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월중천(赤月中天)(96)
마교.
마교 교주 소진악은 부교주 사공도로부터 곤륜파 일을 보고받고는 심각한 표정으로 생각에 빠져갔다.
수십 명의 사상자가 났지만, 곤륜파를 불태웠으니 대성공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자못 아쉬운 것도 있었으니 그건 장문인 문진을 비롯한 사십 명의 신속대응군이 살아남은 그것이었다.
“교주! 그럼 저는 물러가겠습니다.”
교주 소진악이 생각에 빠져있자 부교주 사공도가 교주전을 물러나려고 했으나 그가 한발도 옮겨 놓지 못했을 때 또 다른 부교주 손노선이 허겁지겁 뛰어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교주, 흑룡문이 정파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뭐라고?”
“흑룡문이 정파 신속대응군의 공격을 받고 모조리 불탔습니다.”
“갈! 그놈들이, 그놈들이, 그놈들이······.”
이렇게 울분에 찬 소리를 토해내는 마교 교주 소진악보다 그때 더 울분을 토해내는 사람이 있었으니 그는 곤륜파 장문인 문진이었다.
“이 씹어 먹어도 시원치 않을 마교의 개들을, 으악! 으악! 으아악!”
“장문 사형!”
“으흐흑! 수백 년 곤륜의 위업이 내 대(代)에서, 내 대에서 이런 꼴을 당하다니······.”
불타버린 수백 년 위업을 바라보면서 곤륜 장문인 문진이 이렇게 대성통곡을 했다.
용케도 살아남은 풍운검 두현과 사천 당문에 신속대응군으로 나가 있다가 소식을 듣고 달려온 묵룡검(墨龍劍) 용규선(龍圭善)도 멍하니 불탄 전각을 바라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러나 그들이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
현룡문.
“문주님, 비무를 모두 마쳤습니다. 우승자는 장형입니다.”
잠룡대주 당백의 보고에 서민은 별달리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들은 흑백쌍존, 강백호 등은 모두 놀라는 기색이었다.
“준우승자는?”
“장명훈입니다.”
“그를 부대주로 하고, 천금신단도 상으로 주어라!”
“존명!”
“당백, 마교와의 접전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조짐이 보이니 지금보다 더 대원들 수련에 박차를 가해야 한다.”
당백이 복명하고 단심거를 나가자 서민이 흑존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나저나 형님, 남 장로는 잘 갔습니까?”
“그 자식, 잘 갔네! 동생 서신도 가져갔네. 그리고 해동청(海東靑) 한 쌍을 주고 가면서 장백파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라고 했네!”
“해동청이라고요?”
“응, 하여 전서구를 관리하는 청룡대에 맡겼네!”
장백파 장로 남일해와는 어제 작별인사를 하면서 사숙 지영에게 보내는 서신을 부탁했다.
그런데 오늘 새벽까지 흑백쌍존과 술을 마신 것도 모자라서 현룡문 십 리 밖까지 같이 배웅을 가서 또 작별주를 마시다가 간 모양이었다.
“잘했습니다.”
“그런데 동생, 그 장형이라는 아이는 어떻게 할 생각인가?”
“아직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그 아이 자질을 타고났더군! 그런 아이를 저대로 둔다는 것은······.”
“이 흑귀 놈아. 그렇게 말 돌리지 말고 직설적으로 이야기해!”
“무슨 말입니까?”
백성이 나섰다.
“흑귀 저놈이 하고자 하는 말은 그 장형이라는 아이를 동생이 제자로 받았으면 하는 것이네!”
“두 분께서도 아직 제자를 받지 않았는데, 제가 어떻게 먼저 제자를 받습니까.”
“동생은 일문의 문주로 제자를 받아 후사를 든든하게 해야 할 책임이 있지만, 우리는 다르지 않은가. 그러니 제자로 받아!”
“백귀의 말이 맞네. 어차피 동생도 제자를 받기는 받아야 하지 않는가. 그러니 이 기회에 그 아이를 제자로 받아.”
흑백쌍성이 합동으로 이렇게 권하자 서민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숙과 사형이 그 아이를 보낸 이유가 이것이었구나! 대를 이어놓고 일을 해도 해라! 이것 말이다.’
그때 가만히 듣고만 있던 강백호도 나서서 이렇게 말했다.
“두 분이 이렇게까지 말하니 제자로 받으시죠. 아니면 제가 제자로 받아서······.”
“강 총관이요?”
“예, 문주님이 안 받겠다면 제가 받아야죠.”
“동생, 빨리 결정하게. 안 하다가는 강 총관에게 빼기겠네.”
“혹 세 분이 짜고 이러는 것은 아니죠?”
흑백쌍성은 물론 강백호까지 시치미를 뚝 떼는 바람에 의심은 갔으나 물증은 없었다.
“무슨 그런 소리를, 그러니 어서 결정하게.”
“아니면 제가 제자로 받겠습니다.”
“어서 받으래도.”
“아, 그만!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
“들어주신다면, 그 아이를 제자로 받겠습니다.”
“말해보게!”
“세 분도 제자를 받는 것입니다. 어떻습니까?”
강백호와 흑백쌍성이 단박에 동의하자 서민이 이렇게 말했다.
“그럼 이제 두 분 형수님을 모시죠.”
“뭐라고?”
“저도 조카를 봐야죠. 그리고 조카들을 둘째, 셋째 제자로 받아야죠. 설마 제자로 아니 주시지는 않겠죠?”
“하하하!”
흑백쌍성이 동시에 웃음을 터트리자 서민도 따라 웃었다.
생사를 가르는 혈전과 피를 말리는 암투와 귀계가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흑백쌍성은 이렇게 큰 위안이 되어주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웃을 일도 없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 서민이었다.
“두 분이 동의했으니 이제 강 총관께서 대장간의 금원민에게 참한 분을 찾아보라 하시고, 직접 찾아보기도 하십시오.”
“그러겠습니다.”
“아, 그런데 강 총관도 형수님을 보아야죠?”
“농담이죠?”
“제가 농담하는 것을 보았습니까?”
“보았죠! 아주 많이 보았습니다.”
“하하하! 그런가요. 어떻든 세 분은 꼭 장가를 가십시오. 대환! 가서 장형을 데려오고, 부총관에게는 소와 돼지를 잡아 연회를 준비하라 일러라!”
“존명!”
강대환이 복명하고 나가자 흑존이 서민에게 화끈하다고 다시 칭찬했다.
그러고 좀 있으니 장형이 단심거로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그렇다. 여기 계신 세 분께서 너를 제자로 받았으면 어떻겠냐고 물으신다. 네 생각은 어떠냐?”
“저는 분부에 따르겠습니다.”
“대답하는 것이 동생을 똑 닮았군!”
“백존 형님도 참.”
이렇게 말한 서민이 잠시 장형을 바라보더니 기어이 이렇게 선언했다.
“좋다. 너를 제자로 받아들이겠다. 그러므로 이 순간부터 너는 나의 적전제자다.”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장형이 서민을 향해서 구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구배지례, 이렇게 장형은 서민의 적전제자가 되었으니 지영과 인산의 안배는 성공한 것이 됐다.
“축하하네!”
“소문주, 축하하네!”
“감사합니다. 흑백쌍성 대주님. 그리고 강 총관님!”
“너는 세 분을 대함에 있어 조금의 소홀함도 없어야 한다. 알았느냐?”
“명심하겠습니다.”
그날 저녁 현룡문 전 문도가 모인 가운데 성대한 연회가 열렸으니 바로 장형이 서민의 적전제자가 된 축하연이었다.
그렇게 먹고 마시는 와중에 서민이 흑백쌍성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현룡전 지하에 연공실이 있으니 한 달간 장형과 폐관 수련하겠습니다. 그 사이에 두 분께서 문을 좀 이끌어 주십시오.”
“헐! 제자를 받자마자 폐관수련을 한다고?”
“그럼 다시 물릴까요?”
“아니, 아니.”
연회는 밤늦게까지 이어졌고, 현룡문 전 문도들은 배불리 먹고 마시면서 서민과 장형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그런 가운데 서민이 대장간 금원민에게도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다.
“금원민, 들리는 말로는 네 처가 이 청서와 태원에 모르는 처자가 없다던데 사실이냐?”
“조금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럼 흑백쌍성과 강 총관의 짝을 찾아보아라!”
“세 분의 짝을 말입니까?”
“그렇다.”
다음날 흑백쌍성과 강백호에게 다시 한 번 현룡문을 부탁한 서민은 장형을 데리고 현룡전 지하 연공실로 들어갔다.
***
마교.
“마청(馬靑), 그대가 흑룡문으로 가라! 가서 흑룡문을 재건하고, 혈혼검 조중평이 하던 일을 그대로 한다. 알았는가?”
“존명!”
“소(蘇) 대주, 그대도 간다.”
“존명!”
마교 교주 소진악은 장고를 거듭한 끝에 검마왕(劍魔王) 마청과 살풍대(殺風隊) 대주 소태홍(蘇太弘)에게 이같이 명령했다.
“마검사괴!”
“하명하십시오!”
“역시 흑룡문으로 가서 검마왕을 도와라!”
“존명!”
자신의 충복인 마검사괴까지 같이 보내기로 한 마교 교주 소진악은 비릿하게 웃었다.
***
현룡문.
현룡전 지하 연공실에 앉은 서민이 장형에게 말했다.
“마음을 편히 하라!”
“예, 사부님!”
“파천문의 문규는 아느냐?”
“사소한 것은 접어두고 대의를 말하라 하면 진충보국(盡忠報國)이나 진충보국보다는 위민(爲民)이 먼저고, 경천애인(敬天愛人)이나 경천보다는 애민(愛民)이 먼저라고 알고 있습니다.”
“이 사부는 왜 이곳에 있느냐?”
“사사로이는 사조님과 선친의 원한을 갚고, 중원 무림을 말살하기 위해서 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려우면 차선으로 중원 무림을 일통하여 지배하기 위해서······.”
장형의 말은 더 이어지지 못했으니 서민이 이렇게 물었기 때문이다.
“그럼 나는 파천문의 문규를 지키는 것이냐?”
“이곳에서 많은 고려 백성을 구해내고 있으니 지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하시고자 하는 일이 진충보국이 될 수도 있으니······.”
“진충보국이라면 고려로 돌아가서 외세의 침략을 막는 것이 더 진충보국이 아니냐?”
“고려 왕실을 위한다면 그렇게 해야겠지만, 위민이 먼저이니 이곳에서 동포를 구하는 것도······.”
“되었다. 그러나 나라보다는 동포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을 항상 가져라! 나라와 왕조는 바뀌어도 동포는 변하지 않으니 말이다. 알았느냐?”
“잘 알겠습니다.”
“좋다. 그리고 네게 전수해 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너는 이미 파천신공을 연성하여 현룡심공과 합일을 끌어낸 상태다. 그러한 네게 무엇을 더 가르쳐 줄 수 있겠느냐. 하나 내가 깨우친 심득은 전해주마!”
“하오나?”
심득만 전해준다고 하는 바람에 장형이 이렇게 묻자 서민이 이어서 말했다.
“네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는 이미 안다. 하나 내 말을 먼저 들어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무공은 원류가 같다고들 하지만 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현존하는 중원의 무공들은 원류가 소림사라 하여도 과언이 아니어서 흔히들 천하공부출소림(天下功夫出少林)이라 하지만 그 말은 모두 헛소리다. 소림사 무공이 형성되기 이전 중원이라 이름하는 이 중국에는 원래 그들의 무공이 있었다. 그러니 어찌 소림사가 중원 무공의 원류라 할 수 있겠느냐. 그리고 그 원류가 바로 우리가 우려하는 중천신공이다. 그 중천신공이 왜 태어났는지 너는 아느냐?”
“대략 압니다.”
“그럼 되었다.”
이렇게 말한 서민은 장형을 똑바로 앉힌 다음 그때부터 파천신공 구결 한 자 한 자가 가진 이치를 강독(講讀)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자신이 깨우친 심득이라면서 말이다.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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