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장. 빈집을 털다.-04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이렇게 많은 피라미드라면 엄청난 신족집단이 이곳의 주인일 가능성이 크다. 신화로 남겨진 이들일지, 아니면 감춰진 이들일지 궁금하다.
‘음, 거의 다 푼 것 같구나.’
격을 가진 존재의 향기가 점점 옅어지고 있다. 한이 방어기제를 잘 풀어나가고 있는 신호다.
‘해제하지 못한다고 해도 상관은 없지만 한의 격을 올릴 수 있는 기회는 자주 오지 않으니 좀 더 지켜보자.’
중심부로 파고들수록 해제하는 시간이 점점 느려졌지만 한이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한도 새롭게 거듭나기 위해서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하는데 이번만큼 좋은 기회는 없었다. 실패하더라도 큰 도움이 될 터였다.
한이 잘 해줄 것이라고 믿지만 설사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문제는 없다. 경계를 뚫을 수 있는 천곤이 있기 때문이다. 방어기제를 풀지 못하면 천곤으로 뚫어 버리면 그만인 것이다.
빔둥지에서 얻는 것이 줄어들기는 하겠지만 최후의 방법이 있었기에 한의 움직임을 지켜볼 수 있다.
-마스터, 다행이 방어기제를 전부 해제했습니다.
“힘들었나 보군.”
-아닙니다. 처음 경험해보는 것들 때문에 조금 늦었습니다. 제가 미숙한 탓입니다.
“그래도 잘 해줬어. 이제부터는 내게 맡기도록 하고.”
-예, 마스터.
“어디로 들어가야 하지?”
-제가 해제한 부분까지 정보를 전달하겠습니다.
“그래.”
미로형 통로에 장치된 방어기제에 대한 정보들이 밀려든다. 물리적인 장치와 에너지를 이용한 것 같지, 어마어마한 수의 방어기제에 관한 정보를 보며 한이 많이 성장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처음에 설치된 방어기제를 해결하면서 경험을 쌓은 후 그것을 응용해 다음 단계를 순차적으로 해제해 나갔다. 응용도나 해결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을 생각한 것을 보면 학습 능력도 많이 향상이 된 것 같다.
방어기제에 대한 정보는 상당했지만 인식하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이 경험한 것은 내가 직접 경험한 것과 마찬가지라서 였다.
“이제 들어간다.”
-중심부에 있는 에고시스템이 만만치 않은 것 같으니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한의 염려를 뒤로 하고 피라미드로 갔다.
첫 번째 방어기제는 외곽에 드리워진 에너지 배리어다.
얼마 전까지 존재했었던 에너지 배리어는 사실 일반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것이었다. 무시로 드나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는다.
배리어를 위협으로 느끼는 존재는 능력자뿐이다.
능력을 지닌 존재가 가까이 올 경우 배리어가 작동을 하게 된다. 배리어는 능력자의 파장과 같은 진동을 흘리게 되고 공명을 일으켜 타격을 준다.
공명이 일어나 발생한 반동으로 타격을 주게 되는데 내가 양위와 장준에게 반탄력을 사용했던 것과 비슷한 방식이다.
‘첫 번째부터 장난이 아닌 것과 마주쳤었군.’
비록 해제되기는 했지만 남아 있는 기운의 흔적으로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기에 한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저기로군.’
피라미드의 네 군데 모서리 중 오른 쪽 부분에 있는 맨 하단 끝부분의 집채만 한 황금 괴가 사라지고 없었다.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안으로 들어가자 한이 노력한 흔적을 엿볼 수 있었다. 곳곳에 설치된 방어시설들이 해제되어 있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사용할 것이라서 완전히 해제한 것이 아니라 통제권만 빼앗았다고 했었지. 완전히 해제하면 자칫 에고시스템이 망가지니 힘들었겠군. 차라리 소멸시키면 쉬웠을 텐데 말이야.’
한은 내가 언급한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내가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도 말이다.
방어기제들이 이미 한의 통제 아래에 있었기에 별다른 위험 없이 에고 시스템에 가까이 다가갈 수 있었다.
중심부까지 가능 동안 어떤 식의 방어기제였는지 일일이 확인을 하고 갔는데도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야구에서 테이블 세터가 4번 타자를 위해 밥상을 차리 듯 한은 에고시스템 바로 앞까지 길을 뚫었다. 아주 적당한 선에서 방어기제를 해제한 것이다.
“으음.”
거대한 황금의 문이 눈앞에 있다.
기하학적 문양이 온통 뒤덮고 있는 거대한 황금문을 보면서 어떤 격을 가지고 있는 이가 이곳의 주인인지 궁금해졌다.
-한, 수집된 정보와 비교해 봤어?
-지구에 잔존하는 신화와 역사를 전부 검색해 봤지만 이곳의 주인과 관련한 단서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저 문에 있는 문양에는 네가 말한 대로 내가 가지고 있던 신기들과 같은 파장의 에너지가 흐르는데 관련이 있는 것이 없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신기가 발견된 인도신화 신들에 대해 남겨진 것들을 전부 비교해 봤지만 저런 문양에 대해서는 전혀 기록이 없습니다.
-이상한 노릇이군. 신기는 분명 인도신화에서 나오는 신들이 사용하던 것을 본따 만든 것인데 말이야.
-저로서도 의문입니다. 자세한 사정은 저 안에 있는 에고시스템을 확보해야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생각에도 그럴 것 같아. 아무래도 심상치가 않아. 지금 들어갈 테니 백업 좀 맡아줘.
-예, 마스터
문에 새겨진 문양을 따라 흐르는 에너지의 종류는 한가지다. 그렇지만 흐르는 방식은 내가 얻은 신기의 수와 같다.
내가 얻은 신기의 수는 정확히 109개, 어머니가 연 곳에서 81개, 비밀의 방에서 찾아낸 28개다.
문에 흐르고 있는 에너지는 정확히 109개 다른 경로를 따라 흐르고 있는 중이다.
그중 하나만이 저 문을 여는 열쇠다.
‘느낌으로 찾아야 한다.’
나중에 찾아낸 28개는 제외다. 근간을 이루는 줄기이기 때문이다. 열쇠는 어머니가 찾아낸 것 중에 있다.
그중에서 일단 8개도 제외다. 팔방을 엮어 28개와 연결이 되는 네트워크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아 있는 것은 일흔셋 인가? 칠십이지살을 응용해 볼까?’
흐르는 에너지를 지살의 기운에 맞추어 하나하나 비교했다. 얼핏 보면 비슷한 것이 많아 구별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결국 하나만 남기고 모든 것을 비교할 수 있었다.
‘재미있군. 이곳에 헤라크티의 에너지와 비슷한 에너지라니 말이야.’
너무 희미해 자칫 놓치는 줄 알았다. 자신의 성향을 계속해서 바꾸는 에너지라니 말이다.
108개의 신기는 각자 주인의 에너지로 차 있다. 나머지 하나는 바로 헤라크티의 에너지다. 하나의 형태로 고정된 에너지가 아니라 108가지의 형태로 찰나지간에 변하는 에너지다. 그래서 알 수 없었다. 구분하기 쉽지 않았던 것도 그 때문이다.
-준비해, 시작한다.
인과율에 영향을 미칠까봐 봉인해 두었던 헤라크티의 에너지를 끄집어내 문에 흘려 넣었다.
-마스터, 에너지의 흐름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각자 다른 성질로 각각의 경로를 흐르던 에너지들이 같은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43%, 50%, 75%, 급격히 변화하고 있습니다. 아! 이제는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전혀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흐름입니다.
-알고 있어. 너무 걱정하지 마.
불안함을 보이는 한을 안정시키고 문에 흐르는 에너지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꼈다.
‘열려라!’
그르르르릉!
의지를 보내자 황금의 문이 좌우로 갈라지며 속살을 내보이기 시작했다.
보이는 풍경은 온통 검은 암흑이다.
화르르르르!
‘어째서 타오르는 것처럼 느껴질까?’
암흑이 타오르고 있었다. 느낌만이 아니다. 불꽃처럼 일렁이는 것이 시야에 잡힌다.
-들어간다.
-예, 마스터!
한을 일깨운 후 안으로 들어갔다.
그르르릉!
쿵!!
둔탁한 울림과 문이 닫혔다.
암흑이다. 빛이 없어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보이는 것이 온통 암흑이다. 문 안쪽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미지의 존재의 형태가 암흑인 것이다.
-변화된 것과 같은 종류의 에너지입니다.
-헤라크티다.
-헤라크티요?
-베르카의 신이자 알 수 없는 격을 가졌던 존재지.
-마스터께서 넘나드시던 경계 밖의 세계를 관장하는 존재라는 겁니까?
-옛날에는 그랬지만 지금은 아니다. 그쪽 세계에서 쫓겨난 잔재인 뿐이지.
-그럼 소멸했다는 말씀입니까?
-이곳에 주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면 그럴 수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그곳에서 쫓겨나 이곳으로 왔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신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서 의문이야. 그냥 잔재일 뿐이니까.
-인과율이 존재하고 있는데 이곳으로 넘어 오지는 못했을 겁니다. 그리고 신성이 남아 있지 않다고 해도 잔재가 이곳에 존재한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정말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소멸했다면 잔재가 있을 수 없다. 일체의 모든 것이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직 존재한다는 말인데 이곳은 인과율 때문에 올 수가 없는 상황이다. 브리턴 대륙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한마디로 헤라크티는 붕 뜬 상태인 것이다.
-일단 잔재를 흡수한다.
-에고가 본격적으로 작동할 겁니다.
-걱정하지 마. 이 정도는 감당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 지금부터 백업을 하겠습니다.
-좋아.
한에게 뒤를 맡기고 공간을 가득 채우고 있는 미지의 것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호흡을 타고 쭉쭉 빨려 들어오는 것을 보니 상성이 나쁘지 않다.
-공간 계측을 해봐.
1시간 정도 흐른 것 같아 한에게 물었다.
-전체의 0.1%도 흡수하지 못했습니다.
-으음, 어마어마한 공간이군. 잔재의 크기도 엄청나고.
1시간 흡수한 양이 할아버지가 나를 위해 가져다 준 포단석에 담긴 기운을 능가했다. 얼마나 많은 시간동안 흡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지금 추정해 본 바로는 100% 흡수하기까지 2,398시간 40분정도가 걸릴 것 같습니다.
-거의 100일이로군. 그 정도는 시간이 없는데…….
호흡으로만 흡수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길게 걸렸다.
-이제부터 차크라를 전면 개방할 테니 파장이 번지는 것을 막아줘. 한.
-예, 마스터.
일곱 개의 차크라를 개방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엄청난 속도로 잔재가 빨려 들어왔다.
한참이 지나자 검은 기운이 점점 옅어지며 공간이 보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황금빛이 번지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암흑처럼 검은 잔재가 모두 사라졌다.
-얼마나 걸렸지?
-정확히 12시간 걸렸습니다.
-꽤 걸렸군.
-그 보다 먼저 에고를 상대하셔야 될 것 같습니다.
-깨어난 건가?
-예, 마스터.
이곳을 지키는 에고가 깨어난 모양이다. 상대하기 까다로운 놈이지만 이제는 순수하게 나 혼자만의 힘으로 에고를 제압해야 한다.
-나를 깨우다니! 그 대가를 받으리라!!
엄청난 의지가 내 의식을 강타했다. 마치 바로 옆에서 굉음이 들리는 느낌이다.
‘의식이 흔들릴 정도의 의지라니…….’
예상은 만만치 않은 존재다. 제 힘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는데도 이정도의 충격이라니 말이다.
‘설마! 창조주에 가까운 격을 지닌 존재였던 건가?’
에고의 주인으로 보이는 헤라크티의 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정말 궁금해진다.
‘에고시스템과 한번 싸워 보면 알겠지. 어떤 격을 지닌 존재였는지 말이야.’
한 판 붙어야 할 때다. 이곳에서 무엇을 얻을 지는 저놈을 제압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으니 말이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Comment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