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월중천(赤月中天)(93)
원나라 황궁.
“하북 팽가가 불에 타고, 호위대장 조민과 호국위 부대주 대석화 그리고 호국위들이 모두 죽었다는 그 말이냐? 지금!”
“예, 폐하!”
“이런, 이런, 이런 개 같은 일이.”
“......”
하북 팽가와 함께 서민을 죽이러 갔던 황궁 호위대장 조민과 호국위 부대주 대석화 그리고 호국위들이 모두 죽었다는 보고에 순제는 노발대발 한동안 지랄발광을 했다.
그에 그동안의 경과를 조사해 보고하던 중원 이름을 원광민(元光敏)이라고 지은 그의 충복 바티는 한동안 입도 열지 못했다.
“바티, 무슨 방도가 없겠나?”
“폐하, 현 상황에서는 별다른 방도가 없을 것 같습니다.”
“뭐라고?”
“남쪽은 이미 중원 놈들이 차지하여 국가를 세우고 스스로 칭왕(稱王) 하는 실정입니다. 폐하께서도 아시다시피 우리 군은 연전연패하여 이제 더는 그들과 싸울 여력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무림 문파를 친다고, 군을 동원할 수도 없으니 별수가 있겠습니까.”
“이놈. 말이면 다 말인 줄 아느냐?”
“......”
순제가 대노하여 다시 소리치자 원광민은 입을 닫았으나 그에게 아직도 이런 바른말을 해주는 신하가 남아있다는 것은 신기했다.
“바티, 방법을 말하라는 말이다. 방법, 그들의 원수를 갚을 방법! 그 현룡문을 없앨 방법 말이다.”
“폐하께서는 이미 이이제이 방법을 썼으나 실패했습니다. 다시 이이제이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이 시점에서도 최선이나 그들을 상대할 만한 세력은 사실 몇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 모두는 우리의 영향권 밖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현룡문이 팔파와 연합을 맺고, 마교와 싸운다니 그들을 이용하는 수밖에는······.”
“마교라?”
“그렇습니다.”
“하나 그들은 그냥 두어도 서로 싸워서 양패구상할 것이 아니냐?”
“그렇습니다만, 폐하께서 복수를 원하시니 마교를 도와 현룡문을 친다면 혹시라도 현룡문이 마교를 이기는 불상사는 막지 않겠습니까.”
원광민의 이 말에 순제가 곰곰 생각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그 일을 맡길만한 인물이 있나?”
“패력검(覇力劍), 그들 사형제가 있지 않습니까.”
“당장 그들을 불러라!”
***
화산파.
구파 장문인들이 수려한 화산의 경치를 뒤로하고, 장문회의를 위해 속속 화산파로 모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화산파 장문인 금현의 개회 선언으로 장문 회의는 막을 올렸다.
“우선 종남의 새 장문인 된 월하검 금주현 대협을 소개합니다.”
종남 월하검 금주현과 사우검 송선은 화산파에 신속대응군으로 와 있었기 때문에 살아남아 아직도 종남파가 건재하다는 것을 전 무림에 알리기 위해서 금주현이 고광인의 뒤를 이어서 새로운 종남 장문인이 됐다.
그런 그가 화산 장문인 금현의 소개를 받고 자리에서 일어나 이렇게 말했다.
“여러 장문인 이하 각파 대협께서는 본문의 참사를 들어 아실 겁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본인은 전임 장문인의 유지를 받들어 마교를 뿌리 뽑는데 전심전력을 다 할 것입니다. 이상입니다.”
이 짧은 말속에 하고 싶은 말이 다 들어 있었기에 금주현은 이러고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화산파 장문인 금현이 일어나서 이렇게 말했다.
“신임 종남 장문인에 이어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릴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검제(劍帝) 정천룡(鄭天龍) 대협입니다. 이번에 제자들과 함께 신속대응군에 지원해왔으니 들 환영해 주시기를 바라면서 아울러 천룡검존(天龍劍尊) 백무상(白無常) 대협, 권제(拳帝) 운흑(雲黑) 대협, 무영도(無影刀) 강창민(姜昌玟) 대협도 제자들과 함께 지원해왔습니다. 들 환영해 주십시오. 또한, 청성파, 점창파, 공동파에서도 신속대응군 이십 명을 보내겠다는 연락도 왔습니다.”
이어진 금현의 이 말에 좌중의 무거운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는 듯했다.
기존 구파에 청성파, 점창파, 공동파가 참가한다면, 이는 곧 정파 대문파들이 모두 참가하는 이른바 정파 무림맹이 탄생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아미파, 형산파, 해남파, 모산파, 태산파 등의 문파가 빠졌고, 남궁, 제갈 등 무림 세가들이 빠졌지만 말이다.
“아미타불! 소승은 모두 환영합니다. 그리고 이번 장문회의는 종남과 곤륜에서 벌어진 마교의 침입을 상의하고, 향후의 대책을 모색하고자 모인 것입니다만, 그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현룡문과 하북 팽가의 일전입니다. 왜 그런 일이 벌어졌는지. 그 명확한 이유 말입니다. 그러니 서 문주께서는 이 자리에서 그 명확한 진상을 밝혀주십시오.”
“으하하! 방장 대사, 진심으로 그것이 알고 싶소?”
소림사 방장 지현의 말을 서민이 이렇게 받았는데, 이 웃음과 말에는 약간의 내공이 실려 있었기에 장내 인물 대부분은 귀를 틀어막아야 했으니 서민이 좌중에게 일종의 경고를 한 것이라고 보면 됐다.
헛소리 지껄이거나 까불면 하북 팽가처럼 만들어버리겠다는 그런 것 말이다.
어떻든 이때 서민의 위상은 말 그대로 구파의 누구도 제어할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였으니 정말 별호처럼 검선의 반열에 오른 감이 있었다.
“으으! 그렇소이다. 서 문주.”
“대사가 그렇게 물으실 줄은 몰랐소. 그러나 이런 물음이 있을 줄 알고, 하북 팽가와의 일전에서 노획한 몇 가지 물건을 가져왔으니 보시고, 하북 팽가 가주 팽광과 본좌가 합의한 합의문도 있으니 그것도 보시오. 그런 다음 다시 이야기합시다.”
이렇게 말한 서민이 하북 팽가 가주 팽광과 싸우기 전에 합의한 합의문을 진주 언가 가주 언한에게 건네는 순간 강대환이 황궁 호위대장 조민과 호국위 부대주 대석화 등의 품속에서 찾아낸 금패와 은패, 동패를 탁자에 올려놓았다.
“대환, 청홍검은 방장 대사께서 보시라고 드려라!”
그렇게 조민의 청홍검을 강대환에게서 건네받은 소림사 방장 지현, 합의문을 본 진주 언가 가주 언한, 금패, 은패, 동패 등을 살펴본 사천 당문 가주 당천, 개방 방주 백계원 등의 표정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대사, 그 검의 출처를 대충 아시겠소?”
“당 가주께서는 혹 그 금패의 출처를 아시오?”
“언 가주는 합의문에 뭐 잘못된 것이 있으시오?”
“백 방주는 이미 산서 분타로 보낸 합의문을 보셨겠죠?”
서민의 연달은 이 질문에 소림사 방장 지현은 묵묵부답으로 검만 바라봤으나 사천 당문 가주 당천은 무거운 듯한 입을 열어 이렇게 대답했다.
“이것은 원나라 황실의 신분증명 패가 아니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본좌도 여러 곳에 확인한 결과 당 가주와 같은 대답을 얻었으니 그럴 겁니다.”
“음!”
사천 당문 가주 당천의 무거운 침음이 있고 난 후에 바로 진주 언가 가주 언한이 나섰다.
“서 문주와 팽 가주가 작성한 합의문에는 이상이 없소! 그러니 이건 정당한 합의문으로······.”
“언 가주, 그렇죠? 그럼 그 합의문을 옆에 계신 무양자께도 보여 주시오.”
무당파 장문인 무양자에게 합의문은 그렇게 건너갔고, 이어서 화산파 장문이 금현에게로 이어졌으며, 개방 방주 백계원 등은 금은동패와 청홍검을 살펴봤다.
그러자 서민이 앞에 놓인 탁자를 소리 나도록 친 다음 이렇게 말했다.
“이런 물건을 가진 자들이 팽가와 함께 본문을 넘보았소. 여러분께서 이제 확인했으니 그들이 누구이며, 무엇 때문에 팽가와 함께 본문을 넘보았는지 그 이유를 좀 설명해 주시오. 그리고 그 합의문은 보았듯 팽가 가주 팽광과 본좌가 합의하고 작성한 것이오. 그러니 더 할 말이 있으면 해보시오.”
“.......”
“방장 대사, 진상을 밝혀 달라고 했는데 무슨 할 말 없습니까?”
“아미타불!”
소림사 방장 지현은 뭐라고 대답도 못 하고 불호만 읊조렸다.
누가 봐도 서민이 꺼내 놓은 것은 황궁의 물건이었고, 합의문도 명백했다.
그랬으니 하북 팽가는 황궁과 함께 현룡문을 치려고 한 것이고,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삼척동자도 알았다.
하북 팽가 태상 가주였던 칠척신도 팽황과의 개인적 친분에서 그들의 멸문 이유를 따지고 혹 잘못이 있으면 현룡문에 그 책임을 물으려 했지만, 명확한 증거들 앞에서 혹 떼려다가 혹 붙인 결과를 만든 것 같아 지현은 이렇게 불호만 읊조렸다.
그러자 서민이 다시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 모인 구파와 여러 대협은 마교를 상대하기 위해서 모인 겁니다. 그런데 마교가 아니라 다른 문파의 공격을 받는다면, 그때는 어떻게 할 것입니까. 방장 대사, 만약 남궁세가의 공격을 받는다면 소림은 어떻게 할 것이냐고 묻는 겁니다.”
“아미타불!”
“방장 대사가 대답하지 않으니 백 방주께 묻겠습니다. 그런 경우 개방은 어떻게 하겠소이까?”
“서 문주가 그동안 겪었을 고충이 이해가 됩니다. 어느 누가 하북 팽가가 오랑캐와 손잡고 공격해 올 줄 알았겠습니까. 이 시간 이후로 구파 연합 나아가서는 이번 대업에 참가하는 문파가 타 문파의 공격을 받는다면, 개방은 망설임 없이 도움을 드릴 용의가 있으니 그런 어려움이 발생하면 바로 개방에 연락해 주시기 바라오.”
“저희 언가도 같습니다. 그러니 그런 일이 발생하면 저희 언가에도 연락해 주시기 바랍니다.”
개방 방주 백계원에 이어서 진주 언가 가주 언한까지 이러자 좌중이 잠시 술렁거렸다.
그러자 화산 장문인 금현이 나섰다.
“이 문제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걸릴 수도 있는 문제이니 향후 그런 일이 다시 일어나면 각파가 알아서 결정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즉 구파 연합과는 상관없고, 상관없도록 말입니다.”
무당 장문인 무양자도 나섰다.
“금 장문인의 말처럼 그런 일이 발생하면, 그때는 각파가 알아서 결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럽시다. 각파가 알아서 결정하도록 말입니다.”
곤륜파 장문인 문진까지 같은 주장을 하자 좌중은 어떻게 하는 것이 자파에 도움이 될 것인지를 놓고 의견을 내놓았고, 기어이 그것으로 열렬한 토론까지 벌였다.
그 바람에 구파 장문회의는 설왕설래하는 토론장으로 변해갔다.
***
마교.
마교 교주 만마신군 소진악은 그때 부교주 사공도의 보고를 받고 있었다.
“교주, 구파 장문인들과 무림에서 제법 이름을 날리는 자들이 화산파에 모여서 종남파 일 등을 논의한다고 합니다.”
“구파 장문인들이 화산파에 모였다고?”
“그렇습니다.”
이 보고에 소진악이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희미한 미소를 짓고는 사공도에게 이렇게 명령했다.
“즉시 마왕과 대주들을 호출하라!”
“마왕과 대주들을요.”
“그렇다. 그리고 홍청, 마령오제를 불러오라!”
“존명!”
그렇게 각 대주들과 마왕들 그리고 마령오제가 교주전으로 들어오자 소진악이 그들을 한번 둘러보고는 이렇게 말했다.
“구파 장문인들이 화산파에 모여서 향후의 일을 논의한다는 정보가 입수됐다. 그들이 무엇을 논의할지는 그대들도 잘 알 것이니 우리는 이 기회를 노려 곤륜파를 친다.”
부교주 손노선이 놀라서 되물었다.
“교주, 곤륜파를 친다 하셨습니까?”
“그렇다.”
“하나 그러면······.”
“손 부교주, 본좌의 명령이다.”
이미 종남파를 쳐서 멸문시킬 때부터 예견된 일이었고, 이제는 자신이 뭐라고 해도 교주 소진악의 마음을 돌릴 수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부교주 손노선은 순순히 복명할 수밖에는 없었다.
“존명!”
“사공도, 그대가 간다. 냉마왕(冷魔王), 탈혼대주(奪魂隊主), 그대들도 간다. 마령오제, 그대들이 길을 열어라!”
“알겠소!”
“사공도 부교주, 장문인이 없는 곤륜파를 치는데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 순간 부교주 사공도는 등골이 오싹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실패하면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뜻이 그 말속에 내포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충분합니다.”
“손 부교주, 그대가 지원한다.”
“존명!”
“사공도 부교주, 이번 일은 시간과의 싸움이 될 것이니 준비되는 즉시 출발하라.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는 것을 명심하고.”
- 작가의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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