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장. 파란의 시작-04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막강한 전력을 가진 정체불명의 집단으로 인해 어쩌면 가노스 교단이나 제국의 앞날이 불안해 질도 모르겠다는 예감을 느끼며 벤트워스는 기나긴 조사를 마쳐야만 했다.
* * *
석단에서 운기를 시작하고 깊은 삼매에 들었을 때 회음을 타고 흘러들어오는 강렬한 기운으로 인해 명상에서 깨져 버렸지만 이 정도로 날 무너트릴 수는 없었다.
찌르르르!
엉덩이에서부터 곧추선 척추 전체가 울렸다. 감전된 것처럼 온몸이 저릿했다.
‘젠장! 번개를 맞은 것 같구나.’
육체를 관통하는 강력한 기운이 전신을 헤집는다. 한 번도 당해보지는 못했지만 낙뢰를 맞는 느낌이 이럴까 싶다.
‘이대로 있다가는 몸이 견디지를 못한다. 어떻게 해서든지 기운을 눌러야 한다.’
천곤을 얻은 후 시간은 거슬러 올라와 나름대로 준비를 하고 인도에서 신의 무구를 얻었다고는 하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적응한 것은 아니다.
정신의 깊이만큼 육체가 완성되지 않았으니 섣불리 감당할 수 있는 기운이 아니다.
‘크으, 쉽지는 않겠지만 날 뛰는 기운들을 다스리지 못하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된다.’
엄청난 기운이 어째서 석단에서 흘러들어오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의지대로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할아버지가 가져다 놓으신 것이니 나에게 가르쳐 주신 운기법이라면 통제가 가능할 지도 모른다. 할아버지는 손자에게 위험한 일을 시키실 분이 아니니까.’
할아버지가 남겨 준 운기법대로 날뛰는 기운에 의지를 불어넣으며 계속해서 호흡에 집중했다.
스르르르!
척추를 타고 오른 기운이 머리에 타고 올라 백회를 뚫더니 다시 미간을 타고 전면으로 내려오고 있는 중이다.
눈이 화끈 거리고 귀가 먹먹하다. 코는 아리고 입 안이 쓰다.
얼굴을 감싸듯 내려온 기운이 그대로 명치로 향한다. 명치에서 배꼽으로 흘러내린 기운이 이번에는 단전으로 흘러들어간다.
뒤이어 인체를 중심으로 커다란 타원이 만들어졌다.
그것이 끝이 아니다.
상체를 휘돌던 기운이 장기 속으로 흘러들어가더니 이내 오장과 육부를 차례로 감싸며 내부를 채워 나간다.
‘크으, 장기가 찢어지는 것 같구나.’
정말이지 못 말릴 고통이다. 천곤을 이용해 경외의 세계를 넘어가는 것은 비할 바도 아니다.
그렇지만 참아야만 한다.
이대로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믿은 것은 오로지 하나 뿐이다. 할아버지가 내게 알려 주신 운기법 그것이 유일한 구명줄이다.
파파파파팟!
고통을 참으며 운기를 계속하니 뭔가가 터져 나오는 느낌이 든다.
‘으음, 세포들이 변하고 있다.’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몸이 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환골탈태라도 하는 것인가?’
전설에나 나오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지만 뭔가 변화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세포들이 톡톡 터지는 것 같은 느낌이 전신으로 번져가며 시원함이 느껴진다.
알 수 없는 힘이 나를 변화시키고 있다.
‘고통이 점점 사라져 간다.’
기운을 제어할 수 있을 것 같다.
청량감이 전신을 물들이는 순간에 스며든 기운들이 내 의지를 따르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할아버지는 도대체 이것을 어디에서 가져 오신 것인지 모르겠구나.’
운기를 계속하며 내가 앉아 있는 석단을 생각한다.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내가 앉아 있는 석단은 현상계에 있을 것이 아니다. 이런 물건은 경외의 세계에나 있을 만한 것이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도 경외의 세계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분명하다. 그것도 링크되는 동화율의 정도가 아주 높은 관계를 가진 것이 틀림없다.’
석단으로부터 흘러나오던 기운이 어느 사인인가 사라졌다. 감추어져 있던 비밀의 기운을 내가 전부 흡수한 것이다.
맹렬하게 운기를 했다. 의지를 따르기 시작한 터라 갈무리 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그다지 긴 시간이 지나지는 않은 것 같지만 식구들이 걱정을 할 수도 있으니 운기를 그만 끝내야 할 것 같다.
“으음.”
운기를 마치고 눈을 뜨니 찬란한 태양이 정면으로 보인다.
보통이라면 눈이 아려서 피해야겠지만 고통 따위는 없다.
그저 태양을 직시할 뿐이다.
‘저건 또 뭐지?’
눈동자로 들어 온 태양이 이상하다.
그 안에 한 번도 본적이 없는 문양이 보인다.
검은 그림자처럼 흐릿한 문양이다.
우주를 관측하는 이들이 찍은 수많은 태양사진들에서도 나타난 적이 없는 문양은 커다란 새를 닮아 있었다.
‘사라졌군.’
모습을 다 살피기도 전에 새의 문양이 사라졌다.
아주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졌기에 완벽하게 살펴보지는 못했지만 뇌리를 울리는 뭔가가 있었다.
‘내 생각이 맞다면 삼족오가 분명하다.’
흐릿한 문양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한민족의 상징인 전설의 삼족오와 닮아 있었다.
아니, 그것은 분명 삼족오였다.
일제 강점기에 까마귀를 흉조라며 우리로부터 빼앗아 일본이 자신들의 문장으로 쓰고 있는 바로 그 삼족오 말이다.
치우와 함께 우리 민족을 수호하던 삼족오가 태양을 상징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이렇게 볼 줄 몰랐기에 가슴이 뛰었다.
신성한 문장을 보았다는 놀람보다는 어딘지 모르는 아련함이 가슴을 눌러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오빠!”
미영이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 봤다.
삼족오에 대한 생각으로 인해 격동된 마음을 정리할 수 없었다. 생각하면 할수록 가슴이 뛰니 일이다.
그 때문에 미영이가 마당으로 나왔다는 사실도 몰랐다.
‘이런!’
기척을 잘 내지 않는다는 것은 알았지만 아무 느낌도 없이 뒤를 잡혔다는 생각에 등골이 서늘했다.
‘저번에도 그러더니… 경계심을 풀면 안 되는데 아직 멀었구나. 그나저나 눈을 뜨자마자 곧바로 나온 것 같은데…….’
땡땡이 무늬의 잠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잠에서 깨 밖으로 나온 모양이다.
“그래, 일찍 일어났구나. 잘 잤니?”
“응! 오빠도 잘 잤어?”
“그래.”
“아침 일찍부터 수련을 했나 보네.”
“매일하는 일인데. 뭘.”
다행이 다른 것은 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왜 저러지?’
가까이 다가오던 미영이가 인상을 쓴다. 조금 전까지는 웃는 얼굴이었는데 갑자기 인상을 쓰니 오싹한 느낌이 든다.
“오빠.”
“왜?”
“얼른 들어가서 씻어라. 냄새 난다.”
“냄새? 이런!”
몸에서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역하기 그지없는 냄새다.
“뭐하고 있어. 오빠. 얼른 들어가서 씻어.”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한마디 한다. 다른 때 같았으면 불퉁한 표정으로 구박을 할 텐데 오늘은 좀 다른 것 같다.
아마도 무예를 가르쳐 준다는 약속 때문인 것 같다.
“아, 알았다.”
‘세포가 터져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는데 아무래도 불순한 것들이 빠져나온 모양이구나. 의식하지 못했을 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인식하는 순간부터는 냄새가 장난이 아니다. 어른 들어가서 씻어야겠다.’
재빨리 집안으로 들어갔다.
부엌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어머니가 아침식사 준비를 하는 것 같다.
냄새가 집안으로 퍼지는 것이 싫어서 응접실을 가로질러 재빨리 욕실로 들어갔다. 옷을 벗고 샤워를 했다.
쏴아아아아!
“후후, 미영이 녀석이 많이 참았나 보구나.”
몸을 따라 흘러내리는 물이 누리끼리한 빛을 띠며 하수구 속으로 들어간다.
이정도면 상당히 냄새가 많이 났을 텐데 동생이 애써 참은 모양이다.
그나저나 상당한 양이다. 샤워기로 10여분을 씻었는데도 계속해서 물색깔이 변하지를 않는다.
결국 30분이나 샤워를 해야 했다. 몸을 따라 흐르는 물이 깨끗하게 변할 때까지 말이다.
샤워를 마치고 벗어놓은 옷들을 빨래 통에 집어넣으려다가 욕조에 물을 받고 그 안에 집어넣었다. 냄새가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저렇게 해놓으면 냄새가 나지는 않을 거다.’
욕실에 비치된 속옷을 꺼내서 갈아입고 문을 열었다.
입을 옷 때문에 어머니를 부르려 했는데 바닥에 트레이닝복이 놓여 있는 것이 보인다.
‘녀석!’
미영이가 가져다 놓은 것이 분명하다.
전에는 하지 않았던 짓이었는데 이러는 것을 보니 무척이나 무예를 배우고 싶은 모양이다.
빠르게 트레이닝복을 입고 부엌으로 갔다. 미영이가 수저를 놓고 있었다.
“샤워 끝냈니?”
“예, 어머니. 안녕히 주무셨어요.”
“그래. 오늘은 수련을 많이 했나 보구나.”
“예, 조금요.”
평소보다 오랜 시간 수련을 한 것 때문인지 어머니가 물어 오셨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오빠! 배고플 텐데, 어서 앉아.”
내가 곤란해 할 까봐 선수를 치는 미영이의 권유대로 식탁에 앉았다.
비록 목적이 있다고는 하지만 친절을 마다할 필요는 없다. 하나밖에 없는 내 동생이니까.
“미영아, 어서 밥 퍼라.”
“알았어. 엄마.”
미영이가 밥을 퍼서 내려놓고, 어머니는 찌개를 가지고 왔다.
“찬영아, 배고플 텐데 어서 먹어라. 미영이 너도.”
“예. 맛있겠네요.”
“잘 먹겠습니다.”
수저를 들고 찌개를 떠서 입에 넣었다.
“음, 정말 맛있네요.”
“호호호, 그러니. 많이 먹어라.”
맛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다.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시기는 집안 살림도 소홀히 하지 않으시는 어머니다. 무엇보다 워낙 요리솜씨가 좋다.
맛있는 찌개와 정갈한 반찬 덕분에 맛있는 아침식사를 마칠 수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욕실로 갔다. 욕조에 넣어 두었던 옷들을 세탁기에 넣고 돌린 후 양치를 했다.
욕실을 나와 방안으로 들어가 서둘러 학교에 갈 준비를 마치고 나오자 어느새 미영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오빠, 가자.”
“그래.”
미영이와 함께 집을 나섰다.
‘뭐가 그리 궁금한 거지?’
학교까지 가능 동안 미영이가 힐끔 힐끔 쳐다본다.
‘혹시, 오늘 아침 일 때문인가?’
오늘 일에 대해서 궁금한 표정이 역력하다. 하기야 평상시 하던 수련과는 상당히 달랐으니 궁금할 만도 할 것이다.
“아까는 고마웠다. 난 냄새가 나는지도 몰랐는데.”
“히히, 오빠가 곤란해 할 것 같아서…….”
“하하하, 녀석!”
오늘은 다른 날과 수련하는 모습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애써 나에게 묻지 않으려는 미영이의 마음 씀씀이가 대견했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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