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월중천(赤月中天)(103)
흑성이 두 명의 여인을 보면서 이렇게 말하다가 끝을 흐렸다.
그러자 서민이 나서서 진향이 온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농담인 줄 알았는데, 그 말이 사실이었나?”
“진담이었습니다. 그러니 먼저 인사드리고······.”
이렇게 흑백쌍성과 진향이 데려온 두 명의 삼십 대 여인은 그 자리에서 일어나 살짝 고개만 숙이는 인사를 했다.
그러자 강백호가 나서서 두 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면서 그 여인들을 모셔갔다.
“두 분은 복도 많으십니다.”
“흠! 흠!”
“흑성 대협님! 좋으시죠?”
“진향이 너도 나를 놀리는 것이냐?”
“놀리기는요. 그리고 너희는 흑성 대주님과 백성 대주님께 어서 인사 올려라!”
진향의 이 말에 다섯 소년이 다시 일어나 자신을 소개하면서 정식으로 인사하자 흑백쌍존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면서 그들의 인사를 받았다.
바로 자신들의 제자가 될 아이라는 것을 알았으니 말이다.
“마음에 드는 아이가 있습니까?”
“너, 백위청(柏偉淸)이라 했느냐?”
“그렇습니다.”
“흑성 형님은 저 아이가 마음에 드십니까?”
“응, 저 아이는 내가 거두겠네!”
“백성 형님은요?”
“나는 진무(陳武)라는 저 아이를 거두겠네!”
“그럼 나머지 아이는 황보충과 정각 그리고 강 총관의 제자로 하면 되겠습니다.”
“그래, 그건 동생이 알아서 하면 되지.”
흑성이 이렇게 말하자 서민이 백위청과 진무라는 아이에게 말했다.
“두 분께서 너희의 사부님이 되실 것이다. 그러니 어서 예를 갖추어라!”
백위청과 진무라는 소년이 그 즉시 흑백쌍성에게 구배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흑백쌍성은 연신 흐뭇한 웃음을 지었고, 각 대주는 축하 인사를 건네기 시작했다.
“장연, 너는 저 곽해(郭海)라는 아이를 정각에게 데려다주어라!”
“존명!”
“대환! 공손창(共孫昌)은 네가 맡아라!”
이렇게 곽해라는 아이는 정각, 공손창이라는 아이는 황보충의 제자로 내정됐다.
그리고 두 여인을 편히 쉴 수 있는 전각으로 모신 강백호가 다시 현룡전으로 돌아오자 서민이 그를 앉히고는 정봉(鄭峯)이라는 소년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네 사부님이시다. 인사 올려라!”
“아니, 문주님!”
“잘 가르쳐 보십시오!”
“장 대주도 있고, 당 대주, 한 대주, 문 대주도 있는데 제가 어찌······.”
“그럼 제가 대신 맡을까요?”
청룡대주 문무철이 이렇게 묻고 나오자 강백호가 도끼눈을 뜨고는 그를 째려봤다.
“무섭습니다. 장군님! 아니, 총관님!”
“이로써 된 것 같군요. 그리고 강 총관께서는 제가 없는 동안 중매를 잘 좀 부탁합니다.”
“그건 제가 노력해 보겠습니다.”
“두 분은 제자에 이어서 이제 장가까지 가게 되었으니 정말 부럽습니다.”
“그러게요.”
서민과 대주들이 다시 흑백쌍성을 놀리기 시작하자 현룡전 분위기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청룡대 부대주 안양봉이 현룡전으로 들어오면서 내민 전서를 받아 읽어본 서민이 흑백쌍성 등에게 전서의 내용을 알려주면서 환하게 웃었다.
“공동파에서 이번에 마교도를 모두 물리쳤다는 내용입니다.”
“다친 황룡대원은 없고?”
“대원들은 모두 무사한 대신 다른 파에서 다소 사상자가 나왔다고 합니다.”
“그건 다행이지만, 마교가 결코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이니 그건 걱정일세.”
“그래서 말인데 화산에 있는 정각을 공동으로 보내어 황보충과 연합하여 싸우도록 해야겠습니다.”
“아무래도 공동파로 다시 쳐들어올 공산이 크니 그리한다면 대원은 별로 상하지 않겠군!”
백성과 이런 논의를 잠시 한 서민이 장연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장연, 서신을 써줄 테니까 정각에게 주고, 공동파로 가라고 하라. 알았느냐?”
“알겠습니다만, 화산에서 뭐라고 하면?”
“화산파 장문인에게도 따로 서신을 써주겠다.”
“알겠습니다.”
그런 의논이 한창일 때 진향이 이렇게 말하고 나섰다.
“문주님, 요즘 요동 청석령(靑石嶺)에 산적들이 출몰하여 고려를 오가는 상인과 백성이 심한 고초를 겪습니다. 그래서······.”
“산적이라니?”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그곳 산적이 고려를 오가는 백성과 상단을 수시로 공격하여 피해가 막심합니다. 그곳에는 그들을 토벌한 만한 관도 무림 문파도 없는지라 더 피해가 막심합니다.”
“요동 청석령이라고?”
“예, 요동 청석령이요.”
“동생, 내가 갔다 오겠네!”
그 말을 듣는 즉시 흑성이 자신이 가겠다고 했으나 서민이 고개를 저었다.
“형님은 이곳에서 할 일이 많으니 문을 떠나면 안 됩니다.”
“하지만······.”
“장연, 화산까지 얼마면 다녀올 수 있겠느냐?”
“열흘이면 충분하고도 남습니다.”
“좋다. 그럼 내가 자룡대와 현룡대를 이끌고 요동에 다녀와라. 할 수 있겠느냐?”
“존명!”
“진향, 그들에 관한 정보가 있으면 모두 장연에게 주라!”
“그러실 줄 알고, 그들에 관한 정보와 저기 있는 길잡이 장석주를 데려왔으니 그곳까지 안내할 것입니다.”
“그럼 되었군! 그건 그렇고 진향이 너는 이곳에 남아 내가 돌아올 때까지 강 총관과 협의해서 두 분을 잘 돌봐 드리고, 혼인도 반드시 성사시켜라!”
진향이 환하게 웃으면서 그렇겠다고 하자 흑백쌍성이 동시에 헛기침을 토해냈다.
그런 그 날 밤, 정각의 제자로 내정된 곽해라는 아이와 황보충의 제자로 내정된 공손창이라는 아이를 단심거로 부른 서민이 그들에게 현룡심공을 전수해주면서 천금신단 한알씩을 복용하게 했다.
화산과 공동으로 먼 길을 가야 했기에 말이다.
“구결은 다 외웠느냐?”
“예, 문주님!”
“좋다. 좋아! 그럼 이제 운공해 보아라!”
그리고 맞은 아침, 화산파로 떠나는 장연이 역시 공동파로 떠나는 서민을 배웅했다.
“잘 다녀오십시오!”
“그래, 너도 잘 다녀오고 돌아오는 즉시 자룡대와 현룡대를 데리고 요동에 다녀오도록. 그리고 모든 일에 특히 신중에 신중을 기하고.”
“존명!”
“그리고 곽해야. 화산에 가서 모쪼록 잘 배워서 이 사백을 실망하게 하지 마라!”
“잘 알겠습니다.”
흑백쌍성을 비롯한 대주들과도 인사를 나눈 서민은 그렇게 한혈마에 올라타고 관도를 내달렸다.
그러자 그 뒤를 강대환이 황보충의 제자가 될 공손창을 말안장 앞에 앉히고는 따랐으며, 서민의 제자 장형은 황궁 호위대장 조민의 청홍검을 어깨에 둘러메고 역시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쉼 없이 달리고 달린 서민은 어느 사이 감숙 공동산 근처에 이르러 있었다.
“이곳에서 좀 쉬면서 공동파에 기별이나 넣고 찾아가는 것이 좋겠다.”
“그럼 제가 가서 기별을 넣고 오겠습니다.”
“그럴 필요 없으니 저기 보이는 개방 방도나 데려와라!”
서민은 그렇게 가까운 객점으로 들어갔고, 강대환은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개방 방도를 데리러 갔다.
그리고 잠시 후 강대환이 데려온 개방 방도에게 서민이 이렇게 말했다.
“본좌가 공동파를 방문해야겠는데, 좀 도와주시오!”
“혹시?”
“본좌가 현룡문주요.”
“역시 그렇군요. 서 문주님의 부탁을 어찌 거절할 수 있겠습니까. 이 공 아무개가 즉시 공동으로 달려가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이렇게 대답한 개방 방도가 진짜 금방 달려가려 하자 강대환이 그를 붙잡아 금화 한 냥을 건네주었다.
그렇게 개방 방도가 공동으로 가자 서민은 강대환과 장형을 시켜서 가져갈 선물을 준비하게 했다.
그리고 두 시진 후, 오후의 넉넉한 햇살을 받는 공동파 정문에는 황보충과 황룡대원들이 나와서 서민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서민 등이 나타나자 황보충이 얼른 달려가서는 이렇게 말했다.
“사형, 이 먼 곳까지 어떻게 오셨습니까?”
“사제와 대원들을 보러왔지. 그리고 공손창, 인사드려라. 네 사부님이다.”
“공손창이라 합니다.”
“아니, 사형, 이 아이는······.”
“못 들었느냐. 사제의 제자가 될 아이라는 것을.”
“예?”
“뭘 그리 놀라. 그리고 장형, 사숙께 인사 올리지 않고 뭐 하느냐?”
“소질 장형이 사숙님을 뵙습니다.”
졸지에 제자 공손창과 사질 장형의 인사를 받게 된 황보충은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러자 서민이 이렇게 말했다.
“자세한 것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지.”
“예!”
조철군과 종남 장문인 고광현 등이 그때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존성대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장문인 고광현입니다.”
“서민입니다.”
“현룡검선이라는 사형이자 현룡문 문주님이 이분이시오. 황 대협?”
“그렇습니다.”
“하하하. 반갑습니다. 조철군이라 합니다.”
“서민입니다.”
“자자,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안으로 들어가십시다.”
그렇게 공동 장문인 고광현의 안내로 아담한 전각으로 들어서자 그곳에는 이미 신속대응군 수장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서 문주님!”
“아, 한 대협!”
안면이 있는 개방 취걸개 한평을 비롯해 검제 정천룡 등과도 그렇게 인사를 나눈 서민은 공동에서 마련한 차와 음식을 먹으면서 본격적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소림과 무당 신속대응군은 언제 옵니까?”
“사흘 후에는 올 것입니다. 서 문주님!”
“그들이 오고, 화산에 있는 비룡대도 오면, 고 장문인께서는 그리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군요.”
“항마신검(降魔神劍)이라는 정각 대협의 비룡대가 이곳으로 온다는 말입니까?”
“정각의 비룡대는 맞는데, 항마신검이라니요?”
“아니, 서 문주께서는 사제들의 별호도 모르십니까. 정각 대협은 저번 종남 혈전 후 항마신검이라는 별호를 얻었고, 황보 대협은 이번 혈전으로 결하신검이라는 별호를 얻었는데 말입니다.”
금시초문이었기에 서민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신검이라니 과하지만, 사제들을 좋게 보아주니 기분은 좋군요.”
이런 이야기만이 아니라 개방의 지원군 일백 명도 공동으로 오는 이야기, 검제 정천룡의 사제 단운검왕(斷雲劍王) 유원영(劉原榮) 등이 역시 공동으로 지원을 오는 것 등 제법 많은 이야기가 그렇게 오고 갔다.
그런 그날 저녁, 황룡대가 묵는 전각으로 자리를 옮긴 서민은 황룡대원들을 모아 놓고 이런저런 당부 끝에 지금신단을 꺼내 놓았다.
“너희의 무공은 이미 초절정이지만, 나는 항상 너희의 내공이 약함을 걱정해 왔다. 하니 이것을 복용하고 돌아가면서 운공 하라! 대환과 장형. 너희가 호법을 서주어라!”
“존명!”
“사제, 우리는 나가자!”
황룡대원들이 지금 신단을 복용하고 운공하도록 배려한 다음 황보충, 공손창과 함께 밖으로 나온 서민은 전각 한쪽에 마련된 정자에 앉아서 또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잘 가르쳐 보아! 만약 우리가 실패하더라도 이 아이들이 우리 뒤를 이어서 대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그리고 정각 사제에게도 제자를 보냈고, 흑백쌍성 두 형님도 제자를 받아들였고······.”
“하오나?”
“사제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바 아니나 허락된 시간만이라도 제자와 같이 보내라는 내 뜻은 저버리지 마라! 그리고 상황이 매우 급하게 돌아가면 모두를 백두로 보낼 것이다. 그러면 되지 않겠느냐?”
짧은 시간만이라도 제자와 함께 보내면서 정을 쌓으라는 이 말에 황보충은 뭐라고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만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사제, 오늘 달빛이 참 곱구나!”
“그렇군요. 그런데 정말 정각을 이곳으로 불렀습니까?”
“그래, 혼자보다는 둘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서.”
“그럼 저야 좋지만. 사제는......”
“정각도 좋아할 것이다. 그리고 공손창, 사부님께 잘 배워야 한다.”
교교한 달빛 아래 서민과 황보충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 작가의말
즐거운 추석 한가위 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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