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그림자의 정체는? 2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빈소로 들어온 송이의 엄마는 방금 나간 조문객과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물었다. 송이는 박 경위와 나눴던 대화를 엄마에게 말했고, 그녀는 또 한 사람을 골로 보내고, 참 운도 좋은 년이라며 송이에게 비수를 꽂는 말을 내뱉으며 나가려했다.
“엄마, 잠깐만요.”
송이가 나가려는 자신을 부르자, 그녀는 버럭 화를 내며 쏘아봤다.
“왜? 내 말이 틀렸어? 그 사람은 지금 중환자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다더라, 근데 너는 이렇게 멀쩡히 여기 앉아 있잖아.”
“그게··· 아니, 알았어. 그래, 내가 운이 참 좋은 년이네.”
”엄마 말을 비꼬는 거야? 지금 너.”
”아니, 엄마 말이 맞는다고. 다 나 때문이라는 거 알아. 근데 그거 때문에 부른 게 아니야.”
”아니야? 그럼 왜? 바쁜 사람은 왜 불러 세워?”
”아니, 그분 말이야. 중환자실에 계시다는 분. 그분은 왜 우리 집에 계셨던 거래?”
“그거··· 아이, 그래.”
송이의 엄마는 다시 송이 옆에 앉아 귀에 가까이 대고 말했다.
“네 아빠가, 뇌물을 받았다지 뭐야. 그것 때문에 조사를 받고 있었고. 그래서 네 아빠가···”
송이의 엄마는 빈소의 영정사진을 힐끔 보며 말을 이었다.
“저기 계신 거 아니야. 거기에 네가 불을 지른 거고, 알아? 화재보험금은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어. 일부러 그런 건 아니니까··· 그렇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지?”
“엄마, 그게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몰라, 그러니까 네가 왜 거기에 있어가지고. 그날 기억도 안 난다면서? 보험사에서 방화로 몰고 가며 보험금을 안 주려고 할 수 있다고. 아무튼, 무조건 실수··· 아니, 모른다고 해. 알겠어?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알겠어요. 근데, 그분은 중환자실··· 이 병원 중환자실에 계신 거야?”
“그러겠지. 너도 이리로 왔으니까.”
“그분 이름은 뭔지 알아?”
“이름? 이한이라고, 형사라고 하는 것 같더라. 근데, 그건 왜 물어?
“엄마, 나 잠깐 그분 좀 보고 올게.”
“네가 그 사람을 왜 만나? 됐고. 여기 빈소나 잘 지켜. 그리고 크게 울라고, 크게.”
“아니··· 네. 엄마.”
매섭게 쳐다보는 엄마의 눈빛에 송이는 더는 말하지 못하고, 그녀의 말대로 크게 울기 시작했다. 송이의 엄마가 밖으로 나가자, 그림자가 말을 걸었다.
“와, 저 여자··· 정말. 엄마가 아니라 계모··· 아니, 악마 아니야? 아니, 딸한테 일부러 불을 질러냐고 묻는 게 말이 돼? 돈에 환장한 여자네. 너는 저런 엄마한테 왜 그렇게 말을 못해? 너는 기분 안 나빠? 나 같았으면 확 들이박았을 텐데.”
송이는 그림자의 말에도 아무 말 없이 그저 크게 소리 내어 울기만 했다.
“뭐야? 꼴에 네 엄마 흉본다고 화난 거야? 그래서 내 말에 대꾸도 안 하는 거냐고? 그래, 알았다. 그런데 내가 정말 귀신일까? 송이 너한테 들러붙은 귀신 말이야. 너희 아빠는 아니라고 했고. 그럼, 난 누굴까? 수호천사? 귀신? 아, 공무원 귀신? 도대체 난 뭐냐고? 확실한 건 너의 그림자는 아니라는 거야.
그리고 그림자는 맞는다는 거지. 그런데 귀신이 왜 그림자로 보이냐고? 내가 그냥 그림자면 왜 이런 생각들을 하는 거냐고? 도대체, 이게 말이 돼? 내가 너의 그림자면 네 생각이 곧, 내 생각이고 그래야 하는데, 확실히 송이, 너의 그림자는 아니라는 거지. 그런데 내 목소리는 너한테 밖에는 안 들리잖아. 아이, 미치겠네. 야, 임송이. 무슨 말이라도 해봐. 나는 답답해 죽겠는데··· 그렇게 울기만 할 거야?”
송이는 큰소리로 울면서도 눈에서는 눈물 한 방울이 떨어지지 않았다. 송이는 코를 훌쩍거리는 소리를 내며 그림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엄마가 보고 있는지 봐줄래요.”
“어? 아, 엄마. 알았어.”
그림자는 고개를 돌려 빈소 밖 접객실을 살폈다.
“너희 엄마, 여기서 멀리 있으니까, 괜찮아. 그랬구나, 엄마가 보고 있는지 알고, 그렇게 운거야?”
송이는 크게 소리 내어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 그래. 저기서는 안 들릴 거야. 그러니까, 살살 울어. 그럼, 내 말은 다 들은 거야?”
송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아저씨는 내 그림자가 아닌 게 확실해요.”
송이는 말을 하고는 바로 또 통곡하듯 크게 울음소리를 냈다.
“그렇지. 그렇다고 귀신은 아니겠지? 귀신이 무슨 그림자로 보여, 안 그래?”
송이는 여전히 통곡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송이야, 목 안 아파? 살살 울라니까는.”
“엄마가 귀신 같이 알고 온다고요. 그러니까, 그냥 이렇게 할게요.”
“아, 엄마가 귀신이구나. 하하. 그래, 알았어. 난 네가 힘들 것 같아서···”
“아저씨가 귀신이 아니면 뭘까요? 그림자로 봤을 때는 확실히 저는 아니에요.”
“그건 그래. 여자는 아닌 게 확실하지. 그리고 내가 생각이라는 걸 하잖아. 내가 만약 너의 그림자면 내가 너의 생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너와 나는 완전한 타인이라는 거지. 물론, 귀신은 아니고.”
“맞아요. 귀신이라면 이렇게 그림자로 보일 리 없죠. 남자도 확실하고요.”
“남자? 그래. 목소리가 허스키하다니··· 남자는 남자인 것 같은데.”
“목소리뿐만이 아니에요. 아저씨 그림자 목에 목젖이 보여요.”
“목젖? 아, 울대. 울대가 보인다고?”
“남자 목에 툭 뛰어나오게 울대구나··· 네. 그거요.”
“그래, 이건 울대라고 하지. 근데 내가 이게 울대라는 걸 어떻게 알지? 아, 정말 내가 남자는 맞는 것 같네. 울대도 알고, 아동복지법도 아는데··· 왜 나는 나를 모를까? 도대체 나는 누구지?”
“그거야 아저씨가 알겠죠. 저도 집에서 일이··· 잠깐만요. 중환자실··· 그분.”
“중환자실··· 아, 그 사람. 왜?”
“이한이라는 이름 들어보셨어요?”
“이한? 모르겠는데. 아니야, 그 사람. 그리고 네 엄마가 좀 이상해. 아니, 딸한테 그런 막말을 하는 엄마가 어디에 있어? 괜히 엄마 말에 신경 쓰지 마. 상처받지도 말고.”
“괜찮아요. 원래 그러세요. 그런 게 한두 번도 아니라···”
송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있었지만, 얼굴에 순간 그늘이 졌다.
“그게 말이 돼? 어떻게 그래? 아프고 힘들면, 아프다 힘들다. 말해. 그래야 한다니까, 그러다 정말 큰 병 된다고. 알겠어?”
“알겠어요. 그것보다··· 그 중환자실에 계신 그분을 만나봐야겠어요.”
“그걸 왜 가서 보려고? 마음만 아프지. 그리고 절대, 송이 너 때문에 그런 게 아니야. 괜히 신경 쓰지 말고, 가지마.”
“아니요. 그 분이 혹시···”
“혹시 뭐?”
“아저씨는 아닐까 해서요.”
“뭐라고? 나? 나라고···”
***
어둠이 짙게 깔린 장례식장 뒤편에 가로등 하나가 밝게 빛나고 있었다. 그 가로등을 등진 채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남자의 그림자가 보인다. 그때 중년의 남자 둘이 뒤편으로 돌아 나오며 한 남자가 담배에 꺼내 입에 물고는 불을 붙였다. 그 순간, 그림자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중년 남자는 담배를 한 모금 길게 빨고는 하늘을 향해 뱉어내더니 말했다.
“담배 끊은 거야?”
“그래, 너도 이제 끊어. 담뱃값도 비싸고··· 몸에도 안 좋은 걸 뭐하려고 그리 피나.”
“됐다. 너나 오래 살아라. 나는 적당히 살다 갈련다.”
“자식이 장례식장에 와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담배를 물고 있던 남자는 피식 웃으며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런가? 아무튼,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승택이가 어떻게 이렇게 죽어. 아이고, 참.”
“그러게 말이다. 인생사 다 부질없다는 게 딱 승택이 얘기가 아니고 뭐야. 그동안 승택이가 얼마나 고생하며 살아왔는데. 그렇게 좀 여유 좀 부리며 살라고 해도, 그 흔한 친구들 모임자리에 바쁘다며 얼굴 코빼기도 안 보였잖아.”
“그러게 말이야. 그게 다 승택이 마누라 때문이잖아. 남편 잡아먹을 상이라고 내가 그랬지? 아무튼 마음에 안 들어. 아니, 지 남편이 저렇게 죽었는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 거야? 꼭 죽기만을 기다린 줄 알았다니까, 내가. 승택이 앞으로 보험은 얼마나 들어놨을까? 보험 하잖아, 승택이 마누라.”
“에이,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보험금 받으려고 그랬다는 거야? 됐어, 쓸데없는 소리는. 조문객들 맞을 사람이 승택이 안사람밖에 없잖아. 딸 하나 있는데··· 그럼, 어떻게 하겠어. 그리고 내가 듣기로는 주위 사람들한테는 잘한다고 그러던데? 그러니까, 저렇게 조문객이 많지. 괜한 소리하지 마. 특히, 술 취해서 말이야. 어?”
“괜한 소리? 내가 들은 게 있어, 승택이한테. 그 자식이 얼마나 힘들면, 술 먹고 그런 소리를 했는지 이제 좀 알겠다.”
“뭐야? 언제 만났어?”
“이주 전인가? 한잔 하자고 연락이 와서 어쩐 일인가 하고 나갔더니, 이미 많이 취한 상태더라고. 그 자식 하소연 다 들어줬다고, 내가. 뭐가 그리 힘든지··· 자식이. 이러려고 그랬나··· 그때 잘 좀 들어줄걸 그랬어.”
“무슨 소리를 했는데? 무슨 하소연?”
“그게 괜히 자리를 옮겼다고 하면서··· 자기는 싫다고 싫다고 했는데, 마누라가 그 부서가 보너스도 많고, 또 뭐가 많다고 했는데··· 뭐더라?”
“야근수당이겠지. 왜? 매일 야근하라고 재촉하기라도 했다는 거야?”
“아, 그래. 수당이다. 이것저것 들어오는 수당이 많다고, 꼭 가라고 했다지 뭐야.”
“에이, 그것 때문이겠어? 그 수당 얼마나 된다고. 괜한 소리는···”
담배를 들고 있던 그는 한 모금을 빨고는 바닥에 던져 끄더니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속삭이듯 말했다.
“이 사람아, 어떻게 그렇게 몰라? 수당이겠어? 뒷돈을 바란 거겠지.”
“뭐? 뒷돈?”
“조용해, 누가 듣겠어.”
“그래 알았어, 더 말해봐. 그래서 네 말은 그걸 바라고 승택이 안사람이 그 자리로 옮기라고 했다는 거야?”
“승택이 그 자식이 그건 차마 말 못했겠지만, 그 부서가 알게 모르게 뒷돈이 오가는 부서라고 알고 있거든. 예전에 승택이가 그런 말도 했었고. 아주 꽃보직이긴 한데, 사건사고가 많은 곳이라고.”
“사건사고? 뒷돈··· 뇌물 그런 거? 그러면 정말 승택이가 뇌물을 받아서···”
“너도 들은 거야?”
“그래, 아까 경찰이 와서 승택이 안사람하고 대화하는 걸 잠깐 엿들었는데··· 뇌물사건 뭐라고 하던데. 승택이가 자살한 이유가 정말 그거였어?”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남자는 한 모음 짙게 내뱉고는 입을 열었다.
“아휴, 그러니까 말이다. 그게 힘들었나봐. 그 자식 성격에··· 뇌물이 말이 돼? 무슨 생각으로 그걸 받았을까. 그래서 내가 다 승택이 마누라 때문이라고 한 거야. 그 사달이 거기서부터 시작이 아닐까하고 말이야. 우리 모임에도 안 나온 이유가, 그 다 돈 때문이라고 하잖아. 그 자식이 회비 내기도 힘들다고 했다지 않아.”
“그 회비가 얼마나 된다고···”
“너 몰라? 승택이가 고기를 얼마나 좋아하는데, 지 마누라가 고기 싫어하다고 고기도 제대로 먹지도 못했잖아. 정말 고기가 싫어서 그러겠어? 다 돈 때문이지. 돈에 미쳐서··· 남편이 좋아하는 고기도 안 먹이고. 아이고, 참. 아무튼, 승택이 그 자식 팔자도 참···”
“그래? 그래서 정말? 아이고. 그러고 보니까, 딸한테도 막말을 하더니만.”
“정말? 그랬어? 그래, 내가 뭐라고 그랬어?”
“조문객들 앞에서는 얼마나 상냥하고 예의 바르게 잘 하던지··· 내가 다 무섭긴 하더라. 잠깐 들었는데도, 계모가 아닌가 싶더라니까?”
“정말 계모야?”
“무슨 소리야? 송이 돌잔치에도 갔으면서?”
“아, 그렇지. 참 무서운 여편네야. 아휴, 난 그런 마누라면 절대 같이 못산다, 못 살아.”
“야, 이제 담배 다 폈으면 들어가자. 어으, 밤이라 꽤 쌀쌀하다.”
“그래, 들어가자.”
“야, 들어가서 쓸데없이 그런 얘기하지 말고. 알았어?”
“그래, 걱정 마. 들어가자.”
중년의 남자들의 그림자가 건물 안으로 사라지고, 가로등에 비친 그림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어딘가로 마지막 메시지를 보내고 그 자리를 떴다.
‘크게 문제는 없을 듯합니다. 그래도 모르니, 계속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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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
- 작가의말
다음 6화는 내일 정오 12시 15분에 연재 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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