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장. 이름을 잃어버린 신전-01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졸졸졸!
물이 흐르는 소리와 함께 희미한 빛이 보였다.
암흑을 뚫고 찾아 간 곳은 세인블러의 하수를 처리하는 하수 터널이었다.
“시아니온, 이 하수터널 위가 바로 이 위는 중앙광장이다. 그리고 이 밑에는 우리가 가야할 곳이 있다. 오직 나만이 갈 수 있는 곳이지.”
바로 위 지상이 세인블러에서 제일 붐비는 장소 중 하나인 중앙광장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 하다.
“처음 세인블러가 수도로 정해지고, 도시조성을 위한 공사가 시작 됐을 때 모든 곳이 철저히 조사되었단다. 적의 침입이나 반란을 우려하여 수도 곳곳은 고위급마법사들에 의해 지상은 물론 지하까지 철저히 검색이 이루어졌지. 하지만 장소가 발견되었다는 보고는 없었단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곳이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곳이기 때문이란다. 특별한 결계가 쳐져 있어 마법으로는 절대 찾을 수 없는 곳이라고 할 수 있지. 자 이제는 시간이 되었구나. 들어가자.”
딱!!
지하공간에 대해 설명을 끝낸 시아니온의 아버지는 손가락을 튕겼다.
팟!
은밀한 마나가 몸을 감싸고 난 후 환한 불빛과 함께 어디론가 공간이동이 되는 것이 느껴졌다.
‘으음.’
공간이동이 끝나고 난 뒤 거짓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수터널 밑에는 그 누구도 존재여부를 아무도 알지 못하고, 시아니온의 아버지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면 절대 들어갈 수 없는 비밀의 공간이 존재 했다.
‘여기는 지하가 아닌 것 같구나.’
마법사들의 탐지에도 완벽하게 벗어난 알 수 없는 공간은 뭐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특이 했다.
대개 지하란 공간은 언제나 음습함과 어두움이 공존하는 곳이다. 본능적인 공포와 함께 뭔가 비밀을 간직한 것 같은 느낌을 주기에 사람들은 땅속이라는 것만으로도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곤 한다.
하지만 이곳은 그런 느낌이 나지 않았다.
느낌이나 분위기가 전혀 달랐다. 불빛하나 없는 어두운 곳이었지만 따사로운 기운이 지하 공간 가득 넘실거리고 있었다.
“천년을 기다려온 종이 위대한 베르카의 후예를 데리고 왔나니. 죽음에서 일어나는 자를 맞이하라!”
어둠 속에서 비밀의 공간을 둘러보던 우리가 왔음을 밝혔다.
우우우웅!
목소리에 마나를 부르는 기운이 실은 탓인지 메아리가 퍼지듯 지하공간을 따라 흘러 퍼졌다.
파파팟!
잠시 후, 사방에서 흰색의 빛이 넘실거리며 지하 공간을 밝히기 시작했다.
빛을 뿌려 어둠을 몰아내고 나타난 것은 열두 개의 거대한 석주였다. 거대한 석주들이 원을 그리며 지하 공간을 빙 둘러 서있었다.
‘기둥들이 스스로 빛을 발하다니, 정말 굉장하구나.’
빛을 발하는 각 석주마다 무엇인가 빼곡히 양각되어있었다.
기이한 도형들과 문자가 새겨져 있는 석주들이 빛을 발하는 모습은 신비롭기 그지없었다.
빛이 나는 석주로 인해 어둠이 물러나자 시아니온의 아버지는 축 늘어진 내 몸을 기구에서 내려 양팔로 안았다.
그리고는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겨 지하공간의 정 중앙으로 향한 후 떨리는 눈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
“워낙 오래 전 폐쇄 되었던 곳이라 염려 했었는데 발동을 해서 정말 다행이구나.”
수십 겹의 중첩마법과 알지 못하는 무수한 문자들로 기록된 석주를 바라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베르카가문의 후계자에게만 전해져 내려오는 방법대로 신전의 문을 열기는 했지만 발동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다.
원을 그리며 서있는 석주들은 베르카의 열두 가지라 불리는 일족을 상징했다.
브리턴제국에 의해 멸망하기 전까지 수천 년에 이르는 베르카의 역사가 그곳에 기록되어 있었다.
멸족한 베르카의 정통을 이은 사람이 시아니온의 아버지다.
그리고 베르카의 근원이 바로 석주들이다.
조상들의 숨결이 배어 있는 것을 일기에 시아니온의 아버지는 빠짐없이 석주들을 살폈다.
“마트마고님의 마지막 염원이 이곳에 남아 있다고 하더니. 역시 예상한 대로구나. 이곳은 분명 위대한 베르카의 부활을 위해 준비된 곳이 틀림없는 것 같다.”
한동안 석주를 살피던 시아니온의 아버지는 한 곳을 주시했다.
“시아니온, 찾은 것 같구나.”
오랫동안 염원하던 것이며, 나를 살릴 단서를 찾은 것 같다.
베르카의 고대문자를 알기에 나도 알 수 있었다. 시아니온의 아버지가 보고 있는 것은 부활을 위한 죽음의 의식에 관한 내용이었다.
“시아니온, 저것이 산자를 죽음에서 건져 낼 수 있는 술법이자 브리턴제국에 의해 멸망하기 직전에 베르카의 열두 가지들이 남긴 최후의 힘이기도 하단다.”
화색을 띤 시아니온의 아버지가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아들고 있던 나를 석주로 둘러싸인 원형의 광장 가운데 놓았다.
중앙에 나를 눕힌 아버지는 단서가 발견된 석주에 다가가 하단부를 천천히 만졌다.
아버지의 손에서 흘러나온 마나가 하얗게 빛나는 석주로 스며들었다.
그렇게 석주를 만질 때마다 푸른색의 마나가 빛을 뿌리며 번져 나왔다.
스팟!
마나가 지나가자 아무 것도 없었던 석주의 하단부에 뭔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다른 석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열두 개의 석주 하단부에는 무엇인가 새겨지고 있었고, 그것은 누구도 알 수 없는 특이한 문자였다.
“이것이 뭘 뜻하는지는 나도 모르겠구나.”
석주위에 나타난 것은 오랜 세월 이전에 찬란한 문명을 꽃피웠던 베르카일족의 문자가 아니었다.
제국에서 사용되고 있는 공용어는 물론, 마법의 문자라는 룬어도 아닌 기이한 도형의 문자가 석주 하단부에 빠르게 새겨지고 있었다.
보면 볼수록 경이로운 현상이었다.
“으음, 이런 문자는 난생 처음 보는 것이다. 그 어디에도 없는 문자가 틀림없다. 이것들이 무슨 글자인지는 모르지만 분명 부활의 의식과 관련이 있을 것 같구나.”
가문에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방법대로 마나를 불어 넣은 후에 나타난 현상이었기에 아버지는 더 이상 의문을 갖지 않기로 한 모양이다.
내 상세가 급한 이상, 자세히 살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그저 전해 내려오는 기록을 믿는 수밖에는 말이다.
“수많은 죽음위에 만든 안배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아버지는 다른 석주를 찾아다니며 하단부에 자신의 마나를 주입해 나갔다.
“으음, 끝도 없이 잡아먹는구나.”
열두 개의 석주에 마나를 불어 넣고 있는 아버지의 얼굴이 점차 창백해져갔다. 석주에 주입해야 할 마나의 양이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 분명했다.
마지막 열두 번째 석주에 마나를 주입한 아버지는 더할 나위 없이 창백한 안색으로 손을 뗐다.
그랜드마스터를 상회하는 마나를 가지고 있음에도 많이 힘드신 것 같았다.
“후우, 이제는 끝이다. 이제는 예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일 밖에는 할 것이 없다.”
이제부터는 자신이 해야 할이 없음을 아시는지 아버지는 나를 놔두고는 석주가 그리는 원의 바깥쪽으로 나갔다.
“시아니온, 베르카의 열두 가지가 남겨 놓은 최후의 안배가 발동한 이상 석주 안쪽에 있을 수 있는 사람은 죽음의 강을 넘어선 자뿐이다. 잘 견뎌 내거라.”
우우웅!
아버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석주들이 진동하기 시작했다.
각 석주들의 하단부로부터 푸른빛이 뿜어져 나왔다. 빛의 근원은 하단부에 새겨진 기이한 문자들이었다.
“오오! 드디어!”
아버지는 놀람을 감추지 않았다.
실제로 사자의 꿈이 작동할 줄은 확신하지 못했었기 때문인 것 같다.
번쩍!!
하단에서 발현된 마나들이 석주들을 타고 빠르게 치솟아 올랐다.
번개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과는 달리 마나의 푸른빛은 지상에서 솟아 하늘로 뻗어 올라갔다.
마나가 움직이는 모습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회오리치듯 휘돌며 석주를 타고 오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촘촘히 선을 이루며 석주를 타고 오르는 것 등 하나하나 움직이는 모습이 모두 달랐다.
그그긍!
아버지가 주입한 마나들이 각 석주의 끝에 다다르자 지하공간의 천정이 육중한 굉음을 내며 천천히 내려앉기 시작했다.
천정의 공간이 하나로 된 것이 아닌 것 같다. 석주에서부터 중심을 까지 내려오는 속도는 천차만별이었다.
어떤 곳은 내려오다 멈추고, 또 어떤 곳은 계속 내려오며 기괴한 부조를 형성하고 있었다.
부조가 형성되어 갈수록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아버지의 신형이 누가 보더라도 눈에 띠게 흔들리고 있었다.
“오오!! 마트마고를 수호하는 수호신인 헤라크티라니!!”
부조가 이루어 가는 형상은 헤리크티라 불리는 한 마리의 거대한 새였다. 오직 베르카의 열두 가지들만이 알고 있는 신조의 모습이다.
헤라크티의 부조는 검은 색 윤기를 발하고 있었는데 날개를 활짝 편 모습이었다.
‘신조라서 그런가?’
웅장한 기운과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신비로운 기운이 헤라크티에게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헤라크티의 날카로운 부리가 내가 누워 있는 중앙을 향하고 있었다.
그렇게 부조를 이루어가며 내려오던 천정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헤라크티의 부리가 내 이마에 닿을 무렵 멈추어 섰다.
우우웅!
진동음이 다시 한 번 지하공간을 울렸다. 지하공간을 훑는 아버지의 눈빛이 더할 나위 없이 반짝였다.
“드디어 이제 운명의 시간이 시작 됐구나.”
석주를 타고 오른 마나들이 쏟아져 나오는 흰 빛과 함께 부조를 이룬 새의 날개를 물들이고 있었다. 석주를 타고 오른 희고 푸른빛은 날개 끝을 타고 물들이며 서서히 중심 쪽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어느새 검은색으로 번들거리는 부조 된 헤라크티의 머리 쪽도 물들였다.
희고 푸른빛들이 머리로 향한 후 놀라운 광경이 벌어졌다. 부리 쪽에 뭔가 알 수 없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석주를 타고 오른 열두 개의 희고 푸른 기운이 부리를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의식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헤라크티의 부리에 희면서도 투명한 말로 형용하기 힘든 원형의 구체가 생겨났다.
부우웅!!
‘이런 느낌이라니…….’
부리 쪽에 만들어진 반투명한 구체에서 느껴지는 것은 깊이를 알 수 없는 혼돈과 강렬함이었다.
“아!!”
아버지의 입에서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당신이 흘려 넣은 마나로 생성된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기운을 느낀 탓이었다.
‘으음! 저것인가? 베르카를 따르는 열두 가지들의 죽음과 바꿔진 최후의 힘이…….’
종류를 알 수 없는 힘이다.
마법사가 다루는 매직마나도, 검사들이 사용하는 소드마나도 아니다. 세상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근원의 마나도, 마계의 음습함을 간직한 마기도, 천계의 힘이라는 천력도 아니다.
다만 그랜드마스터인 아버지의 힘이 초라해 보일 정도로 강렬하다는 것은 확실하다.
근원은커녕 어떤 종류인지조차 알 수 없는 힘이 느껴졌기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처음 이곳에서 느꼈던 마트마고의 힘과는 관련이 없는 것 같은 이질적인 느낌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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