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월중천(赤月中天)(110)
검강에 휩쓸린 마교도 이십여 명의 비명이 일시에 터져 나오는 것을 끝으로 공동파 정문에서 살아남은 마교도는 아무도 없었다.
이로써 마교의 정면 공격은 일단 실패, 그러나 좌우에 남은 마교도는 아직 있었다.
“아니, 검상을 입었군요.”
“심하지 않네!”
“그래도 얼른 치료하십시오.”
공동 조철군은 서민의 이 말에 검에 길게 베인 가슴팍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토해냈다.
복마검법을 대성했다고 폐관 수련을 끝내고 나왔는데, 나오자마자 황보충을 만났고, 이제는 그보다 더 고수인 것은 물론 감히 쳐다보지도 못할 서민까지 만났으니 말이다.
“알았네. 그건 그렇고 다른 곳을 지원해야 하지 않겠나.”
“물론이죠. 아, 그리고 여러분은 우측을 부탁합니다.”
도제 왕산 등에게 이렇게 우측 지원을 부탁한 서민이 원정에게는 이렇게 말했다.
“낭자는 다친 이들 부상 치료를 부탁합니다.”
“아니, 저도 공자님과 같이 가서 싸우겠어요!”
“이곳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는 것도 저를 돕는 것입니다.”
“그래도······.”
그때 마교 빙마왕 탁호경은 소림사 지영과 접전을 벌이다가 갑자기 나타난 정각에게 가로막혀 잡았던 승기를 놓치자 분통을 터트렸으나 정각은 그에 아량 곧 하지 않고 지영에게 이렇게 말했다.
“지영 대사, 이놈은 제가 상대하겠으니 대사는 속히 다른 마교도를 처리하시오!”
“알겠소!”
소림사 지영은 이 대답과 함께 일단 물러났다.
그리고는 난전에 빠진 장내를 한번 둘러보고는 한숨부터 토해냈다.
만약 정각의 비룡대가 지원을 오지 않았다면, 승기를 잡기도 어려웠을 것은 물론 막대한 피해를 봤을 것이 자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저렇게 검진으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다니, 나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비룡대가 검진을 구성해서 일사불란하게 마교도를 상대하는 모습을 본 지영은 기어이 이렇게 탄식까지 했다.
“아악!”
그 지영의 탄식이 그치기도 전에 마교 빙마왕 탁호경이 정각의 검에 다리가 잘려 앞으로 꼬꾸라지면서 이런 신음을 토해냈다.
마교 귀마대주 양태보는 그때 소림사 지정을 맞아 선전하고 있었으나 탄식을 그친 소림사 지영이 가세하여 협공하자 위태위태하게 버티다가 십여 초 만에 무너지고 말았다.
“검진을 풀고 마교도를 섬멸하라!”
서민의 일갈이 난전 속에 울려 퍼진 것은 그때였다.
공동파 좌측을 지원하기 위해 오자마자 몇 명의 마교도를 베어 넘기고, 장내의 상황을 살펴본 그가 기어이 비룡대에 검진을 풀고 마교도를 상대하라고 했다.
그때까지 살아남은 마교도의 수준이 비룡대원에 비해 낮았기 때문이고, 대원들을 위협할 만한 수준에 있는 마교도는 자신과 정각, 강대환 등이 충분히 상대하고도 남음이 있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예상처럼 일각도 지나지 않아서 장내 마교도 대부분이 대원들에게 죽어 나가자 서민이 소림사 지영과 지정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사, 이곳을 부탁합니다.”
“아미타불! 알겠소!”
“현룡문도는 모두 나를 따라 우측을 지원한다.”
서민이 이렇게 현룡문도들을 이끌고 황급히 우측을 지원하려고 달려가자 소림사 자영과 지정은 멍하나 그의 뒷모습만 쳐다봤다.
그런데 서민 등이 공동파 우측에 도착해서 본 것은 시산혈해의 참상과 황보충의 황룡대가 한바탕 난전을 끝냈는지 여기저기를 살펴보고 있는 모습과 조철군과 공동파 문도들, 도제 왕산 등과 정천룡의 협의대, 무당파, 개방의 살아남은 신속대응군이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는 모습뿐이었다.
“검상은 좀 어떻습니까?”
“나는 괜찮네! 그러나 여기는 우리의 승리라고 하기에는 좀······.”
조철군의 말이 아니더라도 서민은 이미 장내 상황이 결코 승리라고 말할 수 없는 지경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현룡, 황룡, 비룡대원을 제외한 신속대응군 대부분과 공동파 문도, 협의대는 아무리 봐도 절반 이상 피해를 본 것 같았다.
그러니 어찌 승리라고 하겠는가.
“현룡문도들은 장내를 정리하고, 부상자를 돕는다.”
“존명!”
“그리고 독고천!”
“하명하십시오.”
“정문으로 가면 보검이 몇 자루가 있을 것이다. 전리품으로 챙겨라!”
그 와중에도 전리품으로 보검을 챙기라고 한 서민의 말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차린 독고천이 그 즉시 정문으로 달려갔다.
“공자님!”
그때 자신을 부르면서 다가오는 원정을 본 서민이 놀라서 물었다.
“팔을 다쳤습니까?”
“약간 스쳤을 뿐입니다.”
“봅시다.”
분명 좀 전에는 검상이 없었다.
아니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제 보니 원정은 오른팔에 검상을 입고 있었다.
하여 상처를 살펴본 서민이 금창약을 꺼내 상처에 조심스레 바르고는 옷깃을 찢어 상처를 싸매주면서 말했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부터는 조심하세요. 특히 조심요.”
“네, 공자님. 그런데 이 피가 태어날 때부터 시작해서 죽을 때까지 무슨 색깔인 줄 아세요?”
“그야 붉은색이 아닙니까.”
“왜 붉은색일까요? 그리고 왜 색은 바뀌지 않을까요? 머리카락은 검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는데, 왜 피는 색깔이 바뀌지 않을까요?”
“그야······.”
서민이 이렇게 말끝을 흐리자 원정이 얼굴 가득 홍조를 띠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도 그 이유는 모르지만, 이 피가 붉은색에서 흰색으로 바뀌지 않듯 공자님을 향한 제 마음도 영원히 바뀌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흠! 흠!”
그날 저녁 죽은 마교도의 시체를 한곳에 모아 놓고, 사망자와 부상자를 대충 수습한 공동파와 각파 신속대응군의 수장들이 한곳에 모여 앉았다.
“조 선배님, 공동의 피해가 너무 큽니다. 그래서 말인데 공동파를 잠시 비우시고, 사천 당문으로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우리의 힘만으로는 이곳을 지킬 수도 없고, 이 공동파라는 터전보다는 살아남은 문도가 우선이니 그리해야겠지. 그러나······.”
“안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서민과 조철군의 이 대화에 복마검존 고도영이 반대하고 나섰다.
“고 대협, 저들은 다시 옵니다. 그때는 어쩌시려고요?”
“그때는, 그때는······.”
“고 대협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표풍객 양 대협, 그리고 노도검 왕 대협과 죽은 삼백오십칠 명 문도들의 원한을 갚고 싶겠지만, 이곳에서는 그 원수를 갚지 못합니다. 그러니 잠시지만 사천 당문으로 옮기시고, 그곳에서나 다른 곳에서 원수를 갚은 다음 다시 이곳으로 돌아오시면 됩니다.”
“서 문주의 말이 맞다. 이곳을 잠시 비운다.”
“하나, 이곳은······.”
“이곳은 단지 터전일 뿐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문도보다 우선일 수는 없다. 그러니 옮긴다. 알았느냐?”
“사백님!”
그때 공동 장문인 고광현이 나섰다.
“사제, 사백님 말씀이 옳다. 그리고 이곳을 버리는 것도 아니고, 잠시 비우는 것뿐이다.”
“장문 사형! 으흐흑!”
복마검존 고도영이 기어이 울음을 터트렸음에도 서민은 아량 곧 하지 않고 좌중에게 이렇게 물었다.
“다른 분들은 어떻게 할 겁니까?”
“아미타불! 본사로 돌아가야지요. 그래서 다시······.”
소림사 신속대응군은 이번 혈전에서 대경, 무민, 무진 등 서민과도 일면식이 있던 열일곱 명이 죽었다.
두 개 대 사십 명의 신속대응군 중에 열일곱이나 죽었으니 당연히 본사로 돌아가서 인원을 보충하든 뭐든 해야 했다.
그들만이 아니었다.
무당파는 이십이 명, 화산파는 이십오 명, 진주 언가도 이십일 명이나 죽었으며, 협의대는 검제 정천룡 등 수장들의 제자 모두가 죽었고, 서보개 강무웅을 비롯한 감숙 분타원 대부분과 신속대응군 열다섯 명을 포함해서 합계 일백이십일 명이 죽은 개방, 그리고 다섯 명의 사망자를 낸 종남, 그러니 이들 모두는 정비든 인원 보충이든 뭐든 필요했다.
그래서 일단 모두는 각파로 복귀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공동파의 살아남은 문도와 종남파 문도들은 사천 당문으로 떠났고, 나머지 문파는 모두 자파로 복귀했다.
***
서민이 현룡문에 도착한 것은 공동파를 출발한 지 한 달이 조금 지나서였다.
소림, 무당, 화산, 진주 언가 등 각파 문도들을 호위해준 것은 물론 원가장까지 들리는 바람에 시간이 그렇게나 걸린 것이었다.
“동생, 수고했네! 한바탕 접전을 벌였다는 소식에 걱정했는데 말이야.”
“뭐 별일 없었습니다. 문에도 그동안 별일 없었죠?”
“안으로 들어가서 이야기하지.”
흑백쌍성, 강백호 등과 인사를 끝낸 서민, 황보충, 정각 등은 그들을 따라 현룡전으로 들어갔다.
“이제 어찌 될 것 같은가?”
“오면서 들으니까 곤륜파가 당했다더군요. 종남, 곤륜, 공동이 당했습니다. 그럼 다음은 어디겠습니까?”
“마교에서 가까운 사천 당문, 아미파, 청성파 중 하나겠지.”
“그럴 것입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하니까요. 단 천마가 출관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수 있습니다.”
“천마는 아직 폐관 중이지 않은가?”
“하지만 올해가 이십 년이니 그도 이제 출관할 때가 되었습니다.”
서민의 이 말에 그와 이야기하던 백성뿐만이 아니라 흑성을 비롯한 황보충, 정각, 강백호 등은 모두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니, 어떻게 그렇게 자신하는가?”
“예감입니다. 그리고 그가 출관하든 하지 않든 이제 무림의 운명을 건 본격적인 대결전이 펼쳐질 것입니다. 그러니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물론이지!”
지금까지는 대성공이었다.
기어이 마교와 정파를 피할 수 없는 대결 국면까지 몰아넣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승리하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었기에 그 부분은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건 그렇고 강 총관, 위해 상단에서 배는 더 샀습니까?”
“아니요. 지금도 다섯 척 그대로입니다.”
“그럼 시범 출항은?”
“했답니다.”
“그럼 되었군요. 어떻든 그 문제는 강 총관께서 모두 알아서 해주십시오. 하고 태원은 어찌 되었습니까?”
“다시 오십 명이 와서 훈련받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것도 됐고, 하여튼 우리 현룡문만 잘 돌아가는군요. 그래도 각 대원에게 검진을 특히 집중적으로 훈련하십시오!”
이번 공동 혈전에서 현룡문도 중 사망자는 없었고, 부상자는 다수 있었다.
그리고 그 사망자가 없었던 결정적인 요인이 천금신단 등 영단으로 형성된 내공과 이인검진이라고 판단한 서민은 그중에서 특히 검진 훈련을 강화하라고 이렇게 지시했다.
영단은 자기가 마음대로 만들 수 없었지만, 검진 훈련은 얼마든지 시킬 수 있었으니 말이다.
“알았네.”
“그런데 흑성 형님은 어찌 말이 없으십니까?”
“두 분 형수님께서 임신했습니다. 하여······.”
“정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강백호가 이렇게 대답하는 순간 서민과 황보충, 정각이 동시에 축하한다고 하자 흑백쌍성의 얼굴이 일시에 붉어졌다.
그러나 백성은 따로 흑성에게 할 말이 있었는지 이렇게 말했다.
“이 흑귀놈아! 네놈이 항상 문제다. 별일도 아닌 것을 가지고, 그리 인상을 쓰고 있으니 동생이 이리도 걱정하고······.”
“내가 뭘?”
“됐습니다. 두 분 또 싸우겠습니다. 이제 곧 아버지가 되실 분들이.”
“싸우기는 우리가 언제?”
“그런데 몇 개월이나 되었습니까?”
“오 개월이라고 합니다.”
“그럼 첫날밤에······.”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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