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월중천(赤月中天)(138)
흑성과 남일해가 이렇게 언성을 높이려 하자 서민이 나섰다.
“조 대협과 남 장로님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오. 어떤 것이 진정 장백파를 위하는 일인지. 그리고 비영대주는 즉시 초씨 세가에 전서를 띄워 소림사로 오라고 하라.”
“존명!”
“문주님, 제갈 태상문주님께서 오셨습니다.”
“모셔라!”
두문불출하던 의천문 태상문주 제갈진이 이렇게 나타나서는 자신들도 소림사로 가겠다고 우기기 시작하는 바람에 서민은 난감하기 그지없어 이렇게 말했다.
“태상문주의 뜻은 알겠으나 너무 위험 부담이 큽니다.”
“그래서 더 가려는 것이네. 그리고 이번이 아니면 결코 마교에 복수할 길도 없었을 것 같아서 더 가고 싶은 것이고 말일세.”
“물론 그럴 수도 있으나 십만대산에는 분명 그들의 잔존 세력이 있을 것이니 복수는 그들에게 하시죠.”
“절대 그럴 수는 없네. 천마 위소군과 마의선 천관정만은 기필코 우리 손으로 처리해야 하니까.”
“마의선 천관정! 정말 그를 아십니까?”
“그래, 그런데 서 문주는 그놈을 어찌 아는가?”
“이미 장호 대협에게 말씀을 드렸는데, 듣지 못했습니까?”
이렇게 대답한 서민이 태백산에서 곽가회에게서 들은 말을 제갈진에게 다시 해주었다.
그러자 그가 이렇게 말했다.
“서 문주, 내가 바로 예전에 의선(醫仙)이라고 불리던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천관정 그놈이 스스로 마의선이라고 부르는 것도 모두 나를 의식해서야! 그건 서 문주도 모르겠지. 즉 내가 천금신단과 지금신단을 만들어 내자 그놈도 나에게 질 수 없다는 생각에 천금신단보다 더 뛰어난 영단을 만들어 내는 일에 매달렸지만, 성공하지 못했네! 그리하여 천마 위소군을 부추겨서 우리 의천문을 공격하고, 천금신단과 지금신단을 탈취해 간 것이야! 그렇게 그놈과 나의 악연이 시작됐지. 그리고 서 문주가 태백산에서 찾아온 그 만년삼왕과 공청석유는 아마도 그놈이 영단을 만들려고 기르고 있었던 것이 분명할 것이야!”
서민은 그제야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곽가회의 말이 그 순간 떠올랐기 때문이다.
“곽가회, 그가 사형 천관정의 명으로 그곳을 지킨다고 했습니다.”
“역시 그랬군!”
“당문을 공격한 마교도 중에 그 마의선 천관정이 이끈 마교도들의 무공이 발군이었다는 정보도 있습니다. 혹 그들이 마의선 천관정의 작품이 아닐까요?”
“보지 않아서 알 수는 없지만, 분명 그럴 가능성이 크네! 하니 이번 소림사에는 기필코 동행해야겠네!”
제갈진이 이런 논리를 앞세워서 소림사 행을 기정사실로 하려 하자 서민은 걱정되지 않을 수 없었다.
“태상문주를 비롯해 모든 문도가 이미 초절정 고수가 된 것은 알지만, 그래도 너무 위험합니다. 그리고 혹시 변이라도 당하면, 의천문의 맥이 끊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건 걱정하지 말게. 이미 장호에게 모든 의발을 전수해 놓았고, 그들 약방의 다섯은 빠지기로 했으니까 말일세. 그러니 의천문의 맥은 절대 끊어지지 않을 것이고, 또한, 장호와 사마창을 비롯한 그들 약방의 다섯이 다 제자를 받기로 했으니 또 무엇이 걱정인가. 그리고 강 총관과 상의해서 총관대에 있는 송장섭(宋長燮), 장주영(張朱榮), 고관(高寬) 등 다섯 명에게도 의술을 가르치고 있으니 우리가 할 수 있는 대비는 이미 모두 해놓았네.”
소림사로 가서 마교와 싸워 복수하려고, 제갈진은 이미 모든 준비를 끝내 놓고 있었다.
“그게 사실입니까?”
“그래, 그러니 더는 반대하지 말게.”
이러니 제갈진을 떼어놓고 소림사로 갈 명분이 자꾸만 사라진다는 것을 서민은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모두 데리고 가자니 그들의 희생이 불을 보듯 뻔했기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쉽게 결정도 내리지 못했다.
“서 문주가 우리를 데려가지 않겠다면, 우리는 독단으로라도 소림사로 갈 것이네!”
한동안 자신의 눈치를 보던 제갈진이 이렇게 선언하는 바람에 속으로 침음을 삼킨 서민은 어떻게 하던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모두 세수 일백 살이 넘는 이들이 목숨에 더 미련이 있을 리도 없었고, 의천문의 맥도 이을 준비를 다 해 놓았으니 이들이 하고 싶은 복수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좋습니다. 그러나 그 전에 이곳에 좌정하고 앉아 보십시오!”
이렇게 말한 서민이 탁자를 치우고 제갈진을 그곳에 앉혔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부터 제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단전에서 한 가닥 진기를 끌어올려 음교(陰交), 거궐(巨闕), 화개(華蓋), 천돌(天突), 결분(缺盆)을 거쳐서 오른손 협백(俠白), 공최(孔最), 내관(內關)을 통해 이 단검으로 진기를 보내보십시오!”
이렇게 말한 서민이 청천검을 제갈진의 손에 쥐어주었다.
그때 황보충, 정각, 흑백쌍성 등 각 대주는 지금 서민이 제갈진에게 진기를 검에 싣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을 알았다.
제갈진을 비롯한 의천문도들은 천금신단과 지금신단 등 영단의 도움으로 모두 십이갑자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들이 만약 서민의 가르침에 힘입어 검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더한 고수가 되리라는 것은 믿어 의심치 않는 사실이었다.
어떻든 제갈진은 그렇게 서민이 시킨 것처럼 한 가닥의 진기를 끌어올려 음교, 거궐, 화개, 천돌, 결분을 거쳐 오른손 협백, 공최, 내관을 통해 손에 쥔 청천검에 진기를 흘려보냈다. 그 순간 청천검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맺히는가 싶더니 이내 형체를 갖추어 검강으로 변했다가 또 이내 사라져 버렸다.
“수고하셨습니다. 단번에 검강을 만들어내지는 못했지만 어떻든 대단하십니다.”
“검강이라니······.”
“방금 제가 가르쳐준 것은 검기를 일으키는 방법인데, 제갈 태상문주는 내공이 심오하여 검기 대신 검강이 맺혔다가 사라졌습니다.”
“정말인가?”
“직접 하시고도 모르시겠습니까?”
“설마 했는데······.”
“검강의 전 단계까지 이르렀으니 지금부터 문도들에게 제가 가르쳐준 방법으로 수련을 시키십시오. 오늘 중으로 숙달시켜야 하니 시간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하리라 믿습니다.”
다음날 사시, 서민은 황보충과 흑백쌍성을 비롯한 각 대주와 인사를 나누고, 제갈진 등 의천문도와 조무와 남일해 등 장백파 문도에 정각을 데리고 소림사로 출발했다.
그렇게 소림사에 가자마자 예의 무문이 나와 서민을 지객당으로 안내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곤륜오검과 장선, 권선께서도 오셨습니다. 서 문주님!”
“그래요?”
“예, 그리고 해남파와 형산파도 와 있습니다.”
그날 유시, 소림사 대웅전에는 수백 명의 인물이 안팎에 모여 있었다.
대웅전 안 상석에는 각지(覺志), 각정(覺井), 각상(覺常), 각운(覺雲)의 소림사 각 자 배분 사대금강에 방장 지현을 비롯한 지운, 지산, 지광이 자리했고, 그 우측으로는 권선 노석원과 그의 사제인 권성(拳聖) 명근홍(明勤弘), 장선 화준에 그의 제자인 장황(掌皇) 강창(姜昌), 곤륜 일검 주동과 이검 양태보(楊太保), 삼검 원금강(元金剛), 사검 장명주(張明珠), 오검 강가섭(姜加燮), 공동파 조철군과 개방 태상방주 부운걸개 장송과 방주 강금홍, 주개 고순용 그리고 화산파 장문 금현과 금현의 사숙인 검황(劍皇) 고용문(高用門)과 매화검존 이단양에 아미파 장문인 보혜, 점창파 장문인 좌명옥, 해남파 장문인 오병의, 형산파 장문인 한등, 태을검황 장만홍, 태을검제 안범, 봉산검황 조무운, 장제 백기문, 도왕 하금 등의 인물이 자리하고 있었다.
좌측으로는 서민과 조무, 남일해에 도존 좌훈, 백옥검황 용윤석, 흑룡도 남기, 뇌우검 차태군, 금풍검 서무상, 녹파도 홍법상, 격진검 왕걸, 탕마검제 민쌍, 공축도 전왕, 장존 남일, 자연검 종철진이 자리하고 있었다.
또한, 서민이 처음 보는 벽린검(劈麟劍) 한현(韓鑦), 군자검(君子劍) 금철현(金哲賢), 금마도(金馬刀) 진근(陳勤), 수라쌍도(修羅雙刀) 주민순(朱旻淳), 무형권(無形拳) 조재완(曺在完), 탈명도(奪命刀) 한관(韓冠) 등이 앉아 있었다.
그러나 정각은 보이지 않았는데, 그는 이때 지객당에 남아 의천문도들을 보호하고 있었다.
“아미타불! 이렇게 들 본사에 왕림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마교의 대규모 병력이 십만대산을 벗어났다는 보고가 올라온 지 이미 사흘입니다. 하여 그들의 행방을 쫓는 한편 이렇게 여러 장문인과 대협을 모시고, 그들을 상대할 방도를 의논하고자 자리를 마련했으니 기탄없이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소림사를 대표해서 방장 지현이 이렇게 말을 꺼내자마자 서민이 물었다.
“방장 대사, 마교의 병력은 정확하게 얼마요?”
“서 문주, 십만대산을 벗어난 병력은 어림잡아 이천오백 명은 되어 보인다는 보고입니다.”
“그 이천오백에 녹림을 합치면 사천, 수적까지 합치면 그럼 육천은 되겠군요?”
이때 부운걸개 장송이 나섰다.
“녹림의 숫자가 이천 정도이고, 수적들도 이천 정도라는데, 그들을 다 합치면 육천이 아니라 육천오백이 아니오.”
“장 태상방주, 개방의 정보망에 구멍이 난 것이오?”
“뭐라고요?”
“태상방주, 녹림 여산채에는 개새끼 한 마리 남지 않았소이다.”
“그게 무슨 말이오. 그곳에 아무도 없다니.”
장백파 조무가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녹림의 여산채는 이미 서 문주께서 소탕하셨습니다. 그러니 아무도 없죠!”
“아미타불!”
“아니, 그런 일이!”
“벌써!”
좌중이 이런 반응을 보이자 서민이 이어서 말했다.
“그건 그렇고 방장 대사, 그들 육천을 맞아야 하는데, 이곳에 모인 병력 규모는 정확하게 얼마인지 파악했소?”
“본사와 개방, 화산파, 아미파, 점창파, 해남파와 형산파 등 팔룡맹(八龍盟)과 본사의 속가제자들을 모두 합하고, 이곳에 계신 분들과 함께 오신 분들을 합치면 숫자는 그들과 비슷합니다.”
“병력은 비슷하다. 하면 어떻게 싸울 생각이시오?
그런데 이때 소림사 각지가 서민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들이 오면 맞아 싸우면 되는 일, 그건 그렇고 서 문주, 데려온 이들이 또 있던데 누군지 물어도 되겠소.”
“의천문이라고 혹 아십니까?”
“의천문이라면, 의선 제갈진의 의천문, 그 의천문을 말하는 것이오. 서 문주!”
“그렇습니다. 그 의선 제갈진의 의천문입니다.”
“아미타불!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였군. 그런데 서 문주, 그들은 여기 있는 각파와도 은원이 있는데······.”
“대사, 그들이 이곳에 온 이유는 마교에 복수하기 위해서이지 결코 여기 있는 각파 또는 그들에게 과거 못할 짓을 한 사람들에게 복수하려고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모두 이 점을 명심하시고, 마교와의 일전이 끝날 때까지 과거의 은원은 잠시 접어두기를 부탁합니다.”
“아미타불! 서 문주, 우리가 아니라 그들이 우리를······.”
“천금신단을 내놓으라고 협박만 하지 않으면,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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