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바스토폴 2 (흑해함대 함께 치자)
세바스토폴 2 (흑해함대 함께 치자)
“예? 세바스토폴에 가서 진짜로 러시아 함정을 깨부수자 고요? 에이~ 무슨 그런 농담을 다 하십니까? 흐흐.”
러시아 흑해함대나 깨부수면 좋겠다던 괴뉠이 막상 창선이 그러자고 하니까 농담하지 마라며 히죽거렸다.
“함정 전부는 안되겠지만 한 두 척은 침몰시킬 수 있지 않겠어요? 우리 드론 잠수정 열 여덟 대 전부 동원하고 우리 대원들도 함께 참가하겠습니다.”
창선이 정색을 하고 괴뉠과 데킨을 번갈아 쳐다봤다.
“창 사장님! 그 말 진정으로 하시는 겁니까? 아무리 우리가 서로 우호적인 사이 이기는 하지만, 정말 그렇게 해서 우리 원한을 풀어주겠다는 말입니까?”
농담이 아니라는 느낌이 오는지 데킨이 얼굴 표정을 바꾸며 물었다.
“예, 물론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지요, 실은.. 미처 말씀을 못 드린 게 하나 있습니다. 워낙 중대한 일이라서요. 음, 흠.”
창선이 턱을 쓱쓱 문지르며 겸연쩍은 눈웃음을 지었다.
“중대한 일이요? 그게 대체 뭡니까?”
“예, 사실은 우리가 러시아 흑해함대를 공격하려고 저 잠수정들을 가져온 겁니다.”
“예? 터키 관광회사에 팔려는 게 아니고, 흑해함대 공격용이라고요?”
데킨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아니, 창 사장님의 창원터키가 러시아 흑해함대를 왜 공격해요?”
괴뉠도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은 얼굴로 창선을 쳐다봤다.
상상도 못한 얘기에 데킨과 괴뉠은 어이가 없어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눈만 껌벅거렸다.
“에.. 사실은 우리 창원터키의 페넥 폭스 대원들은 한국의 애국단체 밑에 있는 전투부대입니다.”
“예? 페넥 폭스가 애국단체 소속 전투부대라고요? 아, 참. 창 사장님이 부단장으로 있었다던 그 흥사 뭔가 하는 애국단체 말씀이지요?”
터키 인지를릭 공군기지 습격 후에 창선의 운전병이 창선을 부단장이라고 불렀는데, 데킨이 무슨 말이냐고 물어서 얼떨결에 한국 ‘흥사단’에서 함께 일했다고 둘러댔었다.
“예, 흥사단이요. 제가 부단장이고 단장님이 따로 있습니다.”
창선의 ‘대도무문단’이 졸지에 일제 강점기 때 도산 안창호 선생님이 조직했던 ‘흥사단’이 돼버렸다.
흥사단은 무실(務實). 역행(力行), 충의(忠義), 용감(勇敢)의 4대정신을 지도이념으로 하는 수양단체이다.
“아, 그럼 단장님도 이란에 와 있습니까? 어쩐지 페넥 폭스 인원이 전 보다 늘었다 싶더니···”
데킨의 궁금증이 풀리는 모양이다
“예. 그러잖아도 조금 있으면 여기로 오실 겁니다. 단장님이 두 분께 직접 말씀 드리고 양해를 구하신다고 했거든요.”
단장이 직접 설명하려고 했으니까 미리 말해주지 않았다고 너무 서운해 하지 마라며 다독였다.
“그래요? 그럼 아예 처음부터 흑해함대를 치기 위해서 잠수정을 한국에서 들여온 거군요!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터키 관광회사에 팔아먹는 줄 알고, 길 안내하면서 여기까지 공짜로 얻어 타고 왔다고 괜히 좋아했네요? 그죠? 대장님!”
괴뉠이 서운한 눈으로 창선을 흘겨보며 데킨에게 공감을 구했다.
창선의 부대는 드론 잠수정 18척을 카스피해에서 흑해까지 육지의 수로로 이동시켜 왔다.
트럭에 싣고 터키를 통과하는 육로 이동은 국경 검문 때문에 도저히 불가능해서 데킨에게 수로 안내를 부탁했던 것이다.
데킨 부대가 이라크 북쪽 시리아 땅에서 흑해를 거쳐 카스피해까지 도망쳐 올 때 러시아의 수로를 통과했다는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서다.
창선이 그대로 까놓고 얘기할 수 없으니까 꾀를 내어 터키 삼순 항에 있는 관광회사에 관광객들의 수중 탐사용으로 팔 잠수정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나중에 제대로 얘기해주기만 하면, 창원-터키에 생 칠면조를 한 달에 3천 마리, 6만달러어치씩이나 납품하는 ‘을’인 데킨이 별반 불만 없이 이해해 주리라 믿었다.
잠수정을 이스탄불 항구를 통해 정식으로 통관할 수 없는 이유도, 터키 세관에서 잠수정을 잠수함으로 지목해서 관세를 엄청나게 내야 하기 때문이라고 둘러댔다.
그래서 마침 그러잖아도 육로로 이곳 알락해치까지 와야 했던 데킨 부대원 20명이 뱃길을 안내해주며 잠수정을 얻어 타고 함께 왔던 것이다.
‘창원-터키’ 공장이 있는 이란의 고르간 시 서쪽 ‘고건’ 만 별장 선착장에서 출발하여 카스피해를 북쪽으로 가로지르고, 러시아의 ‘아스트라한’ 항구에서 강과 운하를 거쳐 ‘볼고그라드’와 ‘라스토프 나 돈’까지 육지의 수로를 통과한 다음, ‘아조프’해에서 ‘케르치’ 해협을 지나 흑해로 빠져서 이곳 알락해치까지 총 2,700Km의 험한 길을 근 2박3일만에 이동해 왔다.
데킨부대의 안내가 없었다면 창선의 부대 스스로는 도저히 찾아올 수도 없는 길이다.
그러니 지금 창선의 얘기처럼 흥사단 부대의 잠수정이 러시아 흑해함대 기습작전을 위해 흑해로 꼭 나와야 되는 상황이었다면, 가난한 데킨의 부대가 얻어 탔다고 고마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부자인 창선의 부대에서 안내에 대해 큰 감사를 드려야 옳은 일이다.
꾀 많고 약삭빠른 부대장 괴뉠이 그런 유리한 상황을 그냥 넘기고 지나칠 위인이 결코 아니다.
가만 생각해보니 창선이가 인지를릭 공군기지 철조망 울타리에 레이저 권총으로 개구멍 세 개 뚫어주고는 엄청난 이득을 취한 셈이다.
여기 알락해치의 강기슭에 잠수정 기지를 마련하지 못했다면 창선은 어쩔 뻔 했을까?
거기다 이제는 자기들 YPG부대의 지원을 요청하려고 술수를 쓰고 있지 않은가?
이왕 원수처럼 되어버린 러시아 군부니까 흑해함대를 깨부수고 맺힌 응어리라도 푸는 게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만약 러시아 군부 대신에 부자인 창원-터키로부터 뭔가 큼직한 대가를 받아낼 수 있다면 꿩 먹고 알 먹는 격이 아니겠는가?
“응? 그래, 그건 그렇지. 그래도 한국 애국단체에서 러시아를 상대로 큰 작전을 펼치려고 왔는데 그런 사실을 우리한테 그대로 다 얘기할 수는 없지 않았겠냐? 우리도 아는 길 안내해 주고 여기까지 함께 타고 왔으면 잘된 일이고. 그때 러시아 군부에서 보내준다던 트럭 타고 왔으면 기름값은 우리가 내야 했었어. 허허.”
그래도 사려 깊은 데킨은 창선을 이해하는 척 하고는 짐짓 괴뉠의 투덜대는 옹졸한 태도를 나무라며 웃어넘겼다.
“그 흥사단이라는 애국단체는 국가에서 지원하는 단체인가요? 단장님까지 왔다면, 대원은 지금 이란에 있는 오륙십 명이 전부이겠네요?”
괴뉠은 물러서지 않고 흥사단에 관한 더 많은 데이터를 얻어내려고 한다.
“음.. 아닙니다. 그냥 뜻있는 사람들이 모인 사설 단체에요. 대원도 전부 3백명쯤 되고요.”
“예? 3백명이나 돼요? 상당히 큰 단체네요! 그런데, 그런 많은 인원이 전투까지 치르려면 자금이 엄청나게 들지 않아요?”
괴뉠이 돈은 넉넉히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예, 맞습니다. 돈이 굉장히 많이 들어가지요. 다행히 후원해 주시는 아주 갑부 되시는 분이 한 분 계셔서 돈 걱정은 안하고 운영되고 있습니다. 하하.”
“그렇군요. 그 후원하시는 분이나 대원들이나 러시아에 무슨 원한이 있어서 재산과 목숨을 걸고 그런 일을 하는 겁니까? 러시아에 살다가 맨몸으로 쫓겨나기라도 했나요?”
돈 얘기까지 묻는 괴뉠을 흘겨보며 데킨이 다시 나서서 다른 질문을 했다.
“하하, 아니에요. 잘 모르시겠지만 한 70년 전에 코리아에서 한국전쟁이 일어났어요. 그때 구 소련인 러시아가 노스 코리아에 무기를 제공하면서 부추겨서 사우스 코리아로 남침을 시킨 겁니다.”
“아, 그랬어요? 그러면 그때 흥사단 대원들 선조들이 러시아 군대에 의해서 피해를 많이 봤던 모양이군요? 그래서 러시아에 대해 원한이 사무쳐 있는가 봅니다.”
데킨이 흥사단 대원들이 목숨 바치는 이유가 이해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사상자가 전부 3백만명쯤 됩니다. 군인과 민간인을 다 합한 건데, 민간인이 1백만 명 정도 되고요. 노스 코리아를 지원하던 중공군, 그러니까 지금의 중국 군대의 사상자가 1백만명이나 되는데, 막상 전쟁을 일으키게 한 러시아의 사상자는 몇 명 되지도 않아요. 전쟁 물자만 제공하고 전투에 직접 참가하지는 않은 거지요.”
“아하, 저런! 거 러시아 민족은 아주 질이 안 좋은 족속들이구먼 그래. 지금 우리한테 돈 좀 쥐어주면서 터키 공군기지 습격하라고 시키는 거나 마찬가지 짓거리를 한 거 아닙니까?”
데킨이 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렇지요. 동족을 침략한 노스 코리아도 문제가 있지만, 동족끼리 피 흘려 서로 죽이면서 싸우게 만든 그 러시아가 더 나쁜 원흉이 아닙니까? 그런데 일반 국민들은 그런 역사적인 배경은 잊어버리고 동족인 노스 코리아만 미워하고 있어요. 작년 러시아 월드컵 때는 러시아 축구팀을 응원하기도 했다니까요!”
창선이 기가 찬다는 듯이 열변을 토했다.
“흠, 그래서 양식 있는 분들이 나서서 애국단체인 흥사단을 만든 거군요. 참 훌륭한 분들이네요. 창 사장, 아니 창 부단장님 대원들 말입니다. 허허.”
“예, 그런 셈이지요. 그러니 우리가 러시아 흑해함대를 깨부수는데 데킨 대장님께서 도움을 좀 주셨으면 합니다. 하하.”
“아, 물론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뭘 어떻게 도우면 되겠습니까?”
데킨이 흔쾌히 대답하며 괴뉠을 힐끔 쳐다봤다.
“세바스토폴 항구에 침투하려면 우선은 거기서 가까운 곳에 안전한 잠수정 기지를 마련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요. 여기서는 가는 데만 해도 다섯 시간은 더 걸리겠지요. 우크라이나로 들어가면 좋겠지만 너무 머니까, 위험하더라도 러시아가 장악하고 있는 크림반도 안에서 어디 적당한 장소를 찾아봐야 되겠군요.”
“그렇습니다. 크림반도도 넓으니까 해안을 따라 잘 찾아보면 좋은 곳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훑고 다니려니까 우리 동양인은 눈에 너무 띄어서 문제가 됩니다. 거기다, 렌터카도 빌리고 가옥 임차 계약도 맺어야 하는데, 아무래도 러시아 여권을 갖고 있으면 수월할 거 아니겠습니까?”
“흠.. 그건 그렇겠네요. 그럼 우리는 전투에 직접 참가는 안하고 잠수정 정박시킬 기지 마련하는 정도의 일만 맡아서 처리하면 되겠습니까?”
“예. 함정이 정박하고 있는 항구의 기습공격은 잠수정을 타고서 할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잠수정 열여덟 척에 우리 대원들만 타도 모두 꽉 찹니다. 이번에는 태워드릴 빈 자리가 없는데요. 하하.”
“아니, 창 사장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죠, 우리 YPG 부대원도 전투에 참가해야 러시아 군부에 대한 분이라도 풀 거 아닙니까?”
괴뉠이 대뜸 크게 소리지르며 나섰다.
전투에 참가해야 창원-터키에 더 큰 보답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니까.
“그건 괴뉠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4인승 두어 척이라도 내 주시면 안될까요?”
데킨도 1개분대 정도는 전투에 참가했으면 싶은가 보다.
“아, 그렇기는 하겠네요. 저는 위험부담만 생각했는데, YPG 대원들의 분도 풀어줘야 되겠군요. 이 문제는 제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으니까, 조금 있다가 우리 단장님이 오시면 건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실 때가 다 돼 가네요.”
창선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고문도 단장이 오면 의논하자고 미뤘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지요.”
데킨이 수긍하며 괜히 함께 시계를 들여다 봤다. 몇 시에 오는지도 모르면서.
“운전병 딸린 4인승으로 세 척이면 딱 좋은데요! 그러면 우리 대원들 1개분대가 타고 단독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도 있지 않습니까?
괴뉠은 확실하게 못을 박으며 요구했다.
2인승보다 중요한 4인승 잠수정이 전부 12척인데, 그 중에 3척을 달라고 하면 4분의 1이나 된다.
자기들 YPG부대의 존재감을 좀 높여보려는 괴뉠이 너무 설치고 나선다.
“음.. 그건 좀 곤란한데요. 1개분대 아홉 명 당, 2인승 한 척과 4인승 두 척이 배정되어 있어요. 그래서 분대장까지 9명인 분대가 단독으로 정해진 작전을 펼칠 겁니다. 예를 들면 1분대는 구축함, 2분대는 잠수함, 이런 식으로요. 그런데 4인승 세 척을 빼버리면 6개 분대 중에 2개분대는 이상하게 돼버리지 않습니까?”
“아, 그렇군요! 그러면 아예 저희한테 1개분대용 잠수정 3척을 배정해 주시면 어떻습니까? 우리 YPG부대 단독으로 전투를 벌여서 초계함이든 호위함이든 만만한 걸로 확실하게 요절내버리게요. 흐흐.”
어떻게든 작전에서 공을 세워보려고 괴뉠이 별별 제안을 다 한다.
“음.. 그것도 좋은 생각이긴 합니다만, 이따 단장님 오시면 한번 여쭤보겠습니다.”
창선이 그것도 고문도의 결정으로 미뤘다.
데킨과 괴뉠의 눈에는 창선이 갑자기 왜소해지면서 창 사장님이 아닌 별 볼일 없는 다른 사람처럼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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