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장.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02
경계를 넘는 자들! 타키온
아버지가 그런 위협을 시달리고 있었다니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다.
“믿을 수 없는 이야기네요.”
헤라크티의 힘이 활성화 된 후 느껴지는 아버지의 힘은 상상을 불허할 정도로 강하다. 두려울 만큼 강한 힘을 지닌 아버지가 죽음을 생각해야 할 만큼 강력한 적이라는 것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시아니온, 놈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니다.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운 놈들이지.”
“으음.”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라면 본가의 선조들은 이미 오래 전에 베르카의 부활을 이루어 냈을 것이다. 이제는 상대할 만 하다고 생각이 들면 놈들은 또 다른 모습을 보이곤 했다. 마치 우리들의 의도를 알고 있다는 듯이 말이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있지만 우리는 놈들을 상대할 힘을 키우기만 해야 했다.”
“꽤나 힘든 상대로군요.”
적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힘을 키울 때마다 목줄을 죈다는 것은 자신이 있다는 뜻이다. 상상하기 힘든 강적들이기에 시아니온은 베르카의 부활을 쉽지 만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힘들지. 하지만 넌 가능성이 있다. 나와 장인어른께서 너에게 기회를 줄 테니까. 그리고 신탁이 전하는 것을 모두 얻게 된다면 충분히 놈들을 상대할 수 있는 전력을 얻을 테니 미리 겁을 먹을 필요는 없다.”
“후후후, 겁먹은 적은 없습니다. 이미 몇 번을 죽다가 살아난 몸이니까요. 다만 제가 걱정되는 것은 아버집니다. 아버지마저 놈들에게 당한다면 아마 전 미쳐버릴지도 모릅니다.”
자신을 걱정하는 말에 아버지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걱정하지 말거라. 나도 만만한 사람이 아니니.”
“믿겠습니다.”
“내가 떠날 줄 알고 있었구나.”
“그냥 느껴지더군요.”
“시아니온, 한동안 너를 지켜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장인어른의 모든 것을 얻어라. 그리고 저 안에 안배되어 있는 것들도 모두 얻어야 한다. 그러면 너는 스스로를 지킬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는 아들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래, 나 또한 너를 믿으마. 건강해야 한다.”
아버지는 작별인사를 했다. 그리고는 몸을 돌려 사라졌다.
아버지는 이대로 카모르를 떠날 것이다. 당신만큼 강해진 나를 믿기에 더욱 성장하기를 바라며 마음 놓고 떠난 것이다.
“시아니온, 너무 걱정하지 마라. 지금까지 잘 버텨왔으니 네 애비는 잘 해낼 거다.”
어느새 다가 온 외할아버지가 머리를 쓰다듬으며 나를 위로했다.
‘근처에 계시다는 것을 알았지만 인식할 사이도 없이 가까이 오시다니.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구나.’
외할아버지가 어느 정도 강자인지 이제는 좀 느껴진다. 외할아버지도 이곳 카모르에서 연구만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럼 겁니다. 제 아버지니까요.”
“하하하하, 그래. 이제 들어가도록 하자. 너희들에게 알려 줄 것이 많구나. 잃어버린 베르카의 영광을 너희들이 이루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해야 할일이 많다.”
“알겠습니다.”
스스로 위험으로 뛰어든 아버지에 대한 걱정을 아시는 것인지 외할아버지는 멀어져가는 아버지의 기운을 쫓는 나를 창조의 문이 있는 곳으로 이끌었다.
* * *
팟!
휘-이익!
발끝으로 나뭇가지 끝을 박차며 허공을 가로지르던 그레고리는 카모르의 경계지역에 다가오자 신형을 멈췄다.
‘확인을 하자.’
그레고리는 신형을 돌려 세운 후 허공을 향해 떠올랐다.
순순한 자신의 기운 만으로 몸을 떠받쳐 허공으로 솟아오른 그는 검녹색으로 물들은 나무의 바다를 바라보았다.
‘역시, 세상의 기둥이 바로 서기 시작했구나.’
너무도 깊고 거대해 가까이 있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기운들이 느껴졌다.
‘베르카의 대지가 다시 서기 시작했다는 것은 저 기운만으로도 확실하다. 지금까지 저런 단계까지는 가지 못했었으니까. 이제는 세상을 유지하는 것만 남은 것인가?’
열두 개의 씨앗들이 기둥을 세우기 도 전에 브리턴인들에 의해 소멸해 버리던 지난날과는 달랐다.
베르카의 가지들이 수호하는 열두 개의 기둥이 제대로 섰다. 이제는 좀 더 두텁고 강하게 키워야 한다.
‘장인어른은 너에게도 말해 줄 수가 없었다. 내 입을 벗어나는 순간, 이 세계의 인과율을 간섭할 수 있는 놈들이라면 곧바로 알았을 테니까 말이다.’
브리턴의 숨겨진 전력은 인과율까지 간섭할 수 있는 존재다. 언령에 영향을 받는 위대한 존재들이 내뱉는 말은 인과율에 영향을 주기에 대놓고 알려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나에게 이르기까지 그 누구도 성공할 수 없었지만 너희들은 세상을 유지하는 기둥이 될 것이다.’
시아니온과 아이들이 카모르에 머무는 이유가 있다. 브리턴 대륙에서 유일하게 혼돈에 가까운 곳이 바로 카모르기 때문이다. 그만큼 인과율의 영향을 덜 받아 브리턴인에게 알려질 염려가 적은 것이다.
‘이곳으로 오기 전에 나를 따라 왔던 자가 있었던 것을 보면 우리가 힘을 키우는 것은 이미 알려졌을 것이다. 놈들은 그에 맞춰 전과는 다른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겠지. 하지만 지금 아이들이 세상을 유지하는 기둥을 세웠다는 것은 모를 것이다. 그 기둥은 이 세상에 세워지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차원을 넘나드는 존재라도 새로운 세상으로 가기위해서는 엄청난 준비가 필요하다.
이미 알려져 있는 세상이라고 해도 대변혁이 일어났다면 경계를 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베르카의 가지들이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시간이 걸린다.
브리턴의 역사가 흐르는 동안 그들에게 가장 위협적인 존재였던 종족이 베르카였다. 정복한 이후에도 베르카가 힘을 기르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던 이들이 브리턴이다.
만약 베르카의 세상이 이미 열렸다는 것이 알려졌다면 이곳이 카모르라고 해도 벌써 전쟁이 벌어졌을 것이다. 브리턴으로서는 베르카가 다른 세상에서 힘을 기르는 것을 절대 바라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준비는 완벽하다. 이제 세상이 어떤지 볼 차례다.’
카모르로 들어간 이후 세상을 살피지 못했다. 그레고리는 천천히 신형을 돌려 카모르 바깥을 주시 했다.
그의 기감이 뻗어나가며 일일이 모든 것을 확인했다.
‘카모르 경계 밖에서는 전쟁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구나. 베르카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렸다는 것을 브리턴이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이 확실하다.’
정말 고무적인 일이었다. 이제 얼마 있지 않아 새로운 세상은 자리를 잡을 것이다.
새로운 세계에도 경계를 넘는 자들이 있겠지만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 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베르카에게는 기회였다.
‘아무리 빛이 밝다고 해도 등잔 밑은 항상 어두운 법이다. 그 자들이 베르카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현상계에 대한 파악이 끝나자 마음이 홀가분했다. 브리턴이 자신이 계획한 일을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이미 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카모르와 브리턴의 경계가 점점 두터워지고 있었다.
‘이제 가자.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팟!
그레고리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검의 조종이라는 그랜드마스터라고 알려진 이가 그레고리다. 검을 사용하는 능력에 있어서만큼은 브리턴대륙의 5대 강자에 속하는 그다.
검 이외는 아무런 능력이 없다고 알려진 그가 텔레포트를 사용해 공간을 이동했다.
텔레포트는 6써클의 마법사 이상이 사용할 수 있는 마법이다. 같은 마법이지만 써클의 수에 따라 이동거리가 달라진다. 마법사의 써클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이동거리를 따지면 된다.
그러나 마법사가 직접 알려주지 않으면 얼마나 움직였는지 확인하기는 어렵다.
얼마나 이동했는지 거리를 간접적으로 확인 할 수 있는 것은 텔레포트가 시전 된 이후에 남겨진 마나의 자취다.
그레고리가 남긴 마나의 자취는 대륙을 건너뛸 정도로 이런 흔적을 남길 수 있는 써클의 마법사는 대륙에서도 한 손에 꼽힐 정도 밖에 없었다.
* * *
그레고리가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카모르를 떠난 시각, 유리메스공작령에서는 기이한 실험이 진행되고 있었다.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곳은 유리메스공작가의 발원한 곳으로 영주관 뒤에 있는 작은 동산의 지하 깊숙한 곳이었다.
영주관저와는 동떨어진 곳에 위치한 유리메스공작가의 발원지는 금지로 지정된 곳이다. 가주이자 공작령의 주인인 잉그만이라 하더라도 함부로 드나들 수 없는 곳이었다.
동산의 지하에 마련된 거대한 광장 안에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는 그들은 하나같이 마법사 로브를 입고 있었다.
광장안의 사람들이 모두 같은 문양의 로브를 입고 있는 것을 보면 유리메스공작가에 소속되어 있는 마법사들임이 분명했다.
마법사들은 한 무리씩 짝을 지어 움직이고 있었는데 각 무리마다 그들만의 통일된 표식을 가지고 있었다.
후드 전체의 문양은 모두 같았지만 각각의 무리는 소매 끝에 색을 달리하는 테두리가 있었던 것이다.
각각 무리마다 풍기는 마나의 기운을 보면 대부분이 같은 계열의 마법사들을 하나로 묶어 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같은 속성의 마법사들은 10여 명씩 무리를 지어 분주히 오가며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다.
다른 마법사들과는 달리 그들의 중심에는 다른 가만히 서서 마법사들의 움직임을 관찰하고 있는 두 명의 마법사가 있었다.
광장 안에서 진행될 실험을 총괄하는 마법사임에 틀림이 없었다.
“모두 세팅되었나?”
다섯 무리의 마법사들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검은색의 로브를 입은 마법사가 입을 열었다.
검은색 로브를 입은 마법사는 루만이라 불리는 이름을 가진 마법사였다. 그의 모습을 다른 이가 보았다면 무척이나 놀랄 일이었다. 죽었다고 알려진 유리메스공작가의 전대가주였기 때문이다. 잉그만공작의 아버지가 바로 루만이었다.
“중심세포에 힘을 실어 줄 최상급 마나석은 물론 속성부여에 참여할 마법사들이 모두 대기 중입니다. 마스터.”
뒤에서 시립하고 있던 젊은 마법사가 루만의 질문에 공손히 대답을 했다.
그는 루만의 수제자로서 불의 속성을 6써클까지 마스터한 벨리에란 마법사였다.
“좋아, 이번 실험은 최종단계니 만큼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이번 실험이 성공한다면 본가는 세상을 비상할 새로운 날개를 얻을 것이다. 그러니 이번 일에 모두들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모두들 유념하고 있습니다. 마스터! 그동안 무수한 실험을 통해 경험을 축적하고 대비를 했으니 이번에 실행되는 실험은 반드시 성공시킬 것입니다.”
그동안 이번 실험을 위해 철저한 준비를 해왔던 벨리에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야겠지. 벨리에, 준비가 끝나는 대로 시행하라 일러라.”
“알겠습니다. 마스터.”
시립해 있던 벨리에가 루만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고는 다섯 무리의 마법사들에게 다가 갔다.
세상은 하나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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