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장. 파랑(波浪)!-03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그것이…….”
잉그만의 말에 리모틴은 대답을 머뭇거렸다.
“왜 그러는 가?”
평소의 모습과는 다른 리모틴의 행동에 잉그만이 물었다.
“그것이 아직은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워낙 비밀리에 움직이는 터라…….”
브리턴제국의 정규군 중 가장 막강한 힘을 보유하고 있다고 알려진 것이 1군단이다.
특수군이나 워메이지 같이 비밀에 가려진 힘 또한 최고라 여겨지는 1군단이기에 촉각이 곤두설 수밖에 없었다.
리모틴은 암살계획이 실패했다는 것을 파악한 직후 제일 먼저 1군단의 움직임을 파악하려 노력했었다.
1군단의 움직임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만이 향후 어떤 식으로 대응할지 결정되기에 리모틴은 자신이 가진 정보망을 최대한 동원 했었다.
그런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1군단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1군단의 움직임에 대해 정보를 얻지 못한 이상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기가 상당히 곤란 했던 것이다.
“각하, 최대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만 현재까지는 정확한 인원은 물론 누가 움직였는지 조차 전혀 파악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상당수의 인원이 베르카후작령으로 속속 들어서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으음, 정말 곤란하게 됐군.”
잉그만의 인상이 구겨졌다. 언제나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던 1군이었다.
자신들의 시야를 피해 1군이 움직였다는 사실이 꽤나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공작각하. 설사 1군의 워메이지들이 전부 나섰다고 해도 곤란할 것 까지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아이에게 쓰여 진 것은 대마법사라 해도 정확한 성분을 밝혀낼 수 없는 것이니 말입니다.”
인상이 찌푸려진 잉그만의 심려를 아는 듯 리모틴은 자신들이 배후에서 저지른 사건에서 물적 증거를 찾을 수 없음을 주지시켰다.
“그래서 내가 더 걱정이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증거를 찾을 수 없는 완벽한 독을 썼음에도 그것이 문제가 된다는 유리메스공작의 말이 리모틴으로서는 의외였다.
리모틴의 질문에 잉그만공작은 심각한 표정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그 아이에게 사용한 것은 그야말로 해독은 전혀 불가능한 것이었네. 자네도 알지 않는가? 그게 어떤 것이라는 것을 말이야.”
“…….”
말하려고 하는 뜻이 무엇인지 짐작하지 못한 리모틴은 계속해서 잉그만의 말을 경청했다.
“마지막 반응으로 봐서는 그 아이는 분명 죽었어야 정상이었네. 그런데 자네의 말대로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이상한 일이 아닌가?”
“그러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모르겠나? 검의 주인이라는 소드마스터도 그걸 복용하면 십 분도 지나지 않아 숨이 끊어지네. 그런데 그 아이가 아직까지 살아 있다는 말일세. 그리고 1군단이 자체적으로 움직였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잉그만공작은 리모틴의 생각을 일깨웠다. 무엇인가 모순되는 것을 알아차리기를 바랐던 것이다.
잉그만의 지적에 리모틴은 모순을 깨달았다.
일이 잘못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사후처리 문제를 생각하느라 자신이 미처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었다.
잉그만공작의 지시에 의해 사용된 약물은 사탄의 눈물이라 불리는 신형 독약이다.
다른 차원에서 건너 온 물질을 30여 년이 넘도록 연구해 만든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에서 가장 강력한 독이다.
인체에 들어가는 순간 복용한 자의 혈액을 끓어오르게 만든다. 그와 동시에 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가 인체를 움직이는 명령체계를 순식간에 정지시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치명성은 대신관이라도 막지 못한다.
사탄의 눈물이 든 과자를 베르카후작령의 후계자가 먹었다는 것은 이미 확인되었다.
독이 든 과자가 방안에 없었던 것으로 봐서는 베르카의 차기 후계자인 시아니온이 먹은 것은 틀림없다. 그럼에도 시아니온이라는 지금까지 아이는 살아있다.
사탄의 눈물이 인체에 들어갔음에도 살아있다는 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리모틴이 누구보다도 잘 알기에 의문만이 샘솟았다.
“각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지 않는 한 그것은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그 아이가 살아 있다면, 그레고리후작이 미리 알았을 공산 큽니다.”
잉그만의 말에 리모틴은 그레고리가 미리 알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암살계획을 미리알고 모종의 방법으로 사탄의 눈물이 시아니온의 몸속에서 퍼지는 것을 막았다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봐야겠지. 1군단이 움직인 것도 그렇고, 아무래도 함정이 빠진 것이 틀림없는 것 같네. 자네는 이번 일에 관련 된 자들의 꼬리를 자르는 것이 좋겠네. 이대로 놔둔다면 그레고리가 그 아이에게 독을 쓴 것이 누구라는 것을 밝혀 낼 수 있을 테니까 말이네.”
암살계획이 어쩌면 그레고리가 파놓은 함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인지 잉그만의 표정은 단호했다.
작은 것을 잃기 싫어하다 더욱 큰 것을 잃을 수 있다. 심혈을 기울여 양성한 조직이지만 일부를 잘라내야 했다.
“각하, 그렇지만 너무 아깝습니다. 그들을 길러내는데 지금까지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어갔습니다. 그들을 이토록 허무하게 없앤다는 건, 조금 더 상황을 지켜 본 뒤에 재고해 보심이 어떻겠습니까?”
리모틴은 꼬리를 자르라는 공작의 말에 안타까운 표정으로 만류했다. 아직 상황이 급박한 것이 아니었기에 지켜보기를 권유한 것이다.
“아깝기는 하지만 최대한 빨리 잘라야 할 것이네. 자네 말대로 1군단이 움직였다면 그레고리가 직접 움직일 수도 있는 일이네. 그는 결코 허투로 일일 처리할 사람이 아니지. 자네도 알지 않나? 그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이라는 것을 말이야. 그러니 최대한 빨리 꼬리를 자르는 것이 중요하네. 우리가 배후라는 것을 알아내기 전에 말이야.”
잉그만이 무슨 뜻으로 꼬리를 자르라고 하는 것인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리모틴백작의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레고리는 1군단이라는 브리턴제국의 군사력의 큰 축을 오랫동안 이끌어 오고 있는 사람이다.
그에 합당한 능력이 없는 한 그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잉그만공작의 말대로 그레고리는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기에 리머틴백작은 서둘러 증거를 인멸하는 편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각하, 즉시 본가와 관련된 꼬리를 모두 자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전.”
빠른 시간 내에 증거를 없애야 하기에 리모틴은 황급히 공작의 집무실을 나섰다.
“그레고리가 알았으니 정말 골치 아프게 됐군.”
리모틴백작이 자신의 집무실을 나서는 것을 보며 잉그만는 고심에 빠져들었다.
이번 일이 그레고리가 역으로 파 놓은 함정임을 예상하고 명령을 내리기는 했지만 미심쩍었다. 정황상 자신이 잘못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 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렇지만 미리 알았다고하기에는 이상한 점이 너무 많다. 일부러 숨기고 범인을 추적한다는 것도 너무 이상해……․.”
잉그만은 자신의 비선으로부터 들어 온 보고를 토대로 고심을 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베르카후작령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미리 알고 대비를 했다면 범인을 잡기 위해 이미 움직임이 있어야 하건만 그런 움직임은 아예 없었다.
“고위 신관들이 영주 관저에 비밀리에 출입하는 것으로 봐서는 그 아이가 독을 복용한 것이 확실한데…….”
보고에 의하면 비밀리에 풍요의 신이라는 가롬의 고위신관들이 영주 관저를 출입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치유력이 특출 난 가롬의 신관들이 출입하고 있다면 분명 누군가가 다쳤다는 소리가 분명했다.
하지만 베르카후작령의 후계자에게 쓰여 진 사탄의 눈물은 신관이 치료할 수 있는 독이 아니었다.
복용하는 순간 곧바로 죽음으로 이어지는 독이었다. 어린아이라면 숨 한번 쉴 시간에 이미 숨이 끊어졌어야 정상이었다.
“역시, 배후를 밝혀내려고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인가? 으음, 시아니온이란 아이의 상태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이건만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군. 혹시, 죽지는 않고 독상만 입은 것은 아닌가? 아니야, 그럴 리가 없지. 사탄의 눈물이 어떤 것인데. 정말 알 수가 없군.”
시아니온의 거처에는 삼엄한 경계가 펼쳐져 있었다.
누구의 출입도 불허 된 탓에 상태를 알아보려고 해야 알 수가 없었다.
시아니온의 신상에 대한 정보가 들어와야 사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었기에 잉그만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독상을 당했다면 분명히 죽었을 것이다.
그리고 미리 대비를 했다면 비밀스러운 움직임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였다.
이렇듯 빈약한 정보로는 정확한 것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어찌 되었건 일단은 꼬리부터 잘라내야 한다. 그 외에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다. 그렇다면 조금 위험하기는 하지만 나타샤를 통해 알아보는 것이 좋겠군. 나타샤라면 어떻게든지 시아니온이라는 아이의 거처에 들어갈 수 있을 테니까.”
잉그만은 자신의 딸을 이용해 정확한 정보를 알아보기로 했다. 자신의 딸이라면 베르카후작령의 어느 곳이든지 갈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베르카후작령의 안주인이자 시아니온의 새어머니가 바로 잉그만 공작의 둘째 딸인 나탸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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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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