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다 나 때문이라고?
그림자 탐정
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 단체, 지명, 사건 등은 실제와 무관하며 모두 창작에 의한 허구임을 밝힙니다.
진료실에서 딸의 CT 검사결과를 듣고 나온 강경애는 딸이 있는 병실로 들어섰다. 송이는 침대에 앉아 창가를 바라보고 있다, 병실 문이 열리자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엄마···”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침대 밑으로 왔다.
“엄마, 왜 그래? 그 옷은 또 뭐고?”
그녀는 난데없이 송이의 등짝을 내리쳤다.
“너 뭐야? 왜 학원에 갈 시간에 집에 있었는데, 왜?”
“그게 무슨 소리야? 엄마. 난 왜 병원에 있는 거야?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데?”
“뭐? 이 기지배가 정말··· 너 뭐야? 기억 안 나?”
“기억··· 모르겠어. 학원가는 길에 엄마랑 통화하는 것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그 다음부터는 전혀 기억이 않나. 내가 집에 있었다는 게 무슨 소리야? 엄마.”
송이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엄마를 바라봤다.
“정말 하나도 기억이 안 나?”
“무슨 기억? 내가 뭘 기억해야 하는 거야?”
“아이고, 못살아! 내가. 네가 목격자라는데··· 우리 이제 어쩌면 좋니? 아이고!”
그녀는 송이의 어깨를 두드리며 흐느껴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송이는 난감한 듯 엄마의 손을 잡았다.
“엄마, 울지만 말고, 말해봐. 무슨 일이 있었는데?”
“너 때문에 집이 홀라당 다 타버렸어, 기지배야. 아빠도 돌아가셨다고··· 아이고, 우리 이제 어떻게 사니? 송이야! 아흐흐···”
송이는 믿기 힘들다는 듯 엄마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
“그게 무슨··· 무슨 소리··· 아빠가 돌아··· 돌아가셨다고? 왜? 왜 아빠가··· 왜 아빠가 돌아가셔? 엄마, 말해봐. 어? 말해보라고!”
송이의 말이 끝나자 엄마는 눈물을 닦아내며 송이를 흘겨봤다.
“기지배야, 너 때문이야. 다 너 때문이라고, 아이고! 내가 네 아빠랑 너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이야! 정말··· 아이이고!”
“나 때문이라고··· 나 때문에 아빠가 돌아가··· 돌아가셨다고··· 엄마··· 거짓말이지? 아니야, 왜? 아빠가 왜 나 때문에··· 아니야! 아니라고!”
송이는 머리를 움켜쥐고 흔들면서 고래고래 ‘아니라고’ 소리쳤다.
“미친년! 그러니까, 왜 학원에 안 가고, 집에 가서는··· 이 사단을 내. 이 년아! 이제 우리 어떻게 살아? 아빠는 뇌물을 받아 처먹고 자살해버리고, 딸년은 집에 불이나 내고··· 내가, 내가 못 살아, 정말. 자기만 죽어버리면 다야? 난 어떻게 살라고!”
그녀는 송이의 등짝을 때리며 온갖 욕설을 내뱉어냈다. 송이는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닌 듯 맞으면서도 꿋꿋하게 말했다.
“아빠가 자살이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나 때문에 죽었다며? 뭐가 맞는 거야? 엄마.”
“네가 집에 가지만 않았어도 아빠가 죽지는 않았을 거야, 이 년아! 가스 켜놓고 죽으려고 한 네 아빠도 아빠지만··· 거길 왜 가서 불을 낸 거야, 너는! 왜? 학원에 안 가고, 왜 집에 간 거냐고, 이 년아!”
그녀는 그동안 쌓인 모든 화를 풀어내듯 송이의 머리와 등짝을 사정없이 때리기 시작했다.
“다 너 때문이야! 알아! 너 학원 좀 더 보내려고, 아빠가 보직이동까지 해서 이 모든 사단이 생긴 거라고. 아빠가 왜 뇌물을 받았겠어? 다 너 때문에 받았겠지, 너 하나 제대로 키워보겠다고, 어? 너 낳고 엄마가 학업도 포기하고, 경력도 단절돼 겨우 보험회사에 들어간 것도··· 다 너 때문인데··· 그런데 결국, 아빠까지 죽여! 이 나쁜 년아! 아흐···”
“엄마··· 미안해··· 내가 다 잘못했어. 정말 미안해, 엄마. 아빠··· 아빠는···”
그녀는 어느 정도 화가 풀렸는지 눈물을 닦아내며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의사 선생님이 너 아무렇지도 않다고 하니까, 그만 퇴원해. 그리고 아빠 빈소, 네가 지켜. 빈소 지킬 사람이 없어서 내가 조문객들도 제대로 맞지 못했다고, 알아? 이 병원 장례식장이니까, 정리하고 내려와.”
그녀는 자신의 말만 하고는 병실을 나가버렸다. 송이는 엄마의 말이 도저히 믿겨지지 않아, 자신에게 한 말들이 하나도 진실 같지 않았다. 마치 꿈만 같아, 자신의 손으로 뺨을 세게 때리며 꿈인지 생인지 확인했다.
“아프겠다. 꿈 아니야.”
송이는 또 낯선 이의 목소리에 바로 뒤돌아 그림자를 봤다.
“정말 당신··· 아니, 그림자가 말한 거예요?”
“그림자? 아, 정말 내가 그림자라는 거야?”
“그럼, 귀신··· 귀신이에요? 유령··· 내 눈에 안 보이는 건가요?”
갑자기 송이의 그림자가 송이 앞으로 나와 벽에 서듯 크게 드리웠다. 그 모습에 송이는 또 한 번 기절하듯 쓰러져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이번엔 기절하지 않은 채 그림자를 빤히 쳐다봤다.
“오, 이번엔 기절 안 했네?”
“정말 그림자··· 근데, 내 그림자라고요?”
“그러게 말이야. 내가 너의 그림자란 말이지.”
“말도 안 돼요. 내 그림자라면··· 그 모습이 아니··· 아니, 모습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나랑 같아야죠. 목소리나 그 모양으로 보나··· 여자가 아니라 남잔데요. 제가 좀 뚱뚱하데··· 그림자는 그렇게 뚱뚱해 보이지도 않고요.”
“그림자라서 그런가보지. 그림자가 원래 좀 길고 날씬하게 보이긴 하잖아. 그런데 정말 목소리는 아니란 말이지. 목소리는 딱 남잔데···”
“그러니까, 제 목소리는 아니에요. 그런데··· 어! 정말 내 그림자네. 내 그림자가 없잖아.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난 넌데. 네가 모르면 나도 모르지.”
“물어본 게 아니··· 아무튼, 난 아니라고요. 그런 목소리도 그 형체도요.”
“아이, 골치 아프네···”
“자신이 누군지도 모르는 거예요?”
“말했잖아, 너라고. 네 그림자라고. 참, 답답하네···”
“지금 누가 더 답답한데··· 알았어요, 내 그림자라고 치죠, 뭐. 그런데 그 허스키한 목소리는 정말··· 나 같지 않은데··· 머리카락 스타일도 다르잖아요. 비슷하긴 해도···”
송이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지며 그림자의 머리를 가리켰다.
“그건 그렇지. 그래도 나는 네 그림자라고. 그런데 난 도통 아무런 기억이 안 나서 말이야.”
“기억이 전혀 안 나요? 아, 이럴 때가 아니지···”
“아, 아버지···”
“네, 아빠가 돌아가셨다고··· 으흐···”
송이는 아빠 생각에 눈에서 그새 눈물이 쏟아졌다.
“그래, 어서 가봐.”
“네. 그럼··· 아, 내 그림자잖아요. 같이 가야죠.”
“아차, 그렇지. 아,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내 목소리를 못 듣는 것 같으니까, 안심하고. 그렇다고 사람들 앞에서 나한테 말 걸지 말고. 그러다 미친 사람 취급 받아, 알았지?”
“당연하죠. 그걸 모를까 봐요. 아저씨··· 아니,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라서요. 목소리는 아저씨 같은데···”
“일단, 그냥 아저씨라고 불러. 근데 왜?”
“아, 제 옆에 붙어 있으라고요. 마음대로 움직이지 말고요.”
“알았어, 무슨 말인지. 빨리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 네.”
송이는 병실 옷장에 있는 옷으로 갈아입으려다 멈칫했다.
“잠깐 뒤돌아 서있어요.”
“어? 아··· 아니, 난 너라고···”
“빨리요!”
“아이, 알았어. 참.”
송이는 그림자를 힐끔 힐끔 쳐다보며 옷을 갈아입었다. 그리고 곧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림자는 송이가 병실 문을 여는 소리에 깜짝 놀라 헐레벌떡 뒤따라 달려 나갔다.
“야, 같이 가야지. 임송이!”
***
병원 중환자실 대기실로 한 남자가 들어왔다. 울먹이며 의자에 앉아있는 한 노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기··· 어머니, 저 왔습니다.”
그 노인은 벌떡 일어나 남자의 두 팔을 잡으며 안기듯 말했다.
“아이고, 박 형사. 우리 아들 어떻게 된 거예요? 우리 아들을··· 누가 저렇게 만든 거냐고요.”
“어머니 죄송합니다. 이한이 옆에 제가 같이 있었어야 했는데··· 죄송해요. 사고였어요. 가스 폭발 사고현장에 있다가··· 저렇게···”
“우리 이한이가 왜요? 왜 거기에 있었냐고요? 우리 이한이가··· 왜? 으흐흐.”
박 형사는 이한의 어머니를 의자에 앉히며 말했다.
“어머니 진정하시고 여기 일단 앉으세요. 제가 다 말씀드릴게요.”
“그래요, 알겠어요. 어서, 말해 봐요.”
“현재 수사 중이니 자세한 결과가 곧 나올 겁니다, 어머니. 확인된 걸 말씀드리면··· 이한이가 내사 중이던 사건을 수사 차 가스폭발이 발생한 집을 찾은 듯합니다. 수사 중이던 용의자가 자살을 하면서··· 가스폭발이 일어났나 보더라고요. 수사를 좀 더 해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그런 이유로 남궁 형사가 크게 부상을 입은 듯합니다.”
“자살이요? 용의자가 자살··· 죽으려면 혼자 죽지, 왜 우리 아들을··· 왜 우리 아들까지 데리고 가려고 한 거래, 아이고! 안 돼, 우리 아들은 안 된다고! 어쩌면 좋아, 우리 아들.”
“어머니, 이한이 금방 일어날 겁니다. 그러니, 어머니께서도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 그래야 이한이도 어머니한테 미안하지 않죠. 안 그러겠어요? 이한이가 깼는데 어머니까지 아프시면 이한이 얼마나 속이 상하겠습니까?
그러니까,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여기 계신다고 이한이를 계속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면회시간이 정해져 있으니까, 그 시간에만 오셔서 보세요. 이렇게 여기에 계속 계시다가는 어머니가 더 건강 나빠지시겠어요. 그러게 하세요, 어머니.”
“아이고, 말은 고마운데, 그래도 어떻게 그래? 엄마가 돼서. 우리 아들이 저렇게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나만 어떻게 편히 방구석에 누워서 잠을 자냐고, 그게 안 돼. 그러니, 내 걱정은 말아요. 박 형사는 얼른 들어가서 보고, 일 봐요. 나는 신경 쓰지 말고.”
“큰일이네··· 일단, 알겠습니다. 저 금방 보고 나올 테니, 앉아서 잠시 기다리세요, 어머니.”
이한의 어머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어서 들어가라고 손짓했다. 면회는 한 사람밖에 되지 않아, 박 형사 혼자 들어가 면회를 해야 했다. 중환자실 한 구석에 별도로 마련된 음압격리병실에 남궁이한 형사가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붕대를 감은 채 누워 있었다.
박 형사는 격리병실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유리벽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야, 남궁 형사. 일어나라, 어! 빨리 깨어나라고, 자식아!”
남궁 형사를 지켜보던 박 형사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다른 환자들을 둘러봤다. 그리고 천장을 살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뭐지? 여기만 형광등 위치가 달라서 그런가? 아닌데··· 보통 사람 그림자가 저렇지 않잖아··· 아닌가?”
남궁 형사의 그림자가 유독 다른 사람들 그림자와는 다르게 보였던 것이다. 붕대를 감고 있는 남궁 형사와는 전혀 다르게 단발머리와 통통한 몸매, 그리고 더 특이한 것은 남궁 형사의 몸과 떨어져 그림자가 비춰진다는 것이다.
빛이 밝아 그림자의 형체가 뚜렷하지는 않지만, 분명 보통 사람들의 그림자와는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박 형사는 그것도 잠시일 뿐 형광등 위치 탓이라 생각하고 무심코 지나쳤다. 중환자실에서 나온 박 형사는 남궁 형사 어머니에게 인사하고, 가스폭발 사고의 목격자를 만나러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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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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