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장. 천곤의 정체-04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갑작스러운 연결에 한이 묻는다. 전해오는 의지의 떨림을 보니 걱정을 많이 한 모양이다.
-걱정을 많이 했구나.
-갑자기 연결이 끊어져서 놀랐습니다.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닌지 몰라 너무 답답했습니다.
그럴 만도 할 것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가 나 때문인 한이다. 연결이 끊진 상태라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은 기분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였음에도 나를 배려해 아무렇지 않은 내색을 하는 한이 고마웠다.
-나는 괜찮으니까 걱정하지 마라.
-그래도······.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은 한의 의지에 누리가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마스터를 믿지 못하는 겁니까?
-너, 넌 누구냐?
갑자기 등장한 누리의 의지에 한이 기겁을 한다.
-한, 네 동생이다.
-동, 동생이라는 말입니까?
놀란 한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설명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니까 내 의식속의 정보를 카피하도록 해라. 그러면 누리에 대해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스터, 정보를 카피하라는 말씀입니까?
원래는 허락되지 않는 일이기에 한이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래.
-그럼, 잠시······.
한이 빠르게 정보를 읽어나간다.
-마스터, 이상합니다. 전과는 달리 어마어마한 양의 정보가 존재합니다.
-어렵다는 것이냐?
-정보의 질도 그렇고, 이만한 양이라면 저로서도 쉽지가 않은 일입니다.
어째서인지 한이 두려워한다. 변해버린 나 때문인지, 아니면 정보의 양 때문인지 모르지만 두려움을 없애 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파탄이 일어날 테니 말이다.
-후후후, 한!
-예, 마스터.
-지금쯤이면 나는 물론이고 너도 변했다는 것을 느꼈을 텐데. 아닌가?
-그렇기는 합니다만.
-그렇다면 다시 한 번 되돌아 봐라. 네 자신을 말이다. 그러면 충분히 가능하다.
-알겠습니다. 마스터.
한이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자신이 어떤 존재로 진화를 했는지 살피던 한의 의지가 갑자기 커지기 시작했다. 한은 자신이 진화했음을 확실히 인지한 모양이다.
나처럼은 아니지만 한은 엄청난 속도로 내게 있는 정보를 카피해 나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보를 다 읽어 들인 한이 말을 걸어온다.
-마스터, 누리는 진짜 제 동생이군요. 이름을 나누어 주시다니 놀랍습니다.
모든 것을 이해한 한이 감탄을 터트린다. 한으로서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 맞다. 의식과 의지를 모두 너를 기반으로 창조했으니 말이다. 이름을 나누어 누리와 너에게 반반씩 주었다. 이제부터 너와 누리는 하나가 될 것이다. 그러니 잘 보살펴라. 이 세상에 대한 정보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은 것이다.
-잘 돌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다. 이제는 러시아로 떠나야 한다. 누리가 완벽해지기 위해서는 그곳에 있는 것들이 필요하니까.
-알겠습니다. 마스터. 떠나시기 전에 이곳에 대한 조치를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어기제를 다시 설치하고 네트워크로서 장악하는 일이지만 한에게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곳을 지킬 누리가 있으니 자신의 의지를 심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누리.
-예, 마스터.
-형에게 잘 협조해라. 그래야 너도 성장할 수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마스터. 그리고 잘 부탁합니다. 형!
내 말이 통했나 보다. 조금 까칠해 보였던 누리의 어조가 부드러워졌다.
-알았다. 마스터를 위해 우리 잘해보도록 하자.
한도 잘 인식한 것 같아 다행이다.
-자 이제 가자. 그곳을 얻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
-예, 마스터.
대답을 끝낸 한은 나를 곧바로 공간이동시켰다.
이제 공간이동정도는 스스로 발휘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기에 기분이 좋았다.
공간이동으로 간 곳은 러시아에 있는 피라미드군이다. 바이칼호를 중심으로 빙 둘러선 피라미드는 서안에 있는 것들과 같은 파장을 흘리고 있었다.
-방어기제는 곧바로 해제 할 수 잇을 것 같습니다.
-그럼 바로 들어가자.
-예, 마스터.
한이 방어기제를 해제해 나갔다. 순식간에 해제되는 것을 느끼는 와중에 누리가 의지를 해왔다.
-마스터.
-들어가고 나서 이야기 하자.
누리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지만 일단 안으로 들어가야 했다.
방어기제를 해제하자마자 파장이 갑자기 변하는 것을 보니 피라미드 안에서 뭔가 일이 일어난 것 같아서 였다.
팟!
서안과 마찬가지로 통로는 끝 모서리였다. 곧바로 이동해 안으로 들어갔다.
통로 안쪽에 검은 갑옷을 입은 기사들이 보였다. 기사들이 움직이고 있는 끝에는 푸른색의 포털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곳에서 꾸역꾸역 나와 통로안쪽으로 달려가고 있었다.
“제기랄!!”
대수장이 이끄는 군대와 싸웠던 자들의 복장과 같은 모습을 한 기사들이었다. 경계를 넘어 둥지를 털러 온 모양이었다.
‘무기도 제대로 갖추지 않았는데······.’
한과 누리의 둥지가 지금 동화중이라 신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다. 마스터급에 이르는 자들인데 어쩔 수 없이 체술로만 놈들을 상대해야 한다.
-마스터.
-무슨 일이야?
-손에 차고 계신 것을 사용하세요.
나를 부른 누리가 천곤을 사용하기를 권했다.
-이건 무기가 아니야.
-무기로 사용할 수 있어요. 그 안에 있는 레인보우 뷰렛이라면 충분히 충분할 거예요. 칠채령을 융합한 것들에 의지를 부여하면 사용하실 수 있어요.
누리가 내가 얻은 것들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 거야?
-집중해서 차고 계신 것에 의지만 부여하시면 있으시면 어떤 것이든 가능해요.
-알았어.
이미 적들이 내가 등장한 것을 알아차렸다. 누리 말대로 의지를 천곤에 부여했다.
번쩍!
양 손목에서 섬광이 일어났다.
동시에 화려한 장갑이 내 몸을 둘러쌌다. 브리턴의 기사들처럼 갑옷을 입은 것이다.
양 손에도 무기가 들려졌다.
양쪽 끝에는 날카로운 날이 달려 있고 중간에 작은 원형의 방패가 달려 있는 무기다.
슈-앙!
주먹을 내뻗자 방패에서 사람 머리통만한 것이 생성되었다. 푸른색으로 물든 추는 마치 대포의 탄환처럼 생겼는데 곧장 앞으로 뻗어나갔다.
물의 기운을 간직하고 있기에 워터 캐논으로 불러도 될 에너지 응집체가 곧장 뻗어나가더니 터져 나갔다.
콰-아아앙!!
자탄으로 분리된 수많은 뷰렛들이 흑기사들을 향해 쇄도했다.
콰쾅!!
콰콰콰쾅!!!!
흑기사들을 강타한 뷰렛들이 터져나가며 통로 안쪽을 푸른색으로 물들였다.
‘이런 위력이라니, 도대체 정체가 뭐냐? 넌!’
경계를 뚫기 위한 신기로만 알고 있었던 내가 어이없었다.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도 감히 엄두를 내지 못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는 신기를 그리 단순하게 생각하다니 말이다.
-마스터!
-알았다.
정체가 무엇인지 궁금하지만 지금은 저자들부터다.
브리턴에서 세상의 경계를 넘기 시작했다. 예상보다 빠른 시간이다. 누군가 재빠르게 움직이고 있다는 뜻이다.
-시작해!
-예, 마스터.
-누리, 너도 돕도록 하고.
-알겠습니다. 마스터.
둘에게 지시를 내리고 놈들을 상대할 준비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벌써부터 움직이기 시작한 거지?’
정신체로 자신들이 만든 인간의 몸에 깃들 수 있다는 브리턴인들이다. 대단한 자들이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경계를 쉽게 넘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상계와 브리턴을 넘나들면서 느낀 것이지만 내가 느낀 브리턴 대륙의 경계는 아주 특별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빨리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은 이곳에 그들과 연통한 자들이 있다는 뜻이다. 그들이 누구인지 최대한 빨리 찾아내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첫 번째 공격이 성공을 했지만 그리 큰 타격을 준 것은 아니다. 명색이 검으로 일가를 이룬 마스터라는 자들인데 이정도 공격에 죽어나간다면 경계를 넘을 자격조차 없을 것이다.
내상 정도는 입었겠지만 죽을 정도는 아닌 탓에 흑기사들의 공격이 시작되고 있었다.
‘나도 이대로는 승부가 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화려한 공격을 한 이유는 잠시 시선만 돌린 것뿐이다. 한이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을 벌기 위해서다.
한은 지금 누리의 도움을 받아 이곳에 있는 에고 시스템에 접근하고 있다. 둘이 에고를 장악하고 활성화한다면 둥지는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시스템이 정상화 된다면 자체적인 힘만으로도 경계를 넘은 자들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이다.
역시나 대단한 자들이다. 그사이 정신을 차리고 공격을 해오고 있다.
쾅!
콰콰쾅!
사방에서 짖쳐 들어오는 공격을 맞받아 쳤다.
‘강한 자들이다.’
오러블레이드에 담긴 기세가 심상치 않다. 거친 가운데 모든 것을 파괴할 만한 강력한 힘을 내포하고 있다. 거기다가 보통사람이라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움직임이다.
오라를 응축시킨 블레이드가 검푸르게 빛을 발하는 모습도 흉측하기 그지없는데 움직임 또한 유령처럼 움직이는 자들이다.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니다.
콰콰쾅!
콰콰콰콰콰콰쾅!!!!
셋이서 연달아 공격을 해온다. 상중하 전신을 교묘하게 노리는 모습을 보니 합격술을 제대로 익힌 자들이 분명하다.
‘이크!’
팟!
쾅!
세 사람의 공격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격을 막는 사이 간간히 쏘아지듯 뻗어오는 오러탄의 위력도 무시하지 못한다.
“차앗!”
오러탄을 피한 후 팔방으로 단창 같은 신기를 쓸어냈다.
파파팟!
푸르스름한 기운이 번지자 적들도 경시하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사사사삭!
협공을 하던 자들이 움직임을 죽이고 빠르게 포위망을 형성했다. 단순한 공격으로는 나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 같다.
포위한 채 기세는 죽이지 않고 있다. 들고 있는 검에서는 아직 오러블레이드가 사라지지 않았다.
‘나를 지켜보고 싶겠지만 그것이 패착이 될 것이다.’
처음에 내가 시도한 공격은 저들의 시선을 끌기 위한 것이기도 했지만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다.
충격과 함께 통로에 안개처럼 퍼진 푸른 기운에는 수기, 즉 물의 기운이 담겨 있다. 그것이 다음 공격을 위한 수순이라는 것을 저들은 알 리 없을 것이다.
츠츠츠츠츠!
뇌전을 끌어냈다. 십자로 교차한 무기의 중심에 있는 방패로부터 발생한 뇌전의 모습에 다들 놀란 모양이다. 투구의 눈구멍에서 일렁이던 붉은 기운들이 약간 흔들리고 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했다.
“가랏!”
파지지지직!
뇌룡이라 불러도 좋은 강력한 기운을 내포한 뇌전이 적들을 향해 뻗어갔다.
“피해라!!”
다급한 브리턴어가 귓가에 들려왔지만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메뚜기가 튀듯 사방으로 튀고 있었지만 이미 이 통로 안에는 수기가 가득 차 있었다.
“크아아악!”
“아아아아아악!”
비명소리가 통로를 가득 메웠다. 검푸른 연기를 피워 올리며 흑기사들이 바닥으로 쓰러지고 있었다.
거의 이백여 명에 달하는 흑기사들 중 그나마 버티고 있는 자들은 다섯 명 뿐이었다.
다른 흑기사들보다 월등히 강한 전력을 보유하고 있는 자들이다.
‘흑기사들을 이끄는 자들이로군. 흑기사들의 에너지 파자으로 봤을 때 다섯 개 그룹으로 분류가 되더니 단장쯤 되는 건가?’
무기가 아니더라도 오러블레이드를 시전 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자들이다. 거의 그랜드마스터에 육박하는 실력을 가진 자들인 것 같다.
“으음, 다른 경계에서 온 것인가?”
한 놈이 말을 걸어오는데 브리턴어가 아니다. 놀랍게도 영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6권. 끝.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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