛깔도 점점 원래 색으로 되돌아왔다.
엘리베이터가 1층에 도착해 송이가 내리자 그 앞에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며 송이의 옆으로 찰싹 붙었다.
“아휴, 살았다. 이제 절대 떨어지지 말자, 어? 송이야.”
“네, 그래야겠어요.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지만 그림자 아저씨랑 멀어지면 몸에 이상신호가 온다는 걸 알았으니 조심해야겠어요.”
“그러게 말이야. 그러니까 화난다고 그렇게 쌩하고 가지 말라고, 어?”
“뭐예요? 또 제 잘못이라는 건가요? 이게 처음부터······”
“오케이, 알았어. 내가 좀 강박증이 심한 것 같아. 그러니까 이해를 해줬으면 좋겠는데. 그것도 어려운 부탁인가?”
“아니요, 죄송해요. 알면서 제가······. 그런데 그림자가 강박증이 있다는 것도 참 이상하지 않나요?”
“송이야, 지금 상황은 이상하지 않고? 그림자가 말을 하는데? 그리고 이렇게 너랑 따로 움직이고 말이야.”
“그건 그래요. 어찌된 영문이지 정말 모르겠네요. 내 그림자는 맞는 것 같은데······ 아휴. 아무튼 중환자실에 가보죠. 그런데 가도 문제네요. 아저씨 혼자 들어갈 수 없잖아요. 그러다가 또 이런 일이 생기면······.”
“그렇지. 그래도 적당히 거리만 유지하면 문제는 없을 것 같으니까 일단 올라가자. 서로 먼 거리에서도 의사소통이 가능하니 위험 수위에 가까이 왔을 때 멈추면 될 듯하고.”
“그건 또 그러네요. 알았어요. 엘리베이터 타고 올······ 혹시, 엘리베이터는 탈 수 있어요?”
“모르겠는데······ 그건 타봐야 알 것 같아.”
“모르니까, 일단 타보죠.”
“그래, 그러자.”
송이와 그림자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중환자실이 있는 5층으로 올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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