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월중천(赤月中天)(132)
천마 위소군의 이 말에 입가에 가늘게 흐르기 시작한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은 검선 선우백은 천주봉을 한차례 바라보고는 그에게 다가들었는데, 이미 그의 보검은 칠성검법 솔사벌허의 일초를 펼치고 있었다.
“그런 내, 외상을 입고도 본좌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오?”
“......”
검선 선우백이 아무 대답도 없이 다가오는 바람에 천마 위소군도 묵묵히 천마검을 들어 올려 천마검법 천마군림(天魔君臨)의 일초로 그의 일초를 맞받았다.
“쾅!”
“음!”
그러자 이런 폭음과 답답한 신음 끝에 검선 선우백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나서 풀썩 무릎을 꿇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천 사숙, 당장 천주봉을 수색하시오!”
검선 선우백이 주저앉자마자 천마 위소군이 마의선 천관정에게 이렇게 명령했고, 그에 따라서 그가 마인들을 이끌고 천주봉으로 달려갔다.
그러자 천마 위소군이 검선 선우백에게 이렇게 물었다.
“할 말이 있으시오?”
“......”
“할 말이 없다.”
자신의 말에 다시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검선 선우백을 한번 쳐다본 천마 위소군이 조용히 천마검을 들어 올리면서 내리그었다.
그런데 그 순간 주저앉아 있던 검선 선우백의 보검이 빗살처럼 자신의 목을 향해 날아오자 대경실색한 천마 위소군이 철판교의 신법으로 뒤로 몸을 숙이면서 가까스로 검을 피해냈으나 그 찰나 검선 선우백의 현천칠성장 도법자연의 일장이 또 들이닥쳤다.
그 바람에 다급한 일성을 토해낸 천마 위소군이 천마검으로 그 일장을 막으면서도 마주 천마장 천지혼돈의 일장을 쳐냈으니 역시 그는 검선 선우백보다는 공수의 수발이 조금 더 빠른 고수임에 틀림이 없었다.
하나 그것까지 계산했는지 검선 선우백의 우장이 움직이면서 현천칠성장 천법도의 일장이 또 터져 나오면서 천마 위소군을 덮쳤다.
“헉!”
그에 이런 다급한 일성을 다시 토해낸 천마 위소군이 무의식적으로 천마장 천지혼돈의 일장을 쳐내 그 장세를 막았다.
그러자 검과 장, 장과 장이 충돌하면서 요란한 폭음이 터졌고, 다음 순간 그 반탄력에 뒤로 주르륵 밀려난 검선 선우백이 먼저 신음을 터트리면서 연신 피를 게워냈다.
현천칠성장 도법자연과 천법도의 장세에는 그의 전신 공력이 실려 있었는데, 그 일장이 천마검과 천마장 천지혼돈의 일장에 막혀버린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아니라 그는 이미 내상을 입은 상태로 격돌했기에 검과 장, 장과 장이 다시 격돌하면서 천마 위소군보다 더 큰 피해를 당하였다는 그것이었다.
그랬기에 연신 피를 게워냈다.
“갈!”
그러나 천마 위소군도 현천칠성장 도법자연과 천법도의 장세를 천마장으로 온전히 해소하지 못해서 작은 내상을 입었기에 이런 일갈을 내질렀다.
그만큼 그 일장에 검선 선우백은 전신 공력을 실은 것이다.
“혼자서는 죽기 싫다는 말인가?”
일갈 이후 이렇게 물으면서 천마 위소군이 천마검을 고쳐 잡았다.
그러나 검선 선우백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전신 공력을 모아 최후의 일격을 가했는데, 그것마저도 실패했으니까.
그리고 그 결과로 이제 손가락 하나 까닥할 힘도 없는 지경이었으니 어찌 대답할 수 있었겠는가.
“......”
“크하하! 드디어 검선 선우백이······.”
“천마 위소군! 그대 뜻처럼······.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그렇게 되도록 본좌가 만들 것이다.”
“어리석은 천마여! 천마······.”
나지막하게 들려오는 검선 선우백의 이 말을 끝으로 천마검의 검광이 그를 휘감아 버렸다.
그러자 검선 선우백의 목이 몸통에서 분리되어 땅으로 굴러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면서 천마 위소군은 길게 한숨을 토해내고는 그 자리에 못 박힌 듯 서 있었다. 지난 세월 먼저 죽은 혜인과 함께 호적수로 맞서던 검선 선우백이 죽자 적수가 없어진 것을 한탄이라도 하듯 그는 쉽게 그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허허로움을 느끼면서 말이다.
***
현룡문.
현룡전 안팎에는 현룡문 문도들과 장백파 문도들이 모여서 연회를 즐기고 있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고조 될 즈음 장백파 장로 남일해가 서민에게 이렇게 물었다.
“서 문주, 이 연회가 끝나는 즉시 진주 언가를 치는 것이 어떤가?”
“아직은 아닙니다. 먼저 강북 무림을 손에 넣고, 마교와의 일전을 끝낸 다음 쳐도 늦지 않으니 말입니다.”
“흠, 그런가?”
“그렇습니다.”
“맞습니다. 우선 이곳 산서를 완전히 손에 넣고, 이후 강북 무림을 일통한 다음 마교와의 일전을 승리로 이끄는 것이 순서이니 말입니다.”
장백파 소문주 조무가 이렇게 말하자 서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보탰다.
“역시 조 형이오. 그다음에는 북궁으로 가서 장백의 한을 푸는 것이고요.”
“정말 그렇게 해주시겠습니까?”
“당연한 것 아니오!”
백성이 궁금한 듯 끼어들어 이렇게 물었다.
“아니, 장백과 북궁이 무슨 원수진 일이라도 있는가?”
“장백과 북궁은 요동을 놓고 수차례 접전을 벌였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듣지 못했는데.”
“그럴 것입니다. 원이 중원을 장악한 이후에는 싸우고 싶어도 싸울 수가 없었으니 말입니다.”
“하면 구원(舊怨)이 깊은가 보군!”
“그렇습니다.”
밤늦게까지 이어진 그 연회가 끝나고, 다음날 오시 현룡전 앞에는 흑백쌍성의 흑룡대, 백룡대, 당백의 잠룡대 그리고 정각의 비룡대와 장연의 자룡대에 와룡대주 원지훈과 부대주 서몽규가 와룡대 이 개조 일백 명의 대원을 거느리고 서민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드디어 우리 현룡문은 진정한 산서의 주인이 되는 행보를 내딛으려고 한다. 하여 아직도 이곳 산서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는 세가와 문파를 모두 처리하려고 하니 문도들은 모두 나의 뜻을 알겠는가?”
“우와아!”
“이렇게 산서를 통일하고, 나아가서는 강북 무림을 통일한 다음 이 현룡문을 개파하면서 내건 무림 일통을 이루어서 진정한 현룡천하를 만들 것이다. 들 알겠는가?”
“우와아!”
서민의 이어진 말에 대원들이 다시 한 번 환호성을 질러 대답을 대신했다.
그가 개파하면서 내건 무림 일통은 무림에 발을 담근 모두가 숙원처럼 생각하는 일이었지만, 고금을 막론하고 그것을 이룬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 가시적으로 그럴 가능성이 보이자 대원들이 이렇게 반응한 것이었다.
“흑백쌍성 두 형님은 일전에 말한 것처럼 신권문을 치십시오!”
“존명!”
“정각, 너는 와룡대주와 와룡대 일조를 지휘해서 종리세가(鐘離世家)를 친다.”
“존명!”
“장연, 너는 와룡대 부대주가 이끄는 와룡대 이조를 지휘해서 우문세가(宇文世家)를 친다.”
“존명!”
이렇게 서민의 강북 무림 일통 계획은 착착 진행됐다.
***
무당산.
밤새워 천주봉을 수색한 마교도들은 아무것도 찾지 못하자 무당 본산으로 돌아와서는 천마 위소군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사숙, 아무래도 검선 선우백에게 우리가 당한 것 같군요!”
“그놈이 왜 승부를 가리지 않고, 천주봉으로 도망쳤는지 그 이유를 나도 이제야 알 것 같네.”
“우리를 속여 그곳에 발을 묶어 놓으려 한 수작이었겠죠.”
“그렇지. 우리에게 그곳에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암시하려고 일부러 그리로 도망친 것, 그 덕분에 교도들만 잃고, 아무것도 찾지 못했으니.”
“맞습니다. 우리를 속인 것이지요. 그건 그렇고 사숙께서 다시 한 번 수고해 주어야겠습니다.”
“무슨?”
“마인과 사숙 호위대를 데리고 화산파로 가서 한바탕 소란만 일으키고 교로 귀교하는 것입니다.”
“화산파로 가서 한바탕 소란만 일으키라고?”
마의선 천관정에게 대충 자기 뜻을 전한 천마 위소군은 그가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마인들과 자신의 호위대를 데리고 가자 여타 교도들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전리품을 가지고 교로 복귀한다. 불을 질러라!”
이 명령에 마교도가 무당파에 불을 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종남파, 곤륜파, 공동파, 사천 당문에 이어서 무당파까지 불탐으로써 정파 무림 구파일방과 오대세가는 소림사와 화산파, 개방만이 남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형국이 되고 말았다.
비록 아미파, 청성파 등 다른 몇 개 문파와 진주 언가, 제갈세가 등 세가들도 남아 있었지만, 그들 개개의 세력으로는 마교를 상대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었으니 이제 마교는 무림의 반을 통일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
초씨세가.
흑백쌍성이 신권문, 정각이 종리세가, 장연이 우문세가를 치러간 사이 강대환과 당백의 잠룡대를 이끌고 산서 홍동(洪洞)의 초씨세가를 치려고 온 서민은 그들의 대응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저들은 이미 우리가 올 줄 알고 있었던 모양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일단 가보자!”
세가의 정문을 열어놓고 나와서 진을 치고 있는 일백여 명의 초씨세가 가솔을 보면서 서민과 당백이 이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는 초씨세가를 향해서 몇 걸음 옮겨 놓지 않았을 때 걸걸한 음성이 들려왔다.
“거기 오시는 분이 현룡문주님이시오?”
“그렇소! 그런데 그대는 누구시오?”
“이곳의 주인 되는 초홍(楚弘)이오! 그런데 무슨 일로 저희 가를 찾아오신 것이오?”
“아시면서 묻는 이유가 뭐요.”
“서 문주께서는 정녕 산서의 모든 문파와 세가를 없애버려야만 하겠소.”
“......”
초씨세가 가주 초홍의 이 말에 서민은 일시 말문이 막혀서 뭐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마땅한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약육강식의 법칙이 존재하고, 그보다 더한 명분이 있을 수 없는 냉혹한 무림이라고는 하지만 상대가 이렇게 나오니 딱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왜 말씀이 없으시오?”
“초 가주께서도 하북팽가나 산동악가, 황보세가 등 오대세가와 해룡문처럼 본문의 뒤통수를 치지 말라는 법이 없지 않소. 그러니······.”
“흥! 그런 시정잡배들과 이 초 모를 비교하다니 이 초 모가 그동안 잘못 살았군!”
“......”
“서 문주, 저번 그놈들이 이 초 모를 찾아와서 한팔 거들어 달라고 부탁을 했었소. 하나 이 초 모는 일언지하에 거절했소!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오?”
“이유가 무엇이오?”
“이 초 모는 서 문주께서 마교와 싸우는 한편으로 원의 호국위대와 삼천기병을 섬멸한 영웅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소. 그런데 그런 영웅께서 오늘 이 초 모의 집안을 멸문시키겠다고 찾아 왔으니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소이다.”
서민은 다시 대꾸할 말을 찾지 못했다.
그러자 당백이 나서 이렇게 말했다.
“그건 다 지난 일, 그러니 검을 뽑으시오! 이 당백이 상대해 주겠소.”
“좋소. 어차피 이곳에서 죽으나 저곳에서 죽으나 죽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그러나 시간을 좀 주시오. 영웅이라 생각했던 서 문주가 아니라 마교든 원나라든 다른 어떤 곳이든 싸우다 죽겠으니 말이오.”
“초 가주! 그 말은 지금 우리와 함께 마교든 원나라든 누구든 같이 싸워주겠다는 그 뜻이오?”
“바로 그렇소. 서 문주! 이곳에서 서 문주와 싸우다 죽는다면 그것은 개죽음, 그러나 마교나 원나라와 싸우다 죽는다면 그것은 보다 값어치 있는 죽음이 아니겠소. 그래서 그렇게 하겠으니 잠시만 시간을 달라는 말이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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